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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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1924년 동아일보에 출간된 단편소설

줄거리

'나'는 늙고 병든 어머니와 병석에 누워있는 처, 3살배기 어린 딸 몽주를 먹여살려야 하는 고충으로 힘들어한다.‘나’는 아내의 병을 고치기 위해 의원을 불러 진찰받고, 백원을 주면 아내의 병을 고쳐주겠다는 의원에 말에 그러겠다고 승낙한다. 의원의 처방을 받고 약국에 간 ‘나’는 돈을 주지 않으면 약을 줄 수 없다는 말을 듣고 집으로 돌아온다. 집에 돌아온 ‘나’는 밖이 소란스러워 나가보았고 누군가의 등에 업혀 온 어머니를 발견한다. 뒤에서 보를 들고 쫓아온 김은 수남촌에 갔다가 어머니가 개에게 물리면서도 보자기에 싼 것을 꼭 안고 있었다고 말했고, 보자기에서는 이삼 승의 좁쌀이 나온다. 고달픈 현실에 괴로워하던 ‘나’는 가슴을 치며 피를 토한다.

작품 특징

토혈은 기아와 살육으로 개작되었는데 인물 및 배경설정, 주인공의 가난과 반항, 환상적 장면의 등장과 복선, 문제해결 방식을 볼 때 최서해 소설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 전문

[토혈(吐血)]


이월의 북국에는 아직 봄빛이 오지 않았다. 오늘도 눈이 오려는지 회색 구름은 온 하늘에 그득하였다. 워질령을 스쳐오는 바람은 몹시 차다.

벌써 날이 기울었다. 나는 가까스로 가지고 온 나뭇짐을 진 채로 마루 앞에 펄썩 주저앉았다. 뼈가 저리도록 찬 일기건마는 이마에서 구슬땀이 흐르고 전신은 후끈후끈하다. 이제는 집에 다 왔거니 한즉 나뭇짐 벗을 용기도 나지 않는다.

나는 여태까지 곱게 먹고 곱게 자랐다. 정신상으로는 다소의 고통을 받았다 하더라도 육체의 괴로운 동작은 못 하였다. 그런데 나는 형제도 없고 자매도 없다. 아버지는 내가 아직 강보에 있을 때에 멀리 해외로 가신 것이 우금(于今) 소식이 없다.

그러니 나는 이때까지 어머니 덕으로 길리었다. 어머니는 내가 외아들이라 하여 쥐면 꺼질까 불면 날을까 하여 금지옥엽같이 귀여워하셨다. 또 어머니는 여장부라 할 만치 수완이 민활하여 그리 큰 돈은 못 모았어도 생활은 그리 군졸(窘拙)치 않았다. 그래 한닙 두닙 모아서 맛있는 것과 고운 것으로 나를 입히고 먹였다. 나는 이렇게 평안하게 부자유가 없이 자라났다. 이렇게 나뭇짐 지는 것도 시방 처음이다. 지금 입은 이 남루한 옷은 이전에는 보기만 하였어도 나는 소스라쳤을 것이다.

지금 우리 집 운명은 나에게 달렸다. 여러 식구가 굶고 먹기는 나의 활동에 있다. 어머니는 늙었다. 백발이 성성하시다. 민활하던 그 수완도 따라서 쇠미(衰微)하였다. 나는 처도 있다. 금년에 세 살 되는 어린 몽주(夢周)도 있다. 그런데 나의 처는 병석에서 신음한 지가 벌써 한 달이 넘었다.

그러나 나는 이때까지 직업을 얻지 못하였다. 생소한 이곳에서 도와주는 이조차 없다. 내 생활은 곤궁하다. 나를 사랑하여 별별 고생을 다 하시고 길러 주신 어머니를 내가 벌게 된 오늘날에 이르러 차디찬 그 조밥이나마 배부르도록 대접지 못한다. 더욱 병석에서 신음하는 나의 처, 냉돌(冷突)에 홀이불 덮고 누워 있는 그에게 약 한첩 따뜻이 못 먹였다.

소위 우리 집의 가장이라는 나는⎯아무 수입 없는 나는⎯헐벗고 못먹고 신음하는 어머니와 처자를 볼 때나 생각할 때마다 부끄럽고 쓰려서 차마 머리를 들지 못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네들은 조금도 불편한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내가 마루 앞에 나뭇짐 놓는 소리를 듣고 몽주가 뚫어진 문구멍으로 내다보더니

“아빠”

하고 부른다. 그리고 반가운 듯이 문을 탁탁 친다. 머루알같이 까만 눈 ⎯그 귀여운 웃음을 띤 어글어글한 눈이 창구멍으로 보인다. 그 모양을 보는 나는 잠깐 온갖 괴롬과 설움을 다 잊었다. 알지 못할 아름다운 사랑을 느꼈다. 이때에 어머니가 부엌문을 열고 내다 보신다. 흐르는 광음을 설명하는 늙은 낯에는 모든 괴롬과 근심의 암운(暗雲)이 돌았다. 그것을 보는 내 마음은 칼로 쪽쪽 찢는 듯하다.

“인제야 오니……. 배고프겠구나.”

어머니는 괴로운 웃음을 지으면서 말씀하신다.

“괜찮아요. 아침을 많이 먹었더니…….”

나는 가장 쾌활스럽게 괴롭지 않은 듯이 대답하였다. 그러나 실상인즉 배가 고팠다. 나는 나뭇짐을 벗었다. 땀이 배인 의복에서는 몸을 움직일 때마다 시틋한 땀냄새가 코를 찌른다.

나는 꽁무니에 질렀던 낫을 뽑으면서 부엌에 들어섰다.

양기(陽氣)가 잘 들지 않는 방이요. 바깥 날이 흐렸고 벽이며 창이 연기에 그을러서 어둑하고 유울(幽鬱)한 실내의 공기는 십분 불쾌하였다. 나는 서양 소설에서 읽은 비밀 지하실을 상상하였다.

몽주는 방긋방긋 웃으면서 바지를 잡아 끈다. 똥똥하던 낯이 가죽만 남아 파랗게 된 처는 부뚜막에 고요히 누웠다가 쌍거풀진 눈을 힘없이 떠서 나를 보더니 다시 스르르 감는다. 미미한 호흡은 괴로운 듯이 급하다. 나는 창 곁에 몽주를 안고 앉았다. 어머니는 병처(病妻)의 곁에 앉았다. 몽주는 나의 조끼 단추도 만져 보고 호주머니에서 종이 조각을 끄집어내었다가는 끄집어내이면서 나를 보고 방긋 웃는다. 죄 없는 그는 늘 웃으나 나는 가슴이 뿌듯하였다. 치마 하나도 없어서 차디찬 냉방에서 온 겨울 아랫도리를 벗고 지낸 어린 몽주를 볼 때마다 나는 눈물이 솟았다. 아아 과연 내가 남의 아비 노릇할 자격을 가졌는가? 나는 가슴이 답답하였다. 목구멍에서 연기가 핑핑 돈다. 소리를 크게 쳐서 통곡을 하고 싶다. 나는 그만 몽주를 어머니에게 보내고 목침을 베고 누웠다. 눈을 꼭 감았다. 배가 아프다. 나는 수년 되는 복통이 지우금(至于今) 낫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아픈 모양을 보이지 않았다. 악독한 마귀가 염염(焰焰)한 화염을 우리 집으로 향하여 뽑는다. 집은 탄다. 잘 탄다. 우리 식구도 그 속에서 타 죽는다. 나는 몸살을 치며 눈을 번쩍 떴다. 그것은 한 환상이었다.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다. 머리맡에 있는 오랜 신문을 집어들고 읽어 보았다. 그러나 그것도 의식 없이 읽었다. 온갖 생각이 뒤숭숭한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그 신문으로 낯을 가리우고 눈을 감았다. 처의 신음소리가 점점 높아진다. 모두 죽었으면 시원하겠다고 나는 생각하여 보았다. 어머니도 죽고, 처도 죽고, 몽주도 죽고……. 만일 그렇다 하면 그 모든 시체를 땅에 넣고 돌아서는 나는 어찌 될까? 모든 짐을 벗었으니 자유롭게 행동할까? 아! 아니다, 아니다.

그네들도 사람이다. 생을 아끼는 인간이다. 그네의 생명도 우주에 관련된 생명이다. 내가 내 생을 위한다 하면 그네들도 나와 같이 생을 석(惜)할 것이다. 그네들도 인류로서의 권리가 있다. 왜 죽어? 왜? 죽으라 해? 나는 부지불식간에 주먹을 부르쥐었다.

“여보!”

새어 내리는 소리로 처가 부른다.

“왜 그러우…….”

나는 벌떡 일어나면서 낯을 찌푸리고 귀찮은 듯이 대답하였다. 그러나 나는 처가 미워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내 짜증에 그런 것이다.

처는 나의 거친 대답을 듣고 나의 불평스러운 낯을 물끄러미 보더니 그만 눈을 감는다. 감은 그 눈에서는 소리 없는 눈물이 흐른다. 내 간장은 천 갈피 만 갈래로 찢어지었다. 내가 왜 짜증을 내었나? 병 구완도 바로 못 하는 그를 내가 왜 마음이나 편하게 못 해 주나! 나는 후회와 측은한 감정이 가슴에 넘치었다.

나는 처의 곁으로 가서 그의 팔을 주물렀다. 그의 사지는 온통 뒤틀리고 줄어 붙는다. 또 풍증이 이는 것이다. 그는 퍽 괴로운 모양이다. 그 이마에서는 진땀이 빠직빠직 돋는다. 호흡은 급하였다. ‘이제는 죽는구나’ 하고 나는 속으로 말하였다. 나는 “여보’ 하고 불렀다. 그는 혀가 굳어서 대답은 못 하고 눈을 번쩍 떴다가 다시 감는다. 그 두 눈에는 혈조(血潮)가 빨갛게 올랐다. 처의 다리를 주무르던 어머니는 흑흑 느껴 우신다.

“너를 죽이는고나! 너를……. 약 한첩 바로 못 쓰고 너를 죽이는고나…….”

어머니는 한탄하신다. 철없는 몽주는,

“엄마, 엄마.”

하면서 젖[乳] 먹으려고 인사불성의 어미 가슴에 기어오른다. 나도 그만 눈물이 쏟아졌다. 어쩌면 좋을까?

“얘 의원을 보이고 약이나 좀 써 보았으면 원이나 없겠구나! 어디 좀 가서 사정이나 하여 보아라.”

어머니는 울음 절반으로 말씀하신다. 나는 아무말도 없이 일어섰다.

날은 벌써 저물었다. 이집 저집에서 나는 석연(夕煙)이 솟는다. 바람은 점점 차진다.

나는 의원을 불러 왔다. 뱃심 좋은 의원을 제발 사정하여 불러 왔다. 의원은 처의 맥을 보더니,

“병은 대단히 위중한걸요. 그러나 고치지요.”

한다. 나는 마음이 좀 느긋하였다. 어머니도 반가운 듯이,

“그러면 어서 고쳐 주시오. 죽지나 않겠소?”

하신다.

“네…… 죽기야 하겠소마는…….”

하면서 의원은 주저한다. 그의 안색은 이상하게 빛났다. 나는 또 무슨 일이 있는가 하여,

“그런데 어찌 어려운 일이 있읍니까?”

하고 물었다.

“아니 별 어려운 일이 아니라 시방 양반들은 병이 나으면 자기 덕이라는걸…….”

하면서 쓱 돌아앉아 배를 퉁긴다. 어머니는 어느 결에 준비한 것인지 그의 앞에 술상을 갖다 놓았다. 벌써 의원의 눈치를 채인 나는 술을 잔에 부어 의원에게 권하면서

“허허 그럴 리야 있겠읍니까?”

하였다. 의원은 술을 마시고 수염을 씻으면서,

“그러면 우리 계약합시다.”

한다. 나는 공연히 가슴이 울렁울렁하였다.

“계약은 어떻게?”

나는 물었다.

“저 병을 지금 당장에 고칠게 백 원을 주겠소?”

그 소리는 의기양양하게 명령적이었다.

나는 그 말 대답하기에 주저하였다. 과연 내가 백 원을 낼 힘이 있는가 의심하였다. 백 원을 못 낸다 하면 처는⎯나의 사랑하는 처는⎯나를 위하여 온갖 풍상을 다 겪은 처는 죽는다. 세상이 이리도 야속하냐고 나는 생각하였다. 이때에 어머니는,

“백 원……. 드리지요. 사람만 살려 주시오.”

하신다.

“정말?”

하고 의원은 다진다.

“참말이지요?

어머니는 대답하였다.

“자⎯ 우리 그러면 계약서를 씁시다.”

“허허 말하면 그만이지요. 계약서 없다고 변하겠읍니까? 살려만 주시면 그 은혜는 정말…….”

하고 피상적 대답을 하는 나는 도리어 그를 반항하려는 악감이 일어났다. 망할 자식 내 처 병만 고쳐 놓으면 백 원은 고사하고 백 리도 못 먹으리라 하는 감정이 나의 눈을 붉혔다. 의원은 동침(銅鍼)으로 병자의 사지를 놓는다. 나는 처의 손을 꼭 잡았다. 침을 다 놓은 의원은 ‘가미서경탕(加味敍經湯)’이라는 처방을 써 준다. 과연 그 의원의 묘술은 놀랄 만하다. 처의 병은 좀 돌렸다. 사지가 노곤하여졌다. 호흡도 안정하였다. 의원은 가장 큰 승리나 얻은 듯이 만족한 웃음을 지으면서,

“그러면 그렇지……. 아니 나을 리야 있겠소. 그런데 약속이나 잊지 말으시오. 나는 가오.”

하면서 일어섰다.

의원이 간 뒤에 나는 약국으로 갔다. 나는 약국 문앞에서 여러 번 주저거리다가 그만 결심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약향(藥香)이 코를 찌른다.

나는 처방을 내어 놓았다. 거만스럽게 앉은 약국 주인은 처방을 보더니,

“돈 가지고 왔오.”

하고 산판(算板)을 집어 약가(藥價)를 놓는다. 나는 그 약국 주인이 하느님같이 높이 보였다. 그러나 아니꼬운 감정도 솟았다.

“돈을 못 가지고 왔읍니다. 내일 드리지요.”

하고 나는 공손히 대답하였다.

“그러면 못 짓겠소.”

하고 처방을 도로 준다.

“병이 급하니 좀 지어 주시오.”

나는 애원하였다.

“흥 그런 잔소리 쓸데 있오? 돈만 가지고 오오.”

하고 그는 일어나 뒤 울안으로 나갔다. 나는 눈물이 앞을 가리우고 맥이 풀려서 어쩔 줄을 몰랐다. 분하기도 하였다.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날은 이미 황혼이 되었다. 어둑한 방안 공기는 쓸쓸하다. 처는 그저 부뚜막에 누웠다.

“어디 갔다 오시우?”

처는 묻는다. 나는 그저,

“응?”

하였다. 그러나 나는 무슨 의미로 ‘응’ 하였는지 모르겠다. 다만 그 ‘응’ 소리는 비분과 원한의 응결된 소리였다. 나는 그밖에는 무엇이라고 대답할 수가 없었다. 차마 약 지으러 갔다가 빈손으로 돌아왔다고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좀 어떠오.”

나는 힘없이 물었다.

“좀 관계치 않소.”

하면서 그는 몸을 강잉하여 일어앉았다. 나는 밖에 달아 놓은 어유등(魚油燈)에 불을 켰다.

빤한 불빛은 방안을 비취었다. 그런데 어머니는 어디로 나가셨는지 아니 계시다. 처더러 물으니,

“글쎄 아까 당신이 가신 후에 곧 나가셨는데 지금까지 들어오시지 않었소.”

하고 불안한 듯이 대답한다. 나는 어머니 오시지 않는 것이 공연히 마음에 켕겼다.

뚫어진 창구멍으로 유입하는 야기(夜氣)는 몹시 차다.

몽주는 어미 곁에서 삭삭 자고 있다. 네 팔자도 기박하지 왜 내게 태어나서 배를 곯느냐 하고 나는 몽주를 보면서 생각하였다. 참 가슴이 쓰리다. 나는 몽주의 연한 뺨을 만져 보았다.

“그 손가락은 왜 동였소?”

처는 나의 왼손 둘째손가락 동인 것을 보고 의심스러운 눈으로 묻는다. 나는 천연스럽게,

“낫〔鎌〕에 다쳤어.”

말하였다.

그는,

“낫에?”

하고 아무말도 없다.

나는 ‘응’ 하면서 내 손을 보았다. 내 손일까망정 나는 새삼스럽게 놀랐다. 분길 같은 이 손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었다.

이때에 밖에서 나를 찾는 사람이 있다. 따라서 여러 사람의 떠드는 소리가 들린다.

“아 저 저런 끔찍한 일…….”

하는 여자의 음성도 들렸다. 나는 눈이 둥글하였다. 웬일인지 가슴이 덜컥 내려 앉으면서 어머니 생각부터 난다. 나는 밖으로 뛰어나갔다. 나를 찾던 자는 이웃에 있는 이(李)였다. 그는 나를 보더니,

“저리 나가 보오.”

침착스럽게 말한다. 누구인지 희미한 야암중(夜闇中)으로 무엇을 등에 업고 온다. 나는 그리로 뛰어갔다.

아! 이것이 웬일이냐? 등에 업힌 것은 우리 어머니였다. 나는 어머니의 차디찬 손을 잡고,

“어머니!”

소리를 질렀다. 벌써 정신 잃은 어머니는 아무 소리도 없다. 나는 오장이 짜깃짜깃 무너지는 듯이 바짝바짝 조였다.

“어머니!”

나는 또 불렀다. 그러나 어머니는 여전히 말씀이 없다. 조그마한 보에 무얼 싼 것을 들고 쫓아오던 김은,

“여보, 어서 방에 들여다 누입시다.”

말한다.

어머니를 방에다 뉘었다. 작년 가을에 입은⎯뗏물이 까만⎯그 옷은 검붉은 피에 적시어지었다. 낯이며 다리에서는 피가 흐른다. 나는 어머니의 시린 손을 붙잡고 안았다. 어머니는 그저 정신을 차리지 못하시었다. 호흡은 미미한 대로 좀 있다.

앉기도 하고 서기도 한 여러 사람은 분분히 떠든다.

“대관절 어찐 일이오.”

하고 나는 물었다. 김의 대답은 이러하였다.

김이 금석(今夕)에 수남촌(水南村)에 갔다가 돌아오는데 큰물 다리 모퉁이 중국집 근처에 이르니 중국 사람의 개가 몹시 짖었다. 그런데 누가

“사람 살려 주오!”

외치는 소리가 요란히 짖는 개 소리에 섞여서 들렸다. 김은 뛰어가 본즉 그것은 우리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개에게 물리면서도 무엇인지 보에 싼 것을 꼭 안았다. 그래 그 개를 쫓고 김과 함께 오던 이가 어머니를 업고 김은 그 보에 싼 것을 들고 왔다.

“그 보에 싼 것이 무엇인가?”

이가 묻는다. 김은 보를 풀었다. 불과 이삼 승(升)의 좁쌀이었다. 어머니는 쌀 얻으러 수남에 간 것이었구나. 저녁 먹을 쌀 얻으러 자기 머리의 월자(月子)를 풀어 가지고 갔었구나. 처는 운다. 앓던 그는 소리쳐 운다. 떠드는 바람에 자던 몽주도 깨었다. 몽주는 어머니를 와 보더니 두 손으로 어머니의 머리를 들면서,

“이⎯차 이⎯차.”

일어나라는 뜻을 말한다. 그러나 어머니는 잠잠하시다. 몽주는 운다. 누가 어머니를 위하여 물 한술 끓여 주는 이가 없다.

나는 눈물도 흐르지 않았다. 울음도 나오지 않았다. 가슴이 답답하고 울화가 일어났다. 닥치는 대로 쳐부수고 막 미쳐 뛰고 싶다. 나는 정신이 갑자기 어찔하면서 숨이 꽉 막힌다. 목구멍으로 나오는 비린 냄새가 코를 찌른다. 호흡이 가쁘다.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다. 나는 윽윽 하면서 가슴을 주먹으로 두드렸다. 누구인지 등을 쳐 준다. 나는 욱 하고 토하였다. 그것은 한덩이 붉은 피였다. 아, 괴로워…… 처의 울음 소리, 몽주의 울음 소리…… 귓전에 어렴풋이…….

RDF

항목 A 항목 B 관계 P
토혈 최서해 A은 B에 의해 집필되었다.
토혈 동아일보 A은 B에 의해 출간되었다..
토혈 1924년 A은 B에 출간되었다.
토혈 단편소설 A은 B로 분류된다.
토혈 기아와 살육 A은 B으로 개작되었다.
토혈 근대 B는 A의 배경이다.
토혈 신경향파 A은 B의 성격을 가진다.
토혈 빈곤 B은 A의 소재이다.

네트워크 그래프

작성자 및 기여자

우신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