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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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현 (토론 | 기여)님의 2018년 6월 1일 (금) 11:00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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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 임규

생애

 익산 중인 출신으로, 14세에 사서를 통달하는 등 어려서부터 매우 총명하였다고 한다. 기억력도 매우 좋아 후에 시집을 외워서 집필하고, 독립 선언서 역시 외운 후 일본으로 넘어갔다고 한다.
 14세부터 익산 군수의 통인[1]으로 지냈다. 군수로 부터 큰 신임을 받던 그는 쌀 700석을 서울로 전달하는 명을 받았는데, 그 쌀이 부패한 관리에세 간다는 것을 안 그는 이 쌀이 팔아 일본으로 유학을 간다. 일본에서 게이오의숙 학교를 졸업하고 유학생들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다.[2] 유학생들을 위해 직접 학교를 설립하여 일본어를 가르치고, 대한유학생협회에서 발간한 잡지에 후원도 한다. 여러 학교 경제학을 배운 그가 일본어를 가르친 이유는 그 당시 유학생들은 조국의 발전을 위해서 일본어를 배워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3] 즉, 그는 유학생들을 위해 일본어를 가르친 것이다.
 또한 최남선(崔南善)과 만난다. 그는 신문관을 열어 잡지 '소년'지를 간행하는 등 여러 서적들을 편찬하였다. 그 때 임규는 그와 함께 '일문역법' 등의 일본어 교재를 만들었다. 동시에 최남선은 조선광문회를 새로운 문화산업도 시작한다. 임규는 지속적으로 신문관에 드나들면서 여러 인사들과 친분을 쌓았다고 한다.

활동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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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및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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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수상내역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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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항목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주어(S) 목적어(O) A는 B를 ~하다(P)

참고문헌

작성자 및 기여자

  1. 수령(守令)의 잔심부름을 하던 구실아치
  2. 쌀 700석을 판 돈 역시 유학생을들 위해 쓰여졌다고 한다.
  3. 태극학보 14호 '교수와 교육에 개하여'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