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촌"의 두 판 사이의 차이
한성대학교 미디어위키
잔글 (→작성자) |
잔글 (→1930년대 성북동 문인촌 형성의 배경) |
||
(같은 사용자의 중간 판 하나는 보이지 않습니다) | |||
1번째 줄: | 1번째 줄: | ||
==1930년대 성북동 문인촌 형성의 배경== | ==1930년대 성북동 문인촌 형성의 배경== | ||
− | #동소문 밖 성북리는 산자수려한 경관으로 유명하여 1920년대 후반~1930년대 초반 성안 사람들 가운데 이곳으로 이주하는 인구 증가(창의문 밖 세검정 부근도 문인촌으로 유명) | + | #[[동소문]] 밖 성북리는 산자수려한 경관으로 유명하여 1920년대 후반~1930년대 초반 성안 사람들 가운데 이곳으로 이주하는 인구 증가(창의문 밖 세검정 부근도 문인촌으로 유명) |
#일제강점기 중반 서울의 도시화가 상당히 진전되고 본정통(현 명동, 충무로)을 중심으로 남대문, 서대문 안팎에 거주하는 일본인 인구가 증가하면서 비교적 한적하고 일본인 거주민이 거의 없는 동소문 밖이 새로운 주거지로 부상 | #일제강점기 중반 서울의 도시화가 상당히 진전되고 본정통(현 명동, 충무로)을 중심으로 남대문, 서대문 안팎에 거주하는 일본인 인구가 증가하면서 비교적 한적하고 일본인 거주민이 거의 없는 동소문 밖이 새로운 주거지로 부상 | ||
− | #1920년대 중반부터 인접한 명륜동, 혜화동, 동숭동에 경성제국대학을 비롯한 고등교육기관이 다수 설립되면서 거대한 조선인 학교촌이 형성되고, | + | #1920년대 중반부터 인접한 명륜동, 혜화동, 동숭동에 경성제국대학을 비롯한 고등교육기관이 다수 설립되면서 거대한 조선인 학교촌이 형성되고, [[성북동]]은 그 배후지로 기능하게 됨→ 조선인 문인, 화가 등 문화예술인들의 이주 증가 |
==일제강점기 성북동 거주 문화예술인== | ==일제강점기 성북동 거주 문화예술인== | ||
24번째 줄: | 24번째 줄: | ||
===음악=== | ===음악=== | ||
#채동선 | #채동선 | ||
+ | |||
+ | ==참고 문헌== | ||
+ | * 성북구청·성북문화원, 『성북동 역사문화자원 조사·연구』,성북구청·성북문화원, 2016. | ||
==작성자== | ==작성자== | ||
*작성자 : [[김현지]] | *작성자 : [[김현지]] |
2018년 6월 21일 (목) 23:35 기준 최신판
1930년대 성북동 문인촌 형성의 배경
- 동소문 밖 성북리는 산자수려한 경관으로 유명하여 1920년대 후반~1930년대 초반 성안 사람들 가운데 이곳으로 이주하는 인구 증가(창의문 밖 세검정 부근도 문인촌으로 유명)
- 일제강점기 중반 서울의 도시화가 상당히 진전되고 본정통(현 명동, 충무로)을 중심으로 남대문, 서대문 안팎에 거주하는 일본인 인구가 증가하면서 비교적 한적하고 일본인 거주민이 거의 없는 동소문 밖이 새로운 주거지로 부상
- 1920년대 중반부터 인접한 명륜동, 혜화동, 동숭동에 경성제국대학을 비롯한 고등교육기관이 다수 설립되면서 거대한 조선인 학교촌이 형성되고, 성북동은 그 배후지로 기능하게 됨→ 조선인 문인, 화가 등 문화예술인들의 이주 증가
일제강점기 성북동 거주 문화예술인
문학
- 한용운
- 이종린
- 김억
- 김일엽
- 김기진
- 이태준
- 횽효민
- 김내성
- 김향안
- 조지훈
미술
- 김용준
- 김복진
- 김환기
음악
- 채동선
참고 문헌
- 성북구청·성북문화원, 『성북동 역사문화자원 조사·연구』,성북구청·성북문화원, 2016.
작성자
- 작성자 : 김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