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정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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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진 (토론 | 기여)님의 2022년 3월 2일 (수) 13:35 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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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북정마을은 한양도성 백악구간 성곽과 가장 가깝게 형성된 마을이다.

조선시대 때 궁궐에 바치는 메주를 쑤는 일이 이 동네에 주어지면서, 메주를 만들기 위해 온 마을 사람들이 북적북적거렸다~하여 북정마을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암문 사진

한양도성에는 8개의 암문이 있다. 대부분 성곽마을 주민들의 편리를 위해 의해 복원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며

인왕산 무악동, 창의문과 백악마루 사이, 백악산 곡장아래, 성북동 북정마을, 낙산공원 정상, 낙산 이화동, 낙산 창신동, 장충동 구간 다산동에 8개의 암문이 위치하고 있다.

역사를 품다

19세기 중엽 천주교도박해 때 서울성안의 교인들이 피신하여 숨어 살던 때부터 마을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에는 성 밖의 맑은 공기와아름다운 경관을 찾아 모여든 한량과 기생들, 이태준, 한용운 등의 가난한 예술가, 그리고 병약한 환자들의 생활 공간으로 사람들이 모였다.

6·25전쟁을 거치며 북정마을은 도시노동자들이 모여 사는 동네가 되었다.

이후 성북동은 1960~70년대부터 주요 재계인사들이 들어와 거주하면서 고급주택 및 외교사택이 형성되기 시작하여 남쪽의 부촌과 달리 북쪽의 북정마을은 판자집이 난립한 모습이 대조적으로 보여진다.

1960-70년대에 건축된 500채 정도의 기와집이 현재까지 이어지면서 1960-70년대 서울의 정취를 북정마을에서 느낄 수 있다.

북정마을에는 해마다 지역 특성을 살린 ‘Wall月축제’를 열어 공동체 의식을 함께 나누는 축제를 진행한다.

마을 주변에는 만해 한용운이 말년에 거처한 심우장, 상허 이태준 가옥, 성북동 최순우 가옥도 그대로 남아있다.

한옥

심우장

이태준 가옥

최순우 옛집

축제

월월 축제

방향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