미아리고개

한성대학교 미디어위키
이동: 둘러보기, 검색



개요

서울특별시의 성북구 동선동과 돈암동 사이에 위치한 고개로 한국전쟁과 연관이 깊다.

위치

지도를 불러오는 중...

한성대입구역에서 가는 법

한성대입구역 1번 출구 -> 삼선교.한성대학교.조소앙활동터 정류장에서 109번 버스 승차 -> 미아리고개.미아리예술극장 하차 후 도보 3분

이름의 유래

미아리고개라 불리게 된 이유는 오래 전부터 이곳에 미아사라는 절이 있었으므로 미아동의 동명이 생겨났고, 이 고개가 미아동으로 넘어가는 고개였기 때문이다.
혹은 일제 때 미아동에 공동묘지가 조성된 후 미아리고개라 칭하게 되었다고 한다.
되놈이 넘어온 고개라고 하여 되넘이고개(돈암현)로 불리기도 하였고, 병자호란 때는 오랑캐가 이곳으로 넘어왔다고 해서 적유령이란 명칭이 사용되었다. (병자호란 당시에는 여진족이 한성의 부녀자를 붙잡아 이곳을 통해 끌고 갔다는 이야기가 있다.)

소개

역사적 이야기

  • 6.25 전쟁과 미아리고개
<요약>
미아리 고개는 서울에서 북쪽으로 가는 길목의 첫 번째 큰 고개였고, 북쪽에서 서울로 들어오는 문턱이 되는 고개였다. 따라서 한국전쟁 당시 서울의 최후 방어선이 되었고 그곳에서 북한군과 한국군의 교전이 벌어졌다. 
북한군이 퇴각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지식인, 애국지사들이 포로가 되어 줄줄이 이 고개를 넘어 북으로 끌려갔다.
<전개 과정>
-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북한군의 기습적인 남침으로 38도 분계선의 모든 전신이 무너지고, 분계선으로부터 45km에 불과한 서울은 위협에 직면하게 된다.
- 1950년 6월 27일 오전 7시: 광주 및 전주 등에 주둔 중인 제5사단은 야간 특별열차편으로 서울에 도착한다. 총참모장 채병던 소장은 사단장에게 미아리고개로 진격하여 서울을 방어하라고 지시한다.
- 1950년 6월 27일 오후 4시: 제5사단 이응준 소장과 제7사단 유재홍 준장은 미아리 일대에 방어선을 구축하고, 북한군의 공격을 대비한다.
- 1950년 6월 27일 오후 5시: 북한군은 20여 대의 소련제 T-34전차를 앞세우고 미아리 방어선에 접근하지만, 국군 제5사단 20연대 1대대의 방어로 진격이 저지된다.
- 1950년 6월 27일 오후 8시: 아군 지휘관들은 줄기차게 쏟아지는 폭우와 칠흑같은 어둠에 적군이 야간공격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을 내린다.
- 1950년 6월 27일 밤 12시: 북한군 제4사단은 다시 미아리 방어선을 공격하여, 28일 새벽 1시에 미아리고개 방어선이 뚫린다.
- 1950년 6월 28일 오전 6시: 북한은 삼선교 일대를 점령한 뒤 퇴각하는 국군을 공격한다. 이후 서울은 북한군 치하에 들어가고, 정치인·교육자·의사·중앙부처의 직원 등 약 1,500명이 구속·수감된다.
- 1950년 9월 15일 ~ 28일: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유엔군과 국군이 서울로 진격하자, 북한군은 주요 인사들을 압송하여 돈암동 → 미아리고개 → 우이동 방면으로 퇴각한다. 이때 조소앙, 김의한, 안재홍, 이길용, 조헌영 등 성북구의 독립운동가들이 포로로 잡혀 납북을 당한다. (서울은 9월 28일 수복된다.)
- 1951년 4월 25일: 성북구는 1·4후퇴 이후, 4월 22일부터 30일까지 계속된 적의 공격이 도봉구 우이동까지 내려오자 4월 25일 성북구 등 서울 북부일대에 피난령이 하달된다. 이때의 피난은 4월 말에 적이 다시 북으로 퇴각하면서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1·4후퇴: 한국전쟁 당시 압록강까지 북진했던 유엔군이 1950년 중국군의 공세에 부닥쳐 1950년 11월 말부터 1951년 1월 사이에 서울 이남 지역까지 철수한 사건으로 수많은 피난민이 발생함)[1]

관련 노래

한국 전쟁 당시의 아픔을 담은 <단장의 미아리고개>는 1956년에 발표된 트로트 곡으로 반야월 작사, 이재호 작곡이며 노래는 이해연이 불렀다. 제목의 '단장'은 창자를 끊어내는 고통을 말한다. 아직까지도 애창되고 있으며 '미스트롯'이라는 TV프로그램에서 송가인이 부르기도 했다.

                      <단장의 미아리고개>
미아리 눈물고개 님이 넘던 이별 고개 화약 연기 앞을 가려 눈 못 뜨고 헤매일 때 당신은 철사줄로 두 손 꽁꽁 묶인 채로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맨발로 절며절며 끌려가신 이 고개여 한 많은 미아리 고개
아빠를 그리다가 어린 것은 잠이 들고 동지섣달 기나긴 밤 북풍한설 몰아칠 때 당신은 감옥살이 그 얼마나 고생을 하오 십 년이 가고 백 년이 가도 살아만 돌아오소 울고 넘던 이 고개여 한 많은 미아리 고개 한 많은 미아리 고개

관련 책

역사학자 김성칠은 한국전쟁 당시의 경험을 <역사 앞에서>라는 책에 담았다.
책 역사 앞에서.png
저자: 김성칠
출판: 창작과비평사
발매: 1977.11.25


갤러리

참고문헌

  • "1·4후퇴",<두산백과>,2021.06.18
  • 원본 주소 "https://hwiki.eumstory.co.kr/index.php?title=미아리고개&oldid=4155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