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시성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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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안시성(2018)


영화의 역사적 배경

안시성 전투는 645년(보장왕 4) 고구려가 당나라 군대와 안시성에서 벌인 공방전이다. 

644년 당나라 태종(太宗)은 상당한 반대여론을 무릅쓰고 고구려 침공을 결심했다.

이를 위해 치밀한 계획을 세워 군량·선박·각종 공성구(攻城具) 등을 준비하는 한편, 소수의 병력을 파견해 고구려 변경지대의 형세를 정탐했다. 이어 연개소문(淵蓋蘇文)이 영류왕과 대신들을 살해하고 집권했으므로 성토하지 않을 수 없다는 구실을 내세워 고구려 침공을 실천에 옮겼다.

소개

예고편

줄거리

우리는 물러서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우리는 무릎 꿇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우리는 항복이라는 걸 배우지 못했다! 천하를 손에 넣으려는 당 태종은 수십만 대군을 동원해 고구려의 변방 안시성을 침공한다. 20만 당나라 최강 대군 VS 5천명의 안시성 군사들. 40배의 전력 차이에도 불구하고, 안시성 성주 양만춘과 전사들은 당나라에 맞서 싸우기로 결심하는데… 동아시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승리를 이끈 안시성 전투가 시작된다!

인물 설명

  • 주요 실존 인물

양만춘 (배우 조인성)

  • 양만춘 (배우 조인성)

우리는 물러서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안시성의 성주. 정변을 일으킨 연개소문에게 복종하지 않았으며 당군으로부터 성을 지켜낸 인물. 국가의 도움 없이, 지배자와 대척해 있는 상황에서 본인이 반역자가 아니라는 걸 증명해가는 인물.


이세민 (배우 박성웅)

  • 이세민 (배우 박성웅)

머지않아 안시성을 발 밑에 두겠구나
고구려를 침략한 당나라의 황제, 당 태종.


연개소문 (배우 유오성)

  • 연개소문 (배우 유오성)

고구려의 영류왕을 죽여 쿠데타를 일으키고 정권을 잡은 고구려의 실권자.
영류왕이 친중국적 성향을 갖고 있어, 당 태종이 그 쿠데타로 전쟁의 명분을 삼았다고 한다.


  • 그 외 영화 속 캐릭터
  • 사물 (배우 남주혁): 연개소문으로부터 양만춘을 죽이라는 비밀 지령을 받고 안시성 전투에 투입된 태학도 수장. 가상 인물이다.
  • 추수지 (배우 배성우): 유려한 창술과 뛰어난 처세술을 가진 안시성의 오랜 부관.
  • 파소 (배우 엄태구): 태학 출신으로 용맹함으로 무장한 안시성의 기마대장.
  • 백하 (배우 설현): 양만춘의 여동생이자 여군 부대의 수장. 백하의 실제 모델은 연개소문의 여동생 '연수영'이라고 한다.
  • 풍(배우 박병은): 검을 민첩하게 쓰는 환도수 부대의 수장.
  • 활보 (배우 오대환): 쌍도끼를 제 몸처럼 다루는 부월 수장.
  • 시미 (배우 정은채): 미래를 예지하며 신의 말을 전하는 고구려의 신녀.

영화로 보는 역사

실제 역사와의 차이점

  • "양만춘"을 비롯한 등장인물은 실제 인물일까?

양만춘은 실제 인물이다. 하지만 널리 알려진 ‘양만춘’이라는 이름은 당대 기록에서 전혀 확인되지 않는다. 단지 ‘안시성주’라고만 되어 있을 뿐이다. 양만춘이라는 이름은 16세기 중국 명대(明代)의 소설인 『당서연의(唐書演義)』에 처음 등장한다. 이것이 임진왜란 후 조선인들에게 알려지며, 비로소 널리 퍼지게 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양만춘’이라는 이름의 출처가 소설인 이상 신빙성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당서연의』는 당태종(당나라의 두 번째 황제. 재위기간 626-649) 이세민을 주인공으로 한 역사소설이다.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양만춘이 고구려 초에나 존재하였던 절노부(絶奴部) 소속의 장수로 묘사되는 등 고대의 역사 복원을 위한 자료로서의 가치는 전혀 없다고 할 수 있다. 영화에서 양만춘의 동생으로 등장하는 백하를 비롯해 태학을 다니던 사물, 부관 추수지, 기마부대장 파소, 부월수장 활보, 환도수장 풍 등도 모두 시나리오 작가가 만들어낸 가공의 인물이다. 다만 스토리 상 주요 인물로 등장하는 신녀(神女)의 경우 실제 모델이 있다.

당태종이 전쟁을 일으킬 당시 가장 중요한 전략적 목표로 설정했던 곳은 사실 안시성이 아니었다. 바로 요동성이었다. 과거 수양제(수나라의 제2대 황제. 재위기간 604-618)가 고구려를 공격할 때 그의 100만 대군을 막아내며 발을 묶었던 요동의 거성이었다. 기록에 따르면 당시 요동성에는 사당이 있었다. 이 사당에서 고구려의 시조신 주몽을 모셨는데, 요동성이 중국 5호 16국 중 하나였던 전연(前燕, 337~370)에 속해 있던 시절 하늘에서 내려주었다고 전하는 갑옷과 창이 신물(神物)로 갖춰져 있었다고 한다. 645년 당나라 대군이 몰려와 요동성을 공격하자, 고구려인들은 아름다운 여인 한 명을 여신처럼 단장시켜 주몽에게 제사를 지냈다. 이때 무당이 말하기를 “주몽이 기뻐하시니 성은 분명 안전할 것이다”라고 했다. 하지만 무당의 말과 달리 요동성은 당나라 군대의 집요한 공세를 견디지 못하고 함락되었다. 영화 <안시성>에 등장하는 신녀와 그가 들고 다니는 ‘주몽의 활’은 아마도 요동성의 주몽 사당과 무당, 그리고 그곳에 모셔져 있었던 신물 전승 등에 관한 이야기를 적당히 다듬고 살을 붙여 만든 설정으로 보인다. 요동성의 무당이 안시성을 찾아왔다거나 하는 역사 기록은 전혀 없으므로, 이 역시 영화적 상상의 산물이다.

  • 실제와 달랐던 안시성 전투 묘사

<안시성>에서는 시작과 함께 고구려와 당나라의 대규모 전투 장면을 보여 준다. 영화상 고구려군 15만 명과 당나라군 ‘20만 명'이 충돌하였다고 하는 주필산 전투이다. 이 전투에서 고구려군은 전멸에 가까운 대패를 하게 된다. 이는 역사적 사실과 부합한다. 다만 몇 가지 묘사와 설정은 실제와 어긋나 있다. 우선 주필산 전투를 이끌었던 고구려군의 지휘관은 연개소문이 아니었다. 당시 연개소문은 국가 최고 권력자로서 왕도인 평양에서 전체 전쟁을 지휘하였다. 주필산 전투에서 고구려군을 지휘하였던 장수는 북부 욕살 고연수와 남부 욕살 고혜진이라는 인물이었다. 또 영화에서는 양만춘이 주필산 전투에 참전하라는 연개소문의 명령을 거부한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이는 주필산 전투에서 소중한 벗을 잃은 태학의 리더 사물이 양만춘에게 반감을 가지게 된 계기로 상정되기도 한다. 하지만 주필산 전투는 위기에 처한 안시성을 지키려고 고구려 중앙에서 파견된 구원병이 당나라군과 벌인 싸움이었다. 고연수가 이끌던 고구려군 15만 명은 안시성 동쪽 40리 지점에 이르렀는데, 당태종은 안시성에서 8리 가량 떨어진 주필산 부근까지 고구려군을 유인하여 전투를 벌였다. 당나라 때의 8리를 지금의 미터법으로 환산하면 4.3km 가량. 걸어도 한 시간 정도면 이동할 수 있는 거리니, 전투가 벌어진 곳이 사실상 안시성 코앞이었던 셈이다. 따라서 주필산 전투와 안시성 전투를 매우 멀리 떨어진 장소에서 각각 발생한 별개의 사건인 양 그려낸 영화상의 묘사는 사실과 크게 다르다. 주필산 전투가 벌어질 당시 안시성 앞에는 이미 당나라 대군이 주둔한 상태였고, 안시성 병력은 당연히 주필산 전투에도 참전할 수 없었다.

  • 당나라군이 쌓아 올린 토산의 진실

안시성 전투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장면은 역시 토산(土山)을 매개로 한 공방전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에서는 당나라군이 압도적인 병력을 활용해 ‘산을 만들어내는’ 비현실적인 모습에 안시성 측에서 기가 막혀 하는 것처럼 묘사했다. 기록에 따르면 당나라군은 나무를 엮고 흙을 쌓아 토산을 만들었는데, 『신당서』에서는 토산을 ‘거인(距闉)’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거인’이란 공격하는 측이 성을 내려다보면서 성 내부의 허실을 관찰하고 공격을 가하기 위해 만드는 시설로서, 사실 『손자병법』에도 나올 만큼 그 연원이 오래된 성을 공격하는 방법 중 하나이다. 그러나 당나라군이 두 달 동안 공을 들여 쌓아 올린 토산은 뜻하지 않게 무너져 버렸다. 영화에서는 안시성 수비군이 토산 밑으로 땅굴을 판 다음 지탱하는 나무를 불태워 무너뜨린 것으로 묘사했지만, 이는 극적인 상황을 부여하기 위한 상상의 산물이다. 실제로는 우연히 발생한 사고였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성을 공격하기 위해 애써 만든 토산이 무너져 버리고, 급기야 이를 고구려군에 빼앗기는 추태가 연출되면서 당나라군의 전의가 크게 꺾인 것만큼은 틀림없다. 당나라군이 성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도한 모든 수단이 실패로 돌아간 가운데, 싸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안시성에 두 달여간 발이 묶인 사이 매서운 요동의 겨울이 다가온 것이다. 645년 9월 당태종은 결국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고 퇴군을 명할 수밖에 없었다.

영화에서는 이때 양만춘이 쏜 화살이 당태종의 한쪽 눈을 꿰뚫은 것으로 묘사했으나 이는 검증되지 않은 야사를 빌려 쓴 것일 뿐 사실이라고 볼 수 없다. 당태종은 고구려 원정에 실패하고 당나라의 수도 장안으로 귀환하는 길에도 자신의 부재를 틈타 침입한 유목 세력인 설연타(薛延陀)를 정벌하면서 건재함을 과시하였기 때문이다.

영화 선정 이유 및 영화의 의의

  • 안시성 전투는 국가의 운명을 가르는 결정적인 전투였고 그 규모도 엄청났다. 이 전투에 당 나라 군은 약 50만명까지 투입됐으며 이 전까진 개모성, 요동성, 백암성이 차례 차례 함락 당하며 연속해서 많은 위기가 있었지만 결국 이 전투에서 고구려가 승리하였다. 안시성 전투의 승리 요인은 안시성 앞에 적을 방어해주는 요하강, 그 강 유역의 곡창지대를 통해 군량을 수급받을 수 있었던 것, 천산산맥을 뒤에 등지고 있던 것처럼 최적의 자연 환경이 있었다. 하지만 양만춘의 뛰어난 리더쉽과 안시성 사람들의 '내부적 단결'이 고구려의 승리를 이끌었다고 생각한다. 영화 '안시성'은 이를 매력적인 캐릭터와 함께 스크린에 잘 구현한 영화기에 선정하게 되었다.
  • 영화의 의의
  1. 영화는 시작부터 연개소문과 당 태종이 벌이는 전투 장면을 보여주고, 영화의 하이라이트와 마무리도 전투 신으로 점철된다. 영화의 주인공이 안시성이자 안시성의 액션이 영화를 대표한다. 안시성 전투는 주로 성을 빼앗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공성전. 다양한 공성전의 비주얼 구현은 <안시성>이 제안하는 새로운 볼거리다. 특히 칼이나 활에서 벗어난, 성벽보다 높은 공성탑 수십대, 투석기, 충차, 파성루 등 새로운 무기가 사용되어 다양한 볼거리를 담보한다. 전투 의상도 기존 사극과 달라진다. 말과 사람 모두 쇠갑옷을 입고, 적이 포진해 있을 때 전진부대가 나서서 부수고, 뒤의 보병을 초토화하는 전투 장면이 연출된다.
  2. <안시성>은 동아시아 전쟁사에서 가장 극적이고 위대한 승리로 전해지는 88일간의 '안시성 전투'를 그린 초대형 액션 블록버스터. <안시성>은 그 동안 스크린에서 깊게 조명하지 않았던 고구려 시대로 시선을 향했다. 고구려에 대한 사료는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상태. <안시성>도 역사에 남아있는 안시성과 양만춘에 관한 단 3줄 뿐인 기록으로 시작된 영화다. 김광식 감독은 영화의 포문을 여는 주필산 전투와 2번의 공성전,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토산 전투 등 한국 영화 역사상 가장 웅장하고 화려한 전쟁 장면들을 실감나게 연출하고 ‘안시성의 성주’ 양만춘과 당 태종, 사물 등 주요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살리기 위해 100권의 서적을 참고하는 등 잊혀진 승리의 역사를 그리려고 다각도로 힘썼다. 김광식 감독은 "고구려, 특히 ‘안시성 전투’와 관련된 사료가 부족해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남아 있는 사료를 통해 100% 고증 가능한 부분은 철저하게 고증했다. 그 외의 이야기와 요소들은 영화적 상상력을 더하는 작업을 거쳤고, 이를 연출의 포인트로 삼았다"고 이야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