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우를 기다리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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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우를 기다리는 마음 - 이상화


오랜 오랜 옛적부터

아, 몇 백년 몇 천년 옛적부터

호미와 가래에게 등심살을 벗기이고

감자와 기장에게 속기름을 빼앗긴

산촌(山村)의 뼈만 남은 땅바닥 위에서

아직도 사람은 수확(收穫)을 바라고 있다.


게으름을 빚어내는 이 늦은 봄날

'나는 이렇게도 시달렸노라……'

돌멩이를 내보이는 논과 밭---

거기서 조으는 듯 호미질하는

농사짓는 사람의 목숨을 나는 본다.


마음도 입도 없는 흙인 줄 알면서

얼마라도 더달라고 정성껏 뒤지는

그들의 가슴엔 저주를 받을

숙명(宿命)이 주는 자족(自足)이 아직도 있다.

자족이 시킨 굴종(屈從)이 아직도 있다.


하늘에도 게어른 흰구름이 돌고

땅에서도 고달픈 침묵이 까라진

오---이런 날 이런 때에는

이 땅과 내 마음의 우울(憂鬱)을 부술

동해에서 폭풍우나 쏟아져라---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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