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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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우 (토론 | 기여)님의 2018년 12월 7일 (금) 16:13 판 (전쟁의 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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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발발

임진왜란(壬辰倭亂, 1592년)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조선을 침략함으로써 야기되어 7년간 지속된 전쟁이었다. 명나라 군대가 참전함으로써 국제전이 되었다. 규모면에서 7년간의 전쟁에 참여한 일본, 명나라 군사는 70만 명 이상이 참여한 세계사적인 대 전쟁이었다. 히데요시는 분열되어 있던 일본의 전국시대를 통일한 후 조선을 대마도에 조공을 바치는 나라로 착각하여 대마도주에게 조선국왕의 내조(來朝)를 요구했다. 조선과 일본의 외교적 관행을 잘 알고 있는 대마도주는 중간에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줄타기 외교를 벌였다. 대마도주는 임의로 1587년 국왕사를 파견하여 통신사 파견을 요청하였고, 이후 계속 두 차례나 통신사 파견을 간청하였다.

1590년 조선 정부는 통신사를 파견하였으나 일본의 침입을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파견되었고, 통신사가 함께 온 현소등은 1개월 후에 입경하여 가도입명(假道入明)즉 길을 빌려 명나라를 친다는 통고를 하였다. 이에 조선 조정에서는 방어준비를 명하였으나 민심의 동요를 이유로 이를 곧 중지시켰다. 이 당시 조선 정부의 외교적 대처는 미숙하기 짝이 없었다. 일본의 정세파악에도 적극적이지 못했다. 오히려 일본이 명을 치겠다는 소식을 명나라에 알리는 것을 놓고 고민했다. 그 이유는 조선이 일본과 내통한다는 의혹을 명으로부터 살까하는 의구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1591년 10월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다이묘에 명하여 나고야에 출정성을 쌓고 징집령을 내려 9개부대 15만 8000명을 조선 침략에 동원하였다. 전쟁의 명분은 명나라를 치겠으니 길을 빌려달라는 것이지만 이는 단지 구실에 불과했다.

1592년 음력 4월 14일(양력 5월 23일) 부산진이 함락되면서 일본은 조선을 빠르게 수도 한양까지 점령한 사건이 임진왜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