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임시정부"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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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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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3월 5일 창간된 신문사로 대한민국에 현존하는 신문사 중 두 번째로 오래되었으며, 창립 당시 일본에 저항하고 독립을 위해 힘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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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4월 11일 상하이에서 한국 독립운동가들이 수립했던 임시정부로 독립운동을 조직적으로 하기 위해 창설되었다.  
한글 신문 중에는 첫번째로 오래되었다. 2021년 기준, 유료 부수가 유일하게 100만부를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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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국제법상 통치권이 미치는 국토와 국민이 없기에, 통치권을 행사할 수 있는 일반정부와는 성격이 달랐지만, 독립이란 이념을 기반으로 설립되었기에 정부적 조직이다.
  
 
==연표==
 
==연표==

2022년 6월 16일 (목) 20:06 판


개요

1919년 4월 11일 상하이에서 한국 독립운동가들이 수립했던 임시정부로 독립운동을 조직적으로 하기 위해 창설되었다. 그러나 국제법상 통치권이 미치는 국토와 국민이 없기에, 통치권을 행사할 수 있는 일반정부와는 성격이 달랐지만, 독립이란 이념을 기반으로 설립되었기에 정부적 조직이다.

연표

1920년 3월 5일 대정실업친목회에 의해 창간 1920년 4월 28일 영친왕마사코와의 결혼 비판 기사로 인해 압수 1920년 8월 15일 자본금 불입으로 유문환이 2대 사장으로 취임. 1920년 8월 27일 미국 의원단 방한을 환영하는 기사로 1주간 정간 1920년 9월 5일 "당국의 소위 문화 통치는 기괴치 아니한가"라는 논설로 무기 정간 1921년 4월 8일 조선총독부가 조선일보를 인수해 송병준에게 위임하려 했으나 거절해, 3대 사장은 남궁훈이됨. 1924년 9월 13일 신석우가 조선일보를 인수. 4대 사장으로 이상재가 취임함. 신간회 결성 주도 및 한글 교재 무상 배포 1925년 1월 러시알가 일본과 외교관계를 맺자, 김준연을 5대 사장 신석우 1931년 7월 조선일보 6대 사장으로 안재홍이 취임. 1931년 안재홍이 재만동포 자금 횡령 사건에 연류됨. 7대 사장 유진태 8대 사장 조만식 9대 사장 방응모 교육 필화로 인해 총독부에게 기사 압수 1940년 조선총독부의 민족 말살정책으로 조선일보 발간 중단 1945년 11월 23일 미국의 지원을 받아 다시 속간 1947년 ~ 이승만의 대한민국 정부 수립 노선 지지 1948년 ~ 1950년 6월 24일 이승만 정부의 출범 지지 , 반민족 행위자 강력 처벌과 처단 주장, 국가 보안법 제정당시 남용소지 비판 및 국가 보안법 사용 규범 제시 1950년 6월 25일 북한에게 조선일보가 넘어가면서 인민군 기관지가 됨. 1950년 10월 1일 전세가 역전되어 대한민국의 기관지가 되어 한국 전쟁 이슈를 다룸 1951년 ~ 이승만 정부와 대한민국 국근을 지지, 그러나 국민방위군 사건 등과 같은 국군에게 불리한 내용은 다루지 않음. 1954년 ~ 자유진영 지지 1955년 ~ 1959년 이승만 정부의 부산 정치 파동은 다루지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