⑪함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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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개요

함녕전 咸寧殿 (咸寧 : 모두가 평안하다)
1897년 건립된 함녕전은 고종의 침전으로 사용되었으나, 1904년 함녕전 온돌 수리공사 중 일어난 화재로 함녕전은 물론 덕수궁 내 전각들이 모두 소실되었다. 함녕전은 이듬해인 1905년 8월에 중건하였다. 이 곳은 1919년 1월 21일 고종이 승하한 곳이기도 하다.

건립시기·연도

대한제국, 1897년 창건, 1906년 중건

소재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 99 (정동)

관련 영상

구조

* 1층으로 지붕은 팔작지붕이며 지붕의 각 마루는 양성을 하고 취두, 용두, 잡상으로 장식했다. 잡상의 수는 7개이다. 평면은 ‘ㄴ’자 형태이다. 또한 장대석을 높게 쌓은 4단의 기단 위에 주춧돌을 놓고 각기둥을 세운 뒤, 쇠서 1개만 둔 몰익공 공포에 겹처마 양식으로 지었다. 강녕전과는 달리 중앙에 월대 없이 5단 짜리 계단만 3개를 설치했으며 뒷면에는 대청과 통하는 쪽은 계단 1개를, 북쪽으로 돌출된 부분엔 동쪽과 북쪽에 각각 1개 씩의 계단을 두었다.
* 정면 9칸, 측면 4칸에 북쪽에 온돌방 4개를 덧붙여 총 40칸 규모이다. 내부는, 가운데 정면 3칸, 측면 2칸을 대청으로 놓고 칸을 나누지 않고 한 공간으로 뚫어 넓게 했으며 천장은 우물 반자로 막고 단청을 아름답게 칠하여 화려함을 부각했다. 대청을 중심으로 동, 서 양 옆의 정면 2칸, 측면 2칸을 온돌방을 두었으며 앞면의 협칸과 측면의 칸들을 마루로, 뒷면의 협칸은 쪽방으로 구성했으며 온돌방도 대청과 마찬가지로 벽체를 치지 않고 전부 한 칸으로 통하여 공간을 넓게 했다. 대청과 온돌방을 연결하는 문은 중앙에만 창호를 두고 그 위 아래로 종이를 바른 불발기 양식으로 설치했다.
* 다른 궁궐들의 메인 침전은 일반적으로 다 용마루가 없는 무량각 건물인데 반해, 함녕전은 용마루가 있고, 대부분 쇠서가 2개인 이익공 공포인데 반해 함녕전은 쇠서 1개를 둔 몰익공 공포이다. 사실 앞서 말했듯 경복궁의 수많은 그저 그런 전각 중 하나인 만화당을 옮겨다 지은 것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처음부터 정식 침전으로 지은 강녕전, 대조전 등과 비교해 구조의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옮길 때 용마루를 빼도 되지 않냐고 반문할 수 있는데, 그대로 놔둔데엔 두 가지 이유로 추측할 수 있다. 하나는 무량각 건물이 굉장히 고난도의 기술을 필요로 하는 건물이라 함부로 뺐다간 공사가 더욱 힘들어졌을 것이고, 또 하나는 이게 중국 양식이라 그런 선진 기술을 귀하신 왕과 왕비의 침전에만 적용한 것인데, 이미 여러 서양 문물을 접하고 자주 독립국가 대한제국을 선포한 고종이 굳이 중국풍에 얽매이지 않았기 때문이란 것이다.
* 근대 시기에 지어서 그런지 서구적인 요소가 더럿 보인다. 대청 천장엔 샹들리에가 2개나 걸려있고, 대청 문틀마다 커튼 박스를 달았으며 지금은 치웠지만 대청과 툇간 바닥에 카펫도 깔았었다.

여담

  • 2016년 3월 말에 문화재청에서 함녕전 내부를 시민들에게 처음으로 공개했다.
  • 비영리 문화단체 '아름지기재단'에서 문화재청, 덕수궁 관리소, 에르메스 코리아, 문화유산국민신탁 등과 협조하여 '궁궐 전각 내부 집기 재현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함녕전을 대상으로 하여 2016년에는 외주렴을, 2017년에는 용교의, 오봉병, 용문석을 재현했다. -> 이름지기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