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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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교

정의

1965년 3월에 창단된 동인제 극단이다.

개설

중앙대학교 연극영화학과를 주축으로 각 대학의 연극영화학과 졸업생이 만들었다. '연극은 직업이 되어야 한다.'는 직업의식을 가지고 권성덕(權成德)·김광남(金光男)·김동욱(金東昱)·김진태(金鎭泰)·김승일(金昇一)·김태완·오기환·이문영·이일웅·이승규(李昇珪) 등이 창단했다.

변천

1959년, 우리나라 최초로 중앙대학교에 연극영화과가 개설되었고, 연이어 동국대, 한양대에도 같은 전공이 설치됨으로써 전문 연극인 양성의 기틀이 마련되었다. 극단 '가교'는 창단공연으로 그들의 대학 은사였던 이근삼의 <데스스테스의 재판>을 이승일 연출로 신문회관에서 올렸다. 이후 빈센트 밀레이의 <끝없는 아리아>란 작품을 동국대학교 소극장에서 올린 후 전국 교도소와 군부대를 돌며 공연했다. 이는 소극적이고 비생산적이던 연극계의 상황을 벗어나 “참다운 교화와 따뜻한 위안을 주는 공연”을 하겠다는 의도가 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극단의 재정적 문제 해결을 위해서가 가장 컸다. 이때부터 그들은 기독교 단체와 손잡고 한동안 성극 공연에만 몰두하게 된다.
1970년대에는 천막극장 공연으로 관중을 사로잡는다. 최초의 천막극장 공연은 1973년 7월, 톰 존스의 <철부지들>(이승규 연출)로 대천 해수욕장에서 첫 막을 올린 후 15회 공연을 갖는다. 높이 6미터, 넓이 45평의 원추형 천막으로 15평의 무대와 2백 명을 수용할 수 있는 30평 공간의 객석을 갖춘 ‘이동형’ 극장이었다.
1979년에는 극단 대표를 맡아오던 이승규가 문예진흥원 예술인 해외연수 계획으로 미국에 가면서 대표직을 박인환이 맡게 되었다. 그러나 이후 작품 <별난 로망스>, <개뿔>, <만리장성>이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하였다.   

관련항목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이강백 가교 이강백은 가교에서 활동했다(P)
주어(S) 목적어(O) A는 B에서 ~하다(P)

참고문헌

문화포털 예술지식백과 - 극단'가교' http://www.culture.go.kr/knowledge/encyclopediaView.do?vvm_seq=7390&ccm_code=A014

작성자 및 기여자

청바지 손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