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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연보<ref>황석영 중단편전집1 ‘탑’. 황석영. 서울:문학동네. 2020. 작가연보</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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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연보<ref>황석영 중단편전집1 ‘탑’. 황석영. 서울:문학동네. 2020. 작가연보</ref>==
  
 
*'''1943년''' 만주 장춘長春에서 출생.
 
*'''1943년''' 만주 장춘長春에서 출생.

2020년 6월 24일 (수) 21:42 판



1.생애

1943년 만주 창춘(長春)에서 태어났다. 해방 후 1947년 서울 영등포에 정착했다. 국민학교 당시 한국전쟁이 발발함에 따라 피난지를 전전하며 지냈다. 고교시절인 1962년 단편 「입석 부근」으로 『사상계』 신인문학상을 수상했다. 베트남전에 참전하고 돌아온 직후인 197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탑」이 당선되어, 본격적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분단과 산업화로 인한 파행과 박탈의 현실을 생생하게 그려냄으로써 참여문학 비평가들에게 큰 지지를 얻었다. 1989년에는 분단의 장벽을 넘어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와 5년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사실을 자세히 묘사하는데 치중하는 것이 아니라 상상력이 가미된 작품을 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특히 2008년 연재된 「개밥바라기별」은 네이버 블로그를 통해 연재된 것으로 유명한데, 황석영의 2000년대 작품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황석영은 등단 40년이 지나서도 소설에 대한 쉬지 않는 탐구정신과 식지 않는 창작열을 보여주고 있다. 주요작품으로는 「객지」「한씨연대기」「삼포 가는 길」「장길산」「오래된 정원」「손님」「무기의 그늘」「모랫말 아이들」「개밥바라기별」「강남몽」「여울물 소리」「심청, 연꽃의 길」「바리데기」 등이 있다.


1.1. 학력

  • 영등포국민학교
  • 경복중학교
  • 경복고등학교 (중퇴)
  • 고졸 검정고시
  • 동국대학교 철학과(중퇴)
  • 동국대학교 불교대학 인도철학과 명예학사 (2000년)


1.2. 가족관계

부모: 전경도(母), 황기련(父)

배우자: 김명수(1986년-2004년), 홍희담(1971년-1986년)

자녀: 황여정, 황호준


1.3. 연보[1]

  • 1943년 만주 장춘長春에서 출생.
  • 1945년 해방과 함께 모친의 고향인 평양 외가로 나옴.
  • 1947년 월남하여 영등포에 정착.
  • 1950년 영등포국민학교에 입학했으나 한국전쟁 발발로 피란지를 전전함.
  • 1956년 경복중학교 입학.
  • 1959년 경복고등학교 입학. 경복중고교 교지 『학원學苑』에 수필「나의 하루」, 시「구름」, 단편「의식」「부활이전」 등을 발표함. 청소년 잡지 『학원學園』의 학원문학상에 단편소설 「팔자령八字嶺」이 당선.
  • 1960년 당시 국회의사당이던 부민관 앞과 시청 앞에서 4·19를 맞음. 함께 있던 안종길 군이 경찰의 총탄에 희생됨. 그의 유고시집 『봄·밤·별』을 친구들과 함께 편집 발간.
  • 1961년 전국고교문예 현상공모에 「출옥하는 날」 당선. 봄에 경복고를 휴학하고 가출하여 남도 지방을 방랑하다 그해 가을에 돌아옴.
  • 1962년 11월 단편「입석 부근」으로 『사상계思想界』 신인문학상 수상.
  • 1964년 한일회담 반대시위에 참가. 노량진경찰서 유치장에서 만난 제2한강교 건설노동자와 남도로 내려감. 신탄진 연초 공장 공사장에서 일용노동. 그후 청주 마산 진주 등지를 떠돌며 여러 가지 일을 하다가 칠북의 장춘사長春寺에서 입산. 동래 범어사를 거쳐 금강원에서 행자 노릇을 하다가 모친과 상봉하여 상경함.
  • 1966년 8월 해병대에 입대하여 이듬해 청룡부대 제2진으로 베트남전 참전.
  • 1969년 5월 군에서 제대함.
  • 197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탑」이 당선. 「돌아온 사람」발표. 동국대학교 철학과 중퇴.
  • 1971년 단편「가화假花」「줄자」, 중편「객지客地」 발표.
  • 1972년 단편「아우를 위하여」「낙타누깔」「밀살」「기념사진」「이웃 사람」, 중편「한씨연대기」 발표.
  • 1973년 구로공단 연합노조 준비위를 구성하여 공장 취업. 단편「잡초」「삼포 가는 길」「야근」「북방, 멀고도 고적한 곳」「섬섬옥수」, 중편「돼지꿈」, 르포「구로공단의 노동실태」를 발표함.
  • 1974년 단편「장사의 꿈」, 사북탄광에 대한 르포「벽지의 하늘」. 공단 여성 노동자의 삶을 취재한 「잃어버린 순이」 발표.4월 첫 창작집 『객지』(창작과 비평사) 발간. 7월부터 이후 1984년 7월까지 10년 동안 한국일보에 대하소설 『장길산』연재. 군사정권의 유신체제에 대한 저항운동 치열해짐.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창설과 현장 문화운동 조직위에 참여.
  • 1975년 단편「가객」, 희곡「산국山菊」 발표. 소설집 『북망, 멀고도 고적한 곳』(동서문화원), 소설선 『삼포 가는 길』(삼중당) 발간, 「심판의 집」서울신문에 연재.
  • 1976년 단편「몰개월의 새」「한등」「철길」, 르포「장돌림」 발표. 가을에 전남 해남으로 이주.
  • 1977년 단편「종노種奴」 발표. 『무기의 그늘』의 기초가 된 「난장亂場」을 11월부터 다음해 7월까지 『한국문학』에 연재. 『심판의 집』(열화당) 발간. 해남에서 ‘사랑방 농민학교’ 시작. 호남을 중심으로 한 현장 문화운동 시작.
  • 1978년 소설집 『가객歌客』(백제) 발간. 문화패 ‘광대’ 창설. ‘민중문화연구소’ 설립. 광주로 이주.
  • 1979년 위 연구소를 확대 개편한 ‘현대문화연구소’의 선전·야학·양서조합 등의 문화운동 부문에 참여. 계엄법 위반으로 검거되었으나 기소유예 처분됨.
  • 1980년 광주항쟁 일어남. 조직에 함께 참여했던 젊은 동료들 수십여 명 사상.
  • 1981년 그동안 현장에서 썼던 희곡들을 정리하여 희곡집 『장산곶매』(심설당) 발간. 소설선 『돼지꿈』(민음사) 발간. 시나리오「날랑 죽겅 펄에나 묻엉」 발표. ‘광주사태 수사당국’의 권유로 제주도로 이주. 제주에서 문화패 ‘수눌음’과 소극장 창립. 4·3항쟁 연구모임인 ‘제주문제연구소’에 참여.
  • 1982년 광주로 돌아와 ‘자유 광주의 소리’ 시작. <임을 위한 행진곡>이 담긴 첫 번째 지하 녹음테이프 ‘넋풀이’ 제작 배포.
  • 1983년 광주항쟁의 진상을 알리기 위한 문화기획팀 ‘일과 놀이’에 참가. 산문「일과 삶의 조건─문학에 뜻을 둔 아우에게」발표. 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월간조선』에 「무기의 그늘」 1부 연재.
  • 1984년 대하소설 『장길산』(현암사) 전10권으로 완간. ‘민중문화운동협의회’ 창설, 공동대표 역임.
  • 1985년 광주항쟁 기록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풀빛) 지하출판됨. 산문집 『객지에서 고향으로』(형성사) 발간. 서독 베를린에서 열린 ‘제 3세계 문화제’에 아시아 대표로 참가함. 유럽, 미국, 일본에서 ‘통일굿’ 공연. 미국에서 문화패 ‘비나리’ 창립. 일본에서 문화패 ‘한우리’와 ‘우리문화연구소’ 창립.
  • 1986년 10월부터 이듬해 8월까지 중앙일보에 「백두산」연재. 6월 항쟁의 시국 변화로 중단.
  • 1987년 단편「골짜기」 발표. 소설선 『골짜기』(인동) 『아우를 위하여』(심지) 발간. 9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월간조선』에 「무기의 그늘」 2부 연재.
  • 1988년 단편「열애」, 산문 「항쟁 이후의 문학」(『창작과 비평』) 발표. 장편소설 『무기의 그늘』(형성사) 발간. 9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신동아』에 「평야平野」 연재.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창립.
  • 1989년 소설선 『열애』(나남) 발간. 3월 북한의 ‘조선문학예술총동맹’ 초청으로 방북. 이후 귀국하지 못하고 독일예술원 초청 작가로 1991년 11월까지 베를린 체류. 북한 방문기 「사람이 살고 있었네」를 『신동아』와 『창작과비평』에 분재. 『무기의 그늘』로 만해문학상 수상. 베를린 장벽 무너짐.
  • 1990년 2월부터 7월까지 한겨레신문에 「흐르지 않는 강」 연재. 8월에 평양에서 열린 제1차 범민족대화에 참가하면서 연재 중단. 남·북·해외동포가 망라된 ‘조국통일범민족연합’ 창립에 주도적으로 참여. 대변인 역임. 소련과 동구 사회주의권의 붕괴를 목격함.
  • 1991년 베를린 ‘남·북·해외 3자 회담’에 참가. 회의에 의해 ‘공동사무국’ 창설을 위하여 뉴욕으로 이주할 것이 결정됨. 11월 미국 롱아일랜드 대학 문화예술 프로그램에 초청받아 미국 체류. 이후 귀국할 때까지 뉴욕 체류.
  • 1992년 뉴욕에서 아시아인 1.5세, 2세들과 함께 ‘동아시아문화연구’ 창립. 부정기간행물 『어머니 대나무Mother Bamboo』 발간.
  • 1993년 4월 귀국하여 방북 사건으로 징역 7년을 선고받음. 『사람이 살고 있었네』(황석영석방공동대책위) 발간.
  • 1998년 3월 석방.
  • 1999년 1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동아일보에 장편소설 『오래된 정원』 연재.
  • 2000년 5월 『오래된 정원』(창작과 비평사) 출간. 『오래된 정원』으로 단재상, 이산문학상 수상.
  • 2001년 6월 장편소설 『손님』(창작과비평사) 출간. 『손님』으로 대산문학상 수상.
  • 2002년 10월부터 이듬해 10월까지 한국일보에 『심청, 연꽃의 길』 연재.
  • 2003년 6월 『삼국지』(창비) 전 10권 번역 출간. 12월 장편소설 『심청』(문학동네) 출간.
  • 2004년 2월부터 2006년 2월까지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이사장 역임. 4월부터 2007년 11월까지 런던 대학과 파리7대학 초청으로 런던과 파리 거주. 『심청』으로 올해의 예술상 수상, 만해대상 수상.
  • 2007년 1월부터 6월까지 한겨레신문에 『바리데기』 연재. 7월 장편소설 『바리데기』(창비) 출간.
  • 2008년 2월부터 7월까지 인터넷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개밥바라기별』 연재. 8월 장편소설 『개밥바라기별』(문학동네) 출간.
  • 2009년 9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인터넷서점 인터파크에 『강남몽』 연재.
  • 2010년 6월 장편소설 『강남몽』(창비) 출간.
  • 2011년 5월 장편소설 『낯익은 세상』(문학동네) 출간. 11월부터 2014년 11월까지 문학동네 네이버 카페에 ‘황석영의 한국 명단편 101’ 연재.
  • 2012년 4월부터 10월까지 한국일보에 『여울물 소리』 연재. 11월 장편소설 『여울물 소리』(자음과 모음) 출간.
  • 2015년 1월 『황석영의 한국 명단편 101』(문학동네) 전 10권 출간. 11월 장편소설 『해질 무렵』(문학동네) 출간.
  • 2016년 단편 「만각 스님」 발표.
  • 2017년 6월 자전 『수인』(문학동네) 전2권 출간.
  • 2019년 4월부터 2020년 3월까지 인터넷서점 예스24에 「마터 2-10」 연재. 현재까지 아시아, 유럽, 미주, 남미 등 세계 28개국에서 87종의 저서가 번역 출판됨.



출처

  1. 황석영 중단편전집1 ‘탑’. 황석영. 서울:문학동네. 2020. 작가연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