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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대상 교육, 한인사회 결속
 
청년대상 교육, 한인사회 결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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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연합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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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은 동제사의 영향력을 넓히고 더욱 많은 지원을 받기 위해 동제사의 협력단체 신아동제사(新亚同济社)를 조직하였다. 중국의 거물급 인사인 송교인, 호한민, 료중개, 추로, 대계도, 진과부 등이 신아동제사에 가입하게 됨으로써 그 영향력은 크게 확대되었다.
  
 
==연원 및 변천==
 
==연원 및 변천==

2019년 6월 3일 (월) 17:59 판

정의

동제사는 동주공제(同舟共济)에서 따온 이름으로 생사를 함께 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별칭은 재상해한인공제회(在上海韓人共濟會)이다. 1912년 중국 상해에서 조직된 독립운동 단체이며 신규식이 창립하였다. 상점의 점원으로 등록된 인물은 신규식, 박은식, 문일평, 신석우, 윤보선, 조소앙, 정인보, 홍명희 등이 있었다. 외관 상 회사의 형태였으나 이익을 분배하지 않고 벌어들인 수익은 신한청년당에 쓰였다.

개설

1912년 7월 4일 신규식에 의해 창립되었으며 1922년 9월 신규식의 순국과 임정의 내분으로 사람이 떠나면서 해산되었다. 신규식의 순국 후 박찬익이 이사장직을 맡았 기회를 도모하였으나 이후의 활동은 알려지지 않았다.


설립 목적

신한청년당과 상하이 임시정부 등을 비롯한 한국의 독립운동 단체에 금전적, 재정적인 후원과 독입운동 대표단체 건설을 목표로 한 상회이자 무역 회사였다. 즉 일제에 대응하여 조선의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주요 활동

청년대상 교육, 한인사회 결속

동아시아 연합활동

신정은 동제사의 영향력을 넓히고 더욱 많은 지원을 받기 위해 동제사의 협력단체 신아동제사(新亚同济社)를 조직하였다. 중국의 거물급 인사인 송교인, 호한민, 료중개, 추로, 대계도, 진과부 등이 신아동제사에 가입하게 됨으로써 그 영향력은 크게 확대되었다.

연원 및 변천

1911년 중국으로 망명한 신규식(申圭植)은 손문(孫文)의 동맹회에 가입, 신해혁명에 참가해 중국 쪽 요인들과 긴밀한 사이가 되었다. 그러나 청국 정부와 중국주재 일본영사가 그를 체포하려 하자 상해의 프랑스인 거주지로 도피하였다.

당시 상해에는 한국에서 망명한 독립운동가와 일본에서 건너온 한국인 유학생들이 많았다. 신규식은 이들을 규합, 이듬 해 7월 이 단체를 조직했는데, 표면적으로는 상해 거류 한인의 상조기관처럼 활동했으나 실제 목적은 독립운동이었다.

이사장에 신규식, 총재에 박은식(朴殷植)이 선출되었다. 그 밖의 중견 간부는 김규식(金奎植)·신채호(申采浩)·홍명희(洪命熹)·조소앙(趙素昻)·문일평(文一平)·박찬익(朴贊翊)·조성환(曺成煥)·신건식(申健植)·김용호(金容鎬)·신철(申澈)·민제호(閔濟鎬)·김갑(金甲)·정환범(鄭桓範)·김용준(金容俊)·민충식(閔忠植)·이찬영(李贊永)·김영무(金永武)·이광(李光)·신석우(申錫雨)·한진산(韓震山)·김승(金昇)·김덕(金德)·변영만(卞榮晩)·윤보선(尹潽善)·민병호(閔丙鎬) 등이었다.

회원은 300여 명에 달하였고, 구미 각지에 사무실을 만들어 활동하였다. 그 뒤 중국의 혁명 지도자들과 보다 깊은 관계를 유지코자 신아동제사(新亞同濟社)를 조직, 중국 국민당과 사회 저명인사 중 송교인(宋敎仁)·진기미(陳其美)·호한민(胡漢民)·당소의(唐紹儀)·진과부(陳果夫) 등을 가입시켜 독립운동에 중국인의 지지를 받고자 노력하였다.

1913년 12월에는 독립운동을 담당할 청년들을 교육하기 위해 박달학원(博達學院)을 설립하였다.

1917년 8월에 잠시 조선사회당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였다. 당시 스톡홀름에서 국제사회주의자대회(이칭: 만국사회당대회)가 열린다는 소식이 있자, 사회주의세력이 주도하는 국제회의에 능동적으로 참여해 한국의 독립을 촉구할 목적으로 신규식 등이 발의해 ‘조선사회당’이란 명칭을 쓴 것이다. 1918년 말 조직된 신한청년당에 동제사 소장파라 할 여운형, 선우혁, 서병호, 조동호 등이 참여하였다. 동제사와 신한청년당은 긴밀한 협력관계를 갖고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동제사 [同濟社]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의의와 평가

상해에서 조직된 최초의 한국인 독립운동 단체로서, 1919년 상해 임시정부가 수립되기 전까지 상해 한국인의 중심 조직으로 그 역할을 다했다


참고문헌

『한국 공산주의 운동사』 1(김준엽·김창순, 고려대학교아세아문제연구소, 1967)

『조선독립운동 소사』(최남선, 동명사, 1946)

『한국혼』(신규식, 1939)

「동제사의 결성과 활동」(김희곤, 『한국사연구』 48, 19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