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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토론 | 기여)님의 2019년 11월 25일 (월) 16:35 판 (한옥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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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정의

한옥(韓屋)이란 선사시대부터 이땅에 우리민족 고유의 기술로 지은 건축을 의미한다. 이는 현대건축과 상반되는 개념의 용어이다. 한옥은 한반도와 만주를 중심으로 독자적인 발전 과정을 거쳐 왔다. 넓은 의미의 한옥은 초가집, 너와집, 기와집 등 한국의 전통 건축물들을 포괄하나 한국에서도 대중적 의미의 한옥은 기와집만을 의미하게 되었다.


한옥소개3.jpeg

저작자 :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한옥'이라는 말이 처음으로 나오는 것은 융희 2년(1907년) 4월 23일에 쓴 '가사에 관한 조복문서'인데, 돈의문에서 배재학당에 이르는 정동길 주변을 기록한 약도에서 이 말이 쓰이고 있다. 당시에는 '주가'(住家)나, '제택'(第宅) 등과 같은 용어가 흔히 쓰였는데, 한옥이라는 낱말은 특수한 상황에서 새로이 등장한 건축물을 가리키는 용어와 같은 맥락에서 쓰이고 있다.


한옥 사진

출처 : 1982,e영상역사관, 공공누리 제4유형 [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변경금지]
  • 영상

아래를 클릭하면 한옥에 관한 짧은 영상을 볼 수 있다.

한옥 영상1.PNG

영상링크 : 공유마당, 2016, 한국저작권위원회, CC BY

  • 도면

한옥의 초기 형태라고 할 수 있는 사기리 창내 유적 막집 터 평면도를 볼 수 있다.

출처 :사기리 창내 유적 막집 터 평면도, 공유마당 2011, 한국학중앙연구원, 공공누리 제 1유형

역사

초기

한옥은 구석기인들의 막집, 신석기시대의 움집을 지나 철기시대에 흙을 구운 기와를 지붕에 얹은 기와집이 등장하게 된다. 이 외에도 삼국시대, 조선시대의 초가집, 너와집 등이 있다.


  • 신석기시대 움집

움집1.png

저작자 :공유마당, 한국교육방송공사 CC BY


  • 초막집

막집1.jpg

저작자 : 공유마당, 2015, 한국사진사연구소 CC BY-NC-ND

개화기

1876 (강화도 조약) ~ 1910 (경술국치)

  • 인화문(仁化門)

한옥소개2.jpeg

출처 :1899, Europeana, Kuylenstierna, Alexis, CC BY-NC-ND

인화문(仁化門)은 본래 덕수궁의 정문이었는데 대안문(大安門)(현재의 대한문) 주변으로 도로가 나면서 그 기능을 상실했고 그 후 1905년의 화재로 타버렸다.


고택사진3.jpg 고택사진2.jpg 고택사진1.jpg

출처 : 김민정, Public Domain

이 고택(古宅)은 대한제국(大韓帝國 : 1897년~1910년) 시기의 관료로서 광업·금융업·창고업 등에 종사하며 부를 축적해 재력가로도 널리 알려진 최사영(崔思永)이 1906년 마포(麻浦)에 건립한 집의 안채로 추정되는 건물이다.

대한민국

1970년대 이후 현대적 건축을 배운 건축가들이 한옥을 구시대의 잔재인 고루한 건축물과 비효율적인 건축으로 인식하고 헐어 없애면서 많은 역사적 가치가 있는 한옥이 많이 사라졌으나, 2000년대 들어 한옥의 자연친화적 기능과 치유의 효과가 강조되면서 한옥의 가치는 재조명받고 있다.

최근에는 화장실이나 안내문과 같은 공공 시설, 심지어는 카페와 같은 사설 기관에도 한옥이나 한옥 모양을 본떠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한다.

  • 김유정역

김유정역1 (2).jpg 김유정역1 (1).jpg

출처 : 김민정, Public Domain


지하철 경춘선 강촌역과 남춘천역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역사가 한옥 형태인 것을 볼 수 있다.


사실을 위한 소설이 아니오 소설을 위한 사실인 이상 그 창작가는 제2의 경우를 더욱 중시하여야 될 줄 믿습니다. 이미 주제를 작정한 다음에 그 소재를 취하는데 현재와 과거를 가릴 필요가 없는 줄 압니다. 작품상에는 현재라고 더 현실적이오 과거라고 비현실적이란 관념은 도무지 성립이 되지 않는 줄 압니다. 더구나 제2의 경우에는 그 과거가 현재에 가지지 못한, 구하지 못한 진실성을 띄었기 때문에 더 현실적이라고 믿습니다. 현재의 사실에서 취재한 것보담 더 맥이 뛰고 피가 흐르는 현실감을 줄 수 있다고 믿습니다. 주어야 될 줄 믿습니다. 이렇게만 된다면 비현실적이라는 등 도피적이라는 둥 하는 비난의 화살은 저절로 그 과녁을 잃을 것입니다.[1]


제작자: 김민정
  1. 「역사소설문제」, 『문장』 1939년 12월. p.126~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