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 필 풍악도첩"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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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물 제 1875호 | + | 보물 제 1875호 '''풍악도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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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개== | ==기본소개== | ||
− | -조선 후기의 화가 겸재 [[정선]]이 36세 때인 1711년(숙종 37) 금강산을 여행한 뒤에 남긴 화첩으로, 신묘년(辛卯年)에 그려졌다 하여 '''《신묘년 풍악도첩》'''이라고도 부른다. 비단에 엷은 채색으로 그려진 세로 26.6~37.8㎝, 가로 23~37.6㎝의 그림 13폭과 화기(畵記) 1폭 등''' 총 14폭'''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금까지 연대가 밝혀진 정선의 작품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5년 4월 22일 '''보물'''로 지정되었으며,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 + | -조선 후기의 화가 겸재 [[정선]]이 36세 때인 1711년(숙종 37) 금강산을 여행한 뒤에 남긴 화첩으로, 신묘년(辛卯年)에 그려졌다 하여 '''《신묘년 풍악도첩》'''이라고도 부른다. 비단에 엷은 채색으로 그려진 세로 26.6~37.8㎝, 가로 23~37.6㎝의 그림 13폭과 화기(畵記) 1폭 등''' 총 14폭'''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금까지 연대가 밝혀진 정선의 작품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5년 4월 22일 '''보물'''로 지정되었으며,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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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화첩은 정선의 벗인 [[이병연]](李秉淵, 1671∼1751)이 금강산 초입인 김화(金化)의 현감으로 부임한 다음 해인 1711년에, 겸재가[[ 백석공]](白石公)이라는 인물과 함께 금강산을 유람하고 그 일대의 경치를 그린 것으로, 화첩으로 제작된 것은 1807년(순조 7)이다. 내금강·외금강·해금강 등 [[금강산]]의 주요 명승을 담았으며, 산봉우리마다 명칭을 표시하고 길을 뚜렷이 표시하고 있어 [[조선시대]] 지도의 영향을 보여준다. 후기의 원숙한 화풍에 비하면 미숙함이 엿보이지만, 초창기의 활력과 열의로 가득 찬 그림들로서 정선의 진경산수화가 형성된 과정이 잘 드러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 ||
==13폭의 그림 소개== | ==13폭의 그림 소개== | ||
'''금강내산총도(金剛內山總圖)''' | '''금강내산총도(金剛內山總圖)'''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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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일:금강내산총도1.png]] | ||
-35.9x37㎝. '''내금강의 전경'''을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부감 시점으로 포착하여 묘사하였으며, 봉우리마다 명칭을 표시하였다. | -35.9x37㎝. '''내금강의 전경'''을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부감 시점으로 포착하여 묘사하였으며, 봉우리마다 명칭을 표시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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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금정도(披襟亭圖)''' | '''피금정도(披襟亭圖)'''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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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7x33.6㎝. '''금강산 초입'''의 명승지인 피금정('옷깃을 풀어 젖히는 정자'라는 뜻) 일대를 묘사하였다. | -35.7x33.6㎝. '''금강산 초입'''의 명승지인 피금정('옷깃을 풀어 젖히는 정자'라는 뜻) 일대를 묘사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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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령망금강산도(斷髮嶺望金剛山圖)''' | '''단발령망금강산도(斷髮嶺望金剛山圖)'''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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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일:단발령망금강산도1.png]] | ||
-36.1x37.6㎝. 피금정을 지나 단발령에 도달하여 처음으로 '''금강산의 장관'''을 접하는 장면을 묘사하였다. | -36.1x37.6㎝. 피금정을 지나 단발령에 도달하여 처음으로 '''금강산의 장관'''을 접하는 장면을 묘사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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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사도(長安寺圖)''' | '''장안사도(長安寺圖)'''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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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일:장안사도1.png]] | ||
-35.6x36㎝. 내금강으로 들어가는 길에 위치한 '''장안사'''의 모습이 비교적 상세히 묘사되었으며, 아치형의 만천교(萬川橋)와 오른쪽의 석가봉(釋迦峯)·관음봉(觀音峯)·지장봉(地藏峯) 등 백색의 바위 봉우리들은 상대적으로 크게 묘사되었다. | -35.6x36㎝. 내금강으로 들어가는 길에 위치한 '''장안사'''의 모습이 비교적 상세히 묘사되었으며, 아치형의 만천교(萬川橋)와 오른쪽의 석가봉(釋迦峯)·관음봉(觀音峯)·지장봉(地藏峯) 등 백색의 바위 봉우리들은 상대적으로 크게 묘사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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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덕굴도(普德窟圖)''' | '''보덕굴도(普德窟圖)'''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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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일:보덕굴도1.png]] | ||
-36.3x35.9㎝. '''금강대(金剛臺)에서 대향로(大香爐)'''에 이르는 광경을 묘사한 그림으로, 보덕굴은 벽하담(碧霞潭)의 오른쪽 높은 언덕에 있다. | -36.3x35.9㎝. '''금강대(金剛臺)에서 대향로(大香爐)'''에 이르는 광경을 묘사한 그림으로, 보덕굴은 벽하담(碧霞潭)의 오른쪽 높은 언덕에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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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정대도(佛頂臺圖)''' | '''불정대도(佛頂臺圖)'''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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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2x34.3㎝. 불정대와 절벽을 두고 내금강과 외금강의 경계가 뚜렷이 구분된다. '''불정대''' 오른쪽의 외금강 쪽으로 십이폭(十二瀑)이 흐르고 뾰족한 바위 봉우리들이 두드러지게 묘사되었다. | -37.2x34.3㎝. 불정대와 절벽을 두고 내금강과 외금강의 경계가 뚜렷이 구분된다. '''불정대''' 오른쪽의 외금강 쪽으로 십이폭(十二瀑)이 흐르고 뾰족한 바위 봉우리들이 두드러지게 묘사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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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천교도(百川橋圖)''' | '''백천교도(百川橋圖)'''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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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일:백천교도1.png]] | ||
-36.1x37.6㎝. 백천교는 가마를 타고 금강산을 유람한 양반들이 나귀로 갈아타고 돌아가는 일종의 환승 구역이었다. 이 화첩의 다른 그림들과는 달리 인물이 '''비교적 크게''' 묘사되었다. | -36.1x37.6㎝. 백천교는 가마를 타고 금강산을 유람한 양반들이 나귀로 갈아타고 돌아가는 일종의 환승 구역이었다. 이 화첩의 다른 그림들과는 달리 인물이 '''비교적 크게''' 묘사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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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산정도(海山亭圖)''' | '''해산정도(海山亭圖)'''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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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일:해산정도1.png]] | ||
-26.8x37.3㎝. 외금강을 벗어나 동해안을 바라보는 '''해산정''' 일대를 묘사하였다. 백색 암봉들을 원경으로 하고 왼쪽에는 적벽과 남강, 대호정(帶湖亭)이 있으며, 동해안에는 북두칠성과 같은 배열의 칠성봉이 보인다. | -26.8x37.3㎝. 외금강을 벗어나 동해안을 바라보는 '''해산정''' 일대를 묘사하였다. 백색 암봉들을 원경으로 하고 왼쪽에는 적벽과 남강, 대호정(帶湖亭)이 있으며, 동해안에는 북두칠성과 같은 배열의 칠성봉이 보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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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선정도(四仙亭圖)''' | '''사선정도(四仙亭圖)'''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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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일:사선정도1.png]] | ||
-36x37㎝. 사선정이 위치한 '''삼일호(三日湖)''' 일대를 묘사하였다. 사선정과 삼일호는 신라 때 4명의 화랑이 이곳에 왔다가 경치에 반하여 3일 동안 돌아가는 것도 잊고 놀았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명칭이다. | -36x37㎝. 사선정이 위치한 '''삼일호(三日湖)''' 일대를 묘사하였다. 사선정과 삼일호는 신라 때 4명의 화랑이 이곳에 왔다가 경치에 반하여 3일 동안 돌아가는 것도 잊고 놀았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명칭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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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암관 일출도(門巖觀日出圖)''' | '''문암관 일출도(門巖觀日出圖)'''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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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9x37.6㎝. 문암산에서 바라본 '''동해안의 일출 광경'''을 묘사한 그림으로, 사선정도에서 왼쪽 위에 작게 그려진 부분을 확대하여 그린 것이다. | -35.9x37.6㎝. 문암산에서 바라본 '''동해안의 일출 광경'''을 묘사한 그림으로, 사선정도에서 왼쪽 위에 작게 그려진 부분을 확대하여 그린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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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천도(甕遷圖)''' | '''옹천도(甕遷圖)'''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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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6x37.4㎝. 독처럼 둥근 형태의 절벽이라 하여 독벼루 또는 독벼랑이라고도 부르는 '''옹천의 풍경'''을 묘사하였다. 가는 선묘로 넘실거리는 파도를 묘사하고 붓을 계속 쓸어내려 바위의 육중함을 표현하였다. | -26.6x37.4㎝. 독처럼 둥근 형태의 절벽이라 하여 독벼루 또는 독벼랑이라고도 부르는 '''옹천의 풍경'''을 묘사하였다. 가는 선묘로 넘실거리는 파도를 묘사하고 붓을 계속 쓸어내려 바위의 육중함을 표현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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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석정도(叢石亭圖)''' | '''총석정도(叢石亭圖)'''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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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8x37.3㎝. 관동팔경의 하나인 '''통천(通川)'''의 총석정 일대를 묘사하였다. | -37.8x37.3㎝. 관동팔경의 하나인 '''통천(通川)'''의 총석정 일대를 묘사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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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대도(侍中臺圖)''' | '''시중대도(侍中臺圖)'''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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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x26.4㎝. 관동 지방 최북단의 흡곡(翕谷)에 위치한 '''시중호(侍中湖)''' 일대를 그렸는데, 초기 작품답게 성실한 묘사가 돋보인다. | -36.5x26.4㎝. 관동 지방 최북단의 흡곡(翕谷)에 위치한 '''시중호(侍中湖)''' 일대를 그렸는데, 초기 작품답게 성실한 묘사가 돋보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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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고문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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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8일 (목) 23:55 기준 최신판
보물 제 1875호 풍악도첩
기본정보
지정유형 | 보물 |
지정일 | 2015년 4월 22일 |
종류 | 유물 /일반회화 / 산수화 |
시대 | 조선시대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37 (용산동6가, 국립중앙박물관) |
소유(관리) | 국립중앙박물관 |
기본소개
-조선 후기의 화가 겸재 정선이 36세 때인 1711년(숙종 37) 금강산을 여행한 뒤에 남긴 화첩으로, 신묘년(辛卯年)에 그려졌다 하여 《신묘년 풍악도첩》이라고도 부른다. 비단에 엷은 채색으로 그려진 세로 26.6~37.8㎝, 가로 23~37.6㎝의 그림 13폭과 화기(畵記) 1폭 등 총 14폭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금까지 연대가 밝혀진 정선의 작품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5년 4월 22일 보물로 지정되었으며,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화첩은 정선의 벗인 이병연(李秉淵, 1671∼1751)이 금강산 초입인 김화(金化)의 현감으로 부임한 다음 해인 1711년에, 겸재가백석공(白石公)이라는 인물과 함께 금강산을 유람하고 그 일대의 경치를 그린 것으로, 화첩으로 제작된 것은 1807년(순조 7)이다. 내금강·외금강·해금강 등 금강산의 주요 명승을 담았으며, 산봉우리마다 명칭을 표시하고 길을 뚜렷이 표시하고 있어 조선시대 지도의 영향을 보여준다. 후기의 원숙한 화풍에 비하면 미숙함이 엿보이지만, 초창기의 활력과 열의로 가득 찬 그림들로서 정선의 진경산수화가 형성된 과정이 잘 드러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13폭의 그림 소개
금강내산총도(金剛內山總圖)
-35.9x37㎝. 내금강의 전경을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부감 시점으로 포착하여 묘사하였으며, 봉우리마다 명칭을 표시하였다.
피금정도(披襟亭圖)
-35.7x33.6㎝. 금강산 초입의 명승지인 피금정('옷깃을 풀어 젖히는 정자'라는 뜻) 일대를 묘사하였다.
단발령망금강산도(斷髮嶺望金剛山圖)
-36.1x37.6㎝. 피금정을 지나 단발령에 도달하여 처음으로 금강산의 장관을 접하는 장면을 묘사하였다.
장안사도(長安寺圖)
-35.6x36㎝. 내금강으로 들어가는 길에 위치한 장안사의 모습이 비교적 상세히 묘사되었으며, 아치형의 만천교(萬川橋)와 오른쪽의 석가봉(釋迦峯)·관음봉(觀音峯)·지장봉(地藏峯) 등 백색의 바위 봉우리들은 상대적으로 크게 묘사되었다.
보덕굴도(普德窟圖)
-36.3x35.9㎝. 금강대(金剛臺)에서 대향로(大香爐)에 이르는 광경을 묘사한 그림으로, 보덕굴은 벽하담(碧霞潭)의 오른쪽 높은 언덕에 있다.
불정대도(佛頂臺圖)
-37.2x34.3㎝. 불정대와 절벽을 두고 내금강과 외금강의 경계가 뚜렷이 구분된다. 불정대 오른쪽의 외금강 쪽으로 십이폭(十二瀑)이 흐르고 뾰족한 바위 봉우리들이 두드러지게 묘사되었다.
백천교도(百川橋圖)
-36.1x37.6㎝. 백천교는 가마를 타고 금강산을 유람한 양반들이 나귀로 갈아타고 돌아가는 일종의 환승 구역이었다. 이 화첩의 다른 그림들과는 달리 인물이 비교적 크게 묘사되었다.
해산정도(海山亭圖)
-26.8x37.3㎝. 외금강을 벗어나 동해안을 바라보는 해산정 일대를 묘사하였다. 백색 암봉들을 원경으로 하고 왼쪽에는 적벽과 남강, 대호정(帶湖亭)이 있으며, 동해안에는 북두칠성과 같은 배열의 칠성봉이 보인다.
사선정도(四仙亭圖)
-36x37㎝. 사선정이 위치한 삼일호(三日湖) 일대를 묘사하였다. 사선정과 삼일호는 신라 때 4명의 화랑이 이곳에 왔다가 경치에 반하여 3일 동안 돌아가는 것도 잊고 놀았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명칭이다.
문암관 일출도(門巖觀日出圖)
-35.9x37.6㎝. 문암산에서 바라본 동해안의 일출 광경을 묘사한 그림으로, 사선정도에서 왼쪽 위에 작게 그려진 부분을 확대하여 그린 것이다.
옹천도(甕遷圖)
-26.6x37.4㎝. 독처럼 둥근 형태의 절벽이라 하여 독벼루 또는 독벼랑이라고도 부르는 옹천의 풍경을 묘사하였다. 가는 선묘로 넘실거리는 파도를 묘사하고 붓을 계속 쓸어내려 바위의 육중함을 표현하였다.
총석정도(叢石亭圖)
-37.8x37.3㎝. 관동팔경의 하나인 통천(通川)의 총석정 일대를 묘사하였다.
시중대도(侍中臺圖)
-36.5x26.4㎝. 관동 지방 최북단의 흡곡(翕谷)에 위치한 시중호(侍中湖) 일대를 그렸는데, 초기 작품답게 성실한 묘사가 돋보인다.
관련 영상
소재지
참고문헌
[네이버지식백과]
[네이버지식백과]
[e뮤지엄]
작성자:강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