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다이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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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1920년대에 벌어진 반이성, 반도덕, 반예술을 표방한 미술 운동.

역사

어원에 있어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가장 설득력이 있다고 여겨지는 설은 다음과 같다.

독일의 후고 발이라는 작가 겸 연출가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설이다. 그는 자신이 운영하는 주점 카바레 볼테르(Cabaret Voltaire)에서 여러 젊은 예술가들과 함께 모임을 열었다고 한다. 그들의 대부분 형식에 벗어난 예술 형식을 실험하고 예술 자체의 정의와 이해의 확장에 힘썼다고 한다. 이렇게 시작된 모임에서 어느날 사전에 끼워져 있던 종이 자르는 칼이 우연히 다다라는 단어를 가리키고 있었고, 이 단어가 자신들을 자칭하기에 딱 어울린다고 생각해 채택되었다는 설이다.

이 다다라는 단어는 프랑스어로 어린이들이 타고 노는 목마를 가리키는 말이라는 주장도 있으며, 단순히 어린아이의 옹알이로부터 파생된 아무런 의미가 없는 단어라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모두가 인정하는 건 '다다'라는 단어가 기존의 전통, 질서, 국가 등을 부정하는 그들에게 가장 어울리는 단어라는 것이다.

의의

다다이즘의 예술가들은 과거의 예술과 단절함으로써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예술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특히 '파괴'에 중점을 두었다. 반 문명, 반 합리주의 예술을 주장하며 전쟁을 부정하였다. 그들은 기존의 문화적 형식을 무시하며 기존에 시도하지 않던 예술 형태를 추구하였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그들은 거리에서 자신들의 미술과 창작을 보여주는 등의 일명 '거리 예술'이라는 활동을 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행동을 중심으로 다다이즘은 점차 퍼져나갔으며 예술과 삶의 경계가 사라졌다.

제 1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다다이즘의 예술가들은 허무적 이상주의와 반항 정신을 기반으로 전쟁의 살육과 파괴에 대한 증오와 냉소를 기본 정신으로 하여, 모든 문화적 가치, 전통적 가치, 이성에 대한 신뢰를 부정하였다. 1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스위스를 중심으로 활동했었지만, 이윽고 전쟁이 끝나면서 다다이즘에 참여했던 예술가들은 자신들의 고향으로 돌아갔고, 그곳에서도 다다이즘을 계속하며 점차 다다이즘을 퍼트리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다다이즘은 기존의 예술 형식을 부정해야하지만 전세계로 퍼져버린 다다이즘 이라는 새로운 '형식'을 부정해야하는 상황에 직면함으로서 한계에 도달해버리고 만다.

이렇게 점차 퍼지기 시작한 다다이즘은 바다를 넘어 한국에 이르러 백남준, 이상과 같은 예술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