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희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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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희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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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희문은 태조 5년(1396) 도성 창건 때 동남쪽에 세운 소문이다. 광희문은 실질적인 도성의 남소문으로 이를 흔히 수구문으로 불렀다. 청계천이 흘러 나가는 곳에 세워진 수구가 거리상으로는 광희문보다는 동대문이 가깝지만, 남소문이 장충단공원에서 한남동으로 넘어가는 언덕에 따로 있었기 때문에 편의상 수구문이라 부르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수구문은 실제로는 시구문으로 이용되었으니, 서쪽의 서소문과 함께 도성내의 장례행렬이 동쪽 방향으로 지날 때 통과하는 문이었다.

임진왜란으로 도성과 궁성이 파괴될 때 광희문도 파괴된 것으로 보인다. 숙종 때 기록을 보면 남소문과 광희문의 자리를 혼동하기도 하고, 성문 터과 군영의 위치 확인도 어려울 정도로 파괴된 도성을 수축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광희문은 도성 수축이 이루어진 이듬해인 숙종 37년(1711)에 중건에 착수하는데, 수구문을 다시 쌓고 아울러 문루도 조성하게 하였다. 수구문은 심하게 파괴되어 석축을 새로 개수하는데 시일이 많이 걸리므로 서대문 지역을 담당하는 아문에 목재를 넘겨 주어 돈의문 문루를 만들게 하였던 것이다. 이 때에 성문이 수축되고 그 이후 언제 문류가 중건되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그런데 숙종 45년(1719)에 수구문은 옛 이름이 광희문이니, 해당 군문에서 액호를 써서 걸 것을 요청하자 대리청정하던 세자가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는 기록이 있다. 또 영조 때에 도성의 문루가 없는 성문을 중건하게 되었는데 그 대상에 광희문은 포함되지 않았다. 그리고 1759년대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도성도>에는 당시 문류유무에 따라 성문을 그렸는데 수구문에는 문루가 표현되어 있다. 따라서 광희문은 숙종 때에 재건된 것으로 확인된다.

광희문은 일제가 전차궤도를 부설하면서 성곽을 철거할 때도 문과 문루는 그대로 남아 있었으나, 6.25전쟁으로 문루가 파고된 상태로 방치되었다. 그 후 1975년에 도로 중간에 위치하게 되어 원위치에서 남쪽으로 15m 옮기는 이전 복원공사가 시작되어 1973년에 준공되었다. 광희문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을 보면 인조 2년(1624)에 이괄이 난을 일으켰다가 수구문을 통하여 도망갔고, 병자호란(1636)때에는 임금이 역시 이문을 통과하여 남한산성으로 옮겼다고 한다. 그리고 조선시대 일본 사신들은 옥수동 두모포나루로 한강을 건너 광희문을 통하여 인현동에 있던 지정숙소인 동평관으로 향하였다. 성문은 서울성곽의 다른 소문과 같이 장방형 무사석으로 높게 축조한 육축을 마련하고 육축 가운데 홍예를 앞뒤로 설치하여 통로를 만들고, 그 위에 문루를 조성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광희문 (대한민국 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광희문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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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광희동2가 105-3


광희문 가는법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3번출구에서 5분정도 걸어갈 수 있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4번출구에서 10분정도 걸어가면 갈 수 있다.


이용안내

이용시간 24시간

쉬는날: 연중무휴

애완동물가능여부: 불가

문의및안내: 공원녹지과(문화재) 02-3396-5882

관련 홈페이지: 서울 중구 문화관광 http://www.junggu.seoul.kr/tour/

관련 영상

   

주변 갈 곳

동대문역사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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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운동장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조성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의 일부이다. 2007년 12월 동대문운동장 철거 작업을 시작하면서 매장된 유물들이 출토되어 2008년 1월 문화재 발굴조사에 착수하였으며, 2009년 6월 발굴된 유물을 보존, 전시하기 위한 역사문화공원 조성을 발표하고 같은 해 10월 27일에 개장하였다. 부지 면적은 6만 5232㎡이며, 주요 시설은 동대문역사관, 서울 한양도성(서울 성곽)과 이간수문(二間水門) 유적, 동대문운동장기념관, 이간수 전시장, 이간수마당, 갤러리문(門)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동대문역사관에는 조선 전기에서 근대까지의 다양한 문화층에서 출토된 2575건, 2778점의 유물이 시대별, 발굴 지역별로 전시되어 있다. 또한 발굴된 유물들의 토층(土層) 탐험, 하도감(下都監) 터와 이간수문을 3D로 복원한 영상관, 유구지별 유물탐색 체험, 8면 바닥 영상, 유물발굴 체험, 동대문역사 백과사전 등 다양한 문화콘텐츠가 제공된다.

서울 한양도성(사적 10) 유적은 발굴된 265m 구간 중에 이간수문과 치성(雉城)이 포함된 142m 구간이 정비·복원되어 있고, 성곽이 멸실된 123m 구간은 지적도의 추정성곽선을 근거로 복원되었다. 이간수문은 남산 기슭에서 청계천 본류로 흐르던 남소문 동천 위에 세워졌던 2칸 구조의 수문으로, 1910~1915년 일제가 성곽을 철거할 때 묻혔다가 발굴된 것이다. 치성은 일정한 거리마다 성곽에서 바깥으로 돌출되어 성벽을 견고하게 하는 동시에 방어가 취약한 곳을 보완하도록 축조된 방어시설로, 한양도성 성곽에서는 처음 발굴된 것이다.

동대문운동장기념관에는 1925년 일제강점기에 건립되어 2007년 철거되기까지 근현대의 80여 년간 한국 스포츠의 산실이자 대중행사 및 기념행사 장소로 활용된 동대문운동장과 관련된 각종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기념관 외부에는 1968년 보수공사 때 설치된 야간조명탑 2대와 1966년 서울에서 열린 제47회 전국체육대회 때 점화된 성화대가 보존되어 있다.

이밖에 이간수전시장(구 이벤트홀)은 소규모 전시회·음악회·콘퍼런스·행사 등을 위한 공간, 이간수마당은 예술 프로그램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되며, 갤러리문은 디자인 전용 갤러리이다. 서울시에서 설립한 서울디자인재단에서 관리, 운영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동대문역사문화공원 [Dongdaemun History & Culture Park, 東大門歷史文化公園] (두산백과)

두산타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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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그룹 산하의 두산타워(주)가 운영하는 패션 전문점으로 두산타워(Doosan Tower) 또는 두타(DOOTA)로 불린다.

1995년 12월에 착공하여 1998년 말에 완공한 지상 34층, 지하 7층의 대형 건물로 1999년 2월 개장하였다. ‘옷을 주제로 한 놀이동산’ 패션전문점으로 자리매김하면서 하루 이용객이 10만여 명에 이르는 서울의 명소가 되었다. 10대에서 30대가 주 고객을 이룬다.

고급화와 대형화, 디자이너 매장 확대와 감각적인 패션전문점을 컨셉으로 2009년 5월 리뉴얼 오픈하였다. 각 층은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다. 지상주차장을 포함하여 지하 3층에서 6층까지는 승용차 1,200여 대를 수용할 수 있는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다. 지하 2층은 스포츠, 아웃도어, 데님, 캐주얼 전문 브랜드 매장이 입주해 있으며 지하1층은 영캐주얼 매장과 신진 디자이너숍으로 구성되어 있다.

1층은 전문 디자이너 의류와 잡화 매장, 2층은 여성 캐리어 매장으로 구성되며, 3층은 수입명품과 잡화 매장, 4층은 남성의류 매장이 자리하고 있다. 5 층은 액세서리와 생활용품, 화장품 매장이 입점해 있으며, 6층은 아동복과 임부복 매장이 들어서 있다. 7층에는 한식, 일식, 양식 등을 즐길 수 있는 푸드코트가 있고 8층은 동대문의 전망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옥상가든이 마련되어 있다. 8층에서 33층까지는 금융기관과 두산그룹의 각 계열사 사무실이 들어서 있다. 서울시 중구 을지로 6가에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두산타워 [Doosan Tower] (두산백과)

동대문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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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유니온물산(주)으로 출범해 1971년 연합물산(주)으로 상호를 변경한 뒤, 1977년 국제그룹을 거쳐 1987년 한일그룹에서 경영권을 인수하였다. 1997년 (주)성창F&D에서 경영권을 인수한 뒤, 1999년 2월 (주)밀리오레로 상호를 변경하였다. 밀리오레는 이탈리아어(語)로 '더 좋은, 더 나은'을 뜻한다.

1996년 2월 밀리오레 동대문점을 착공해 1998년 문을 연 이래 2000년 밀리오레 타이베이점·명동점·부산점, 이듬해 대구점·수원점·광주점을 잇달아 오픈하였다.

종합 패션 쇼핑몰로, 최신 유행의 제품을 저렴한 가격에 공급하고, 현대적 시설과 서비스로 소비자의 욕구를 만족시키는 데 경영의 중점을 두고 있다. 이를 위해 '머리 끝에서 발 끝까지 충격'을 슬로건으로 삼아 한 자리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원스톱 쇼핑공간을 지향한다.

마케팅 전략은 높은 제품 경쟁력을 갖춘 탁월한 제품, 재고 부담을 완벽히 해소하는 효율적 유통·가격 시스템 구축, 층별 구성을 차별화한 획기적 매장 구성, 낮 시간대 고객과 밤 시간대 고객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밤낮 없는 영업 시간, 각종 이벤트와 볼거리 제공을 통한 뛰어난 판촉 전략 등이다.

장기적 비전은 패션 쇼핑몰이라는 새로운 유통 형태의 정착, 세계적인 경쟁력 확보, 핵심 유통 시스템으로서의 밀리오레 밸리 구축, 지속적인 퀄리티와 디자인 개발을 통한 제품의 차별화, 전국적·세계적으로 우뚝 서는 패션 쇼핑몰 구축, 경제·사회 발전과 함께 숨쉬는 기업 건설 등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밀리오레 [Migliore] (두산백과)

동대문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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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 명소로 유명한 동대문시장은 패션의 최첨단 기지로서 역할을 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꼭 들르는 관광 명소이기도 하다. 원래 동대문시장은 미곡상, 어물상, 청과물상 등이 주를 이루어 1905년에 90여 개의 점포로 시작된 광장시장이 그 출발이 되었다. 6·25전쟁으로 완전히 파괴되었다가 전쟁 이후 주로 월남 피난민의 생활 터전이 되었으며 생활 수품과 군용물자, 외래품이 거래되면서 다시 시장으로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광장시장을 시작으로 창신동 문구거리까지 약 1.3㎞에 걸쳐 청계천로 좌우로 형성된 시장 전체를 동대문시장이라 부르는데 건물 약 30여 동에 3만여 개의 점포가 있다. 평화시장, 동대문종합시장, 신평화시장 등이 전통적인 도매 상권을 형성하고 있는데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식당들도 이곳 구석 구석에 숨어 있다. 옛 동대문운동장 쪽의 아트플라자, 디자이너클럽, 우노꼬레 등은 현대적인 상권을 형성한 곳으로 이른 저녁부터 새벽까지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도·소매 의류 상인들로 불야성을 이룬다

[네이버 지식백과] 동대문시장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국내 여행 1001, 2010. 1. 15., 마로니에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