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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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조
김은호가 그린 이이의 초상화

시대 조선시대
별칭 호 정암(靜庵),자 효직(孝直),시호 문정(文正)
출생 1482년 음력 7월 1일
사망 1519년 음력 12월 20일
직업 문신,사상가,도학자,정치가,시인,작가,저술가
종교 유교(성리학)
가족 아버지: 조원강, 어머니: 여흥 민씨 부인, 형제: 조영조,조숭조

내용

조광조는 한성에서 태어났으며, 조선의 문신, 사상가이자 교육자, 성리학자, 정치가이다. 

생애

1482년 한성에서 원강의 아들로 태어났다. 개국공신이었던 조광조의 가계는 김광필을 만나면서 바뀌게 된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에게 훈육을 받고 자랐으며, 다양한 서적들을 좋아하는 등, 학문에 뜻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출세하기 위해 학문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며, 과거를 위한 글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는 아버지와 형제들과 친척들에게 꾸짖음을 당하는 일이 되었다. 그럼에도 계속 학문을 탐하다가, 무오사화로 인해 유배 중이던 김광필과 만나게 되며 이후로 사제지간이 되었다. 학문으로는 '소학','근사록' 등을 바탕으로 했기에, 평소에도 의관이나 행실이 단정하고 절제가 있었다고 한다. 19세에 부친을 잃고 3년상을 치룬 뒤, 홀어머니인 민씨를 지극정성으로 돌봤다. 이후 1510년에 소과인 진사시에 장원 중 2등으로 합격하게 되었다. 그렇게 성균관에 들어간 뒤에는 유숭조의 문하에서 공부했다. 조광조는 성균관에서 학문과 수양이 뛰어난 자를 관직에 천거하게 되었을 때, 무려 200여 명의 추천을 받았으나 반대여론이 있어 관직에는 나가지 못했다. 중종이 직접 주관한 시험에서 낸 조광조의 답안을 중종이 눈여겨보았고, 조광조를 직접 선발하게 되었다. 1516년에 조광조는 중종의 총애를 받고, 남곤을 감독관으로 하여 특별히 주최하게 된 고과에서 장원으로 급제했다. 이후, 5년만에 대사헌에 오르며 빠른 승진을 겪었다. 조광조는 계속하여 당상관으로도 승진하며 승승장구하였으나, 인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며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을 자신의 의무처럼 생각하는 조광조를 미워하거나 피하는 사람도 상당했다. 중종과 조광조는 중종 반정으로 과하게 권력을 가지게 된 훈구파 세력들을 처리하는데 있어서 잦은 충돌이 일어났었다. 그러던 도중, 꿀을 사용해서 나뭇잎에 주초위왕(走肖爲王)을 새기는데, 이는 '조 씨 성을 가진 자가 왕이 된다.' 라는 뜻을 가졌다. 이것을 시작으로 기묘사화가 시작되었다. 조광조는 결국 음력 12월 20일 귀양을 갔다가 사약을 받고 처형당한다.



관련 자료

  • 영상 자료


  • [[드라마 <조광조>]]

외부 링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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