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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티나 성당(라틴어: Aedicula Sixtina)은 바티칸 시국에 있는 교황의 관저인 사도 궁전 안에 있는 성당이다. 건축 양식이 타나크에 나오는 솔로몬의 성전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전하며,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산드로 보티첼리 등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가들이 그린 프레스코 벽화가 구석구석에 그려져 있다. 그 가운데서도 미켈란젤로는 교황 율리오 2세의 후원을 받으면서 1508년에서부터 1512년 사이에 성당의 천장에 12,000점의 그림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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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티나 성당의 천장은 원래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금빛으로 빛나는 별들이 그려져 있었다. 1508년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는 교황 율리오 2세로부터 천장을 다시 칠하는 권한을 부여받았다. 작업은 1508년에 시작하여 1512년 11월 1일에 완료되었다. 그 후 미켈란젤로는 교황 바오로 3세의 의뢰를 받아들여 제대 위에 1535년부터 1541년까지 마지막 심판을 그렸다.[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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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의뢰받은 작업의 엄청난 규모에 미리 겁을 먹은 미켈란젤로는 율리오 2세가 접촉을 해온 처음부터 사양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는 자신이 화가라기보다는 조각가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며, 따라서 자신의 능력 밖의 일인 그런 대규모 작업이 맡겨진 것은 정적들이 자신을 나락에 떨어뜨리려는 수작이라고 의심하였다. 미켈란젤로에게 있어 이 작업은 지난 수년간 대리석을 조각하는 것에만 몰두했던 기존의 작품 활동에서 탈피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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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가 표현한 영감의 원천은 쉽게 결정된 것이 아니다. 교황과 아우구스티노회의 신학자들로부터 성경의 내용에 대해 많은 조언을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미켈란젤로가 조수들의 도움 없이 혼자서 자기 손으로 직접 작업을 했다고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몇몇 특정 그림들만 그가 그린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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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4년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에 거대한 균열이 생기고 오래된 장식이 훼손되기 시작하자 천장을 새로 장식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1508년 5월 10일 교황 율리오 2세는 미켈란젤로에게 의뢰하여 천장을 새로 칠하는 작업을 맡겼다. 미켈란젤로는 4년에 걸쳐 비범한 재능을 발휘하여 이 거대한 천장화를 그렸다.[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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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티나 성당 천장 중앙에는 창세기의 장면을 프레스코로 재현한 아홉 점의 그림이 띠 형태로 그려져 있는데, 다섯 점은 크기가 조금 작다. 똑같은 생김새에 동적인 자세를 취한 남성 누드(이누디)가 각 모서리에서 작품들을 둘러싸고 있다. 이들은 모조 청동메달을 받치고 있는데, 메달들에는 사무엘기와 열왕기의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이 작품의 제작 순서이자 내용에 따른 연대기적 순서에 따르면, 첫 번째 여섯 작품은 빛과 어둠의 분리, 별의 창조, 땅과 바다의 분리, 아담의 창조, 하와의 창조, 원죄로서, 창세기 속 몇 가지 일화를 보여준다. 나머지 세 작품은 노아의 이야기로, 노아의 희생과 노아의 방주, 노아의 만취이다. 천장 중앙에서 하나의 띠를 형성하는 이 작품을 둘러싼 양 측면에는 일곱 명의 예언자와 다섯 명의 여사제의 그림이 있다. 예언자들과 여사제들 사이 천장과 벽이 만나는 곳의 삼각형 공간과 루네트에는 아브라함부터 성 요셉에 이르는 예수의 선조들을 그렸다. 그리고 사방의 펜던티브에는 청동뱀, 하만의 형벌, 다윗과 골리앗, 유딧과 홀로페네스를 그려 구세주의 언약을 암시하는 구약성경의 네 장면을 나타냈다.[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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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쪽 절반이 완성된 후,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는 성당이 봉헌된 성모 승천 대축일을 기념하여 1511년 8월 15일에 부분적으로 공개되었다. 그리고 1년 후인 1512년 11월 1일 모든 성인의 축일에 마침내 천장화 제막식이 거행되었다.
  
  

2019년 12월 1일 (일) 21:57 판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1475.3.6~1564.2.18)

생애

미켈란젤로는 유년 시절부터 조토와 마사치오의 작품들을 습작하며 그림에 많은 관심을 쏟아 집안에서 자주 꾸중을 들었다. 계몽사에서 출판한 <미켈란젤로>에 의하면, 소년 미켈란젤로의 재능을 알아본 메디치 가에서 아버지를 설득한 덕분에 미켈란젤로는 미술공부를 할 수 있었고, 13세 때 화가 도메니코에게서 그림을 배웠다. 14세때부터 메디치 가문의 보호를 받으며 베르트르드 디 조반니를 통하여 도나텔로 작풍을 배웠다. 또한 성 베드로 대성전의 돔, 성 베드로 대성전의 피에타, 팔레스티나의 피에타, 론다니니의 피에타 등 세 조상을 미완성으로 남긴 채 89세를 일기로, 외롭고 괴로운 긴 생애를 로마에서 마쳤다.

건축을 위시하여 조각·회화·시, 그리고 공학(工學)에 이르기까지 다재다능한 예술가였는데 특히 조각은 그의 본성에 적합한 것이었다. 처음에 기를란다요의 화실에서 그림을 배웠으며 로렌초 데 메디치에게 인정을 받아 그가 소장하고 있던 고대 미술을 접할 수 있었고 또한 도나텔로의 영향도 받아서 조각에 전념하게 되었다.


작품

The Creation of Adam

Creation of Adam.jpg!Large.jpg

아담의 창조(The Creation of Adam)는 미켈란젤로의 프레스코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에 그려진 벽화의 하나이다. 하느님이 최초의 인간 아담에게 생명을 불어넣은 창세기 속 성경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이 작품은 예배당 입구에서 출발하여 구약 이야기가 전개되는 중간 지점에 그려져 있는데, 이는 인간과 신이 함께 표현되는 양식을 과감히 창조적으로 표현하면서,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만든 하나님의 창조적 힘과 인간이 만들어지는 감동적인 순간을 뛰어나게 형상화시킨 작품이다.


Daivd

David.jpg

다비드는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 예술가 미켈란젤로가 1501년과 1504년 사이에 조각한 대리석상으로, 높이는 5.17m이다.

미켈란젤로는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 다윗의 청년의 모습을 예술적으로 위엄있게 표현해냈다. 현재 피렌체의 갤러리아 델 아카데미아에 소장되어 있다. 미켈란젤로는 1501년 피렌체에서 시청의 부탁으로 다비드를 3년에 걸쳐 완성하였다.

도나텔로의 영향을 받고 있으며, 갈고리형으로 굽은 오른편 손목은 츠크네를 모방하였고, 세부의 해부학적 표현과 고정된 눈에도 전 시대의 잔재를 엿볼 수 있다(석재가 높이에 비하여 얇은 데에도 한 원인이 있다). 그러나 그의 면모는 표정이 넘쳐 있고 그 거대한 크기와 더불어 전형적인 남성의 나체상이 되어 있다. 체구를 상반되는 두 방향축에 중심을 두면서 두 어깨의 위치에 높고 낮음을 만들고, 목줄기 근육을 과장하여 조상(彫像)에 긴박감을 부연하였다. 이 작품이 풍기는 긴장감과 불안정성은 헬레니즘 조각의 다방향성(多方向性)을 한층 강조한 것이다.

일견, 미켈란젤로의 전형적인 상(像)은 도나텔로의 서정적인 양치기 목동이나 베로키오의 신경질적인 젊은이에 비하여, 참다운 고전적 감정을 가진 작품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동시에 이 상이야말로 현실에 성서의 영웅적인 행위를 실현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한다. 그의 목적은 소년의 우미함과 젊음에 있는 것이 아니고, 청년의 무한한 에너지와 육체의 자신을 구현하는 하나의 전형을 제작하는 데에 있었다.


Pie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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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타.jpg


피에타(Pietà, 1498-1499)는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가 조각한 것으로 현재 바티칸 시국의 성 베드로 대성전에 보관되어 있는 르네상스 시대 조각 예술의 대표적인 명작품이다. 그의 많은 피에타 상 중에서 최초의 것으로, 당시 로마에 체류 중이었던 프랑스 추기경 장 드 빌레르의 의뢰로 만든 것이었다. 커다란 대리석을 깎아 만든 이 조각상은 장 드 빌레르 추기경의 장례 미사 기념비로 제작되었지만, 18세기에 지금의 성 베드로 대성전 입구 오른쪽에 있는 경당으로 위치가 옮겨졌다. 이 피에타상은 유일하게 미켈란젤로가 직접 자신의 이름을 새긴 작품이기도 하다.

이 유명한 작품은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 후에 어머니인 성모 마리아의 무릎에 놓여진 예수 그리스도의 시신을 묘사한 것이다. 원래 피에타를 주제로 한 예술 작품은 북방에서 유래한 것인데, 이 조각상이 제작될 당시만 해도 아직까지는 이탈리아가 아닌 프랑스에서 유행을 하였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표현은 이전 작품들과는 달리 마리아의 얼굴이 매우 앳되게 표현되었다는 점이나, 예수의 몸에 비해 마리아의 신체 비율이 매우 거대하게 표현된 점, 그리고 사망한 후 사후 강직이 일어났어야하는 예수의 몸이 부드럽게 늘어져있는 모습으로 표현된 점 등 매우 독창적으로 제작되었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는 고전적인 아름다움을 강조한 르네상스 시대 당시의 이상과 자연주의의 균형을 이룸으로써 예술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작품이다. 또한,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는 미켈란젤로가 생전에 만든 거대한 조각 작품 가운데 유일하게 완성을 끝마친 작품이기도 하다.


피에타는 완벽한 고전적 작품인데 해부학과 의복의 처리법을 터득하고 있음을 실증하고 있다. 앳된 여성의 무릎에 거의 수평으로 뉘어진 남성상을 표현한다고 하는 어려움을 피라미드형의 구성으로 훌륭하게 해결하였다.


시스티나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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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티나 성당(라틴어: Aedicula Sixtina)은 바티칸 시국에 있는 교황의 관저인 사도 궁전 안에 있는 성당이다. 건축 양식이 타나크에 나오는 솔로몬의 성전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전하며,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산드로 보티첼리 등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가들이 그린 프레스코 벽화가 구석구석에 그려져 있다. 그 가운데서도 미켈란젤로는 교황 율리오 2세의 후원을 받으면서 1508년에서부터 1512년 사이에 성당의 천장에 12,000점의 그림을 그렸다.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은 원래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금빛으로 빛나는 별들이 그려져 있었다. 1508년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는 교황 율리오 2세로부터 천장을 다시 칠하는 권한을 부여받았다. 작업은 1508년에 시작하여 1512년 11월 1일에 완료되었다. 그 후 미켈란젤로는 교황 바오로 3세의 의뢰를 받아들여 제대 위에 1535년부터 1541년까지 마지막 심판을 그렸다.[18]

자기가 의뢰받은 작업의 엄청난 규모에 미리 겁을 먹은 미켈란젤로는 율리오 2세가 접촉을 해온 처음부터 사양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는 자신이 화가라기보다는 조각가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며, 따라서 자신의 능력 밖의 일인 그런 대규모 작업이 맡겨진 것은 정적들이 자신을 나락에 떨어뜨리려는 수작이라고 의심하였다. 미켈란젤로에게 있어 이 작업은 지난 수년간 대리석을 조각하는 것에만 몰두했던 기존의 작품 활동에서 탈피하는 것이었다.

미켈란젤로가 표현한 영감의 원천은 쉽게 결정된 것이 아니다. 교황과 아우구스티노회의 신학자들로부터 성경의 내용에 대해 많은 조언을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미켈란젤로가 조수들의 도움 없이 혼자서 자기 손으로 직접 작업을 했다고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몇몇 특정 그림들만 그가 그린 것으로 보인다.

1504년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에 거대한 균열이 생기고 오래된 장식이 훼손되기 시작하자 천장을 새로 장식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1508년 5월 10일 교황 율리오 2세는 미켈란젤로에게 의뢰하여 천장을 새로 칠하는 작업을 맡겼다. 미켈란젤로는 4년에 걸쳐 비범한 재능을 발휘하여 이 거대한 천장화를 그렸다.[19]

시스티나 성당 천장 중앙에는 창세기의 장면을 프레스코로 재현한 아홉 점의 그림이 띠 형태로 그려져 있는데, 다섯 점은 크기가 조금 작다. 똑같은 생김새에 동적인 자세를 취한 남성 누드(이누디)가 각 모서리에서 작품들을 둘러싸고 있다. 이들은 모조 청동메달을 받치고 있는데, 메달들에는 사무엘기와 열왕기의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이 작품의 제작 순서이자 내용에 따른 연대기적 순서에 따르면, 첫 번째 여섯 작품은 빛과 어둠의 분리, 별의 창조, 땅과 바다의 분리, 아담의 창조, 하와의 창조, 원죄로서, 창세기 속 몇 가지 일화를 보여준다. 나머지 세 작품은 노아의 이야기로, 노아의 희생과 노아의 방주, 노아의 만취이다. 천장 중앙에서 하나의 띠를 형성하는 이 작품을 둘러싼 양 측면에는 일곱 명의 예언자와 다섯 명의 여사제의 그림이 있다. 예언자들과 여사제들 사이 천장과 벽이 만나는 곳의 삼각형 공간과 루네트에는 아브라함부터 성 요셉에 이르는 예수의 선조들을 그렸다. 그리고 사방의 펜던티브에는 청동뱀, 하만의 형벌, 다윗과 골리앗, 유딧과 홀로페네스를 그려 구세주의 언약을 암시하는 구약성경의 네 장면을 나타냈다.[20]

앞쪽 절반이 완성된 후,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는 성당이 봉헌된 성모 승천 대축일을 기념하여 1511년 8월 15일에 부분적으로 공개되었다. 그리고 1년 후인 1512년 11월 1일 모든 성인의 축일에 마침내 천장화 제막식이 거행되었다.


기타(수상내역 등)

참고문헌

작성자 및 기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