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혼의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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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혼의 선언 - 오 상 순


물아

쉬임없이 끝없이 흘러가는

물아

너는 무슨 뜻이 있어

그와 같이 흐르는가

이상스레 나의

애를 태운다

끝 모르는 지경으로 나의 혼을

꾀어 간다

나의 사상의 무애(無碍)와 감정의 자유는

실로 네가 낳아준 선물이다

오---- 그러나 너는

갑갑다

너무도 갑갑해서 못 견디겠다.


구름아

하늘에 헤매이는

구름아

허공에 떠서 흘러가는

구름아

형형으로 색색으로

나타났다가는 스러지고

스러졌다가는 나타나고

스러지는 것이 너의 미요 생명이요

멸하는 순간이 너의 향락이다

오---- 나도 너와 같이 죽고 싶다

나는 애타는 가슴을 안고 얼마나 울었던고

스러져 가는 너의 뒤를 따라......

오---- 너는 영원의 방랑자

설움 많은 배가본드

천성의 거룩한 데카당

오---- 나는 얼마나 너를 안고

몸부림치며 울었더냐

오---- 그러나 너는

너무도 외롭고 애밟다

그리고 너무도

반복이 무상타.


흙아

말도 없이 묵묵히 누워 있는

흙아 천지야

너는 순하고 따뜻하고

향기롭고 고요하고 후중(厚重)하다

가지가지의 물상(物相)을 낳고

일체를 용납하고

일체를 먹어버린다

소리도 아니 내고 말도 없이......

오---- 나의 혼은 얼마나

너를 우리 어머니라 불렀던가

나의 혼은 살찌고 기름지고

따뜻한 너의 유방에

매어달리고자

애련케도 너의 품속에

안기려고 애를 썼던고

어린 애기 모양으로......

그러나 흙아 대지야

이 이단의 혼의 아들을 안아주기에

너는 너무도 갑갑하고 답답하고

감각이 둔하지 아니한가.


바다야

깊고 아득하고 끝없고

위대와 장엄과 유구와 원시성의 상징인

바다야

너는 얼마나

한없는 보이지 아니하는 나라로

나의 혼을 손짓하여 꾀이며

취케 하고 미치게 하였던가

오---- 그러나

너에게도 밑이 있다

밑바닥에 지탱되어 있는

너도 드디어

나의 혼의 벗은 될 수 없다.


별아

오---- 미의 극(極)

경이와 장엄의 비궁(秘宮)

깊은 계시와 신비의 심연인

별의 바다야

오---- 너는 얼마나 깊이

나의 혼을 움직이며 정화하며

상해 메에지려 하는 나의 가슴을

어루만져 주었던가

너는 진실로 나의 인연이다

애(愛)와 미와 진 그것이다

그러나

별아 별의 무리야

나는 싫다

항상 변함 없는 같은 궤도를 돌아다니며 있는

아무리 많다 하여도 한이 있을 너에게 염증이 났다.


사람아

인간아

너는 과시(果是) 지상의 꽃이다 별이다

우주의 광영----그 자랑이요

생명의 결정----그 촛점이겠다

그리고 너는 정녕 위대하다

하늘에까지 닿을

바벨의 탑을 꿈꾸며 실로 싸우며 있다

절대의 완성과 원만과 행복을 끊임없이 꿈꾸며

쉬임없이 동경하고 추구하는

인자(人子)들아

너희들은

자연을 정복하고 신들을 암살하였다 한다

정녕 그러하다


오---- 그러나

준엄하고 이대(異大)한 파멸의 스핑스

너를 확착(攫捉)할 때

너의

검은 땀도

붉은 피도

일체의 역사(役事)도

끔직한 자랑도

그 다 무엇인가......


세계의 창조자 된 신아

우주 자체 일체 그것인 불(佛)아

전지(全智)와 전능은

너희들의 자만이다

그러나

너희도 무엇이란 것이다

적어도 신이요 불이다

그만큼 너희도 또한

우상이요 독단이요 전제(專制)다

그러나 오 그러나

일체가 다 소용이 없다

그러므로 나는 참(斬)하는 것이다

너희들까지도

허무의 검(劍) 가지고

허무의 칼 !

오 !

허무의 칼 !


불꽃아

오---- 무섭고 거룩한

불꽃아

다 태워라

물도 구름도

흙도 바다도

별도 인간도

신도 불도 또 그밖에

온갖 것을 통틀어

오---- 그리고

우주에 충만하여 넘치라.


바람아

오---- 폭풍아 흑풍아

그 불꽃을

불어 날려라

쓸어 헤치라

몰아 무찔러라

오---- 위대한 폭풍아

세계에 충일한 그 불꽃을


오---- 그리고

한없고 끝없는

허공에 춤추어 미쳐라.


허무야

오---- 허무야

불꽃을 끄고

바람을 죽이라 !

그리고 허무야

너는 너 자체를

깨물어 죽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