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옵바와 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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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전문

<우리옵바와 화로> 임화 (1929)

사랑하는 우리 오빠 어저께 그만 그렇게 위하시던 오빠의 거북 무늬 질화로가 깨어졌어요
언제나 오빠가 우리들의 ‘피오닐’ 조그만 기수라 부르는 영남(永南)이가
지구에 해가 비친 하루의 모―든 시간을 담배의 독기 속에다
어린 몸을 잠그고 사온 그 거북 무늬 화로가 깨어졌어요
그리하여 지금은 화(火)젓가락만이 불쌍한 영남(永男)이하구 저하구처럼
똑 우리 사랑하는 오빠를 잃은 남매와 같이 외롭게 벽에 가 나란히 걸렸어요
오빠……
저는요 저는요 잘 알았어요
왜―그날 오빠가 우리 두 동생을 떠나 그리로 들어가신 그날 밤에
연거푸 말은 궐련[卷煙]을 세개씩이나 피우시고 계셨는지
저는요 잘 알았어요 오빠
언제나 철 없는 제가 오빠가 공장에서 돌아와서 고단한 저녁을 잡수실 때 오빠 몸에서 신문지 냄새가 난다고 하면
오빠는 파란 얼굴에 피곤한 웃음을 웃으시며
……네 몸에선 누에 똥내가 나지 않니―하시던 세상에 위대하고 용감한 우리 오빠가 왜 그날만
말 한 마디 없이 담배 연기로 방 속을 메워 버리시는 우리 우리 용감한 오빠의 마음을 저는 잘 알았어요
천정을 향하여 기어올라가던 외줄기 담배 연기 속에서―오빠의 강철 가슴 속에 박힌 위대한 결정과 성스러운 각오를 저는 분명히 보았어요
그리하여 제가 영남(永男)이의 버선 하나도 채 못 기웠을 동안에
문지방을 때리는 쇳소리 마루를 밟는 거칠은 구둣소리와 함께―가 버리지 않으셨어요
그러면서도 사랑하는 우리 위대한 오빠는 불쌍한 저의 남매의 근심을 담배 연기에 싸 두고 가지 않으셨어요
오빠―그래서 저도 영남(永男)이도
오빠와 또 가장 위대한 용감한 오빠 친구들의 이야기가 세상을 뒤집을 때
저는 제사기(製絲機)를 떠나서 백 장에 일 전짜리 봉통(封筒)에 손톱을 부러뜨리고
영남(永男)이도 담배 냄새 구렁을 내쫓겨 봉통(封筒) 꽁무니를 뭅니다
지금―만국지도 같은 누더기 밑에서 코를 고을고 있습니다
오빠―그러나 염려는 마세요
저는 용감한 이 나라 청년인 우리 오빠와 핏줄을 같이 한 계집애이고
영남(永男)이도 오빠도 늘 칭찬하던 쇠같은 거북무늬 화로를 사온 오빠의 동생이 아니예요
그리고 참 오빠 아까 그 젊은 나머지 오빠의 친구들이 왔다 갔습니다
눈물 나는 우리 오빠 동무의 소식을 전해 주고 갔어요
사랑스런 용감한 청년들이었습니다
세상에 가장 위대한 청년들이었습니다
화로는 깨어져도 화(火)젓갈은 깃대처럼 남지 않았어요
우리 오빠는 가셨어도 귀여운 ‘피오닐’ 영남(永男)이가 있고
그리고 모든 어린 ‘피오닐’의 따뜻한 누이 품 제 가슴이 아직도 더웁습니다
그리고 오빠……
저뿐이 사랑하는 오빠를 잃고 영남(永男)이뿐이 굳세인 형님을 보낸 것이겠습니까?
슬프지도 않고 외롭지도 않습니다
세상에 고마운 청년 오빠의 무수한 위대한 친구가 있고 오빠와 형님을 잃은 수없는 계집아이와 동생 저희들의 귀한 동무가 있습니다
그리하여 이 다음 일은 지금 섭섭한 분한 사건을 안고 있는 우리 동무 손에서 싸워질 것입니다
오빠 오늘 밤을 새워 이만 장을 붙이면 사흘 뒤엔 새 솜옷이 오빠의 떨리는 몸에 입혀질 것입니다
이렇게 세상의 누이동생과 아우는 건강히 오늘 날마다를 싸움에서 보냅니다
영남(永男)이는 여태 잡니다 밤이 늦었어요
​―누이동생

내용

  • 1929년 2월 『조선지광(朝鮮之光)』에 발표
 이 작품은 노동쟁의를 직접적으로 묘사하는 대신, 노동운동에 뛰어든 청년과 그 가족이 겪은 생활 현실의 단면을 어린 누이동생이라는 여성 화자가 오빠에게 말하 는 목소리를 통해 편지 형식으로 그려졌다. 두 동생을 떠나 인쇄소에서 일하던 '오빠'는 노동운동을 하다 감옥에 간 뒤, 화자와 어린 동생은 소일거리를 하며 생계를 이어간다. 누이는 오빠와 오빠 친구들이 노동운동에 참여하는 변혁적인 모습에 공감하며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존재를 확인하고, 자신 또한 사회 운동에 참여 의지를 드러낸다. 

시인

참고문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한국현대문학대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