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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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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본격적인 시인/평론가 활동을 하였고, 2004년 11월 29일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이후 본격적인 시인/평론가 활동을 하였고, 2004년 11월 29일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1941년
 
  
#학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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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간이통영학교에 입학한 뒤 서너 달 만에 통영공립보통학교로 전학
 
1929년 간이통영학교에 입학한 뒤 서너 달 만에 통영공립보통학교로 전학
 
-경성공립제일고등보통학교(=경기공립중학교) 입학
 
-경성공립제일고등보통학교(=경기공립중학교) 입학

2020년 6월 26일 (금) 23:23 판

생애

김춘수는 1922년 11월 25일 경상남도 통영에서 출생하였으며 부유한 집안에서 자랐다.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던 김춘수는 5년제 중학교 졸업을 세 달 앞두고 자퇴를 한다. 이후 법대에 가야한다는 아버지의 뜻을 따르기 위해 법대를 준비하는 학원을 등록하게 되는데 도쿄의 학원가 주변을 배회하던 그는 우연히 헌책방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때 책들이 뿜어내는 지적인 위용에 압도당한다. 이때부터 그는 시를 접하게 된다.

1940년 법학과는 거리가 먼 니혼대학의 예술과에 입학한 김춘수는 혼자 습작을 하고 고국의 신문 학예란에 자신의 글을 실어달라는 원고를 써서 보내기도 한다. 이렇게 대학을 다니던 중 3학년 때 즉, 1942년 겨울방학을 맞아 귀향길에 오르던 그는 과거 아르바이트를 하던 시절 무심코 내뱉은 일본에 대한 험담으로 인하여 '불경죄'라는 죄목으로 일본 경찰에게 체포된다. 1943년 여름 김춘수가 풀려난 뒤 해방이 되었고 유치환, 윤이상, 전혁림 등과 함께 '통영문화협회'를 만들어 다양한 예술 활동을 펼친다.

이후 본격적인 시인/평론가 활동을 하였고, 2004년 11월 29일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학력

1929년 간이통영학교에 입학한 뒤 서너 달 만에 통영공립보통학교로 전학 -경성공립제일고등보통학교(=경기공립중학교) 입학 -5년제 중학교의 졸업을 석 달 앞두고 자퇴 -1941년 일본으로 건너가 ‘니혼’대학 예술학부에서 공부 -1942년에 천황과 조선총독부를 비판하여 1943년에 퇴학당함 -1944년 명숙경 여사와 결혼 -1945년에 유치환, 윤이상, 심상옥 등과 통영문화협회를 만들어 예술 운동을 전개 -1946년에 귀국하여 1951년까지 통영중학교, 마산고등학교에서 교사를 역임 -1946년에 시 <애가>를 발표하면서부터 시를 본격적으로 발표하기 시작 -1961년 경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전임강사 -1964년부터 1978년까지 경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1979년부터 1981년까지 영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영남대학교의 문리과 대학의 학장으로 지내다가 1981년 교수직을 내려놓음 -이후 시인과 평론가로서 활동 2004년 11월 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