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격진천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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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격진천뢰"


개요

도화선 방식의 지연 신관 폭탄으로 조선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중에 화포장 이장손(李長孫)이 개발하였다. 쏘기 전에 자체 도화선에 불을 붙인 후 중완구에 넣어서 발사하여 500~600보(600m~1,080m) 정도 날아가 땅에 떨어진 뒤, 도화선이 끝까지 타들어가 뇌관에 불이 닿으면 터지는 원시적인 시한신관을 가지고 있다. 도화선이 다 타서 터지면 깨진 탄체(casing)와 안에 들어 있는 철편이 파편이 되어 사방으로 비산한다. 용도는 위에서 아래로 굴려서 보내거나 적당한 곳에 내려놓고 심지에 불 붙이고 도망가거나 일반 박격포탄처럼 날려보내서 일정 시간이 지나면 폭발하는 1회용 소모성 무기였다.

상세

문화재 배경

2차 경주성 전투에서 처음으로 사용하였으며 이것 한 방으로 성을 탈환했다고 한다. 비격진천뢰가 성 안에 떨어지자 왜병들이 주위에 몰려들어 웬 쇳덩어리가 날아들어왔나 하고 우르르 몰려와 구경했다고 한다. 그러나 잠시 후 천지를 울리는 굉음과 함께 주변에 있던 병사들이 걸레짝이 되어 나가떨어지자 기겁한 일본군들은 다음날 성을 버리고 달아났다고 한다. 경주성 이외에도 1592년 7월 고경명 의병군이 금성을 공격할 때, 1593년 우배선의 의병군이 향교의 일본군을 공격할 때, 동년에 이순신 함대가 웅포 해전에서 육상의 일본군을 공격할 때 쓰였다. 진주대첩과 2차 진주성 전투와 1597년 남원성 전투에서도 사용하는 등, 널리 활용하였다. 유성룡의 진사 에서 1592년 10월 기사를 보면 북쪽 지방에도 이미 비진천뢰가 각 지역 무기고에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대중매체 활용

임진왜란 시기를 다룬 작품에서 필수적으로 등장하는 물건으로 주로 예상치못한 폭발로 적을 혼비백산하게 만드는 역할로 나온다. 초기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대체역사물에서는 조선의 군사력 강화를 위한 필수품으로 반드시 등장하며, 미래 지식을 가진 주인공이나 주인공의 도움을 받은 주변인물들이 개발하여 조선군의 화력을 폭증시키는데 이바지한다. 명량 해전 전투에서는 전투 중 일본군이 급속도로 접근해오자 결국 이순신의 대장선은 백병전을 준비하게 된다. 이때 조선 수군은 완구로 비격진천뢰를 적함으로 던져넣어 왜병들은 물론이고 함선까지 침몰시켰다.

자료영상

참고문헌 및 자료

“비격진천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작성자 및 기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