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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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이상이 20세 때 쓴 데뷔작으로, 1930년 2월부터 12월까지 『조선』에 실렸다. 어떤 상황에서도 공포와 불안의 영원한 도주를 멈출 수 없는 추방된 자의 불행한 운명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중편소설이다.

전문

12월 12일(十二月 十二日)


이때나 저때나 박행(薄幸)에 우는 내가 십유여 년 전 그 해도 저무려는 어느 날 지향도 없이 고향을 등지고 떠나가려 할 때에 과거의 나의 파란 많은 생활에도 적지않은 인연을 가지고 있는 죽마의 구우 M군이 나를 보내려 먼 곳까지 쫓아나와 갈림을 아끼는 정으로 나의 손을 붙들고

「세상이라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같은 것은 아니라네」

하며 처창한 낯빛으로 나에게 말하던 그때의 그 말을 나는 오늘까지도 기억하여 새롭거니와 과연 그 후의 나는 M군의 그 말과 같이 내가 생각던 바 그러한 것과 같은 세상은 어느 한 모도 찾아내일 수는 없이 모두가 돌연적이었고 모두가 우연적이었고 모두가 숙명적일 뿐이었었다.

「저들은 어찌하여 나의 생각하는 바를 이해하여 주지 아니할까 나는 이렇게 생각해야 옳다하는 것인데 어찌하여 저들은 저렇게 생각하여 옳다하는 것일까」

이러한 어리석은 생각은 하여 볼 겨를도 없이

「세상이란 그런 것이야. 네가 생각하는 바와 다른 것, 때로는 정반대되는 것, 그것이 세상이라는 것이야!」

이러한 결정적 해답이 오직 질풍신뢰 적으로 나의 아무 청산도 주관도 없는 사랑을 일약 점령하여 버리고 말았다. 그 후에 나는 네가 세상에 그 어떠한 것을 알고자 할 때에는 우선 네가 먼저 「그것에 대하여 생각하여 보아라. 그런 다음에 너는 그 첫번 해답의 대칭점을 구한다면 그것은 최후의 그것의 정확한 해답일 것이니」

하는 이러한 참혹한 비결까지 얻어 놓았었다. 예상 못한 세상에서 부질없이 살아가는 동안에 어느덧 나라는 사람은 구태여 이 대칭점을 구하지 아니하고도 세상일을 대할 수 있는 가련한 「비틀어진」 인간성의 사람이 되고 말았다. 그리하여 인간을 바라볼 때에 일상에 그 이면(裏面)을 보고 그러므로 말미암아 「기쁨」도 「슬픔」도 「웃음」도 「광명」도 이러한 모든 인간으로서의 당연히 가져야 할 감정의 권위를 초월한 그야말로 아무 자극도 감격도 없는 영점(零點)에 가까운 인간으로 화하고 말았다. 오직 내가 나의 고향을 떠난 뒤 오늘날까지 십유여 년 간의 방랑생활에서 얻은 바 그 무엇이 있다 하면

「불행한 운명 가운데서 난 사람은 끝끝내 불행한 운명 가운데서 울어야만 한다. 그 가운데에 약간의 변화 쯤 있다 하더라도 속지 말라. 그것은 다만 그 「불행한 운명」의 굴곡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어그러진 결론 하나가 있을 따름이겠다. 이것은 지나간 나의 반생의 전부(全部)요 총결산이다. 이 하잘것 없는 짧은 한 편은 이 어그러진 인간법칙을 「그」라는 인격에 붙이여서 재차의 방랑 생활에 흐르려는 나의 참담을 극한 과거의 공개장으로 하려는 것이다.


1

통절한 자극 심각한 인상 그것은 사람의 성격까지도 변화시킨다. 평범한 환경 단조한 생활 긴장 없는 전개 가운데에 살아가는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그의 성격까지의 변경을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어느 때 무슨 종류의 일이고 참으로 아픈 자극과 참으로 깊은 인상을 거쳐서야 비로소 그 사람의 성격 위에까지의 결정적 변화를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지금으로부터 지나간 이삼년 동안에 그를 만나 보지 못한 사람은 누구나 다 「그」의 성격의 어느 곳인지 집어내이지 못할 변화를 인식할 것이다. 이러한 변화에 따라 그의 용모와 표정 어조까지의 차라리 슬퍼할 만한 변화를 또한 누구나 다―놀래임과 의아(疑呀)를 가지고 대하지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저 사람 저 사람의 그동안 생활에 저 사람의 성격을 저만치 변화시킬 만한 무슨 큰 자극과 깊은 인상이 있었던 것이겠지 무엇일까」

그러나 이와 같은 의아는 도리어 그의 그 동안의 생활에도 그의 성격을 오늘의 그것으로 변화시키게까지 한 그러한 아픈 자극과 깊은 인상이 있었다는 것을 더 잘 이야기하는 외에 아무것도 아닌 것이겠다.

2

세대와 풍정은 나날이 변한다. 그러나 그 변화는 그들을 점점 더 살 수 없는 가운데서 그들의 존재를 발견할 수밖에 없도록 하는 변화에 지나지 아니하였다. 이 첫번 희생으로는 그의 아내가 산후(産後)의 발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은 것이었다. 나많은(많다 하여도 사십이 좀 지난) 어머니를 우으로 모시고 어미 잃은 젖먹이를 품안에 끼고 그날 그날의 밥을 구하여 어두운 거리를 헤매이는 그의 인간고야말로 참담 그것이었다.

「죽어라 죽어 차라리 죽어라. 나의 이 힘없는 발길에 걸치적대이지를 말아라. 피곤한 이 다리를 위하여 평탄한 길을 내여다오.」

그의 푸른 입술이 떨리는 이러한 무서운 부르짖음이 채―그의 입술을 떨어지기도 전에 안타까운 몇 날의 호흡을 계속하여 오던 그 젖먹이마저 놓였던 자리도 없이 죽은 어미의 뒤를 따라갔다. M군과 그 그리고 애총 메이는 사람 이 세 사람이 돌림돌림 얼어붙은 땅을 땀을 흘리어가며 파서 그 조고마한 시체를 묻어 준 다음에 M군과 그는 저문 서울의 거리를 걷는 두 사람이 되었다.

「M군 나는 이제 나의 지게의 한편짝 짐을 내려 놓았어. 나는 아무래도 여기서 이대로는 살아갈 수 없으니 죽으나 사나 고향을 한 번 뛰어나가 볼 테야.」

「그야…… 그러나 늙으신 자네의 어머니를 남의 땅에서 고생시킨다면 차라리 더 아픈 일이 아니겠나.」

「그러나 나는 불효한 자식이라는 것을 면치 못한 지 벌써 오래니깐」

드물게 볼 만치 그의 눈이 깊숙이 숨벅이고 축축히 번쩍이는 것이 그의 굳은 결심의 빛을 여지없이 말하고 있는 것도 같았다.

T씨(T씨는 그와의 의(義)는 좋지 못하다 할망정 그래도 그에게는 단 하나밖에 없는 친아우였다) 어렵기 짝이 없는 그들의 살림이면서도 이 단둘밖에 없는 형제가 딴집 살림을 하고 있는 것도 그들의 의가 좋지 못한 까닭이었었으나 그러나 그가 이 크낙한 결심을 의논하려 함에는 그는 그 T씨의 집으로 달려가지 아니하면 아니되었다.

「네나 내나 여기서는 살 수 없으니 우리 죽을셈치고 한 번 뛰어나가 벌어 보자.」

「형님은 처자도 없고 한몸이니깐 그렇게 고향을 뛰어나가시기가 어렵지 않으시리다만 나만 해도 철없는 처가 있고 코 흘리는 저 업(T씨의 아들)이 있지 않소. 자 저것들을 데리고 여기서 살재도 고생이 자심한데 낯설은 남의 땅에 가서 그 남 못한 고생을 어떻게 하며 저것들은 다 무슨 죄란 말이요 갈려거든 형님 혼자나 가시오 나는 갈 수 없으니」

일상에 어머니를 모신 형 그가 가까이 있어서 가뜩이나 살기 어려운데 가끔 어머니를 구실(口實)로 그에게 뜯기워 가며 사는 것을 몹시도 괴로이 여기던 T씨는 내심으로 그가 어서 어머니를 모시고 어디로든지 멀리 보이지 않는 곳으로 가기를 바라고 기다렸던 것이다. 그가 홧김에

「어머니 큰 아들 밥만 밥입니까. 작은 아들 밥도 밥이지요. 큰 아들만 그렇게 바라지 마시고 작은 아들네 밥도 가끔 가서 열흘이고 보름이고 좀 얻어 잡숫다 오시구려.」

이러한 그의 말이 비록 그의 홧김이나 술김의 말이라고는 하나 그러나 일상에 가난에 허덕지는 자식들을 바라볼 때에 불안스럽고 면구스러운 마음을 이기지 못하는 늙은 그들의 어머니는 작은 아들 T씨가 싫어할 줄을 번연히 알면서도 또 작은 아들 역시 큰 아들보다 조곰도 나을 것이 없이 가난한 줄까지 번연히 모르는 것도 아니었으나 그래도 큰 아들 가엾은 생각에 하루이고 이틀이고 T씨의 집으로 얻어먹으러 터덜거리고 갔었다. 또 그외에도 즉 어머니 생일날 같은 때

「너도 어머니의 자식 나도 어머니의 자식 네나 내나 어머니의 자식되기는 일반인데 내가 큰 아들이래서 내 혼자서만 물라는 법이 있니 그러니 너도 반만 물 생각해라.」

그럴 때마다 반이고 삼분의 일이고 T씨는 할 수 없거나 있거나 싫은 것을 억지로 부담하여 왔었다. 이와같은 것들이 다―T씨가 그의 가까이 있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아니하는 까닭이었다.

「그럼 T야 너 어머니를 맡아라. 나는 일년이고 이태이고 돈을 벌어 가지고 돌아올 터이니 그러면 그때에는……」

「에―다 싫소. 돈 벌어 가지고 오는 것도 아무 것도 다 싫소 내가 어머니가 당했소 그런 어수룩한 소리 하지도 마시오 더군다나 생각해 보시오. 형님은 지금 처자도 다 없는 단 한몸에 늙으신 어머님 한 분을 무엇을 그러신단 말이오 나는 처자들이 우물우물하는데 게다가 또 어머니까지 어떻게 맡는단 말이오 형님이 어머니를 모시고 다니시면서 고생을 시키든지 낙을 뵈우든지 그건 다 내가 알 배 아니니깐 어머니를 나한테 떠맡기고 갈 생각은 꿈에도 마시오.」

이렇게 T는 그의 면전에서 한 번에 획―뱉아 버리고 말았다.

어머니를 그 자식들이 서로 떠미는 이 불효 어머니 모시기를 싫어하는 이 불효 이것도 오직 그들을 어찌할 수도 없이 비끌어매이고 있는 적빈(赤貧) 그것이 그들로 하여금 차마 저지르게 한 조고마한 죄악일 것이다.

그후 며칠 동안 그는 그의 길들였던 세대도구(世帶道具)를 다 팔아 가지고 몇 푼의 노비를 만들어서 정든 고향을 길이 등지려는 가련한 몸이 되었다. 비록 그다지 의는 좋지 못하였다고는 하나 그러나 그러한 형 그와의 불의도 다―적빈 그것 때문이었던 그의 아우 T는 생사(生死)를 가운데 놓은 마지막 이별을 맡기며 눈물 흘려 설어하는 사람도 오직 이 T 하나가 있을 따름이었다.

「어머니 형님 언제나 또 뵈오리이까.」

「잘 있거라 잘 있거라.」

목메인 그들의 차마 보지 못할 비극 기차는 가고 T씨는 돌아오고 한밤중 경성 역두에는 이러한 눈물의 이별극이 자국도 없이 있었다.

죽마의 친구 M군이 학창의 여가를 타서 부산부두까지 따라와서 마음으로의 섭섭함으로써 그들 모자를 보내어 주었다. 새벽바람 찬 부두에서 갈림을 아끼는 친구와 친구는 손을 마주 잡고

「언제나 또 만날까 또 만날 수 있을까 세상이라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바 그러한 것은 아니라네 부디 몸조심 부모 효도 잊지 말아 주게.」

「잘 있게 이렇게 먼 데까지 나와 주니 참 고맙기 끝없네 자네의 지금 한 말 언제라도 잊지 아니할 것일세 때때로 생사를 알리는 한 조각 소식 부치기를 잊지 말아 주게 자―그러면.」

새벽 안개 자옥한 속을 뚫고 검푸른 물을 헤치며 친구를 싣고 떠나가는 연락선의 뒷모양을 어느 때까지나 하염없이 바라보아도 자취도 남기지 않은 그때가 즉 그 해도 저무려는 십이월 십이일(十二月十二日) 이른 새벽이었다.

그후 그의 소식을 직접 들을 수 있는 고향의 사람에는 오직 M군이라는 그의 친구가 있을 따름이었다. 그가 처음의 한두번을 제하고는 T씨에게 직접 편지하지 아니한 것과 같이 T씨도 처음의 한두번을 제하고는 그에게 편지하지 아니하였다.

오직 그들 형제는 그도 M군을 사이로 하여 M씨의 소식을 얻어 알고 T씨도 M군을 사이로 하여 그의 생사를 알 수 있는 흐릿한 상태가 길이 계속되어 왔던 것이다.


M에게 보내는 편지(第一信)

M군 추운데 그렇게 먼 곳까지 나와서 어머니와 나를 보내 주려고 자네의 정성을 다하였으니 그 고마운 말을 무엇으로 다 하겠나 이 나의 충정의 만분의 일이라도 이 글발에 붙여 보려 할 뿐일세 생전에 처음 고향을 떠난 이 몸의 몸과 마음의 더없는 괴로움 또한 어찌 이루 다 말하겠나 다만 나의 건강이 조곰도 축나지 아니한 것만 다시없는 요행으로 알고 있을 따름일세 그러나 처음으로의 긴 동안의 여행으로 말미암아 어머님께서는 건강을 퍽 해하셔서 지금은 일어 앉으시지도 못하시고 누워 계시네 이렇게도 몸의 아픔과 괴로움을 맛보시면서도 나에게 대하여는 도리어 미안하다는 듯이 이렇다는 말씀 한 마디 아니하시니 이럴 때마다 이 자식의 불효를 생각하고 스스로 하늘을 우러러 한숨지며 이 가슴이 찢어지는 것과 같은 아픔을 맛보는 것일세 자네가 말한 바와 같이 역시 세상은 우리들이 생각한 바와는 몹시도 다른 것인 모양이야 오나 가나 나에게 대하여서는 저주스러운 것들 뿐이요 차디찬 것들 뿐일세 그려!

이곳에는 조선사람으로만 조직되어 있는 조합이 있어서 처음 도항(渡航)하여 오는 사람들을 위하여 직업 거주(居住) 등절을 소개도 하며 돌보아도 주며 여러 가지로 편의를 도모하기에 진력하고 있는 것일세 나의 지금 있는 곳은 신호시(新戶市)에서 한 일리쯤 떨어져 있는 산지(山地)에 가까운 곳인데 이곳에는 수없는 조선사람의 노동자가 보금자리를 치고 있는 것일세 이 산비탈에 일면으로 움들을 파고는 그 속에서 먹고 자고 울고 웃고 씻고 빨래하고 바느질하고 하면서 복작복작 오물거리며 살아가는 것일세 빨아 널은 흰 옷자락이 바람에 날리는 것이나 다홍 저고리와 연두 치마 입은 어린아이들이 오고 가며 뛰노는 것이나 고향땅을 멀리 떠난 이곳일세만 그래도 우리끼리 모여 사는 것 같아서 그리 쓸쓸하거나 낯설지는 않은 듯해!

나는 아직 움을 파지는 못하였네 헐어빠진 함석 철판 몇 장과 화재터에 못 쓸 재목 몇 토막을 아까운 돈의 몇 푼을 들여서 사다가 놓기는 하였네마는 처음 당해 보는 긴 여행 끝에 몸도 피곤하고 날도 요즈음 좀 치웁고 또 그날그날 먹을 벌이를 하노라고 시내로 들어가지 아니하면 아니 될 몸이라 어떻게 그렇게 내가 들어 있을 움집이라고 쉽사리 팔 사이가 있겠나. 병드신 어머님을 모시고서 동포라고는 하지만 낯설은 남의 집에서 폐를 끼치고 있는 생각을 하며 어서어서 하루라도 바삐 움집이나마 파서 짓고 들어야 할 터인데 모든 것이 다― 걱정거리뿐일세. 직업이라야 별로 이렇다는 직업이 있을 까닭이 없네. 더욱 요즈음은 겨울날이라 숙련된 기술 노동자 외에 그야말로 함부로 그날그날을 벌어 먹고 사는 막벌잇군 노동자는 할 일이 아무것도 없는 것일세. 더욱이 나는 아직 이곳 사정도 모르고 해서 당분간은 고향에서 세간기명을 팔아 가지고 노자 쓰고 나머지 얼마 안 되는 돈을 살이나 뼈를 긁어 먹는 세음으로 갉아먹어 가며 있을 수밖에 없네. 그러나 이곳은 고향과는 그래도 좀 달라서 아주 하루에 한 푼도 못 벌어서 눈 뜨고 편히 굶고 앉았거나 그렇지는 않은 셈이여.

이불과 옷을 모두 팔아먹고 와서 첫째로 도무지 추워서 살 수 없네. 더군다나 병드신 늙은 어머님을 생각하면 어서 하루라도 바삐 돈을 변통하여서 덮을 것과 입을 것을 장만하여야만 할 터인데 그 역시 걱정거리에 하나일세.

아직도 여행 기분이 확―풀리지 아니하여 들뜬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하였으니 우선 이만한 통지 비슷한데 그치거니와 벌써부터 이렇게 고향이 그리워서야 어떻게 앞으로 길고 긴 날을 살아갈는지 의문일세. 이곳 사람들은 이제 처음이니깐 그렇지 조곰 지나가면 차차 관계치 않다고 하데마는 요즈음은 밤이나 낮이나 눈만 감으면 고향꿈이 꾸여지어서 도무지 괴로워 살 수 없네그려. 아―과연 운명은 나의 앞길에 어떠한 장난감을 늘어놓을는지 모르겠네마는 모두를 바람과 물결에 맡길 작정일세. 직업도 얻고 어머니의 병환도 얼른 나으시게 하고 또 움집이라도 하나 마련하여 이국의 생활(異國生活)이나마 조금 안정이 된 다음에 서서히 모든 것을 또 알리어 드리겠네. 나도 늙은 어머니와 특히 건강을 주의하겠거니와 자네도 아무쪼록 몸을 귀중히 생각하여 언제까지라도 튼튼한 일꾼으로의 자네가 되어주기를 바라네. 떠난 지 며칠 못되는 오늘 어찌 다시금 만날 날을 기필(期必)할 수야 있겠나마는 운명이 전연 우리 두 사람을 버리지 않는다면 일후 또다시 반가이 만날 날이 없지는 않겠지! 한 번 더 자네의 끊임없는 건강을 빌며 또 자네의 사랑에 넘치는 글을 기다리며 ……친구 X로부터……


M에게 보내는 편지(二信)

M군! 하늘을 꾸짖고 땅을 눈흘긴들 무슨 소용이 있겠나.

M군 M군! 어머니는 돌아가시었네. 세상에 나오신 지 오십년에 밝은 날 하루를 보시지 못하시고 이렇다는 불평의 말씀 한 마디도 못하여 보시고 그대로 이역(異域)의 차디찬 흙 속에 길이 잠드시고 말았네. 불효한 이 자식을 원망하시며 쓰라렸던 이 세상을 저주하시며 어머님의 외롭고 불쌍한 영혼은 얼마나 이 이역 하늘에 수없이 방황하실 것인가. 죽음! 과연 죽음이라는 것이 무엇이겠나 사람들은 얼마나 그 죽음을 무서워하며 얼마나 어렵게 알고 있나. 그러나 그 무서운 죽음, 그 어려운 죽음이라는 것이 마침내는 그렇게도 우습고 그렇게도 하잘 것 없이 쉬운 것이더란 말인가. 나는 이제 그 일상에 두려워하고 어렵게 여기던 죽음이라는 것이 사람이 나기보다도 사람이 살아가기보다도 그 어느 것보다도 가장 하잘것없고 가장 우스꽝스러운 것이라는 것을 잘 알았네. 오십년 동안 기구한 목숨을 이어오시던 어머님이 하루아침에 그야말로 풀잎에 맺혔던 이슬과 같이 사라지고 마시는 것을 보니 인생이라는 것이 그다지도 허무(虛無)하더라는 것을 느낄 대로 느꼈네.

M군! 살길을 찾아서 고향을 등지고 형제를 떨치고 친구를 버리고 이 곳으로 더듬거려 흘러온 나는 지금에 한 분밖에 아니 계시던 어머님을 잃었네 그려! 내가 지금 운명의 끊임없는 장난을 저주하면 무엇을 하며 나의 불효를 스스로 뉘우치며 한탄한들 무엇을 하며 무상한 인세에 향하여 소리지르며 외친들 그 또한 무엇하겠나! 사는 것도 죽는 것도 모두가 허무일세. 우주(宇宙)에는 오직 이 허무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일세.

한 분 어머니를 마저 잃었으니 지금에 나는 문자(文字) 대로 아주 홀몸이 되고 말았네. 이제 내가 어디를 간들 무엇 내 몸을 비끌어매이는 것이 있겠으며 나의 걸어가는 길 위에 무엇 걸리적대일 것이 있겠나? 나는 일로부터 그날을 위한 그날의 생활 이러한 생활을 하여 가려고 하는 것일세. 왜? 인생에게는 다음 순간이 어찌 될지도 모르는 오직 눈앞에의 허무스러운 찰나(刹那)가 있을 따름일 터이니깐!

나는 지금에 한 사람의 훌륭한 숙련(熟練) 직공일세. 사회에 처하여 당당한 유직자(有職者)일세. 고향에 있을 때 조곰 배워둔 도포업(塗布業)이 이곳에 와서 끊어져 가던 나의 목숨을 이어 주네. 쓰여먹을 줄 어찌 알았겠나. 지금 나는 ××조선소(造船所) 건구도공부(建具塗工部)에 목줄을 매이고 있네. 급료 말인가 하루에 일원 오십전 한 달에 사십 오 원. 이 한 몸뚱이가 먹고 살기에는 너무나 많은 돈이 아니겠나. 나는 남는 돈을 저금이라도 하여 보려 하였으나 인생은 허무인데 그것 무엇 그럴 필요가 있나. 언제 죽을지 아는 이 몸이라고 아주 바로 저금을 다하고 그것 다 내게는 주제넘은 일일세. 나의 주린 창자를 채이고 남는 돈의 전부를 술과 그리고 도박으로 소비해 버리고 마는 것일세. 얻어도 술! 잃어도 술! 지금 나의 생활이 술과 도박이 없다 할진댄 그야말로 전혀 제로에 가깝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네.

고향에도 봄이 왔겠지 아! 고향의 봄이 한없이 그리우네 그려! 골목골목이 「앵도지리―뻐찌」장사 다니고 개천 가에 달래장사 헤매이는 고향의 봄이 그립기 한이 없네그려. 초저녁 병문에 창자를 끊는 듯한 처량한 날라리소리, 젖빛 하늘에 떠도는 고향의 봄이 더욱 한없이 그리워 산 설고 물 설은 이 땅에도 봄은 찾아와서 지금 내가 몸을 의지하고 있는 이 움집들 다닥다닥 붙은 산비탈도 엷은 양광(陽光)에 씻기워 가며 종달새 노래에 기지개 펴고 있는 것일세 이 때에 나는 유쾌하게 일하고 있는 것일세. 이 세상을 괴롭게 구는 봄이 밖에 왔건마는 그것은 나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듯이 소리 높여 목청 놓아 노래 부르며 떠들며 어머님 근심도 집의 근심도 또 고향 근심도 아무것도 없이 유쾌하게 일하고 있는 것일세.

어머님이 돌아가시던 그 움집은 나의 눈으로는 보기도 싫었네. 그리하여 나는 새로이 건너온 사람에게 그 움집을 넘기고 그곳에서 좀 뚝 떨어져서 새로이 움집을 하나 또 지었네. 그러나 그 새 움집 속에는 누구라 나의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겠나. 참으로 아무도 없는 것일세. 나는 일터에서 나오는 대로 밤이 깊도록 그대로 시가지(市街地)를 정신없이 헤매이다가 그야말로 잠을 자기 위하여 그 움집을 찾아들고 찾아들고 하는 것일세. 그러나 내가 거리 한모퉁이나 공원 벤치 위에서 밤새운 것도 한두 번이 아닌 것은 말할 것도 없네. 자네는 지금의 나의 찰나적으로 타락된 생활을 매도(罵倒)할는지도 모르겠네. 그러나 설사 자네가 나를 욕하고 꾸지람을 한다 하더라도 어찌할 수 없는 일일세. 지금 나의 심정(心情)의 참 깊은 속을 살펴 알 사람은 오직 나를 제하고 아무도 없는 것이니깐 원컨대 자네는 너무나 나를 책망 힐타만 말고서 이― 나의 기막힌 심정의 참 깊은 속을 조곰이라도 살피어 주기를 바라네.

어머님이 돌아가신 지도 벌써 두 주일이 넘었네 그려. 그 즉시로 자네에게 이 비참(悲慘)한 소식을 전하여 주려고도 하였으나 자네 역시 짐작할 일이겠지마는 도무지 착란(錯亂)된 나의 머리와 손끝으로는 도저히 한자를 그릴 수가 없었네. 그래서 이렇게 늦은 것도 늦은 것이겠으나 아직도 나의 그 극도로 착란(錯亂)되었던 머리는 완전히 진정(鎭靜)되지 못하였네. 요사이 나의 생활 현상 같아서야 사람이 사는 것이 무슨 의의(意義)가 있는 것이겠으며 또 사람이 살아야만 하겠다는 것도 무슨 까닭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네. 오직 모든 것이 우습게만 보이고 하잘 것 없이만 보이고 가치 없어만 보이고 순간에서 순간으로 옮기는 데에만 무엇이고 있다는 의의(意義)가 조곰이라도 있는 것인 듯하기만 하네. 나의 요즈음 생활은 나로서도 양심의 가책(苛責)을 전연 받지 않는 것도 아닐세. 그러나 지금의 나의 어두워진 가슴에 한 줄기 조고마한 빛깔이라도 돌아올 때까지는 이러한 생활을 계속하지 아니하면 아니되겠네. 설사 이 당분간(當分間)이라는 것이 나의 눈을 감는 전(前)순간까지를 가리키는 것이 된다 하더라도…….

어머님의 돌아가심에 대하여는 물론 영양부족(營養不足)으로 말미암아 몸의 극도의 쇠약과 도(度)에 넘치는 기한(飢寒)이 그 대부분의 원인이겠으나 그러나 그 직접 원인은 생전 못하여 보시던 장시간의 여행 끝에 극도로 몸과 마음의 흥분과 피로(疲勞)를 가져온 데다가 토질(土質)이 다른 물과 밥으로 말미암은 일종의 토질(土疾) 비슷한 병에 걸리신 데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네. 평소에 그다지 뛰어난 건강을 가지시었다고는 할 수 없었으나 별로 잔병 치레를 하지도 아니하며 계시던 어머님이 이번에 이렇게 한번에 힘없이 쓰러지실 줄은 참으로 꿈밖에도 생각 못하였던 바이야. 돌아가실 때에도 역시 아무 말도 아니 하시고 오직 자식 낳아 길러서 남같이 호강은 못 시키나마 뼈마디가 빠지도록 고생시킨 것이 다시 없이 미안하고 한이 된다는 말씀과 T를 못 보시며 돌아가시는 것이 또 한 가지 섭섭한 일이라는 말씀, 자네의 후정(厚情)을 감사하시는 말씀을 하실 따름이었었네. 그리고는 그다지 몸의 고민도 없이 고요히 잠들 듯이 눈을 감으시데. 참 허무한 그러나 생각하면 우선 눈물이 앞을 가리는 어머님의 임종(臨終)이었네. 어머님의 그 말들은 아직도 그 부처님 같은 어머니를 고생시킨 이 불효의 자식의 가슴을 에이는 것 같으며 내 일생 내가 눈 감을 순간까지 어찌 그때 그 말씀을 나의 기억에서 사라질 수가 있겠나!

나는 일로부터 자유로이 세상을 구경하며 그날 그날을 유쾌하게 살아가려고 하는 것일세. 나의 장래를 생각할 것도, 불쌍히 돌아가신 어머님을 생각할 것도 다 없다고 생각하네. 그것은 왜? 그것은 차라리 나의 못박힌 가슴에 더없는 고통을 가져오는 것이니깐! 마음 가라앉는 대로 일간 또 자세한 말 그리운 말 적어 보내겠거니와 T는 지금에 어머님 세상 떠나가신 것도 모르고 그대로― 적빈(赤貧) 속에 쪼들리어 가며 허덕이겠지?! 또한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기 한이 없네. T에게는 곧 내가 직접 알려 줄 것이니 어머님의 세상 떠나신 데 대하여는 자네는 아무 말도 하지 말아주게. 자네의 정에 넘치는 글을 기다리고 아울러 자네의 더없는 건강을 빌며……. 친구 X로부터.


M에게 보내는 편지(三信)

M군! 내가 자네를 그리워 한없이 적조한 날을 보내는 거와 같이 자네도 또한 나를 그리어 얼마나 적조한 날을 보냈나? 언제나 나는 자네의 끊임없는 건강을 알리우고 자네는 나의 또한 끊임없는 건강을 알리울 수 있는 것이 오직 우리 두 사람의 다시도 없는 기쁨이 아니겠나.

내가 신호를 떠나 이곳 명고옥(名古屋)으로 흘러온 지도 벌써 반 년! 아―고향땅을 떠난 지도 벌써 꿈결 같은 삼 년이 지나갔네 그려. 그 동안에 나는 무엇을 하였나. 오직 나의 청춘의 몸 닳는 삼 년이 속절없이 졸아들었을 따름일세 그려! 신호 ××조선소(造船所) 시대의 나의 생활은 그 가운데 비록 한 분 어머니를 잃은 설움이 있었다고는 하나 그러나 가만히 생각하여 본다면 그것은 참으로 평온무사한 안일한 생활이었었네. 악마와 같은 이 세상에 이미 도전(桃戰)한 지 오래인 나로서는 이 평온무사한 안일한 직선생활(直線生活)이 싫증이 났네. 나는 널리 흐트러져 있는 이 살벌(殺伐)의 항(巷)이 고루고루 보고 싶어졌네. 그리하여 그곳에서 사괴인 그곳 친구 한 사람과 함께 이곳 명고옥으로 뛰어온 것일세. 두 사람은 처음에 이곳 어느 식당 「뽀이」가 되었었네. 세상이 허무라는 이 불후(不朽)의 법칙은 적용되지 아니하는 곳이 없데. 얼마 전 그의 공휴일(公休日)에 일상에 사냥(獵)을 즐기는 그는 그의 친구와 함께 이곳에서 퍽 멀리 떨어져 있는 어느 산촌(山村)으로 총을 메이고 떠나갔네. 그러나 그날 오후에 그는 그의 친구의 그릇으로 그 친구는 탄환에 맞아 산중에서 무참히 죽고 말았네. 그 친구는 겁결에 고만 어디로 도망하였었으나 얼마 되지 아니하여 잡히었다고 하데. 일상에 쾌활하고 개방적(開放的)이고 양기(陽氣)에 넘치던 그를 생각하며 다시 한번 더 세상의 허무를 느낀 것일세. 그와 나의 사괴임 동안이 비록 며칠 되지는 아니 하였으나 퍽― 마음과 뜻의 상통됨을 볼 수 있던 그를 잃은 나는 그래도 그곳을 획― 떠나지 못하고 지금은 그 식당 「헤드 쿡」이 되어 가지고 있으면서 늘― 그를 생각하며 어떤 때에는 이 신변이 약간의 공허(空虛)까지도 느낄 적이 다 있네.

나의 지금 목줄을 매이고 있는 식당은 이름이야 먹을 식자 식당일세마는 그것을 먹기 위한 식당이 아니라 놀기를 위한 식당일세. 이 안에는 피아노가 놓여 있고 라디오가 있고 축음기가 몇 개씩이나 있네. 뿐만 아니라 어여쁜 여자(女給)가 이십여 명이나 있으니 이곳 청등(靑燈) 그늘을 찾아드는 버러지의 무리들은 「만하탄」과 「화이트 호스」에 신경을 마비시켜 가지고 난조(亂調)의 재즈에 취하며 육향분복(肉香芬馥)한 소녀들의 붉은 입술을 보려고 모여드는 것일세. 공장의 기적이 저녁을 고할 때면 이곳 식당은 그 광란(狂亂)의 뚝게를 열기 시작하는 것일세. 음란을 극한 노래와 광대에 가까운 춤으로 어울어지고 무르녹아서 그날 밤 그날 밤이 새어가는 것일세. 이 버러지들은 사회 전반의 계급을 망라하였으니 직업이 없는 부랑아(浮浪兒)·「샐러리맨」·학생·노동자·신문기자·배우·취한, 그러한 여러 가지 계급의 그들이나 그러나 촉감(觸感)의 향락을 구하며 염가(廉價)의 헛된 사랑을 구하러 오는 데에는 다 한결같이 일치하여 버리고 마는 것일세.

나는 밤마다 이 버러지들의 목을 축이기 위한, 신경을 마비시키기 위한 비료(肥料)거리와 마취제를 요리하기에 여념이 없는 것일세. 나는 밤새도록 이 어지러운 소음(騷音)을 귀가 해어지도록 듣고 있는 것일세. 더없는 황홀과 흥분과 피로를 느끼면서 나의 육체를 노예화시켜서 그들에게 제공하고 있는 것일세. 그 피로(疲勞)와 긴장(緊張)도 지금에 와서는 다 어느덧 면역(免疫)이 되고 말았네마는!

나는 몇 번이나 나도 놀랄 만치 코웃음쳤는지 모르겠네. 나! 오늘가지 나 역시 그날의 근육을 판 그날의 주머니를 술과 도박에 떨고 떠는 생활을 계속하여 오던 나로서 그 버러지들을 향하여, 그 소음을 향하여 코웃음을 쳤다는 말일세. 내가 시퍼런 칼을 들고 나의 손을 분주히 놀릴 때에 그들의 떠들고 날치는 것이 어떻게 그리 우습게 보이는지 몰랐네.

「무엇하러 저들은 일부러 술로 몸을 피로시키며 밤새임으로 정력을 감퇴시키기를 즐겨 할까 무엇하러 저들의 포켓트를 일부러 털어 바치러 올까」

이것은 전면 나에게 대하여 수수께끼였네. 한편으로는 그들이 어린애같이 보이고 철없어 보이고 불쌍한 생각까지 들어서.

「내가 왜 술을 먹었던가, 내가 왜 도박을 했던가 내가 왜 일부러 나의 포켓트를 털어 바쳤었던가.」

이렇게 지나간 이태 남짓한 나의 생활에 대하여 의심도 하며 스스로 꾸짖으며 부끄러워도 하여 보았네.

「인제야 내 마음이 아마 바른 길로 들었나 보다.」

이렇게 생각하여 보았으나

「술을 먹지 말아야지. 도박도 고만 두어야지. 돈을 모아야지. 이것이 옳을까 아― 그러나 돈을 모아서 무엇하랴. 무엇에 쓰며 누구를 주랴. 또 누구를 주면 무엇하랴.」

이러한 생각이 아직도 나의 머리에 생각되어 밤마다 모여드는 그 버러지들을 나는 한없이 비웃으면서도 그래도 나는 아직 그 타락적 찰나적 생활기분이 남아 있는지 인생에 대한 허무와 저주를 아니 느낄 수는 없네. 그러나 이것이 나의 소생(蘇生)의 길일는지도 모르겠으나 때로 나의 과거 생활의 그릇됨을 느낄 적도 있으며 생에 대한 참된 의의(意義)를 조곰씩이라도 알아지는 것도 같으나 이것이 나의 마음과 사상의 점점 약하여 가는 징조나 아닌가 하여 섭섭히 생각될 적도 없지 않으나 하여간 최근 나의 내적 생활현상(內的 生活現像)은 확실히 과도기(過渡期)를 걷고 있는 것 같으니 이때에 아무쪼록 자네의 나를 위한 마음으로의 교시(敎示)와 주저(躊躇)없는 편달(鞭撻)을 바라고 기다릴 뿐일세. 이렇게 심리상태의 정곡(正鵠)을 잃은 나는 요사이 무한히 번민하고 있는 것이니깐!……

직업이 직업이라 밤을 낮으로 바꾸는 생활이 처음에는 꽤 괴로운 것이었으나 지금 와서는 그것도 면역이 되어서 공휴일 같은 날 일찍 드러누으면 도리어 잠이 얼른 오지 아니하는 형편일세. 그러나 물론 이러한 생활이 건강상에 좋지 못할 것은 명백한 일이니 나로서 나의 몸의 변화를 인식하기는 좀 어려우나 일상에 창백한 얼굴빛을 가지고 있는 그 소녀들이 퍽 불쌍하여 보이네. 그러나 또 한편 밤잠은 못 잘망정 지금의 나는 한 사람의 훌륭한 「쿡」으로서 누구에게도 손색이 없는 것일세. 부질없는 목구녕을 이어가기에 나는 두가지의 획식술(獲食術)을 배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 이 몸이 한없이 애처롭기만 하네! 「쿡」이니만큼 먹기는 누구보다도 잘 먹으며 또 이 식당 안에서는 그래 당당한 세력을 가지고 있는 것일세. 내가 몹시 쌀쌀한 사람이라 그런지 여급(女給)들도 그리 나를 사괴이려고도 아니하나 들은즉 그들 가운데에도 퍽 고생도 많이 하고 기구한 운명에 쫓기어 온 불쌍한 사람도 많은 모양이야.

이 「쿡」 생활이 언제까지나 계속되겠으며 또 이 「명고옥」에 언제까지나 있을지는 나로서도 기필할 수 없거니와 아직은 이 「쿡」 생활을 그만둘 생각도 명고옥을 떠날 계획도 아무것도 없네. 오직 운명이 가져올 다음의 장난은 무엇인지 기다리고 있을 따름일세. 처음 신호에 닿았을 때, 그 곳 누구인가가 말한 것과 같이 날이 가고 달이 가면 차차 관계치 않으리라 하더니 참으로 요사이는 고향도 형제도 친구도 다 잊었는지 별로이 꿈도 안 꾸어지네. 오직 자네를 그리워하는 외에는 그저 아무나 만나는 대로 허허 웃고 사는 요사이의 나의 생활은 그다지 나로 하여금 적막과 고독을 느끼게 하지도 않네. 차라리 다행으로 여길까?

이곳은 그다지 춥지는 않으나 고향은 무던히 추우렷다. T는 요사이 어찌나 살아가며 업이가 그렇게 재주가 있어서 공부를 잘한다니 T 집안을 위해서나 널리 조선을 위해서나 또 한 번 기뻐할 일이 아니겠나. 자네의 나를 생각하여 주는 뜨거운 글을 기다리고 아울러 자네의 건강을 빌며. X로부터.


M에게 보내는 편지(四信)

태양은― 언제나 물체들의 짧은 그림자를 던져 준 적이 없는 그 태양을 머리에 이고―였다느니보다는 비뚜로 바라다보며 살아가는 곳이 내가 재생(再生)하기 전에 살던 곳이겠네. 태양은 정오(正午)에도 결코 물체들의 짧은 그림자를 던져 주기를 영원히 거절하여 있는―물체들은 영원히 긴 그림자만을 가짐에 만족하고 있지 아니하면 아니될―그만큼 북극권(北極圈)에 가까운 위경도(緯經度)의 숫자를 소유한 곳―그 곳이 내가 재생하기 전에 내가 살던 참으로 꿈 같은 세계이겠네. 원시(原始)를 자랑스러운 듯이 이야기하며 하늘의 높은 것만 알았던지 법선(法線)으로만 법선으로만 이렇게 울립(鬱立)하여 있는 무수한 침엽수(針葉樹)들은 백중천중(白重千重)으로 포개져 있는 잎새 사이로 담황색(淡黃色) 태양광을 황홀한 간섭작용(干涉作用)으로 투과(透過)시키고 있는 잠자고 있는 듯한 광경이 내가 재생하기 전에 살던 그 나라 그 북극이 아니면 어느 곳에서도 얻어 볼 수 없는 시적 정조(詩的 情調)인 것이겠네. 오로지 지금에는 꿈―꿈이라면 너무나 깊이가 깊고 잊어버리기에 너무나 감명 독(感銘毒)한 꿈으로만 나의 변화만은 생(生)의 한 조각답게 기억되네마는 그 언제나 휘발유 찌꺼기 같은 값싼 음식에 살찐 사람의 지방(脂肪) 빛 같은 그 하늘을 내가 부득이 연상할 적마다 구름 한 점 없는 이 청천을 보고 있는 나의 개인(個人) 마음까지 지저분한 막대기로 휘저어 놓는 것 같네. 그것은 영원히 나의 마음의 흐리터분한 기억으로 조곰이라도 밝은 빛을 얻어보려고 고달파하는 나의 가엾은 노력에 최후까지 수반(隨伴)될 저주할 방해물인 것일세.

나의 육안(肉眼)의 부정확한 오차(誤差)를 관대히 본다 하더라도 그것은 이십 오도(25°)에는 내리지 않을 치명적 「슬로우프」(傾斜)이었을 것일세. 그 뒷둑뒷둑하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궤도(軌道) 위의 바람을 쪼개고 공간을 쪼개고 맥진(驀進)하는 「토로코」 위에 내 몸을 싣는 것은 전혀 나의 생명을 그대로 내어던지려는 것과 조곰도 다름없는 것일세. 이미 부정(否定)된 생(生)을 식도(食道)라는 질긴 줄에 포박당하여 억지로 질질 끌려가는 그들의 「살아간다는 것」은 그들의 피부와 조곰도 질 것 없이 조고 만치의 윤택도 없는 「짓」이 아니고 무엇이겠나. 그들의 메마른 인후(咽喉)를 통과하는 격렬한 공기의 진동은 모두가 창조의 신에 대한 최후적 마멸(馬蔑)의 절규(絶叫)인 것일세. 그 음울한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은 누구나 다―싫다는 것을 억지로 매질을 받아가며 강제되는 「삶」에 대하여 필사적 항의를 드리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나. 오직 그들의 눈에는 천고의 백설을 머리 위에 이고 풍우로 더불어 이야기하는 연산의 봄도라지들도 한낱 악마의 우상밖에 아무것으로도 보이지 않는 것일세. 그때에 사람의 마음은 환경의 거울이라는 것이 아니겠나.

나는 재생으로 말미암아 생에 대한 새로운 용기와 환희를 한 몸에 획득한 것 같은 지금의 나로 변하여 있는 것일세. 그러기에 전세의 나를 그 혈사(血史)를 고백하기에 의외의 통쾌와 얼마의 자만까지 느끼는 것이 아니겠나. 내가 그 경사 위에서 참으로 생명을 내어던지는 일을 하던 그 의식 없던 과정을 자네에게 쏟아뜨리는 것도 필연컨대 그 용기와 그 기쁨에 격려된 한 표상이 아닐까 하는 것일세.

그때까지의 나의 생에 대한 신념은―구태여 신념이 있었다고 하면 그것은 너무나 유희적이었음에 놀라지 아니할 수 없네.

「사람이 유희적으로 살 수가 있담?」 결국 나는 때때로 허무 두 자를 입밖에 헤뜨리며 거리를 왕래하는 한 개 조고마한 경멸할 「니힐리스트」였던 것일세. 생을 찾다가, 생을 부정했다가 드디어 첨으로 귀의하여야 할 나의 과정은―나는 허무에 귀의하기 전에 벌써 생을 부정하였어야 될 터인데―어느 때에 내가 나의 생을 부정했던가……집을 떠날 때! 그때는 내가 줄기찬 힘으로 생에 매어달리지 않았던가. 그러면 어머님을 잃었을 때! 그때 나는 어언간 무수한 허무를 입 밖에 방산시킨 뒤가 아니었던가. 그 사이! 내가 집을 떠날 때부터 어머님을 잃을 때까지 그 사이는 실로 짧은 동안……뿐이랴 그 동안에 나는 생을 부정해야만 할 아무런 이유도 가지지 않았던가. 생을 부정할 아무 이유도 없이 앙감질[單足跳]로 허탄히 허무를 질질 흘려 왔다는 그 희롱적 나의 과거가 부끄럽고 꾸지람하고 싶은 것일세. 회한을 느끼는 것일세.

「생을 부정할 아무 이유도 없다. 허무를 운운할 아무 이유도 없다. 힘차게 살아야만 하는 것이…….」 재생한 뒤의 나는 나의 몸과 마음에 채찍질하여 온 것일세. 누구는 말하였지.

「신에게 대한 최후의 복수는 내 몸을 사바로부터 사라뜨리는 데 있다」고. 그러나 나는 「신에게 대한 최후의 복수는 부정되려는 생을 줄기차게 살아가는 데 있다.」 이렇게…….

또한 신뢰(迅雷)와 같이 그 「슬로우프」를 나려 줄이고 있는 얼마 안 되는 순간에, 어떠한 순간이었네. 내 귀에는 무서운 소리가 들려왔어.

「X야, 뛰어 내려라 죽는다……」

「네 뒤 토로가 비었다[空] 뛰어내려라!」

나는 거의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네. 과연 나의 뒤를 몇 간 안되게까지 육박해 온―반드시 조종하는 사람이 있어야만 할 그 토로 위에는 사람이 없는 것이었네. 나는 브레이크를 놓았네. 동시에 나의 토로도 무서운 속도로 나의 앞에 가는 토로를 육박하는 것이었네. 나는 토로 위에서 필사적으로 부르짖었네.

「야! 앞의 토로야. 브레이크를 놓아라. 충돌된다. 죽는다. 내 뒤 토로에는 사람이 없다. 브레이크를 놓아라.」

그러나 앞의 토로는 브레이크를 놓을 수는 없었네. 그것은 레일이 끝나는 종점에 거의 가까이 닿았으므로 앞의 토로는 도리어 브레이크를 눌러야만 할 필요에 있는 것이었네.

「내가 뛰어내려 그러면 내 토로의 브레이크는 놓아진다. 그러면 내 토로는 앞의 토로와 충돌된다. 그러면 앞의 놈은 죽는다…….」

나는 뒤를 또 한 번 돌아다보았네. 얼마 전에 놀래어 브레이크를 놓은 나의 토로보다도 훨씬 먼저 브레이크가 놓아진 내 뒤 토로는 내 토로 이상의 가속도로 내 토로를 각각으로 육박해 와서 이제는 한 두 간 뒤―몇 초 뒤에는 내 목숨을 내어던져야 될 (참으로) 충돌이 일어날―그렇게 가깝게 육박해 있는 것이었네.

「뛰어내리지 아니하고 이대로 있으면 아무리 브레이크를 놓아도 나는 뒤 토로에 충돌되어 죽을 것이다. 뛰어내려? 그러면 내가 뛰어내린 빈 토로와 그 뒤를 육박하던 빈 토로는 충돌될 것이다. 다행히 선로 바깥으로 굴러 떨어지면 좋겠지만 선로 위에 그대로 조곰이라도 걸쳐 놓인다면 그 뒤를 따르던 토로들은 이 갑빠진 토로에 충돌되어 쓰러지고 또 그 뒤를 따르던 토로는 거기서 충돌되고, 또 그 뒤를 따르던 토로는 거기서 충돌되고, 이렇게 수없는 토로들은 뒤으로 뒤으로 충돌되어 그 위에 탔던 사람들은 죽고 다치고……!」

나는 세 번째 도한 거의 본능적으로 뒤를 돌아다보았네. 그러나 다행히 넷째 토로부터 앞에 올 위험을 예기하였던지 브레이크를 벌써 눌러서 멀리 보이지도 않을 만큼 떨어져서 가만가만히 내려오고 있는 것이었네. 다만 화산(火山)의 분화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의 눈초리와 같은 그러한 공포에 가득찬 눈초리로 멀리 앞을―우리들을 바라다보고 있는 것이었네. 그때에

「뛰어내리자. 그래야만 앞의 사람이 산다.」

내가 화살 같은 토로에서 발을 떼이려 하는 순간 때는 이미 늦었었네 뒤에 육박해 오던 주인 없는 토로는 무슨 증오(憎惡)가 나에게 그리 깊었던지 젖먹은 기운까지 다하는 단말마의 야수같이 나의 토로에 거대한 음향과 함께 충돌되고 말았네. 그 순간에 우주는 나로부터 소멸되고 다만 오랜 동안의 무(無)가 계속되었을 뿐이었다고 보고할 만치 모든 일과 물건들은 나의 정신권 내에 있지 아니하였던 것일세. 다만 재생한 후 멀리 내 토로의 뒤를 따르던 몇 사람으로부터 「공중에 솟았던」 나의 그후 존재를 신화(神話) 삼아 들었을 뿐일세.

재생되던 첫순간 나의 눈에 비쳐진 나의 주위에 더러운 광경을 나는 자네에게 이야기하고 싶지 않네. 그것은 그런 것을 쓰고 있는 동안에 나의 마음에 혹이나 동요가 생기지나 아니할까 하는 위험스러운 의문에서―그러나 나의 주위에 있는 동무들의 참으로 근심스러워 하는 표정의 얼굴들이 두 번째로 나의 눈에 비치었을 때에 의식을 잃은 나의 전 몸뚱어리에서 다만 나의 입만이 부드럽게― 참으로 고요히― 참으로 착하게 미소하는 것을 내 눈으로도 보는 것 같았었네. 나는 감사하였네. 신에게보다도 우선 그들 동무에게―감사는 영원히 신에게 드림없이 그 동무들에게만 그치고 말는지도 몰라. 내 팔이 아직도 나의 동체(胴體)에 달려 있는가 만져 보려 하였으나 그 팔 자신이 벌써 전부터 생리적으로 움직일 수 없는 것이 된 지 오래였던 모양이데. 나는 다시 그들 동무들에게 감사하며 환계(幻界) 같은 꿈 속으로 깊이 빠지고 말았네. 나는 어머니에게 좀더 값있는 참다운 삶을 살 수 있게 하지 못한 「내」가 악마―신이 아니라―에게 무수히 매맞는 것을 보았네. 그리고 나는 「나」에게 욕하였고 경멸하였네. 그리고 나는 좀더 건실하게 살지 않았던 「쿡」 생활 이후의 「내」가 또한 악마에게 매맞는 것을 보았네 그리고 나는 나에게 욕하였고 경멸하였네. 그리고 생애 새로운 참다운 의의(意義)와 신에 대한 최후적 복수의 결심을 마음 속으로 깊이 암송하였네. 그 꿈은 나의 죽은 과거와 재생 후의 나 사이에 형상지어져 있는 과도기에 의미 깊은 꿈이었네. 하여간 이를 갈아 가며라도 살아가겠다는 악지가 나의 생애 대한 변경시키지 못할 신념이었네. 다만 나의 의미없이 또 광명없이 그대로 삭제(削除)되어 버린 과거―나의 인생의 한부분을 섧―게 조상(吊喪)하였을 따름일세.

털끝만한 인정미(人情味)도 포함하고 있지 아니한 바깥에 부는 바람은 이 북국에 장차 엄습하여 올 무서운 기절을 교활하게 예고하고 있는 것이나 아니겠나. 번개같이 스치는 지난 겨울, 이곳에서 받은 나의 육체적 고통의 기억의 단편들은 눈 깜박할 사이에 무죄한 나를 전율(戰慄)시키는 것일세. 이 무서운 기절이 이 나라에 찾아오기 전에 어서 이곳을 떠나서 바람이나마 인정미―비록 그러한 사람은 못 만나더라도―있는 바람이 부는 곳으로 가야 할 터인데 나의 몸은 아직도 전연 부자유에 비끄러매여 있네― 그것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의사하는 사람은 나의 반드시 원상대로의 복구를 예언하데마는 그러나 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방문 밖에서

「절뚝발이는 아무래도 면치 못하리라」

이렇게 근심(?)하는 그들의 말소리를 들었네 그려― 만일에 내가 그들의 이 말과 같이 참으로 절뚝발이가 되고 만다 하면―나는 이 생각을 하며 내 마음이 우는 것을 느끼네.

「절뚝발이」

여태껏 내 몸 위에 뒤집어씌워져 있던 무수한 대명찰(代名札) 외에 나에게는 또 이러한 새로운 대명찰 하나가 더 뒤집어지는구나― 어디까지라도 깜깜한 암흑에 지질리워 있는 나의 앞길을 건너다 보며 영원히 나의 신변에서 없어진 등불을 원망하는 것일세. 절뚝발이도 살 수 있을까― 절뚝발이도 살게 하는 그렇게 관대한 세계가 지상에 어느 한 귀퉁이에 있을까? 자네는 이 속타는 나의 물음―아니 차라리 부르짖음에 대하여 대답할 무슨 재료, 아니 용기라도 있겠는가?

북국 생활 칠년! 그 동안에 나는 지적(知的)으로나 덕적(德的)으로나 많은 교훈을 얻은 것만은 사실일세. 머지 아니한 장래에 그 전에 나보다 확실히 더 늙은 절뚝발이의 내가 동경에 다시 나타날 것을 약속하네. 그곳에는 그래도 조곰이라도 따뜻한 나의 식어빠진 인생을 조곰이라도 덥혀줄 바람이 불 것을 꿈꾸며 줄기차게 정말 악마까지도 나를 미워할 때가지 줄기차게 살겠다는 것도 약속하네. 재생한 나이니까 물론 과거의 일체 추상(醜相)은 곱게 청산하여 버리고 박물관 내의 한 권의 역사책으로 하여 가만히 표지를 덮는 것일세. 모든 새로운 광채 찬란한 역사는 이제로부터 전개할 것일세. 하면서도

「절뚝발이가?……」

새로이 방문하여 오는 절망을 느끼면서도 아직 나는 최후까지 줄기차게 살 것을 맹세하는 것일세. 과거를 너무 지껄이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라면 장래를 너무 지껄이는 것도 어리석은 일일 것일세.

M군! 자네가 편지를 손에 들고 글자 글자를 자네 눈에 통과시킬 때, 자네 눈에 몇 방울 눈물이 있으리란 추측이 그렇게 억측일까 그러나 감히 바란다면 「첫째로는 자네의 생에 대한 실망을 경계할 것이며 둘째로는 나의 절뚝발이에 대하여 형식적 동정에 그칠 것이요, 결코 자살적 비애를 느끼지 말 것들」이겠네. 그것은 나의 지금 이 「줄기차게 살겠다는」 무서운 고집에 조고마한 실망적 파동이라도 이끌어 올까 두려워서……나의 염세(厭世)에 대한 결사적 투쟁은 자네의 신경을 번잡케 할 만치 되어 나아갈 것을 자네에게 약속하기를 꺼리지 아니하네. 자네의 건강을 비는 동시에 못 면할 이 절뚝발이의 또한 건강이 있기를 빌어주기를 은근히 바라며. X로부터


M에게 보내는 편지(五信)

자네의 장문의 편지 그 가운데에 오직 자네의 건강을 전하는 구절 외에는 글자 글자의 전부가 오직 나의 조소(嘲笑)를 사기 위한 외에는 아무 매력(魅力)도 가지지 아니한 것들이었네. 자네는 왜― 남에게 의지하여 살아가려 하는가. 남에게 의지하여 살아간다는 것은 곧 생에 대한 권리를 그 그 사람 위에 가져올 자포자기의 짓이라는 것을 어찌 모르는가. 일조일석 많은 재물을 탕진시켜 버렸다 하여 자네는 자네 아버지를 무한히 경멸하에며 나중에는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절망까지 하소연하지 아니하였는가, 그것이 자네가 스스로 구실을 꾸미어 가지고 나아가서 자네의 애를 써 잘―경―영되어 나오던 생을 구태여 부정하여 보려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나. 그것은 비겁한 동시에―모든 비겁이 하나도 죄악 아닌 것이 없는 것과 같이― 역시 죄악인 것일세.

어렵거든, 혹은 나의 말이 우의적(友誼的)으로 좋지 않게 들리거든 구태여라도 운명이라고 그렇게 단념하여 주게. 그것도 오직 자네에게 무한한 사랑을 받고 있는 나의 자네에게 대한 무한한 사랑에서 나온 것인만큼 나는 자네에게 인생의 혁명적으로 새로운 제이차적 「스타일」을 충고치 아니할 수 없는 것일세. 그리고 될 수만 있다면 이 운명이라는 요물을 신용치 말아 주기를 바라는 것일세― 이렇게 말하는 나 자신부터도 이 운명이라는 요물의 다시 없는 독신자(篤信者)이면서도―.

「운명의 장난?」

하, 그런 것이 있을 수 있나 있다면 너무도 운명의 장난이겠네.

M군! 나는 그 동안 여러 날을 두고 몹시 앓았네. 무슨 원인인지 나도 모르게, 이―원인 알 수 없는 병이 나의 몸을 산 채로 더 삶을 수 없는 데까지 삶아 가지고는 죽음의 출입구까지 이끌어 갔던 것일세. 그때에 나의 곱게 청산하여 버렸던 나의 정신 어느 모에도 남아 있지 않아야만 할 재생하기 전에 일어났던 일까지도 재생 후의 그것과 함께 죽 단렬(單列)로 나의 의식(意識) 앞을 천천히 지나가고 있는 것이었네. 그리고 나는 반 의식의 나의 눈으로 그 행렬 가운데서 숨차게 허덕이던 과거의 나를 물끄러미 바라다보고 있던 것이었네. 그것은 내 눈에 너무도 불쌍한 꼴로 나타났었기 때문에, 아― 그것들은―

「이것이 죽은 것인가 보다. 적어도 죽어가는 것인가 보다.」

이렇게 몽롱히 느끼면서도

「죽는 것이 이렇기만 하다면야.」

이런 생각도 나서 일종의 통쾌까지도 느낀 것 같으며 그러나 죽어가는 나의 눈에 비치는 과거의 나의 모양 그 불쌍한 꼴을 보는 것은 확실히 슬픈 일일 뿐 아니라 고통이었네. 어쨌든 나를 간호하던 이 집 주인의 말에 의하면 무엇 나는 잠을 자면서도 늘―울고 있더라던가…….

「이것이 죽는 것이라면―」

이렇게 그―꼴사나운 행렬을 바라보던 나의 머리 가운데에는 내가 사랑에 주려 있는 형제와 옛친구를 애걸하듯이 그리며 그 행렬 가운데에 행여나 나타나기를 무한히 기다렸던 것일세. 이 마음이 아마 어떤 시인의 병석에서 부른―.

「얼른 이때 옛친구 한 번씩 모두 만나 둘 거나.」

하던 그 시경(詩境)에 노는 것이나 아닌가 하였네.

순전한 하숙(下宿)이라고만 볼 수도 없으나 그러나 괴상한 성격을 각각 가진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지금의 나의 사는 곳일세. 이곳 주인은 나보다 퍽 연배(年輩)에 속하는 사람으로 그의 일상생활 양(樣)으로 보아 나의 마음을 끄는 바가 적지 않았으되 자세한 것은 더 자세히 안 다음에 써 보내겠거니와 하여간 내가 고국을 떠나 자네와 눈물로 작별 한 후로 처음으로 만난 가장 친한 친구의 한 사람으로 사괴이고 있는 것일세. 그와 나는 깊이깊이 인생을 이야기하였으며 나는 그의 말과 인격과 그리고 그의 생애에 많은 경의로써 대하고 있는 중일세.

운명의 악희가 내게 끼칠 「프로그램」은 아직도 다하지 아니하였던지 나는 그 죽음의 출입구가지 다녀온 병석으로부터 다시 일어났네. 생각하면 그 동안에 내가 흘린 「땀」만 해도 말(斗)로 계산할 듯하니 다시금 푹 젖은 욧바닥을 내려다 보며 이 몸의 하잘 것 없는 것을 탄식하여 마지 않았으며 피비린 냄새 나는 눈방울을 달음박질 시켜 가며 불려 놓았던 나의 「포켓」은 이번 병으로 말미암아 많이 줄어들었네. 그러나 병석에서도 나의 먹을 것의 걱정으로 말미암아 나의 그 「포켓」을 건드리게 되기는 주인의 동정이 너무나 컸던 것일세. 지금도 그의 동정을 받고 있을 뿐이야. 앞으로도 길이 그의 동정을 받지 않으리라고는 단언할 수 없으며.

「돈을 모아 볼까.」

내가 줄기차게 살아 보겠다는 결심으로 모은 돈을 남의 동정을 받아가면서도 쓰기를 아까와하는 나의 마음의 추한 것을 새삼스러이 발견하는 것 같아서 불유쾌하기 짝이 없네. 동시에 나의 마음이 잘못하면 허무주의에 돌아가지나 아니할까 하여 무한히 경계도 하고 있었네.

M군! 웃지 말아 주게. 나는 그 동안에 의학(醫學) 공부를 시작하였네. 그것은 내가 전부터 그 방면에 취미가 있었다는 것도 속일 수 없는 일이겠으나 또 의사인 자네를 따라가고 싶은 가엾은 마음에서 그리 한 것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도 속일 수 없는 일이겠네. 모든 것이 다―그―줄기차게 살아가겠다는 가엾은 악지에서 나온 짓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부드러운 미소로 칭찬하여 주기를 바라는 것일세. 또다시 생각하면 나의 몸이 불구자이므로 세상에 많은 불구자를 동정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그리는 것인지도 모르겠으나 내가 불구자인 것이 사실인 만큼 내가 의학 공부를 시작한 것도 자네에게는 너무나 돌연적이겠으나 역시 사실인 것을 어찌 하겠나. 여기에도 나는 주인의 많은 도움을 받아 오는 것을 말하여 두거니와 하여간 이 새로운 나의 노력(努力)이 나의 앞길에 또 어떠한 운명을 늘어놓도록 만들는지 아직도 수수께끼에 붙일 수밖에 없네.

불쌍한 의문에 싸였던 그 「정말 절뚝발이가 될는지」도, 끝끝내는 한 개의 완전한 절뚝발이로 울면서 하던 예언에 어기지 않은 채 다시금 동경시가에 나타났네그려! 오고가는 사람이 이 가엾은 「인생의 패배자」 절뚝발이를 누구나 비웃지 않고는 맞고 보내지 아니하는 것을 설워하는 불유쾌한 마음이 나는 아무리 용기를 내어 보았으나 소제시킬 수가 없이 뿌리 깊이 박혀 있네 그려.

「영원한 절뚝발이 그러나 절뚝발이의 무서운 힘을 보여 줄 걸 자세히 보아라」

이곳에서도 원한과 울분에 짖는 단말마의 전율할 신에 대한 복수의 맹서를 볼 수 있는 것일세. 내 몸이 이렇게 악지를 쓸 때에 나는 스스로 내 몸을 돌아다 보며 한없는 연민과 고독을 느끼는 것일세. 물에 빠져 애쓰는 사람의 목이 수면 위에 솟았을 때 그의 눈이 사면의 무변대해임을 바라보고 절망하는 듯한 일을 나는 우는 것일세. 그때마다 가장 세상에 마음을 주어 가까운 사람에게 둘러싸여 따뜻한 이불 속에 고요히 누워서 그들과 또 나의 미소를 서로 교환하는 그러한 안일한 생활이 하루바삐 실현되기를 무한히 꿈꾸고 있는 것일세. 그것은 즉시로 내 몸을 깊은 「노스탤지어」에 빠뜨리어서는 고향을 꿈꾸게 하고 친구를 꿈꾸게 하고 육친과 형제를 꿈꾸게 하도록 표상되는 것일세. 나는 가벼운 고통 가운데에도 눈물겨운 향수(鄕愁)의 쾌감을 눈 감고 가만히 느끼는 것일세.

명고옥(名古屋)의 쿡 생활 이후로 전전 유랑의 칠년 동안 한 번도 거울을 들여다본 적이 없던 나는 절뚝발이로 동경에 돌아와서 처음으로 거울에 비치는 나의 모양이 나로서도 놀라지 않을 수 없을 만치 그렇게도 무섭게 변한 데에 「악!」 소리를 지르지 아니할 수 없었네. 그것은 청춘―뿐이랴 인생의 대부분을 박탈당한 썩어 찌그러진 험집[傷痕] 투성이의 값없는 골동품인 나였던 것일세.

그때에도 나는 또한 나의 동체(胴體)를 꽉 차서 치밀어 올라오는 무거운 「피스톤」에 눌리우는 듯한 절망에 빠졌었네. 그러나 즉시 그것은 나에게 아무것도 아니하는 것을 가르쳐 주며 이 패배의 인간을 위로하며 격려하여 주데.

그때에

「그러면 M군도 아차 T도!」

이런 생각이 암행열차(暗行列車)같이 나의 허리를 스쳐갔네. 별안간 자네의 얼굴이 보고 싶어서 환등(幻燈)을 보는 어린 아해의

「무엇이 나올까」

하는 못생긴 생각에 가득 찼네. 그래서 나도 자네에게 나의 근영(近影)을 한 장 보내거니와 자네도 나의 환등을 보는 어린아해 같은 마음을 생각하여 자네의 최근 사진을 한 장 보내 주기를 바라네. 물론 서로 만나 보았으면 그 위에 더 시원하고 반가울 일이 있겠나마는 기필치 못할 우리의 운명은 지금도 자네와 나, 두 사람의 만날 수 있는 아무 방책도 가르쳐 주지 않네 그려!

내가 주인에게 그만큼 나의 마음을 붙일 수까지 있었느니만큼 아직 나는 아무 데로도 옮길 생각은 없네. 지금 생각 같아서는 앞으로 얼마든지 이곳에 있을 것 같으니까 나에게 결정적 변동이 없는 한 자네는 안심하고 이곳으로 편지하여 주기를 바라네. T는 요즈음 어떠한가 여전히 적빈(赤貧)에 심신(心身)을 쪼들리우고 있다 하니 그도 한 운명에 맡길 수밖에 없지 않겠나.

나의 안부 잘 전하여 주게. 내가 집을 떠나 십년 동안 T에게 한 장 편지를 직접 부치지 아니한 데 대하여서는―나의 마음 가운데에 털끝만치라도 T에게 악의가 있지 아니한 것은 물론 자네가 잘 알고 있으니깐―자네의 사진이 오기를 기다리며, 또 자네의 여전한 건강을 빌며―영원한 절뚝발이 X로부터.


3

벗어나려고 애쓰는 환경일수록 그 환경은 그 사람에게 매어달려 벗어나지를 않는 것이다. T가 아무리 그 적빈을 벗어나려고 애써 왔으나 형과 갈린 지 십유여 년인 오늘까지도 역시 그 적빈을 면할 수는 없었다. 아버지의 불의의 실패가 있기 전까지도 그래도 그 곳에서는 상당히 물적으로 유족한 생활을 하고 있던 M군의 호의로 T가 결정적 직업을 가지게 되지 못하였었다 할진댄 세상에서― 더욱이 가난한 사람은 더욱 가난해지지 않으면 아니되게 변하여 가는 세상에서 T의 가족들은 그날 그날의 목을 축일 것으로 말미암아 더욱이나 그들의 머리를 썩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 위험성 적은 생계를 경영해 나아간다고는 하여도 역시 가난 그것을 한 껍데기도 면치 못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행인지 불행인지 T의 안해는 「업」이 하나를 낳는 뒤로는 사나이도 계집아이도 낳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T의 가정은 쓸쓸하였다. 그러나 다만 세 식구 밖에 안되는 간단한 가정으로도 그때나 이때나 존재하여 왔던 것이다.

전번 가운데에서 출생한 업이가 반드시 못났으리라고 추측한다면 그것은 전연 사실과 반대되는 추측일 것이다. 업이는 그 아버지 T에게도 또 그 외에 그 가족의 누구에서도 찾아 볼 수 없을 만치 영리하고 예민한 재질과 풍부한 두뇌의 소유자로 태어났던 것이다. 과연 업이는 어려서부터 간기(癎氣)로 죽을 뻔 죽을 뻔하면서 겨우 살아났다. 그러나 지금에는 건강한 몸이 되었다. T의 적빈한 가정에는 그들에게 다시없는 위안거리였고 자랑거리였었다. T의 부처는 업이가 어려서부터 죽을 것을 근근히 살려왔다는 이유로도 또 남의 자식보다 잘나고 똑똑하다는 이유로도, 그 가정의 자랑거리라는 이유로도, 그 아들의 덕을 보겠다는 이유로도 그들의 줄 수 있는 최절정의 사랑을 업에게 바쳐왔던 것이다.

양육의 방침이 그 양육되는 아이의 성격의 거의 전부를 결정한다면 교육의 방침도 또한 그의 성격에 적지 아니한 관계를 끼칠 것이다. 업이는 적빈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또한 M군의 호의로 받을 만큼의 계제적(階梯的) 교육을 받아왔다. 좋은 두뇌의 소유자인 업에게 대하여 이 교육은 효과 없지 않을 뿐이랴! 무엇에든지 그는 남보다 먼저 당할 줄 알고 남보다 일찍 알 줄 알고 남보다 일찍 느낄 줄 아는 혁혁한 공적을 이루었다. M군이 해외에 있는 그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마다 자기의 공로를 자랑하는 의미를 떠난 더없는 칭찬도 칭찬이었거니와 학교 선생이나 그들 주위의 사람들은 누구나 다 최고의 칭찬하기를 아끼지 아니하여 왔던 것이다. T에게는 이것이 몸에 넘치는 광영인 것은 물론이요 그러므로 업이는 T의 둘도 없는 자랑거리요 보물이었던 것이다.

「훌륭한 아들을 가진 사람」

이와 같은 말을 들은 T로 하여금 업을 위하여야 하는 것은 물론이요 이와 같은 말을 영구히 몸에 받기 위하여서는 업이를 T의 상전(上殿)으로 위하게까지 시키었다. 너무 과도한 칭찬의 말은 T에게 기쁨을 줄 뿐 아니라 T에게 또한 무거운 책임도 주는 것이었다.

「이 아들을 위해야 한다.」

업을 소유한 아버지의 T씨가 아니었고 T씨를 소유한 아들이었던 것이다. 업은 T씨가 가장 그 책임을 다하여야만 하고 그 충실을 다하여야만 할 T씨의 주인인 것이었다. T씨는 업이 그 어머니의 뱃속을 하직하던 날부터 오늘까지 성난 손으로 업을 때려 본 일이 한 번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변한 어조로 꾸지람 한 마디 못하여 본 채로 왔던 것이다.

「내가 지금은 이렇게 가난하지만 저것이 자라서 훌륭하게 되는 날에는 나는 저것의 덕을 보리라.」

다만 하루라도 바삐 업이 학업을 마치기만 그리하여 하루라도 바삐 훌륭한 사람이 되어지기만 한없이 기다리던 것이었다. 비록 업이 여하한 괴상한 행동에 나아가더라도 T씨는

「저것도 다 공부에 소용되는 일이겠지.」

하고 업이 활동사진 배우의 푸로마이트를 사다가 그의 방벽에다가 죽 붙여 놓아도 그것이 무엇이냐고 업에게도 M군에게도 묻지도 아니하고 그저 이렇게만 생각하여 버리고 고만두는 것이었다. 더욱이 무식한 T씨로서는 그런 것을 물어 보거나 혹시 잘못하는 듯한 점에 대하여 충고라도 하여 보거나 하는 것은 필요 없는 간섭같이 생각되어 전혀 입을 내어밀기를 주저하여 왔던 것이다. 언제나 T씨는 업의 동정(動靜)을 살펴가며 업이가 T씨 밑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T씨가 업의 밑에서 사는 것과 같은 모순에 가까운 상태에서 그날 그날을 살아왔던 것이다.

이런 때에 선천적 성격(先天的 性格)이라는 것은 의문이 많은 것이다. 사람의 성격은 외래의 자극(外來의 刺戟) 즉 환경에 다라 형성지어지는 것이라는 결론(結論)에 도달치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은 교육방침 밑에 있는 또 이와 같은 환경에서 자라나는 업의 성격이 그가 태어난 가정의 적빈함에 반대로 교만하기 짝이 없고 방종하기 짝이 없는 업을 형성할 것은 물론임에 오류(誤謬)를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업은 자기 주위의 모든 사람을 보기를 모두 자기 아버지 T씨와 같이 보는 것이었다. 자기의 말에 전연 노예적으로 굴종할 것이라고 믿는 것이었다. 자기를 호위하여 주리라고 믿는 것이었다. 업의 걷잡을 수도 없는 공상은 천마(天馬)가 공중을 가는 것과 같이 자유롭게 구사(驅使)되어 왔던 것이다.

<햄릿>의 「유령(幽靈)」, <올리브>의 「감람수의 방향」, <브로드웨이>의 「경종」, <맘모―톨>의 「리젤」, <오페라>좌의 「화문천정―」

이렇게

허영! 그것들은 뒤가 뒤를 물고 환상에 젖은 그의 머리를 끊이지 아니하고 지나가는 것이었다. 방종(放縱) 허영(虛榮) 타락 이것은 영리한 두뇌의 소유자인 업이라도 반드시 걸어야만 할 과정이 아닐까 그들의 가정이 만들어내인 그들의 교육방침이 만들어내인 그러나 엉뚱한 결과를 가져오게 한 예기 못한 기적. 업은 과연 지금에 그의 가정 혜성같이 나타난 한 기적적 존재인 것이었다.


4

M군은 실망하였다. 업은 아무리 생각하여 보아도 ‘마이너스’의 존재였다.

「저런 사람이 필요할까? 아니 있어도 좋을까?」

그러나 ‘유해무익’이라는 참을 수 없는 결론이었다.

「가지가 돋고 꽃이 피기 전에 일찍이 그 순(荀)을 잘라 버리는 것이 낫지 않을까」

M군에게 대하여서는 너무도 악착한 착상(着想)이었다. 그리하여

「다시 한 번 업의 전도를 위하여 잘 지도하여 볼까」

그러나

「한 사람의 사상은 반응(反應)키 어려운 만치 완성되어 있지 않은가. 뿐만 아니라 설복(說服)을 당하기에는 업의 이지(理智)는 너무 까다롭다」

M군의 업에게 대한 애착은 근본적으로 다하여 버렸다. M군의 이러한 정신적 실망의 반면에는 물질적 방면에서 받은 영향(影響)도 적지 아니하였다. 그것은 오늘날까지 업의 학비(學費)를 대어 오던 M군이 수년 전에 그의 아버지가 불의의 액운(厄運)으로 말미암아 파산(破産)을 당하다시피 되어 유유자적(悠悠自適)하던 연구실의 생활도 더하지 못하고 어느 관립병원 촉탁의(囑託醫)가 되어 가지고 온갖 물질적 고통을 당하지 않으면 아니되게 되었던 것이다. 그간으로도 M군은 여러 번이나 업의 학비를 대이기를 단념하려 하였던 것이었으나 그러나 아직 그의 업에 대한 실망이 그리 크지도 아니하였고 또 싹이 나려는 아름다운 싹을 그대로 꺾어 버리는 것도 같아서 어딘지 애착 때문에 매어 달려지는 미련(未練)에 끌리어 그럭저럭 오늘까지 끌어왔던 것이었으나 지금에 이르러서는 그의 업에 대한 애착과 미련도 곱게 어디론지 다 사라지고 말았다. 그렇기 때문에 이 물질적 관계가 그로 하여금 업을 단념시키기를 더욱 쉽게 하였던 것이나 아니었던가 한다.

「업이! 이번 봄은 벌써 업이 졸업일세 그려!」

「네― 구속 많고 귀찮던 중학생활도 이렇게 끝나려 하고 보니 섭섭한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면 졸업 후의 지망은?」

「음악학교!―」

그래도 주저하던 단념은 M군을 결정시켜 버렸다.

「업이 자네도 잘 알다시피 지금의 나는 나 한 몸뚱이를 지지(支持)해 나아가기에도 어려운 가운데 있어! 음악학교의 뒤를 대어 줄 수가 없다는 것은 결코 악의가 아니야. 나의 지금 생각 같아서는 천재의 순을 꺾는 것도 같으나 이제부터는 이만큼이라도 자네를 길러주신 가난한 자네의 부모의 은혜라도 갚아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네.」

이 말을 하는 M군은 도저히 업의 얼굴을 치어다볼 수가 없었다. M군의 이와 같은 소극적 약점(消極的 弱點)은 업으로 하여금

「오― 네 은혜를 갚으란 말이로구나.」

하는 부적당한 분개를 불지르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M군은 언제인가 학교 무슨 회에서 여흥으로 만인의 이목이 집중되는 연단 위에서 ‘바이올린’의 줄을 농락하던 그 업이를 생각하고 섭섭히 생각한 것만치 그에게는 조곰도 악의가 품어 있지 아니하였던 것이다. M군의 업에 대한 「내 몸이 어렵더라도 시켜 보려 하였으나」하던 실망은 즉시로 「나를 미워하는 세상,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세상」하는 업의 실망으로 옮기어졌다.

「내 생명을 꺾으려는 세상, 활동의 원동력을 주려 하지 않는 세상」

「M씨여, 당신은 나를 미워했지. 나의 천재를 시기했지. 나는 당신을 원망합니다.」

어두운 거리를 수없이 헤매이는 것이, 여항(閭巷)의 천한 계집과 씩뚝꺽뚝 하소연하는 것이 남의 집 담모퉁이에서 밤을 새우는 것이 공원 벤취에서 낮잠을 자는 것이, 때때로 죽어가는 T씨를 졸라서 몇 푼의 돈을 긁어내어 피부의 옅은 환락을 찾아다니는 것이 중학을 마치고 나온 청소년 업의 그후 생활이었다.

나날이 늘어가는 것은 업의 교만 방종한 태도

「아버지! 아버지는 왜 다른 아버지들과 같이 돈을 많이 좀 못 벌었습니까. 왜 남같이 자식 공부 좀 못 시켜 줍니까 왜 남같이 자식 호강 좀 못 시켜 줍니까 왜 돋으려는 순을 꺾느냐는 말이오.」

「아버지 무섭다」는 생각은 업에게는 털끝만치도 있을 리가 없었다. 그것은 차라리 T씨가 아들 업이를 무서워하는 것이 옳을 것 같은 상태였었으니까.

「오냐, 다― 내 죄다. 그저 아비 못 만난 탓이다.」

T씨는 이렇게 업에게 비는 것이었다.

「애비가 자식 호강 못 시티는 생각만 하고 자식이 애비 호강 좀 시켜 보겠다는 생각은 꿈에도 못하겠니? 예끼 못된 자식.」

T씨에게 이런 생각은 참으로 꿈에도 날 수 없었다. 「천재를 썩힌다. 애비가 죄다.」 이렇게 T씨의 생활은 속죄(贖罪)의 생활이었다. 그날의 밥을 끓여 먹을 쌀을 걱정하는 그들의 살림 가운데에서였으나 업의 「돈을 내라」는 절대한 명령에는 쌀팔 돈이고 전단을 잡혀서이고 당장에 내어 놓지 않고는 죽을 것 같이만 알고 잇는 T씨의 살림이었다. 차마 못 할 야료를 T씨의 눈앞에서 거리낌없이 연출하더라도 며칠밤씩 못 갈 데 가서 자고 들어오는 것을 T씨 눈으로 보면서도

「저것의 심정을 살핀다」는 듯이

「미안하다. 다 내 죄가 아니면 무엇이냐」는 듯이 업의 앞에서 머리를 숙인 채 업에게 말 한 마디 던져 볼 용기도 없이 마치 무슨 큰 죄나 진 종[僕]이 주인의 얼굴을 차마 못 쳐다보는 것과 같이 묵묵히 앉아 있는 것이었다. 때로는

「해외의 형은 어쩌면 돈도 좀 보내 주지 않는담」

이렇게 얼토당토 않은 그 형을 원망도 하여 보는 것이었다. T씨의 아들 업에 대한 이와 같은 죽은 쥐 같은 태도는 업의 그 교만종횡(驕慢縱橫)한 잔인성을 더욱더욱 조장시키는 촉진제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업에 실망한 M군과 M군에 실망한 업의 사이가 멀어져 감은 물론이요 그러한 불합리(不合理)한 T씨의 태도에 불만을 가득 가진 M군과 자기 아들에게 주던 사랑을 일조에 집어던진 가증한 M군을 원망하는 T씨의 사이도 점점 멀어져 갈 따름이었다. 다만 해외에 방랑하는 그의 소식을 직접 듣는 M군이 그의 안부를 전하는 동시에 그들의 안부를 알려 T씨의 집을 이따금 방문하는 외에는 그들 사이에 오고 감의 필요가 전혀 없던 것이었다.


M에게 보내는 편지(六信)

두 달! 그것은 무궁한 우주의 연령(年齡)으로 볼 때에 얼마나 짧은 것일까? 그러나 자네와 나 사이에 가로질렸던 그 두달이야말로 나는 자네의 죽음가지도 우려하고 자네는 나의 죽음까지도 우려하였음직한 추측이 오측(誤測)이 아닐 것이 분명할만치 그렇게도 초조와 근심에 넘치는 기―←고 긴 두 달이 아니었겠나. 자네와 나의 그 우려, 그러나 내가 이 글을 쓰며 자네의 틀림없는 건강을 믿는 것과 같이 나는 다시없는 건강의 주인으로서 나의 경력이 허락하는 한도까지 밤과 낮으로 힘차게 일하고 있는 것일세.

M군! 나의 이 끊임없는 건강을 자네에게 전하는 기쁨과 아울러 머지 아니하여 우리 두 사람이 얼굴과 얼굴을 서로 만나겠다는 기쁨을 또한 전하는 것일세.

우스운 말이나 지금쯤 창으로 노련(老鍊)한 한 사람의 의학사(醫學士)로 완성되어 있겠지. 그 노련한 의학사를 멀리 떨어져 나의 요즈음 열심히 하여 오던 의학의 공부가 지금에는 겨우 얼간 의사 하나를 만들어 놓았다는 것은 그 무슨 희극적 대조이겠나 이것은 이곳에 친구의 직접의 원조도 원조이겠지만은 또 한편으로 멀리 있는 자네의 나에게 대하여 주는 끊임없는 사랑의 덕이 그 대부분이겠다고 믿으며 도한 자네가 더 한층이나 반가와할 줄 믿는 소식이겠다고도 믿는 것일세. 내가 고국에 돌아간 다음에는 자네는 나의 이 약한 손을 이끌어 그 길을 함께 걸어 주겠다는 것을 약속하여 주기를 바라며 마지않는 것일세.

오늘날 꿈에만 그리던 고국으로 돌아가려 하고 보니 감개무량하여 나의 가슴을 어지럽게 하네. 십유여 년의 기나긴 방랑생활에서 내가 얻은 것은 무엇인가 한 분의 어머니를 잃었네. 그리고 절뚝발이가 되었네. 글 한 자 못 배웠네. 돈 한푼 못 벌었네. 사람다운 일 하나 못 하여 놓았네. 오직 누추한 꿈 속에서 나의 몸서리칠 청춘을 일생의 중요한 부분을 삭제당하기를 그저 달게 받아왔을 따름일세. 차인잔고(差引殘高)가 무엇인가 무슨 낯으로 고향 땅을 밟으며 무슨 낯으로 형제의 낯을 대하며 무슨 낯으로 고향 친구의 낯을 대할 것인가? 오직 회한(悔恨) 차인잔고가 있다고 하면 오직 이 회한의 한 뭉텅이가 있을 따름이 아니겠나? 그러나 다시 생각하고 나는 가벼운 한숨으로써 나의 괴로운 마음을 안심시키는 것이니 그렇게 부끄러워야만 할 고향땅에는 지금쯤은 나의 얼굴, 아니 나의 이름이나마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의 한 사람조차도 있지 아니할 것일 뿐이랴. 그 곳에는 이 인생의 패배자인 나를 마음으로써 반가이 맞아줄 자네 M군이 있을 것이요, 육친의 형제 T가 있을 것이므로일세. 이 기쁨으로 나는 나의 마음에 용기를 내이게 하여 몽매에도 그리한 고향의 흙을 밟으려 하는 것일세.

근 삼년 동안이나 마음과 몸의 안정을 가지고 머물러 있는 이곳의 주인은 내가 자네와 작별한 후에 자네에게 주던 이 만큼의 우정을 아끼지 아니한 그렇게 친한 친구가 되어 있다는 말을 자네에게 전한 것을 자네는 잊지 아니하였을 줄 믿네. 피차에 흉금을 놓은 두 사람은 주객(主客)의 굴레를 일찍이 벗어난 그리하여 외로운 그와 외로운 나는 적적(비록 사람은 많으나)한 이 집안에 단 두 사람의 가족이 되었네. 이렇게 그에게 그의 가족이 없는 것은 물론이나 이만한 여관 외에 처처에 상당한 건물들을 그의 소유로 가지고 있는 꽤 있는 그일세.

나로서 들어 아는 바 그의 과거가 비풍참우(悲風慘雨)의 혈사를 이곳에 나열하면 무엇 하겠나마는 과연 그는 문자대로의 고독한 낭인(浪人)일세. 그러나 그의 친구들의 간곡한 권고와 때로는 나의 마음으로의 권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결코 아내를 취(聚)하지 아니하는 것일세.

「돈도 그만큼 모았고 나이도 저만큼 되었으니 장차의 길고 긴 노후(老後)의 날을 의지할 신변의 고적을 위로할 해로가 있어야 아니하겠소」

「하 그것은 전혀 내 마음을 몰라 주는 말이오」

일상에 내가 나의 객관에 고적을 그에게 하소연할 때면 그는 도리어 나를 부러워하며 자기 신변의 고적과 공허를 나에게 하소연하는 것일세. 그러면서도 그는 결코 안해를 얻지 아니하겠다 하며 그렇다고 허튼 여자를 함부로 대하거나 하는 일도 결코 없는 것일세.

「그러면 그가 여자에 대하여 무슨 갖지 못할 깊은 원한이나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선입관념(先入觀念)을 가진 눈으로 보아서 그런지 그는 남자에게는 어떤 사람에게든지 친절하게 하면서도 여자에게는 어떤 사람에게든지 냉정하기 짝이 없는 것일세. 예(例)를 들면 이 집 여중(女中)들에게 하는 그의 태도는 학대, 냉정, 잔인, 그것일세.

나는 때로

「너무 그러지 마오, 가엾으니」

「여자니깐」

그는 언제나 이렇게 대답할 뿐이었네. 그의 이 수수께끼의 대답은 나의 의아(疑訝)를 점점 깊게만 하는 것이었네. 하루는 조용한 밤 두 사람은 또한 떫은 차를 마셔가며 세상 이야기를 하고 있었네. 그 끝에

「여자에 관련된 남에게 말 못할 무슨 비밀의 과거가 있소?」

「있소! 있되 깊소!」

「내게 들려 줄 수 없소?」

「그것은 남에게 이야기할 필요도 이유도 전혀 없는 것이오. 오직 신(神)이 그것을 알고 있을 따름이어야만 할 것이오. 그것은 내가 눈을 감고 내 그림자가 지상에서 사라지는 동시에 사라져야만 할 따름이오」

나는 물론 그에게 질기게 더 묻지 아니하였네. 그의 그림자와 함께 사라질 비밀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쾌활한 기상의 주인인 그는 또한 남다른 개성의 소유자인 것일세.

그는 나보다 십여세(十餘歲) 맏일세. 그의 나이에 겨누어 너무 과하다 할만치 많이 난 그의 흰 머리털(白髮)은 나로 하여금 공경하는 마음을 가지게 하네. 또한 동시에 그의 풍파 많은 과거를 웅변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도 같으니 그와 같은 그가 나를 사귀어 주기를 동년배의 터놓은 사이의 우의(友誼)로써 하여 주니 내가 나의 방랑생활에 있어서 참으로 나의 ‘희로애락’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그뿐이라고 어찌 말하지 않겠나? 그와 나는 구구한, 그야말로 경제문제(經濟問題)를 벗어난 가족―그가 지금에 경영하고 있는 여관(旅館)은 그와 내가 주객의 사이는커녕 누가 주인인지도 모르게 차라리 어떤 때에는 내가 주인 노릇을 하게금 되는 말하자면 공동 경영 아래에 있는 것과 같은 그와 나 사이인 것일세. 그의 장부(帳簿)는 나의 장부이었고, 그의 금고(金庫)는 나의 금고이었고, 그의 열쇠는 나의 열쇠이었고, 그의 이익과 손실(利益損失)은 나의 이익과 손실이었고, 그의 채권과 채무(債權債務)는 나의 채권과 채무인 것이었네. 그와 나의 모―든 행동은 그와 내가 목적을 같이 한 방향을 같이 한 그와 나의 행동들이었네. 참으로 그와 내가 서로 믿음은 마치 한 들보를 떠받치고 있는 양편 두 개의 기둥이 서로 믿지 아니하면 아니되는 사이도 같은 것이었네.

이와 같은 기쁜 소식만을 나열하고 있던 나는 지금 돌연히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슬픈 소식을 자네에게 전하지 않을 수 없는 운명에 조우(遭遇)된 지 오래인 것을 말하네. 나와 만난 후 삼년에 가까운 동안뿐 아니라 그의 말에 의하면 그 이전에도 몸살이나 감기 한 번도 앓아 본 적이 없는 퍽 건강한 몸의 주인이던 그가 졸지에 이렇게 쓰러졌다는 것은 그와 오랫동안 같이 있던 나로서는 더욱이나 의외인 것이었네. 한 이삼일을 앓는 동안에는 신열이 좀 있다 하더니 내가 옆에 앉아 있는 앞에서 고요히 잠자는 듯이 갔네.

「사람 없는 벌판에서 별(星)을 쳐다보며 죽을 줄 안 내 몸이 오늘 이렇게 편안한 자리에 누워서 당신의 서러운 간호를 받아가며 세상을 떠나니 기쁘오. 당신의 은혜는 명도에 가서 반드시 갚을 것을 약속하오―이 집과 내 가진 물건의 얼마 안되는 것을 당신에게 맡기기로 수속까지 다 되어 있으니 가는 사람의 마음이라 가엾이 생각하여 맡아 주기를 바라고 아무쪼록 그것을 가지고 고향에 돌아가 형제 친구들과 함께 기쁘게 살아 주기를 바라오. 내가 이렇게 하잘 것 없이 갈 줄은 나도 몰랐소. 그러나 그것도 다― 내가 나의 과거에 받은 그 뼈살에 지나치는 고생의 열매가 도진 때문인 줄 아오. 나를 보내는 그대도 외롭겠소마는 그대를 두고 가는 나는 사바(裟婆)에 살아 꿈즉이던 날들보다도 한층이나 외로울 것 같소!」

이렇게 쓰디 쓴 몇 마디를 남겨 놓고 그는 갔네. 그후 그의 장사도 치른 지 며칠 째 되던 날, 나는 그의 일상 쓰던 책상 속에서 위의 말들과 같은 의미의 유서(遺書), 그리고 문서들을 찾아내었네.

이제 이것이 나에게 기쁜 일일까 그렇지 않으면 슬픈 일일까 나는 그 어느 것이라고도 말하기를 주저하는 것일세.

내가 그의 생전에 그와 내가 주고받던 친교를 생각하면 그의 죽음은 나에게 무한히 슬픈 일이 아니겠나마는 어머니의 뱃속을 떠나던 날부터 적빈에만 지질리워 가며 살아온 내가 비록 남에게는 얼마 안되게 보일는지 모르겠으나 나로서는 나의 일생에 상상도 하여 보지도 못할만치의 거대한 재산을 얻은 것이 어찌 그다지 기쁜 일이 아니겠다고 생각하겠는가. 이러한 나의 생각은 세상을 떠난 그를 생각하기만 하는 데에서도 더없을 양심의 가책을 아니 받는 것도 아니겠으나 그러나 위의 말한 것은 나의 양심의 속임 없는 속삭임인 것을 어찌 하겠나.

「어째서 그가 이것을 나에게 물려 줄까」

「죽은 그의 이름으로 사회업에 기부할까」

이러한 생각들이 끊임없이 나의 머리에 지나가고 지나오고 한 것은 또한 내가 나의 마음을 속이는 말이겠나? 그러나 물론 전에도 느끼지 아니한 바는 아니나 차차 나이 들고 체력이 감퇴되고 원기가 좌절됨을 따라서 이 몸의 주위의 공허가 역력히 발견되고 청운(靑雲)의 젊은 뜻도 차차 주름살이 잡히기를 시작하여 한낱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 한 낱 이 몸의 쓸쓸한 느낌만이 나날이 커가는 것일세. 그리하여 어서 바삐 고향에 돌아가 사랑하는 친구와 얼싸안기 원하며 그립던 형제와 섞이어 가며 몇 날 남지 아니한 나의 여생(餘生)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좀더 기쁨과 웃음과 안일한 가운데에서 보내고 싶은 마음이 날이 가면 갈수록 최근에 이르러서는 일층 더하여 가는 것일세. 내가 의학공부를 시작한 것도 전전푼의 돈이나마 모으기 시작한 것도 그런 생각에서 나온 가엾은 짓들이었네.

사회사업에 기부할 생각보다도 내가 가질 생각이 더 컸던 나는 드디어 그 가운데의 일부를 헤치어 생전 그에게 부수(附隋)되어 있던 용인(庸人) 여중(女中)들과 얼마 아니되는 채무를 처치한 다음 나머지의 전부를 가지고 고향에 돌아갈 결심을 하였네. 그들 가운데 몇 사람으로부터는 단언커니와 나의 일생에 들어본 적이 없던 비난의 말까지 들었네.

「돈! 재물! 이것 때문에 그의 인간성(人間性)이 이렇게도 더럽게 변하고 말다니! 죽은 그는 나를 향하여 얼마나 조소할 것이며 침 배앝을 것이냐」

새삼스러이 찌들고 까부러진 이 몸의 하잘 것 없음을 경멸하여 연민하였네. 그러면서도

「이것도 다― 여태껏 나를 붙들어 매고 그는 적빈 때문이 아니냐」

이렇게 자기변명의 길도 찾아보면서 자기를 위로하는 것이었네.

친구를 잃은 슬픔은 어느 결에 사라졌는가 지금에 나의 가슴은 고향 땅을 밟을 기쁨 친구를 만날 기쁨 형제를 만날 기쁨 이러한 가지의 기쁨들로 꽉 차 있네. 놀라거니와 나의 일생에 있어서 한편으로는 양심의 가책을 받아가면서라도 최근 며칠 동안만큼 기뻤던 날이 있었던가를 의심하네.

아― 이것을 기쁨이라고 나는 자네에게 전하는 것일세 그려. 눈물이 나네 그려!

자네는 일상 나의 조카 업의 칭찬의 말을 아끼지 아니하여 왔지. 최근에 자네의 편지에 이 업에 대한 아무런 말도 잘 볼 수 없음은 무슨 일일까, 하여간 젖 먹던, 코 흘리던 그 업이를 보아 버리고 방랑생활 십유여 년 오늘날 그 업이 재질의 풍부한 생래의 영리한 업이로 자라났다 하니 우리 집안을 위하여서나 일상에 적빈에 우는 T 자신을 위하여서나 더없이 기뻐할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이제는 우리 같은 사람은 아무 소용이 없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감개무량하네. 또한 미구에 만나 볼 기쁨과 아울러 이 미지수의 조카 업이에 대하여 많은 촉망과 기대를 가지고 있는 것일세.

M군! 나는 아무쪼록 빨리 서둘러서 어서 속히 고향으로 돌아갈 차비를 차리려 하거니와 이곳에서 처치해야만 할 일도 한두 가지가 아니고 해서 아직도 이곳에 여러 날 있지 아니하면 아니될 형편이나 될 수만 있으면 세전(歲前)에 고향에 돌아가 그립던 형제와 친구와 함께 즐거운 가운데에서 오는 새해를 맞이하려 하네. 어서 돌아가서 지나간 옛날을 추억도 하여 보며 그립던 회포를 풀어도 보아야 할 터인데!

일기 추운데 더욱더욱 건강에 주의하기를 바라며 T에게도 불일간 내가 직접 편지하려고도 하거니와 자네도 바쁜 몸이지만 한 번 찾아가서 이 소식을 전하여 주기를 바라네. 자―그러면 만나는 날 그때까지 평안히― X로부터……

특징

그의 소설 중에서 드물게 사실주의적 이야기 구성을 취하고 있다. 형식적으로는 특이하게 작품 연재 1회와 4회째 각각 하나씩의 서문이 붙어 있다.

  • 서문 1: '불행한 운명'은 어떤 방식으로도 초극되지 않는다는 것을 밝힌 것, 이 소설의 창작의도이자 내용.
  • 서문 2: 이 소설이 실망 가운데 있는 자신이 죽음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쓴 ‘무서운 기록’임을 밝힘.

RDF 및 네트워크 그래프

RDF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12월 12일 이상 A는 B가 창작했다
12월 12일 1930년 A는 B에 발표됐다
12월 12일 조선지 A는 B에 실렸다
12월 12일 중편소설 A는 B에 속한다
12월 12일 서문 A는 B가 있다
12월 12일 사실주의 A는 B 성격을 띤다
12월 12일 데뷔작 A는 B이다

네트워크 그래프

참고자료

12월 12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검색일: 6월 10일

작성자 및 기여자

4222조의 이경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