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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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홍우 (토론 | 기여)님의 2019년 6월 3일 (월) 17:35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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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912년 중국 상해에서 조직된 독립운동 단체이다.

==개설== 별칭은 재상해한인공제회(在上海韓人共濟會)이다.

==연원 및 변천== 1911년 중국으로 망명한 신규식(申圭植)은 손문(孫文)의 동맹회에 가입, 신해혁명에 참가해 중국 쪽 요인들과 긴밀한 사이가 되었다. 그러나 청국 정부와 중국주재 일본영사가 그를 체포하려 하자 상해의 프랑스인 거주지로 도피하였다.

당시 상해에는 한국에서 망명한 독립운동가와 일본에서 건너온 한국인 유학생들이 많았다. 신규식은 이들을 규합, 이듬 해 7월 이 단체를 조직했는데, 표면적으로는 상해 거류 한인의 상조기관처럼 활동했으나 실제 목적은 독립운동이었다.

이사장에 신규식, 총재에 박은식(朴殷植)이 선출되었다. 그 밖의 중견 간부는 김규식(金奎植)·신채호(申采浩)·홍명희(洪命熹)·조소앙(趙素昻)·문일평(文一平)·박찬익(朴贊翊)·조성환(曺成煥)·신건식(申健植)·김용호(金容鎬)·신철(申澈)·민제호(閔濟鎬)·김갑(金甲)·정환범(鄭桓範)·김용준(金容俊)·민충식(閔忠植)·이찬영(李贊永)·김영무(金永武)·이광(李光)·신석우(申錫雨)·한진산(韓震山)·김승(金昇)·김덕(金德)·변영만(卞榮晩)·윤보선(尹潽善)·민병호(閔丙鎬) 등이었다.

회원은 300여 명에 달하였고, 구미 각지에 사무실을 만들어 활동하였다. 그 뒤 중국의 혁명 지도자들과 보다 깊은 관계를 유지코자 신아동제사(新亞同濟社)를 조직, 중국 국민당과 사회 저명인사 중 송교인(宋敎仁)·진기미(陳其美)·호한민(胡漢民)·당소의(唐紹儀)·진과부(陳果夫) 등을 가입시켜 독립운동에 중국인의 지지를 받고자 노력하였다.

1913년 12월에는 독립운동을 담당할 청년들을 교육하기 위해 박달학원(博達學院)을 설립하였다.

1917년 8월에 잠시 조선사회당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였다. 당시 스톡홀름에서 국제사회주의자대회(이칭: 만국사회당대회)가 열린다는 소식이 있자, 사회주의세력이 주도하는 국제회의에 능동적으로 참여해 한국의 독립을 촉구할 목적으로 신규식 등이 발의해 ‘조선사회당’이란 명칭을 쓴 것이다. 1918년 말 조직된 신한청년당에 동제사 소장파라 할 여운형, 선우혁, 서병호, 조동호 등이 참여하였다. 동제사와 신한청년당은 긴밀한 협력관계를 갖고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동제사 [同濟社]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의의와 평가== 상해에서 조직된 최초의 한국인 독립운동 단체로서, 1919년 상해 임시정부가 수립되기 전까지 상해 한국인의 중심 조직으로 그 역할을 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