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화봉사고려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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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소개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은 1123년에 송나라국신사일행으로 고려에 온 송나라 사신 서긍(徐兢)이 저술한 견문록이다. 정식명칭은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이지만, 흔히 줄여서 『고려도경』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작품 내용

서긍은 한 달 남짓 고려에 머물면서 사신으로 공식적인 일정을 수행하였고 그 사이에 5~6차례의 외유를 다녀올 수 있었다. 서긍은 3개월간의 고려 방문 왕복 일정을 상세히 기록하였고 한 달 남짓의 고려 체류 기간 동안에 보고 들은 고려의 역사, 정치, 경제, 종교, 문화 등 각 방면의 정보를 글과 그림으로 세세히 서술하였다. 좀 더 상세하게 보자면, 고려시대개경의 모습과 아울러 각종 풍습과 신앙, 생활모습 등이 다양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는 고려도경 권28부터 고려의 장인과 공예품에 관하여 소개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고려청자는 물론 나전칠기, 물독에 대해서도 소개하고 있다. 이 문헌은 모두 40권 29류로 구성되어 있고, 그 아래에 3백여 세목으로 구분되어 있다. 책의 명칭에서 보듯이, 1123년 휘종(徽宗)의 명을 받고 사절로 고려에 와서 견문한 고려의 여러 가지 실정을 그림과 글로 설명했기 때문에 ‘도경'이라 칭하였다. 고려사나 고려사절요에 한정된 고려시대의 기록을 보완해주고, 고려시대의 생활을 이해하는데 매우 귀중한 사료로 평가받고 있다.

원본과 판본

서긍은 그가 쓴 견문록을 1124년 8월 6일 휘종에게 선화봉사고려도경 40권을 바쳤다. 그는 다른 한 부를 작성하여 그것은 자신의 집에 보관하였다. 그러므로 서긍의 고려도경은 두 부의 원본이 존재하는 셈이다. 하지만 집에다 보관한 책은 동네 사람인 서주빈이 빌려다 보았는데, 반납하기 전 정강의 변을 당하여 그 행방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송 휘종에게 바친 책 역시 세상에 간행되기 전에 전란의 회오리를 맞아 소재가 불분명하게 되었다.

이 후 서긍이 집에서 보관했던 것으로 보이는 고려도경은 11737년 강서성 남창현 홍주에서 발견되었다. 하지만 온전한 것은 해도 2권 뿐이었다. 1167년 서긍의 조카인 서천이 강소성 남창현에서 발견된 고려도경을 징강에서 간행하였다. 이 판각본에는 서문과 소실된 그림이외의 경문 40권 등이 포함되었다. 이것이 고려도경의 송본인데, 건도본 또는 징강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징강본은 천록림낭전에 보존되어 내려왔다. 1831년 고궁박물원에서 이 징강본인 고려도경을 영인 출간하였고, 1974년에는 대만에서 다시 원본에서 새로 찍은 영인본을 발간하였다. 이 징강본 고려도경은 3책으로 구성되었는데, 이 중 징강본 1931년 판이 하버드대학 연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가 이화여자대학교 이화사학연구소에서 1970년 다시 영인하면서 국내에 알려지게 되었다.

고려도경이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는 대에 포정박지부족재본을 발간하면서부터였다. 그는 자신의 지부족재총서의 하나로 건륭 58년에 고려도경을 간행하였다. 지부족재본 고려도경은 필사본의 형태로 전해지기도 한다.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된 필사본 고려도경은 판삼에 ‘아정장판’이라는 것과 1799년에 소장된 것으로 지부족재본 전체를 원형리정의 4책으로 나누어 원형 그대로 필사되어있다. 고려대, 이화여대 등에 있는 필사본 또한 지부족재본을 필사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지부족재본은 이후에도 다양한 형태로 간행되었다.

이처럼 고려도경은 다양한 판본이 존재하지만 현재 전해지는 가장 권위있는 판본(板本)은 징강본이라고 할 수 있다.

기타

고려의 풍속과 관련된 몇가지 기록들

"고려의 나전칠기는 <세밀가귀>라 하여 그 기법이 매우 세밀하여 귀히 여길 뿐 아니라 나전을 매우 정교하게 장식한 말안장도 있다."
"남자와 여자의 혼인에도 경솔히 합치고 쉽게 헤어져, 전례를 본받지 않으니 진실로 웃을 만한 일이다."
"문덕왕후 유씨광종의 딸로 처음 흥덕원군에게 시집갔다가 뒤에 성종의 베필이 되었다."
"옛 사서에 고려를 실었는데 그 풍속이 다 깨끗하다 하더니, 지금도 그러하다...그래서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목욕을 하고 문을 나서며"
"여름에는 날마다 두 번씩 목욕을 하는데 시내 가운데서 많이 한다."
"남자 여자 분별없이 의관을 언덕에 놓고 물구비따라 몸을 발가벗되, 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들은 매양 중국인의 때가 많은 것을 비웃는다."
"고려의 풍속이 밤에 술을 마시는 것을 좋아하며...항상 잔치가 파하면 한밤중을 넘어..."
"부처를 좋아하고 살생을 경계하기 때문에 국왕이나 상신이 아니면, 양과 돼지의 고기를 먹지 못한다."
"나라 안에는 밀이 적어 다 상인들이 경동도로부터 사오므로 면값이 대단히 비싸서 큰 잔치가 아니면 쓰지 않는다."
"가난한 백성들은 해산물을 많이 먹는다. 미꾸라지, 전복, 조개, 진주조개, 왕새우, 문합, 붉은게, 굴, 거북이다리,해조,다시마는 귀천 없이 잘 먹는데.."

관련 자료

사진 자료

  • 선화봉사고려도경

선화봉사고려도경 2.jpg

영상 자료

  • KBS HD역사스페셜 30회 – 송나라 사신이 그린 천 년 전 국제도시 개경

문헌 자료

  • 12세기 중국인 서긍의 고려 여행기(eBook)

선화봉사고려도경 책.jpg

그 외 자료

작성자 및 기여자

디지털과 지식콘텐츠(22-2) 수업의 일환으로 작성.
작성자 한성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