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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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개요

창덕궁1.jpg

1592년(선조25년) 임진왜란으로 모든 궁궐이 소실되어 광해군 때에 재건된 창덕궁은 1867년 흥선대원군에 의해 경복궁이 중건[1]되기 전까지 조선의 법궁(法宮)[2] 역할을 하였다. 
이로 인해 1610년 광해군때부터 1868년 고종이 경복궁을 중건할 때가지 총 258년 동안 조선의 궁궐 중 가장 오랜 기간 동안 임금들이 거처하며 정사를 편 궁궐이다.

1405년(태종5년) 경복궁의 이궁[3]으로 동쪽에 지어진 창덕궁은 이웃한 창경궁과 서로 다른 별개의 용도로 사용되었으나 하나의 궁역[4]을 이루고 있어 조선 시대에는 이 두 궁궐을 형제궁궐이라 하여‘동궐’이라 불렀다.

임진왜란으로 모든 궁궐이 불에 타자 선조는 경복궁이 아닌 창덕궁의 복구를 1607년 (선조 40년)에 시작하였으며, 창덕궁은 1610년 (광해군 2년)에 중건이 마무리 되었다.

  • 그 후 창덕궁은 1623년 3월 인조반정[5]으로 인정전[6]을 제외하고 또다시 불에 타는 시련을 겪는다.
  • 1647년 (인조 25년)에 복구되었으나 크고 작은 화재가 이후에도 여러 차례 반복되었다.
  • 특히 1917년 대조전[7]을 중심으로 내전 일곽이 손실되는 대화재가 일어났다. 이때 창덕궁을 복구하기 위하여 경복궁 내의 교태전을 비롯한 강녕전 동·서행각 등의 건물이 해체 전용되었다.

위치 및 주소

창덕궁은 북악산 왼쪽 봉우리인 응봉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조선의 궁궐이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99

건축 시기

1405년 (태종5년) 조선왕조의 이궁으로 지어진 궁궐이다.

면적

550,916㎡

문화재 지정일

현재 남아있는 조선의 궁궐 중 그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창덕궁은 자연과의 조화로운 배치와 한국의 정서가 담겨있다는 점에서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었다.

  • 지정번호: 816

평가

경복궁의 주요 건물들이 좌우대칭의 일직선상으로 왕의 권위를 상징한다면 창덕궁은 응봉자락의 지형에 따라 건물을 배치하여 한국 궁궐건축의 비정형적 조형미를 대표하고 있다. 더불어 비원으로 잘 알려진 후원은 각 권역마다 정자, 연못, 괴석이 어우러진 왕실의 후원이다.

북한산의 매봉 기슭에 세운 창덕궁은 다른 궁궐과는 달리 나무가 유난히 많다. 자연의 산세를 갈려 건축했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궁궐이다. 경복궁의 주요건물이 좌우대칭의 일직선상에 놓여 있다면 창덕궁은 산자락을 따라 건물들을 골짜기에 안기도록 배치하였다.

조선시대의 뛰어난 조경을 보여주는 창덕궁의 후원을 통해 궁궐의 조경양식을 알 수 있다. 후원에는 160여 종의 나무들이 있으며, 그 중에는 300년이 넘는 나무도 있어 원형이 비교적 충실히 보존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창덕궁은 조선시대의 조경이 훼손되지 않고 지금까지 잘 보존되어 있는 귀중한 장소이다.

역사

연도 사건
1405년(태종 5) 조선의 이궁으로 건설
1406년(태종 6) 후원 조성
1411년(태종 11) 금천교 건립
1412년(태종 12) 돈화문 건립
1456년(세조 2) 사육신 사건
1461년(세조 7) 각 전당들에 이름을 지어 붙임
1462년(세조 8) 민가 73가구를 철거하여 후원 확장
1468년(예종 즉위) 창덕궁 수강궁 중문에서 즉위
1494년(연산군 즉위) 창덕궁 인정문에서 즉위, 후원을 꾸밈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으로 창덕궁에서 피난길을 떠나 의주로 파천,

경복궁과 창덕궁 등 모든 궁궐이 소실됨

1610년(광해군 2) 창덕궁 중건을 완료하여 법궁으로 삼음
1623년(광해군 15) 인조반정으로 창덕궁의 대부분 궁궐전각들이 소실됨
1636년(인조 14) 옥류천 주변에 소요정, 청의정, 태극정 건설
1647년(인조 25) 인조반정으로 소실된 건물 중건

(선정전, 대조전, 희정당, 징광루 등)

1649년(효종 즉위) 창덕궁 인정문에서 즉위
1659년(현종 즉위) 창덕궁 인정문에서 즉위
1674년(숙종 즉위) 창덕궁 인정문에서 즉위
1704년(숙종 30) 후원에 대보단 건설
1724년(영조 즉위) 창덕궁 인정문에서 즉위
1749년(영조 25) 대보단 중수
1776년(정조 즉위) 2층 누각을 세움

위층에는 주합루, 아래층에는 규장각이라 함

1800년(순조 즉위) 창덕궁 인정문에서 즉위
1803년(순조 3) 인정전 소실, 1804년에 재건
1833년(순조 33) 대조전, 희정당 등 소실, 1834년 재건
1849년(철종 즉위) 창덕궁 인정문에서 즉위
1863년(고종 즉위) 창덕궁 인정문에서 즉위
1882년(고종20) 창덕궁에서 임오군란이 일어남
1884년(고종22) 창덕궁 관물헌에서 갑신정변이 일어남
1910년 경술국치
1917년(순종11) 대 화재로 침전 건물 소실
1920년(순종14) 경복궁 일부건물을 옮겨 창덕궁 건물 재건
1926년(순종20) 마지막 황제 순종 창덕궁 대조전에서 승하
1990년~1999년 대규모 복원 사업

(돈화문 월대, 낙선재 일대, 진선문, 숙장문 등)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

링크

동궐도

동궐도.gif

설명

창덕궁과 창경궁을 조감도 형식으로 그린 조선후기의 대표적인 궁궐 건축 그림이다.

제작 연대

비단 바탕에 채색한 가로 576cm 세로 273cm 이며 순조 30년에 불타버린 환경전과 순조 34년에 중건된 통명전 경복전 건물은 없고 터만 그려져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제작 연대는 1826년 ~ 1828년 경으로 추정된다.

평가

열여섯 폭의 비단에 먹과 채색 물감으로 당시 궁 안에 실재했던 누정, 다리, 담장은 물론 연못, 괴석 등의 조경과 궁궐외곽의 경관까지 세밀하게 그렸다는 점에서 당시 화원들의 뛰어난 화공기법과 정밀성을 엿볼 수 있다. 이에 동궐도는 예술적 가치와 더불어 궁궐 연구와 복원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출처

  • 국가문화유산포털 창덕궁
  •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창덕궁 관리소
  • 보수하거나 고쳐 짓는 것
  • 시대마다 여러 궁궐 가운데 으뜸이 되는 궁궐이 있기 마련인데, 이를 법궁(法宮)이라 한다. 이곳에는 왕실 생활공간뿐 아니라, 백관의 조회(朝會)를 받거나 외국 사신을 맞는 등 공식적인 활동 공간이 고루 잘 갖추어져 있다.
  • 궁궐에 화재가 나거나 뜻하지 않은 변고가 생겼을 때, 혹은 왕의 판단에 따라 궁궐을 옮겨야 할 때 상당한 기간 머물며 활동할 수 있는 또 다른 궁궐을 이궁이라 한다.
  • 궁전의 구역
  • 1623년(광해군 15년) 이귀 등 서인 일파가 광해군 및 집권당인 이이첨 등의 대북파를 몰아내고, 인조를 왕으로 옹립한 정변이다.
  • 창덕궁의 정전으로 왕이 외국의 사신을 접견하고 신하들로부터 조하를 받는 등, 공식적인 국가행사를 치르던 곳이다. 임진왜란후 경복궁 근정전 대신 정전으로 사용되었다 창경궁의 명정전과 이궁역할, 동궁으로 사용되었다.
  • 창덕궁 내전 중 가장 으뜸가는 건물이다. 이곳에서 조선의 마지막 회의가 열렸다. 이 건물은 창덕궁 창건 때인 태종 5년에 함께 지어졌는지는 확실하지 않고, 다만 연산군 2년에 중수하였다는 기록이 있어 그 이전에 지어졌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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