㉑선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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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의 정문인 홍화문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선인문이 보인다. 주로 궐내각사에 근무하는 신하들이 이 문으로 출입하였다고 한다. 이문은 조선왕실의 비극과 관련이 많습니다. 중종반정으로 물러난 연산군이 유배를 떠날 때 나간 문이고, 사도세자가 선인문 안쪽 동궁에서 뒤주에 갇혀 죽음을 맞이하였으며, 인현왕후를 죽게 한 벌로 사약을 마시고 죽은 장희빈도 이 문을 통해 궁을 나간다.

선인문의 선인은 ‘인을 널리 펼친다‘는 뜻이며 홍화문에서 이어진 궁 담장의 남쪽 곧 창경궁 동남쪽 담장에 있는 궁문이다. 이 문은 성종 때 처음 세워졌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고, 광해군 때 재건한 것으로 보인다. 『동국여지비고』에 의하면 이 문의 예전 이름은 서린문이며, 동궁의 정문으로 조정의 신하들이 출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