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의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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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선(1611138) (토론 | 기여)님의 2020년 6월 26일 (금) 03:27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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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소개

우리 시대의 큰 작가 황석영이 베트남전쟁의 숨겨진 본질을 정면으로 다룬 문제작 『무기의 그늘』 개정판이 출간됐다. 지난 1989년판의 골격을 유지하는 선에서 작가의 손질이 더해졌고, 새 독서감각에 맞도록 본문과 표지를 단장했다. 더불어 미국달러 주도의 패권적 국제질서에 대한 비판이라는 현재적 유효성을 지적하는 임홍배(서울대)의 작품해설을 수록해 깊이있는 이해를 돕는다.

1988년 초판 발간 후 2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 작품이 꾸준히 읽히는 이유는 현대세계의 정치경제적 세계질서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베트남전쟁의 본질을 미국과 베트남, 그리고 한국의 시각에서 총체적으로 파헤쳤기 때문이다. 작품 속에서 침략주체인 미국과, 미국의 역할에 종속된 한국, 동족을 ­억압하는 남베트남의 권력층, 그리고 이 모든 세력에 맞서 싸우는 민족해방전선의 움직임은 치밀한 구성과 적확한 분석하에 튼실한 얼개로 배치되어 있다. 여기에 황석영 특유의 선굵은 서사와 간명한 문체, 빠른 장면전환, 참전 경험에서 우러난 생생한 현장감이 어우러져 소설적 재미와 묵직한 감동을 선사한다.

일본어판(이와나미 1994), 영어판(코넬대학출판부 1994)에 이어 프랑스어판(쥘마 2003)도 출간돼 “베트남전의 흑막을 걷어올린 전체소설(roman total)” “대작가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다진 작품”이라는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줄거리

전투부대에서 한미 군합동수사대로 전출해온 안영규, 의대생에서 민족해방전선의 공작원으로 변신한 팜 민, 그의 형이자 베트남 정부군의 장교 팜 꾸엔, 그의 정부로서 달러를 모으는 기지촌 출신의 오혜정, 전쟁에 무관심한 미군 탈영병 스태플리 등, 이 유서 깊은 제국주의 전쟁이 빚어놓은 ‘전쟁의 자식’들은 적과 동지가 뒤얽힌 물자 암거래의 촘촘한 그물 속에서 베트남전의 본질을 속속들이 구현하면서 그 흥미롭고도 비극적인 추문을 생생하게 재현한다.


작품해설

이 작품은 황석영이 아니면 다룰 수 없는 독특한 방식으로 베트남전쟁을 해부한다. 일반적인 전쟁소설의 몰역사적인 실존주의, 감상적인 혐전(嫌戰) 정서, 맹목적인 휴머니즘과 승자편에 선 화해 등과 냉정하게 거리를 둔다. 무기의 포연 속이 아니라 그것의 그늘, 즉 미군수품 암거래 시장에 베트남전의 본질이 있음을 간파하는 이 작품은 ‘석유전쟁’이란 별칭으로 현재진행형인 이라크전쟁의 현실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작품연구

학술논문


학위논문


수상

  • 1989년 제4회 만해문학상 수상작


작품 평가

코모리 요우이치

(도쿄대 대학원 종합문화연구과 교수)

이 작품이 지닌 픽션으로서의 얼개는 21세기 현실을 인식함에 있어서도 더없이 유효하다. 세계 최대의 군사력을 지닌 미국의 위정자가 날조된 이유로 전쟁을 일으키는 시대 속에서 미국 달러의 지배를 어떻게 저지해갈 것인가가 초미의 과제다.
시어도어 휴즈

(일리노이대학 동아시아학과 교수)

이 작품은 오늘의 미국이 전쟁을 부조리한 것으로 간주하면서도 자기 자신을 희생자로 자리매김하려는 시도를 무산시킨다. 또한 미국의 인종주의가 지닌 체제적 성격, 타자에 가하는 폭력, 전지구적 자본주의 질서를 구조짓는 욕망을 재생산하려는 욕망을 폭로한다.



작품 배경

베트남 전쟁

중앙


  • 날짜: 1955년 11월 1일~1975년 4월 30일
  • 장소: 인도차이나
  • 결과: 베트남 민주 공화국 승리**미군이 베트남에서 철수
    • 베트남 민주 공화국의 베트남 공화국 병합
    • 캄보디아, 라오스 공산화
    •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 수립


명칭

베트남 사회주의공화국은 이 전쟁을 베트남 전쟁 또는 대미항전(對美抗戰)으로 칭한다. 미국에서는 일반적으로 베트남 전쟁으로 칭하지만, 프랑스와 베트남이 치른 전쟁이었던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의 연장선이라는 의미에서 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second Indochina war)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흔히 월남전(越南戰)이라고 부른다.


개요

베트남 전쟁은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1946년 12월 19일 - 1954년 8월 1일) 이후 분단되었던 베트남에서 1955년 11월 1일부터 1975년 4월 30일까지 벌어진 전쟁이다. 이 전쟁은 분단된 남북 베트남 사이의 내전임과 동시에 냉전시대에 자본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이 대립한 대리 전쟁의 양상을 띠었다. 1964년 8월부터 1973년 3월까지는 미국 등 외국 군대가 개입하고, 캄보디아와 라오스까지 전선이 확대되어 국제전으로 치러졌다.


대한민국 국군의 베트남전 참전

대한민국 국군의 베트남전 참전(大韓民國軍 베트남戰 參戰) 또는 월남전 참전(越南戰 參戰), 월남 참전

중앙

1964년 9월 11일 1차 파병을 시작으로, 1966년 4월 4차 파병까지, 박정희 정부 하에서 베트남 전쟁에 대한민국 전투부대를 파병한 일을 말한다. 한국의 파병 제안과 월남정부 및 미국의 요청에 따라 행해진 대한민국 최초의 국군 해외 파병이다.


배경

1964년 8월 2일 북베트남의 통킹만에서 미국 해군 구축함 매독스 호가 북베트남에 의해 공격을 받는 통킹만 사건이 일어났다. 미국은 이를 빌미로 베트남에 대한 군사 개입을 강화하여 베트남 전쟁이 일어나게 된다. 케네디 대통령은 당시 전 세계가 공산화 도미노의 위협을 받고 있다고 판단, 베트남 파병을 3200명으로 확대했다. 1961년, 5.16 군사혁명으로 집권한 뒤 미국을 방문한 박정희를 케네디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1964년 미국은 한국에게 베트남 파병 지원 요청을 하였고, 미국은 베트남에 한국군을 파병하겠다는 박 대통령의 제안을 받아들여 베트남전 파병이 이루어졌다. 대한민국군의 참전은 조약상의 의무에서가 아니라 미국측이 파병의 대가로 한국군의 전력증강과 경제발전에 소요되는 차관공여를 약속함으로써 이루어졌고, 미국이 한국군을 참전시킨 이유는 1차적으로 미국내에서 광범위하게 일고 있던 반전여론을 무마시키고 미국군 봉급의 1/3 수준인 한국군을 전선에 투입함으로써 전비절감을 꾀하고자 한 계산에서였다. 이에 따라 당시 일부 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1964년 10월 대한민국군의 베트남 파병을 단행하였으며, 1964년 8월 제1이동외과병원(130명)과 태권도 교관단(10명) 파월을 시작으로 주월 한국군사원조단(비둘기부대), 방공포병대대(호크유도탄부대)를 창설하고 백마부대 등 한국군을 파견하였다.[1]


사건 전개[2]

  • 1964년
    • 5월 9일: 존슨 미 대통령, 자유우방 25개국에 남베트남 지원 요청
    • 7월 15일: 응웬칸 남베트남 총리, 한국군 파병 요청
    • 7월 31일: 국회 제1차 파병 동의안 가결
    • 9월 22일: 제1차 파병단(제1이동외과병원 및 태권도교관단) 사이공 도착
  • 1965년
    • 1월 26일: 국회 제2차 파병 동의안 가결
    • 3월 16일: 건설지원단(비둘기부대) 사이공 도착
    • 8월 13일: 국회 제3차 파병(전투부대) 동의안 가결
    • 10월 14일: 제2해병여단(청룡부대) 깜라인 상륙
    • 10월 20일: 주월 한국군 사령부 사이공에 개소
    • 11월 2일: 수도사단(맹호부대) 본대 뀌년 상륙
  • 1966년
    • 3월 20일: 국회 제4차 파병(전투부대 증파) 동의안 가결
    • 4월 19일: 수도사단 제26연대 본대 뀌년 상륙
    • 10월 3일: 제9사단(백마부대) 닌호아 및 깜라인 상륙
    • 10월 21일: 박정희 대통령 남베트남 방문
  • 1971년
    • 12월 4일: 주월 한국군 제1단계 철수 시작(제2해병여단)
  • 1972년
    • 4월 13일: 주월 한국군 제1차 철군 완료
  • 1973년
    • 1월 28일: 베트남전쟁 평화협정 발효
    • 3월 13일: 주월 한국군 제2차 철군(본대) 완료
    • 3월 23일: 주월 한국군 후발대 철수 완료



참고자료


출처

  1. 위키백과-대한민국 국군의 베트남전 참전
  2. 베트남 참전 외교문서 공개



작성자 및 기여자

인문정보콘텐츠(2020) 강의의 일환으로 송지선(1611138)이 2020년 6월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