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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lass="metadata" style="background:#f2f2f2; width:320px; margin: 5px 5px 5px 5px;" cellspacing="10" align="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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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colspan="2" style="background:#3ca9a9; color:#ffffff; font-size:130%; text-align:center;" |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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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colspan="2" style="text-align:center;" | [[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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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style="width:80px; text-align:center;" |'''작품명''' ||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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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style="text-align:center;"|'''저자''' || [[김상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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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style="text-align:center;"|'''창작년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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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길'''은 다음과 같은 뜻을 지니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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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
| + | ==문학== |
− | ==등장인물== | + | '길'이라는 제목의 문학 작품 |
− | 성삼문(37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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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삼문 아내(30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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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숙주(38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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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숙주 아내(30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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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양대군(38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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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명회(39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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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운(35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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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종의 영상(35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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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 졸(20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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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요==
| + | [[길(김소월)|길]]: 김소월의 시 |
− | 第二回大韓民國演劇祭參如作品(제2회대한민국연극제참여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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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金 相 烈 作 (김 상 열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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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吉 明 一 演出(길 명 일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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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劇團作業制26回公演作品(극단작업제26회공연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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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본==
| + | [[길(김상열)|길]]: 김상열의 소설 |
− | 막이 오르면서 천둥과 바람이 몰아 친다. 성삼문의 집과 신숙주의 집이 동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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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인다. 양쪽으로 번갈아 조명의 강도를 나누어 주어서 피차 방해를 받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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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다. 한쪽에 성삼문과 그의 아내 그리고 반대쪽에 신숙주와 그의 아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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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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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아내] 이렇게 비바람이 몰아치는데 어디를 그렇게 일찍 다녀오세요? | |
− | [성삼문] 약수터에 다녀오는 길이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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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아내] 이런 날은 쉬셔두 될텐데,전 천둥 소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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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 0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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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놀라 깨어 보니 자리에 안계시더군요. 약수터에 나가신 줄은 몰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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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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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래도 사람들이 꽤 많이 올라오던데, 노인네 어린애 할 것없이 말야.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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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벽 산책은 상쾌해서 좋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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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아내] 바람에 나뭇잎들이 많이 떨어졌겠죠, 바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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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삼문] 골자기마다 발목이 빠질 정도로 수북하게 쌓였더군. 이제 완연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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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을색이 짙어가고 있어, 마른 풀잎 냄새가 여간 향기롭지 않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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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아내] 전, 뜰에 피어난 국화가 적어지면 어떡하나 하고 밤새 조바심을 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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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뭐예요. 일어나자 마자 뜰로 뛰어내려가 봤더니 어제 저녁 그대로 피어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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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걸 보고서야 겨우 한숨을 돌렸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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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삼문] 그깐 국화를 가지구 그렇게 조바심을 쳐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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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 아내] 아니 당신두 잘 아시면서 그러세요. 친정어머니가 얼마나 소중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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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싸가지고 오신거라구요. 손수 호미로 땅을 파신다, 거름을 주신다 하시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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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성스레 심어 주신게 아녜요. 아마 그게 작년 봄이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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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삼문] 그 어른이 다녀가신 지가 벌써 그렇게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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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 아내] 얼마나 극성스런 성미시던지, 행여 뿌리가 상할까봐 짚으로 둥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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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싸고는 또 그 위를 가는 새끼줄로 칭칭 동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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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삼문] 그런 건 꼭 당신을 닮아서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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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 아내] 어머, 어떻게 어머니가 저를 닮아요. 제가 어머니를 닮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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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삼문] 하여튼 그쪽 성깔들은 너무 깐깐해서 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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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 아내] 전 어머니 따라 갈려면 아직 어림 반푼어치도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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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삼문] 사람들이 둥글한데가 없이 그렇게들 모가 나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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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 아내] 괜히 처가집 흉을 보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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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삼문] 흥이랄 것까지는 없지만 너무들 유난스러워서 하는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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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 아내] 그 유난스러운 것두 다 당신 위해서 그러는 거예요. 그리고 애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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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해서죠. 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어요. 고은 흙을 뿌리 위에 덮으시면서 하시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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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씀이 [이 국화꽃이 필 때면 넌 아마 해산달이 될게다. 또 아들이겠지.] 그때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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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신중이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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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삼문] 그랬었나? 참 그놈들은 아직 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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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 아내] 코까지 골아가면서 자고 있어요. 둘쨋놈하구 막내놈하군 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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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방에서 돌아오자 마자 연을 가지고 산으로 올라갔지 뭐예요. 저녁 때가 다 되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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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돌아오질 않길래, 하두 궁금해서 대문을 나서 뒷산엘 올라가봤더니(웃음) 글쎄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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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 개가 서로 엉켜서 어쩌질 못하곤 울고서 있지 뭐예요. 그렇게 융통성이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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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 꼭 당신을 닮은것 같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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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 0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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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삼문] 나쁜 건 전부 나구려. 당신은 기껏 아이들에게 연이나 만들어 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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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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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 아내] 아이들이 얼마나 좋아 하는데요. 연을 보면 고향 생각이 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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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향에서는 단오날이나 추석 무렵이면 동네 개구쟁이들이 극성스럽게 몰려 다니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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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을 날리죠. 담넘에선 동네 처녀들이 널을 뛰고, 그네를 타고 하면, 전 조바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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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고 가슴이 울렁거려 발돋음하고 바깥에 나가고 싶어서 안달을 했죠. 그 때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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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머니는 미닫이 문을 열어 제치고 불호령을 하시죠, [양반집 다 큰 처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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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놈들 놀이에 혼이 빠졌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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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삼문] 그때부터 당신은 종아리를 맞았어야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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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 아내] 그래서 늙어두 고향을 잊지 못하는가 보죠. [연]이며[그네],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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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리고 고향의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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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삼문] 오늘따라 당신 어린애가 된 것 같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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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 아내] 전 언제나 그랬으면 해요. 언제까지 어린애 같은 모습, 어린애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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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음이었으면 좋겠어요. 요즘은 괜히 늙는다는 게 무서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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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삼문] 흐르는 세월을 당신 혼자서만 꽁꽁 묶어 둘 수두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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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릇이구---허지만, 당신 아직 처녀 때처럼 예쁘니까 염려할 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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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 아내] 여자들은 누구나 처녀 때를 그리워 하고 잊지 못한다구 그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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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이가 들어두 처녀 때 그대로의 자기인줄 착각하고 있대요. 그러다 어느날 문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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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울 앞에서 얼굴에 분을 바르노라면, 눈 밑에 잔주름이 간 걸 발견하게 되구,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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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디에 굳은 살이 박힌걸 알게 된대요. 그때 여자들은 제일 슬프다구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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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삼문] 그래서 여자들은 욕심이 많다구 그러지. 흐르는 세월 속에서 자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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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머물러 있길 원하니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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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 아내] (새삼스레) 여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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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삼문] 왜 그래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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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 아내] 요즘, 가끔 무서운 생각이 문득 들 때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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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숙주 집 쪽으로 조명이 바뀐다. 신숙주 아내 차를 들고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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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 아내] 오늘따라 왜 이렇게 일찍 기침을 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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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숙주] 잠이 오질 않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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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아내] 茶(차) 식기 전에 어서 드세요. 밖은 비바람이 아주 세차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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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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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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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아내] 한의가 그러잖었어요. 불면하시면 심기에 해로우시다구요. 요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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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환절기라 더 몸보신을 잘 하셔야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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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숙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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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 아내] 왜 통 말씀이 없으시죠? 뭐 언짢은 일이라두 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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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숙주] 아니요, 아무것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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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 0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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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아내] 안색이 아주 창백해지셨어요. 근자에 식욕이 없으셔서 진지도 변변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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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들지 못하시면서 새벽잠까지 설치시니 더 수척해지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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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숙주] 괜챦다는 대두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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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 아내] 아니예요. 요즘은 모든게 전과 같지 않으셔요.일체 말씀도 삼가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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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일 수심에만 잠겨 계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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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숙주] 계절 탓이겠지.당신 너무 상심하지 마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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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 아내] 밤이 깊었는 데두 통 잠을 못이루시고 뒤척이시더니 겨우 자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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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넘어서 잠이 드셨나 싶엇는데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 깨어나곤 하셨어요.분명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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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근심이 계신 모양이예요. 온몸에 땀을 비오듯 적시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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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숙주] 꿈자리가 뒤숭숭해. 요즘은 더욱 그렇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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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 아내] 뭔가 괴로운 응어리를 속에다 꾹 안고 계시기 때문이에요. 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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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씀하실 수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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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숙주] 괴로울게 뭐 있겠오. 시간이 흐르면 다 낫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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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아내] 천둥소리에 놀라 깨어보니 자리에 인 게시더군요. 이상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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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각해서 문을 열고 내다보니 당신은 대청에 멍청히 서서 뜨락을 내려다보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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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계시더군요. 한참동안, 아주 한참동안 그렇게 서 계셨어요. 전 뭘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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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끄러미 내려다 보시나 했더니 빗물에 떨어진 국화 꽃잎을 보고 계셨어요.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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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깨에 힘이 빠져 땅 속으로라도 갈아 앉듯이 늘어진 모습으로 서 게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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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보! 말씀해 주세요. 무슨 근심이 있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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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숙주] 밤마다, 밤마다 돌아가신 선왕의 모습이 나타나는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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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 아내] 문종 전하 말씀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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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숙주] 그렇소. 온몸에 피를 철철 흘리시면서 내게 무어라고 자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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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슴하시는데 통 그 말이 들리질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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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 아내] 악몽이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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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삼문 집으로 조명이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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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 아내] 아침에 당신이 총총히 대궐로 등청하신 후에 전 아이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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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옷으로 갈아 입혀서, 서당으로 전부 보내고 나면, 텅빈 큰 집안에 저 혼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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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게 되죠. 화단에 내려가 제일 탐스럽게 핀 백일홍이며, 국화며, 박꽃을 꺽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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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병에 곱게 꽂은 뒤, 당신의 서재 책상 위에 올려놓죠. 그리곤 옷장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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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갑이며 경대, 옥합을 마른 걸레로 윤이 나게 닦는 거예요. 해가 동창을 비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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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들어와 콩기름으로 윤이 나는 사랑방 장판 위에 퍼져오면, 전 당신의 침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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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내놓고, 옥처럼 희게 다듬이질한 옥양목으로 새홋청을 바꾸어 꿰매죠. 당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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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땀내가 밴 침구를 매만지면서, 저는 뿌듯하게 젓어들어 오는 아내의,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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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머니의 행복에 빠져들어 가요. 아시겠어요? 여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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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 0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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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삼문] 오늘따라 유난히 수다스럽구려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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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 아내] 아니들이 가지고 노는 공기돌모양 내 손 안에 꼭 쥐어진 행복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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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알맹이 하나 하나를 음미하게 되죠. 해가 서쪽으로 넌지시 넘어갈 때면 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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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널었던 당신과 아이들의 옷을 걷어다 풀을 먹여요. 고의 적삼, 바지, 두루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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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쾌자 댓님에 이르기까지 곱게 곱게 다듬어서 접어두죠. 이내 개구장이 아이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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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당에서 우르르 몰려오면, 큰 놈부터 막내까지 넓직한 함지박에 물을 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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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수를 시키거든요.저녁을 먹은 후 아이들은 도련 도련 둘러앉아 천자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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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읽어대고 저는 와룡촛대에 불밝히고 그 곁에 앉아 시집올 때 가지고 온 수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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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꺼내들고 오색실 총총이 사군자를 곱게 뜨죠. 아시겠어요 여보.아이들이 잠자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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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부 들면 이리 저리 이불깃을 여며주고, 당신이 돌아올 시간을 기다리며, 인두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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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가면서 자주 갑사 저고리에 새 동정을 달거든요. 이제나, 저제나 하고 창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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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귀를 기울이면 자정이 가까와서 당신을 태운 승교꾼들의 거친 발걸음 소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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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돌담길을 끼고 오죠. 저는 일감을 내던지고 버선발로 뛰어나가 대문의 빗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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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면, 술기운에 붉으렇게 상기된 당신이 거기에 서 있어요. 그리곤 당신은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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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깨에 손을 얹지며 이렇게 말씀하시죠 「집현전에서 오는 길에 주막에서 한 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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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했지.」그 때가 얼마나 행복한 순간인지 당신은 아시겠어요? 저는 어린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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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와락 눈물이 돌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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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삼문] 당신 정말 어린애 같애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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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 아내] 그 때마다 저는 속으로 몇번이고 같은 말로 기원하죠.「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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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삼문의 아내입니다. 제발 이 행복을 뺏어가지 말아 주세요. 이 작은 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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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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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명 신숙주의 집으로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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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숙주] 그때마다 나는 소리를 치지. 「대왕전하, 소인은 신숙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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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하께서 생전에 그토록 사랑하시던 신숙주입니다.」그러나 또 대왕전하께옵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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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씀하시는 듯하나 내 귀에는 전혀 들리질 않아. 그리곤 자꾸만 손짓으를 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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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릎 위에 않은 어린 세자를 가르키시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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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 아내] 단종 전하 말씀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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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숙주] 자세히 보니 분명 단종전하인데 단종께서도 온몸이 피투성이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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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앉아 있더란 말이요. 심지어 어의에까지 검붉은 피가 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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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 아내] 심기가 매우 허탈하셔서 아마 그런 악몽에 시달리시는 거예요. 단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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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하로 말할 것 같으면 12살의 어린 나이에 엄연히 선왕의 옥쇄를 이어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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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옥좌에 않아 계신 지 3년이나 되지 않았어요. 괜히 태평한 시국에 불길한 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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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꾸시니 지레 액운이 닥칠까 걱정이에요. 고정하시고 차나 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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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숙주] 차는 그만 두겠오. 어서 의관이나 꺼내 주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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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 0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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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 아내] 벌써 등청하시게요. 아직 이른 새벽인데요. 웬만하시면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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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결청하시는게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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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숙주] 수양대군 어른께서 집현전 학자들을 일찍 초치하셨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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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 아내] 수양대군 나리께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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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숙주] 급히 상의할 일이 있으니 일찍 등청하라는 전갈이 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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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명, 성삼문 집으로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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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삼문] 당신은 언제 봐도 시집올 때 그대로야. 말씨며 몸매 얼굴까지도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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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래서 그런 어린애 같은 생각을 하게 되는 모양이군 그래.당신 손에 든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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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을 꼭 쥐면 되는 거야. 아무도 그것을뺏거나 흩어 버릴 사람은 없어. 어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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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쎄 단종전하께옵서 내게 이런 농담을 하시더군.「성삼문 대감의 내자께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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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모양처에 뛰어난 미색이라고 소문이 났더군.」하시며 빙그레 웃으시더군
| |
− | [성, 아내] 황송하신 말씀을---
| |
− | [성삼문] 당신은 괜히 불안해 하고 있어.(웃음) 아직 철이 덜 들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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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 아내] 제가 본래 겁이 많은 모양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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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삼문] 첫날밤 당신 울던 일 생각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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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 아내] 또 그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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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삼문] 막무가내로 눈을 딱 감고 쪽두리랑 혼례 의장을 벗으려 들지 않았지.
| |
− | [성, 아내] 삼촌이 장난으로 한 말을 정말로 믿었거든요.「네 신랑은 눈이 한짝
| |
− | 없으니 그리 알고, 행여 첫날 밤에 마주 올려다 보면 안된다.」전, 정말 눈이
| |
− | 한짝 없는 신랑에게 시집온 줄 알고 밤새 울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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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삼문] 그것봐, 그 때나 지금이나 당신은 어린애 같다니까.(두 사람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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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명 양쪽을 같이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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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숙주] (의관을 정제한 뒤) 칼을 주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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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 아내] 전에는 칼을 안차시더니--- 왜 오늘은---?
| |
− | [신숙주] 칼을 소지하라는 전갈이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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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삼문] 등청할 시간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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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아내] 다른 날보다 이른 시간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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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삼문] 단종전하께서 일찍 등청하라는 분부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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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숙주] (한참 망설이다) 오늘밤 늦으면 못들어 올 테니 기다리지 말구려.
| |
− | (황망히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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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삼문] (서서히 나서며) 아이들이 깨거든 내 먼저 나갔다구 전해 주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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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대 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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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0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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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 제 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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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궁궐 비바람 몰아치는 가운데 수양대군과 한명회가 서로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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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양] 혹시 우리가 너무 성급하게 서두르는 게 아닐까 한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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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명회] 대감께서는 너무 진중하신 게 탈입니다. 만사는 때가 있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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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기상조라 너무 일러두 해가 되지만 또한 너무 늦어두 화를 입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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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사에는 적시가 있기 마련인데 지금이 바로 그 때입니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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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이 있지 않습니까? 지금 우리의 힘과 조직이 가장 팽창되어 있읍니다. 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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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년 동안이나 꾸려온 거사가 아니겠읍니까? 무예에 능한 무사와 장군들은 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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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수중에 들어와 있읍니다. 이제 남은 집현전의 학자들이란 건 조금두 두려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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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 없읍니다. 글방에서 책이나 읽던 생원들이야 무력하기 이를 데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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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리들입니다. 그저 시퍼런 칼날만 번쩍하고 비치기만 해도 오금을 못쓰고 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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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어그는 약질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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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양] 허나 우리의 뜻과 임무가 한낱 역적들의 모의가 아니라 나라와 백성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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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힘이라는 참 뜻이 있는 바, 부득이하다고는 하지만 반대 세력을 거세하는 일,
| |
− | 필연코 살생이 따르기 마련인데 피를 흘려야 된다는 게 몹시 걸리는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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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명회] 대감의 진의는 백번 이해를 하겠읍니다만, 대혁신을 이루는데 무수한
| |
− | 장애물이 따르는 법입니다. 인정에 쏠리고 사정에 얽매여 근본 뿌리를 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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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못하고 어물쩍 넘어가면 오히려 그 뿌리에 걸려 이 쪽이 넘어지게 됩니다. 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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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뿌리를 캐내어 영영 다시 살아 나지 못하게 생명을 잘라야 합니다. 잘 되면 충신,
| |
− | 못되면 역적이라는 말이 있읍니다. 아무리 대의 명분이 확실한 혁신이라도 그것이
| |
− | 성공하지 못하면 대 역적이 됩니다. 그 때의 보복을 상상해 보셨읍니까? 하찮은
| |
− | 인정이나 윤리에 쏠려 살려줬던 그 작은 뿌리가 오히려 우리의 온 몸을 휘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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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덤벼든다면 어떻게 하시겠읍니까? 잔인해야 합니다. 조금이라도 발뿌리에 걸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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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무 뿌리가 있으면 가차없이 잘라버려야 합니다. 이것이 성공의 첩경입니다.
| |
− | [수양] 피를 본다는 것, 그것이 괴로운 일이오.
| |
− | [한명회] 수술을 하려면 피를 보는 법, 곪아 터진 상처에서는 으례 피가
| |
− | 흐르는 법, 피를 흘리지 않고는 고름을 짜낼 수가 없읍니다. 환자의 고통을
| |
− | 감안하여 우유부단한 처방을 하게 되면 병은 재발하거나, 아니면 환자는 영영
| |
− | 죽어버립니다. 목적에 이르는 길은 철두철미 완벽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미
| |
− | 칼집에서 혁신의 칼날을 뽑아들었읍니다. 이제 우리가
| |
− | [페이지]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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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야 할 일은 베고, 자르고, 찌르는 일 밖에 없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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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양] 피를 보지 않으면 안되는 현재의 사태와 그 사태에 뛰어들어야 하는 내
| |
− | 운명이 원망스러운 거요.
| |
− | [한명회] 그래서 거사에는 아무나 끼어들지 못하는 겁니다. 혁신은 그것을
| |
− | 감당할 수 있는 도량을 가진 인격들이 덤벼드는 힘겨운 일입니다. 바로 대감께서
| |
− | 지금 그 사태 앞에 피할 수 없는 사명감으로 서 있읍니다. 주저하거나 회의하는
| |
− | 것은 비겁한 일입니다. 손을 걷어 올리고 뛰어들어 오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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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양] 간밤에는 한잠도 이루지 못했오. 어린 조카를 왕좌에서 몰아내야
| |
− | 한다는 괴로움이 오리무중에 빠진 국정을 쇄신해아 한다는 사명감보다 더 컸기
| |
− | 때문일까? 아니면 아직도 내 핏속에 천륜을 저버리지 못하는 싸구려 인정 같은
| |
− | 것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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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명회] 아직도 대감의 가슴 속에는 고리타분한 선비들의 외고집이 도사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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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있읍니다. 무사는 그것을 떼어버려야 합니다. 달고 다녀야 무게만 느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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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추장스러워 오히려 행동을 하는데 방해를 줍니다. 잘라버리십시오. 그 귀챦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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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혹을 미련없이 잘라 버리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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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양] 한 대감의 논리 정연한 그 결단이 한없이 부럽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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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명회] 저는 태어날 때부터 칠삭동이라는 별명으로 모든 사람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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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대를 받으며 자라났읍니다. 동네 아이들은 내게 돌을 던지며 회롱을 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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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지어는 집안에서까지 멸시와 조롱을 받고 살았읍니다. 서당의 아이들은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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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에다 검은 먹물로 「얼치기 칠삭동이」라고 써 붙이곤 고삐를 해서 동네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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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리를 돌리곤 했읍니다. 모래를 던지는 아이, 작대기로 내 머리통을 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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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갈기는 아이, 저는 그런 수모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읍니다. 전 그 때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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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속으로 수천번이고 같은 말을 되풀이 했읍니다. 「이 치욕을 너희들에게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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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갚으리라, 꼭 갚으리라.」 그뒤 전 모든 길을 지름길로 달렸읍니다. 남이 안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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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로 돌아서 가더라도 나는 발목을 적시면서 줄곧 지름길만 걸어 왔읍니다.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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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앞에 걸어가는 자가 있으면 멱살을 나꿔 채서라도 앞질러 갔읍니다. 나보다 힘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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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가 앞가 서면 그의 목줄기를 물어 뜯고 나보다 지혜로운 자가 앞서 가면 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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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혜에 계략으로 뒤엎어서 앞지르곤 했읍니다. 그 때마다 제가 느끼게 된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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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에게 뒤쳐지기 시작 자들은 나에게 항의하거나, 도전해 오지 않았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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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히려 내게 추파를 던지고, 우의를 다짐도 하며 심지어는 아첨하는 자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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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있었읍니다. 난 많은 교훈을 얻으며 살았읍니다. 그래서 결국 송도 경덕궁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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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 0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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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기라는 비천한 신분에서 일약 수양대감의 혁신 참모의 자리에까지 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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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왔읍니다. 왜 대감께서는 수많은 인재 중에서 보잘 것없는 저를 가장 중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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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기에, 가장 요직에 임명하게 됐는가를 알고 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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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양] 대감의 능력을 인정했기 때문이었지. 내가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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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돌아오는 길에 의주를 거쳐 개성을 경유할 때 당시 경덕궁 문지기인 한대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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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나게 됐지. 그때 남달리 눈에서 안광이 번쩍거리는 한대감을 주시할게 됐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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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백하고 마치 해골 같은 얼굴에 두 개의 불덩어리가 붙어 있는 것 같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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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때 난 뭐가 얼핏 머리에 떠오르는 게 있었어. 저 얼굴은 분명 한패공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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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자방과 같다고 생각을 하게 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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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명회] 그후 늘 대감께서는 저를 주시하셨죠. 전 언제나 대감의 눈초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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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느끼면서 지내왔읍니다. 그 눈초리에서는 무언가 기대하는 기색이 역력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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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양] 내 꿈과 내 야망에 불씨를 던져 줬지. 그 불길이 서서히 타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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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체적인 세밀한 계획까지 작성하게 되고 한대감의 노련한 조직력으로 대왕대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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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궁혜빈양씨와 내시 엄자치, 내금위까지 매수하는 데 성공을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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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명회] 대감께서 저를 비천한 신분으로부터 대감의 측근으로까지 이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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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신 보답을 하기 위하여 나는 나의 모든 능력 내의 권모술수를 전부 발휘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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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감의 정치 혁신에 이바지할 것을 굳게 맹세하게 됐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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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양] 우의정 김종서와 영의정 황보인이 끝태 협조를 거부했오. 특히 지혜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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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용맹을 겸비한 김종서는 선왕 문종의 유언을 받았다는 이유로 죽어두 단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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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필하겠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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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명회] 날자만 결정하십시오. 김종서와 황보인인 우리가 손수 없애버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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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양] (돌아서서) 김종서는 이미 60이 넘은 노정승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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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명회] 또 그 하챦은 감정에 젖으십니까? 학자들이란 그저 붓이나 들고 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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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치나 읊던 버릇이라서 언제나 눈꺼플에 눈물이 마를 날이 없다니까! 한 살 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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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갓난아이 죽이는 거나 60넘은 노인 죽이는 거나 죽이는 건 매일반 조금도 개의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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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시고 명령만 내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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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양 돌아서서 무언가 얘기하려 할 때 밖에서 인기척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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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 신숙주 나리께서 행차하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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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숙주] (들어오며 수양대군에게 ) 밤새 평안하셨읍니까, 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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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양] 어서 오우! 한대감께 얘기는 들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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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양] 어서 오우! 한대감께 얘기는 들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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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 0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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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숙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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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명회] 어제두 내가 말씀드렸지만 무관들이나 문관들 할 것없이 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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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양대감 거사에 지지 서명을 했오. 만약 서명을 거부하거나 반대하는 사람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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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따로 여기(두루말이)에 적어두었소. 물론 신대감께서두 찬성하는 걸루 믿구 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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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말씀드린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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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숙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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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양] (애원하듯) 나와 오랫동안 동거 동락한 신대감만은 내 맘을 잘 알아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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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요. 추호도 내 개인의 사리사욕이나 혹은 명예욕에서 거사를 꾀하는 게 아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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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패하고 문란한 내정을 쇄신하고 궁안에 만연하고 있는 부조리한 윤리기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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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로잡아 다음의 후손들에게 복된 이 나라를 물려주기 위함이오. 부득이 나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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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않으면 안될 나를 동정해 주구려, 신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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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숙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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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양] 나이 어린 왕이 옥좌에 앉은 틈을 타 사방에서 왕권을 다투며, 무능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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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신들 사이에서 오가는 매관 매직, 탐관오리들의 주색잡기, 가렴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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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명회] 빨리 결정을 내리시오. 신대감, 이번 거사에 가담하겠오? 만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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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못하겠다면 부득불 여기에 (두루마리) 이름을 올리는 수 밖에 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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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숙주] (옷가락 속에서 천천히 칼을 보이며 힘없이) 이미 작정을 하고 나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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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몸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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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양] 고맙소 신대감. (손을 잡으며) 이제 나는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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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제부터 우리와 함께 행동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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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명회] 신대감께서는 성삼문과 그 일파들을 설득해 주시구려.
| |
− | [신숙주] 해 보겠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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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명회] (자신감에 차서) 자, 이제 모든 것은 끝났오. 오직 행동만이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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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있읍니다. 대정혁신의 날자를 언제로 하시겠읍니까. 대감 주저하지 마시고 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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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결단을 내리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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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양] (결단을 내리듯) 내일이 10월 10일 거사일을 내일로 정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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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명회] 좋습니다 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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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양] 내일 밤 영의정 황보인과 우의정 김종서를 제거하고 나머지 6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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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서와 이에 속하는 관속들을 차례로 제거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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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명회] (밖에 대고)거기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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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운] (절도 있게 절을 하며) 예, 대령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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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명회]내일부터 시작이다. 만반의 준비를 하고 대기하고 있도록! 알겠느냐.
| |
− | [임운] 네, 알겠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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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명회] 매사에 침착하게 행동해야 한다. 너무 서두르거나 긴장해서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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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낭패가 되면 그 때는 네가 그꼴을 당한다. 알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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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운] 명심하여 신중하게 처리하겠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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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명회] 처음에는 칼을 쓰지 마라. 쇠뭉치를 쓰도록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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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 0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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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을 쓰면 피가 너무 많이 나와 지저분해져. 철퇴가 좋다, 뒷통수나 정수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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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려 쳐야 돼. 너무 여러번 때리지 말고 한두 번에 끝내도록 세게 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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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야,알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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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운] 말씀대로 하겠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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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절한다. 이때 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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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절한다. 이때 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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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 3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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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 3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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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밤, 푸른하늘을 배경으로 김종서, 황보인, 조극찬, 이양, 민신, 윤처공 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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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신들을 상징하는 여러 개의 인형들이 그로테스크하게 줄에 매달려 있다. 그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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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직 살아 있는 것처럼 보여야 한다. 맨먼저 김종서를 상징하는 인형이 보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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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쪽에서 수양, 한명회, 임운(궁노)이 등장한다. 임운은 철퇴를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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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명회] 우의정 김종서의 집입니다, 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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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양] (하늘을 우러러 보며) 아직 밤이군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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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명회] 조금 전에 자정을 알리는 인경소리가 들렸읍니다. 아주 좋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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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간입니다. 밤이란 것을 모든 것을 감싸주거든요. 그래서 음모와 살인과 염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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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밤이 제일 좋습니다. 그래서 신령님께서 우리들에게 밤이란 걸 주신 모양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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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양] 은하수가 길게 뻗쳐 있구나. 저게 북극성인가, 유난히도 반짝거리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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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명회] 밤은 추한 모든 것을 덮어줍니다. 어둠의 구석구석에서 음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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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싹트고 살기가 번뜩거려도 묘하게도 밤은 그것들을 은닉시켜 주거든요. 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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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사한 것, 긴긴밤동안 벌어졌던 검은 음모와 그로 인해서 쏟아지는 수많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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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핏자욱은 새벽의 밝은 태양이 솟아오르면 말끔히 쓸어가니까요. 태양이 하늘 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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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걸려 온 세상이 환하게 밝아지면 아무도 밤에 일어 났던 음모와 핏자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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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견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 핏자욱 위를 멋모르고 밟고 다니죠. 밤은 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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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사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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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양] 모두가 잠들었는가? 사방은 암흑으로 뒤덮이고 인적이 괴괴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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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돈의문의 초롱불만이 아물거리며 홀로 빛나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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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명회] 해가 솟아오르면 어둠 속에서 찡그렸던 가슴과 얼굴을 활짝 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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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냥하게 웃으면 되는 것이죠. 「밤새 안녕히 주무셨읍니까?」 「간밤에 별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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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없으셨나요?」 상쾌하게 아침인사를 주고 받으며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면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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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끄러움 위에 상쾌한 재를 뿌리면 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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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양] 삼대째 선왕들을 모셔온 노대신들은 지금 깊은 잠속에 빠져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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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월의 청명한 가을 밤, 은하수가 뚜렷이 뻗쳐 있고, 북극성이 유난히 반짝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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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월10일의 이 시간이, 그들의 기록 긴 인생의 마지막 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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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 0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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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알 리가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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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명회] 밤은 인간들의 가장 안락한 휴식처, 낮의 잡념과 노여움은 달콤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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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잠자리 속에서 다 녹아 없어지고 따뜻함이, 그리고 포근함이 김처럼 서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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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온몸을 뿌듯하게 감싸주는 쾌감 속에서 낮의 새로운 일을 설계하며 달콤한 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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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속으로 빠져 들어가죠. 그래서 밤은 참으로 유익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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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양] 자, 이 밤이 새기 전에 우리의 할 일을 빨리 행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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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명회] (수양과 임운에게) 우선 대문을 열고 들어가십시오. 저는 여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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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망을 보겠읍니다. 문지기 녀석은 졸린 눈을 비비며 왠일이냐고 물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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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러면 대감의 신분을 밝히시고 김종서대감께 급한 용무가 있다고 말하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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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연히 안채로 들어 가십시오.
| |
− | ( 수양과 임운, 한명회 설명대로 마임을 하며 김종서 인형쪽으로 접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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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리고 마당에서 큰 기침을 두어번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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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양] (기침소리) 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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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명회]김종서 대감이 침소에서 일어나 아닌밤중에 대감께서 왠일이시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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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묻겠죠. 그럼 대감께서는 급히 상감이 서신을 전할 일이 있다고 말해야 합니다.
| |
− | [수양] (인형에게) 상감의 서신을 전할 일이 있어서 이렇게 밤늦게 왔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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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명회] 그럼 김종서대감은 방안으로 들어 오라고 재촉을 할 테죠.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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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절대로 방으로 들어서서는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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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양] 시간이 없어서 여기서 급히 전하고 떠나겠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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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명회] 그리고는 옷소매에서 서류 뭉치를 꺼내서 김종서 대감께 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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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줍니다. 이때 임운, 너는 너무 긴장하지 말고, 서신을 읽고 있는 김종서 대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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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뒤로 돌아간다. 그리고는 옷자락 속에 감췄던 철퇴를 살며시 꺼내들고 김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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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감의 뒷머리통을 힘껏 후려 친다.
| |
− | (철퇴의 충격으로 人形(인형) 크게 그내처럼 움직이며 비명소리 효과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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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압도되어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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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명회] 너무 서두르거나 또는 주저해서는 안된다. 한번에 결판이 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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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않으며 계속 내리쳐야 한다! 두번! 세번,네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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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人形(인형) 은 그내처럼 크게 움직이며 계속 임운이 내리치는 철퇴에 충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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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받으며 그 움직임의 반경이 더 커진다. 비명 계속되며 호리죤트에 핏방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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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점점이 맺히는데, 수양은 이것을 배경으로 돌아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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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음은 똑같은 방법으로 영의정 황보인 대감을 처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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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 0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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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운, 다른 인형을 똑같은 방법으로 난타한다. 또 하나의 비명소리 가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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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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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음은 이조판서 조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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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운, 또다른 인형을 같은 방법으로 난타한다. 또 하나의 비명소리 가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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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다음은 찬성 이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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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운, 또다른 인형을 난타, 또하나의 비명이 가미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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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음은 병조판서 민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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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운, 또다른 인형을 난타, 가미되는 또하나의 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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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음은 윤처공! 이명민! 조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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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운, 미친듯이 나머지 인형을 난타, 무대 위에는 비명을 지르는 여러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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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형들의 그네놀음이 현란하게 이루어진다. 마치 시계방의 서로 다르게 움직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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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러개의 시계추 모양 인형들이 움직일 때 무대 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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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장] 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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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성삼문의 집, 신숙주와 성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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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삼문] (노해서) 알다가도 모를 일, 내 두뇌로서는 전혀 상상도 할 수 없는
| |
− | 일이오. 뻔히 알면서도 침묵을 지켰다니 대감의 뜻은 도대체 뭐란 말이오?
| |
− | [신숙주] 성대감 좀 진정하시구려. 이미 일은 벌어졌오.
| |
− | [성삼문] 난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던 참극이오. 하루 아침에 온 궁궐이
| |
− | 피바다를 이루다니 끔찍한 일이오. 이건 사람들이 했다고 하기엔 너무나 소름
| |
− | 끼치는 사건이오. 더군다가 사전에 음모의 전모를 전부 알고 있었다면서 속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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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책 방관하고 있었다는 신대감의 의도를 더욱 알 길이 없구려.
| |
− | [신숙주] 불가 항력이었오. 음모의 전부를 내가 알았을때는 도화선에 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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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이 붙고 있던 시기였소. 너무 늦었던 거요.
| |
− | [성삼문] 그렇다면 적어도 가장 친한 사이인 나에게라도 알려줘야 했오.
| |
− | [신숙주] 성대감의 성격은 누구보다 내가 잘 아는 실정인데 만약 그때
| |
− | 성대감에게 음모의 전부를 알려 줬더라면 분명, 미약한 힘으로 그 불을 끄려고
| |
− | 덤벼들었을 꺼요. 난 작은 우정으로나마 그렇게 할 수는 없었오, 성대감!
| |
− | [성삼문] 우정? 신대감은 우정을 핑계로 상감을 배반했다는 거요? 충성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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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정이 앞섰다니 참으로 눈물겨운 일이요. 우정때문에 살륙을 했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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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숙주] 몇 번 말했지만 직접 살륙에는 참가하지 않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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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098
| |
− | [성삼문] 내가 신대감에게 묻고자하는 게 바로 그거요. 참가는 하지 않았지만
| |
− | 방관은 했다 이런 말이 아니겠오. 온지 않은 일인지 뻔히 알면서 방관했단
| |
− | 말이요. 역적모의인 줄 뻔히 알면서 침묵을 지켰단 말이지요. 그래서 신대감은
| |
− | 살륙극에는 직접 참여하지 않았다는 그 핑계로서 이 엄청난 범죄 앞에서 스스로
| |
− | 위로를 받고 있는 거요?
| |
− | [신숙주] 더 큰 범죄를 막기 위해서 더 많은 살륙을 방지하기 위해서 침묵을
| |
− | 지키지 않으면 않됐던 거요. 이미 궁안의 모든 무관들과 문관들은 이 참극에
| |
− | 참여의 뜻을 비쳤거나 적어도 지지하는 서명을 했었오,
| |
− | [성삼문] 그러나 난 모르고 있었오.
| |
− | [신숙주] 가장 타협하기 힘든 집현전의 학자들만이 보류상태에 있었오.
| |
− | 수양대감과 한명회가 내게 집현전 학자들을 설득하라는 임무를 부여했오. 그러나
| |
− | 나는 학자들을 설득하라는 임무를 부여했오. 그러나 나는 굳게 입을 다물 수 밖에
| |
− | 없었오. 권문세가의 문전과 굳게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오. 권문세가의 문전과
| |
− | 골목 골목에 수많은 염탐꾼들이 몰려 다니고 있었으며 궁궐의 구석 구석에
| |
− | 자객들과 반도의 친위대들이 칼날을 번쩍이며 완전히 점령을 하고 있었오. 만약
| |
− | 내가 그 때에 성대감에게 이 모든 사실을 알렸다고 합시다. 성대감은 어떻게
| |
− | 했겠오. 아무것도 모르고 겨우 측근의 여섯명의 미약한 선비들만의 힘으로서 이
| |
− | 역적모의에 대항하려 했겠죠. 결과는 뻔한 일, 인명의 피해만 더 늘어났을
| |
− | 뿐이오.
| |
− | [성삼문] 그러나, 그것으로서 신대감이 용서받기를 원한다면 어리석은 일이오.
| |
− | 불가항력, 중과부적으로 인하여 가만히 있었다는 사실로서 당연히 용서받아야
| |
− |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 사실만으로도 신대감은 용서받을 수가 없소. 침묵이
| |
− | 무기라고 생각하고, 방관이 현명한 처사라고 생각한다면 시대감은 더큰 죄악을
| |
− | 범하고 있는 거나 다름 없소.상대의 힘이 너무나 거대해서 겨루어 봤자 지거나
| |
− | 아니면 오히려 잡혀먹게 된다는 핑계로서 상대의 부당한 힘을 인정해서는 안되오.
| |
− | [신숙주] 결코 정의라고 생각하지는 않소!
| |
− | [성삼문] 정의라고 생각치는 않으나, 침묵을 지킴으로써 그것을 인정하는
| |
− | 결과를 초래한 거요. 바둑이나 장기놀음과는 틀린 것이라서, 대세가 기울어졌다고
| |
− | 해서 두 손을 털고 일어서야 할 그러한 입장도 아닌 것이오. 신대감은
| |
− | 방관하므로서 스스로의 비겁함을 보여준 셈이오.
| |
− | [신숙주] 차라리 내 한사람의 목숨으로 해결될 수 있는 일이였다면 기꺼이
| |
− | 목숨을 내던졌을지도 모르오. 그러나 나는 가만히 생각해 봤소. 나 한사말의
| |
− | 저항이 어떤 의미가 있겠는가, 그들의 잘 짜여진 조직에 붙들려 이름도 모를 어느
| |
− | 산골짜기에서 아무도 모르게 도륙을 당해 바다속이나 강물 속에 던져질 것이라
| |
− | [페이지]099
| |
− | 고--- 그렇다면 나의 항거가 그리고 나의 목숨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들은
| |
− | 얘기하겠지, 신숙주가 자살을 했다! 아니면 행방불명이 됐다! 정말 참을 수 없는
| |
− | 일이오.
| |
− | [성삼문] 신대감이 찾는 그 의미란 무엇이오. 세상에 이름을 알리는 거요?
| |
− | 아니면 목숨을 던져 그것으로서 백성들이나 후세에 자극을 주자는 거요? 내가
| |
− | 말하는 저항의 뜻은 그것이 아니라 나 자신 안에 있는 의무를 말하는 것이요.
| |
− | 산속에서 죽든 개천속에 빠져죽건 또는 죽은 후 바다속에 던져지든, 강물 속에
| |
− | 던져지든 그 결과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니까 시체를 거두는 일은 장의인이나
| |
− | 아니면 하늘에서 하는 일이오. 불의 앞에서 안된다고 말해야 하는 신하로서의
| |
− | 의무를 말하는 거요.
| |
− | [신숙주] 어떠한 수단과 방법을 써서라도 살아 남아서 그 불의한 세력과
| |
− | 대결해야 하오. 짓밟히면서라도 살아남는 길이야말로 승리의 길이요, 정의의 길인
| |
− | 것이요. 살기 위해서 타협하는 게 아니고, 두려워서 침묵을 지키는게 아니오.
| |
− | 정의를 갈구하는 작은 세력이 어느 한 구석엔가 살아 남아야 하기 때문에, 그래서
| |
− | 그 작은 세포가 차차 분열되고 확장돼서 하나의 거대한 힘을 이룰 때까지
| |
− | 벌레처럼이라도 살아 남아야 하는 거요. 이것이 악을 제거할 수 있는 최대의
| |
− | 방법인 것이오.
| |
− | [성삼문] 비참하게도 살아 남았기 때문에 그런 대안을 생각하게 된거요,
| |
− | 신대감! 용기없이 살아 남았기 때문에 그런 근사한 핑게가 마련된 거요. 승리는
| |
− | 내 안에 있는 거요. 그들의 칼날 앞에서 「아니」라고 단호히 거절하는 그것이
| |
− | 승리하는 길이오. 그것은 스스로가 인간임을 증명하기 때문이오. 대답하시오.
| |
− | 살아남아서 무엇을 하겠다는 거요? 그들이 장타령에 옆에서 북으로 반주를 넣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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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겠다는 거요? 적절히 안배되는 감투를 쓰겠다는 거요? 아니면 갈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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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력해지고 갈수록 나약해지는 육체와 의지를 한탄하며 서글픈 한시나 읊겠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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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요? 보시요 신대감, 신대감은 이미 죽었오. 그들의 두루마리에 방관자로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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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름이 기록되는 순간 신대감은 죽은거요? 육체는 살아 났지만 혼이 죽어 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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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요. 두려움 때문에 무력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지켜온 그 고리타분한 그 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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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때문에 안락함, 무난함, 그리고 놓치기 싫은 세상의 잔 재미를 얻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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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대감의 혼을 팔게 된거요. 이제 감각으로만 살아야며, 피부로만 살아야 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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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혼이 없는 육체를 지탱하기 위하여 더 논리정연한 핑계를 만들게 되고, 자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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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논 도피의 웅덩이 속에서 남은 여생을 헤엄쳐야 되오, 신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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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숙주] 나요? 성대감과는 오래 전부터 허물없이 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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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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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를 맺어 온 막역한 사이오. 세종 임금께서 집현전에 우리들를 불러들인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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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후부터 지금까지 동거동락한 깊은 우정을 서로 간직하고 있오. 밤이나 낮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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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는 서로 머리를 맞대고 국사를 논하고 학문을 연마하며 나라의 문헌을 정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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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면서 언제나 서로 뜻이 맞고 통하여 한번도 다투어 본 적이 없었오. 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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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의 나이가 중년에 접어 들어 우리의 지혜가 깊어지고, 우리의 능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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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왕성해져 바야흐로 남은 생애의 모든 정력을 기울여 국사와 학문에 이바지할 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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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온 것이라오. 20代(대)의 미숙함도 50代(대)의 무력함도 아닌, 일하고 땀흘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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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장 좋은 때에 접어들었오. 성대감, 언제나 정치는 정치가에게 맡기고 전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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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사들에게 맡기면 그만이오.누가 다스리든, 누가 정승의 자리에 오르건, 조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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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심을 둘 필요가 없단 말이요. 권력도 한 시대 명예로 한 시대 무상한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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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것인데 거기에 휩쓸릴 필요가 뭐 있겠오. 우리는 우리의 할 일만 꾸준히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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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것으로서 얼마든지 인생의 보람을 얻을 수 있는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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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삼문] 학자는 학문에 전념하고, 예인은 창조에 몰두하며, 정치가는 정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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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념하는 것이 그 본 뜻임을 나도 잘 알고 있오. 백성은 농사를 지어 세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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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치고 나머지는 맘껏 쓰고 먹으면 그 뿐이오. 그러나 그것은 그렇게 할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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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좋은 시대에 할 수 있는 얘기라오. 각기 서로가 잘 맞물고 돌아가는 시대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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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연한 얘기오. 허지만 누군가가 이 잘 돌아가는 질서 속에 흙탕물을 끼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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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리사욕에 눈이 어두어 살륙을 범하고 정권 다툼에 앞서간다면, 우선 가만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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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만 읽어야 되겠오. 언제부터인지 얼빠진 학자란 자들이 신라때의 처용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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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들먹이기 시작했오. 처용이란 머저리같은 녀석이 밤새껏 줄을 퍼먹다 새벽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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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에 들어와서 이불을 들치고 봤더니, 다리가 네개더라나. 둘은 제 마누라 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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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개는 누구것일까하다가 에헤라, 나머지 두개가 내것이 아니면 어떠냐 하고 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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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며 나갔다더군. 그래서 역신이 도망쳤다는 고사를 꺼내들고 아량과 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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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리고 여유를 떠벌여 왔지. 무력한것에 대한 미화를 낙으로 삼던 시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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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얘기지.우리들에게는 따지고 저항하려 드는 그런 버릇이 언제부터인가 없어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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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 마누라를 엉뚱한 녀석이 끼고 동침을 해도, 누구냐고 한 번 물어보지도 못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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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러서는 그런 얼치기 녀석을 찬양하고 있으니 말이오. 아마 그 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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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처용가라는 것이 나온 이후부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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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숙주] 역신에게 따지고 들었다면 아마 처용은 죽었을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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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삼문] 그래서 비굴하다는 거요. 무력함을 아량으로 자위하는 그런 자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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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께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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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숙주] 성대감은 이제 어떻게 하시겠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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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 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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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삼문] 내게 묻지 말고 신대감 먼저 대답해 보구려. 이제부터 신대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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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떻게 하시겠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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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숙주]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서 살아 남아야 하겠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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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삼문] 나는 나의 혼을 살리기 위해서 나머지 모든 것을 기꺼이 버리겠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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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숙주] 성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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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삼문] 나의 뜻을 같이 하기에는 이미 신대감은 너무 먼곳에 가 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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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제부터 내가 하는 일에 전혀 간여 하지 마시구려.지금부터 나도 어떻게 해야
| |
− | 할지 모르겠오. 우선 나 자신과 얘기를 먼저 해야겠오. 안녕히 가시구려, 신대감!
| |
− | [신숙주] 뜻은 같으나 길이 다를 뿐이오, 성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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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삼문] (허탈하게) 며칠전 어전에서 어린 전하를 뵈온 적이 있었지. 귀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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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은 입으로 곶감을 잡수시고 계시더군. 평화스런 눈빛, 따스한 봄볕같은 미소를
| |
− | 띄우고 어린 전하는 햇곶감을 오물 오물 잡수고 계셨어.「맛이 어떻습니까
| |
− | 전하?」하고 물었더니 「감보다 훨씬 맛이 있오.」하시더군.「감을 말린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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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곶감이라는 것입니다 전하.」하고 아룅더니 「그래서 맛이 있었구나 신대감,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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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직 어리니까 감 임금이지, 곶감이 되려면 아직 멀었어 그렇지.」(웃음)「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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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래도 곶감보다 감이 싱싱하잖읍니까」했더니, 어찌나 좋아하시든지 어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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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들먹거리며 웃으시더니 이내 왕비마마 무릎을 베더니 스스르 잠이 드시더군.
| |
− | [신숙주] (괴로운 듯) 성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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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삼문] 그 선녀보다 고은 얼굴에 핏방울을 투기게 하다니---
| |
− | [성삼문] 그 선녀보다 고은 얼굴에 핏방울을 투기게 하다니---
| |
− | [성삼문] 그 선녀보다 고은 얼굴에 핏방울을 투기게 하다니---
| |
− | (성삼문 아내 장난기 어린 자세로 길게 실을 단 연을 들고 들어오다 신숙주를
| |
− | 발견하고는 연을 뒤로 감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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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성, 아내] 전 혼자 계신지 알고 그만---
| |
− | [신숙주] 아닙니다. 막 떠나려든 참이었읍니다.(성삼문에게) 대감, 안녕히
| |
− | 계시구려.(성삼문 아내에게) 안넝히 계십시오.
| |
− | [성삼문] (의미있게) 안녕히 가시구려, 신대감.
| |
− | [성, 아내] 안녕히 가십시오.
| |
− | [성, 아내] 안녕히 가십시오.
| |
− | (신숙주 무거운 걸음으로 퇴장)
| |
− | (신숙주 무거운 걸음으로 퇴장)
| |
− | 여보, 아이들이 여간 극성을 부려야지요. 연을 띄우겠다고 저 야단이지 뭐예요.
| |
− | 그러나 애들이 집안에서 뛰어노는 것보다 얼마나 좋아요.글쎄 막내놈은 연줄을
| |
− | 붙잡고 산비탈을 막 뜀박질을 한다니까요. 당신이 이쪽좀 붙잡고 계세요.
| |
− | 붙잡고 산비탈을 막 뜀박질을 한다니까요. 당신이 이쪽좀 붙잡고 계세요.
| |
− | (성삼문 연을 붙들고 있다.성삼문 아내 실을 얼래기서 푼다.)
| |
− | (성삼문 연을 붙들고 있다.성삼문 아내 실을 얼래기서 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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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 당신 국화나무 보셨어요?
| |
− | [성삼문]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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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 102
| |
− | [성, 아내] 조그만 봉우리가 또 하나 생겨났어요 피어 있는 것까지 합치면 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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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섯 송아리예요. 애들이 장난을 치다가 꺾지나 않을까 아주 걱정이예요. 날씨가
| |
− | 쌀쌀해지면 화분에 옮겨 담어 방안에 들여놔야겠어요. 줄기만 잘 쳐주면 내년엔
| |
− | 제법 꽃송이가 늘어날 테죠. 물론 거름도 줘야죠. 아마 친정 어머니가 보시면
| |
− | 깜짝 놀라시겠죠.벌써 이렇게 자랐나 하고 말예요.
| |
− | [성삼문] 곧 겨울이 닥쳐 오겠지--- 눈발이 날리고, 강물이 얼어 붙고---
| |
− | [성,아내] 눈니 쌓이면 또 애들이 극성을 부리겠죠. 눈사람을 만든다, 눈 쌈을
| |
− | 한다 하고 온통 눈을 뒤집어 쓰고 마루며 방안으로 들락거리겠죠. 겨울에는
| |
− | 아이들 뒤치닥거리 하다가 하루 해가 진다니까요. 그러나 새해가 되면 애들이 한
| |
− | 살씩 더 먹으니 얼마나 대견스러워요.
| |
− | [성삼문] 줄이 끊어지면 연은 어디로 날아갈까? 하늘 높이 올라갈까? 끝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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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 아내] 애들은 연이 바람에 날려 실이 끊어지면 하늘 높이 날아서
| |
− | 부처님한테 간다고 믿고 있어요. 그래서 극락의 부처님한테 전한다고 연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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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지를 쓰겠다고 그러잖아요. 그러나 염려없어요. 줄이 그렇게 튼튼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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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무리 바람이 세게 불어도 아마 그떡하지도 않을 거예요.
| |
− | 아무리 바람이 세게 불어도 아마 그떡하지도 않을 거예요.
| |
− | (사라진다. 성삼문 멍하니 서 있다.)
| |
− | (사라진다. 성삼문 멍하니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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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 5장
| |
− | [장] 5장
| |
− | 밤, 성삼문의 집, 등불아래 무릎을 꿇고 성삼문 앉아 있다. 바람소리 들린다.
| |
− | [성삼문] 나가야 합니까? 나가야 합니까? 이대로 나가야 합니까?
| |
− | (先王(선왕) 문종의 영상 나타난다.)
| |
− | [문종] 나가야 한다!
| |
− | [성삼문] 허나 망설여지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토록 사지가 떨리는 이유는
| |
− | 무엇입니까?
| |
− | [문종] 누구나 처음에는 망설여지고 떨리는 법, 허나 그것은 짧은 시간, 나가야
| |
− | 할 시간이 닥쳐오면 네 몸 구석구석에서 환히의 물결이 퍼져올 것이다.
| |
− | [성삼문] 내가 지금부터 가야할 길이 정당한 길이옵니까?
| |
− | [문종] 그렇다. 정당한 길이다.
| |
− | [성삼문] 헌데 왜 이다지도 외롭습니까?
| |
− | [문종] 정당한 길을 걷는 자는 언제나 외로운 거란다. 그러나 네 의지의
| |
− | 밑바닥을 네려다 보아라. 검은 심연 속에서 네게 살며시 미소로 띄우는 얼굴이
| |
− | 보일
| |
− | [페이지] 103
| |
− | 것이다.
| |
− | [성삼문] 그것이 보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누구의 얼굴입니까?
| |
− | [문종] 하늘의 얼굴이다. 여지껏 네가 발견하지 못했던 새로운 얼굴이 밝은
| |
− | 태양처럼 네 가슴속에 떠오르고 있다. 그것이 하늘의 얼굴이다.언제나 네 곁에
| |
− | 있던 얼굴이다.
| |
− | [성삼문] 이제부터 저는 그 얼굴과만 대화를 해야 합니까?
| |
− | [문종] 그렇다. 그 얼굴은 네 물음에 무엇이든지 대답해 줄 것이다. 그의
| |
− | 말대로 네가 행동하거라!
| |
− | [성삼문] 내가 받아야 할 가장 큰 고통은 무엇입니까?
| |
− | [문종] 너를 주축으로 하여 맺어진주위의 모든 관계를 단절해야 하는
| |
− | 것이다.이제부터 너는 외계에 홀로 떨어져 나간 유성과 같은 몸이다. 네 사랑하는
| |
− | 아내, 네 사랑하는 아이들, 즐겨 나누던 친우들, 호젓이 약수를 마시러 다니던
| |
− | 동산의 오솔길은 이제 너를 벗어난 타계의 꿈들이다. 그것이 괴로운 일이다.
| |
− | [성삼문] 그래도 나가야 합니까?
| |
− | [문종]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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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삼문] 누구십니까?
| |
− | [문종] 너를 가장 사랑하던 선왕 문종이다.
| |
− | [성삼문] 문종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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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암전)
| |
− | (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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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 6장
| |
− | [장] 6장
| |
− | 낮, 궁궐,수양대군과 신숙주가 서 있고 한 쪽에는 나졸들이 시립하고
| |
− | 있다.수양의 의복은 화려한 어의로 바뀌어져 있다.
| |
− | [수양] 대감,이번거사에 대감의 공이 많았소.이번 계유정난(癸酉靖難)의
| |
− | 공신으로 역사에 기리 대감의 이름이 남을 것이오.
| |
− | [신숙주] 전하, 황공하옵니다.
| |
− | [수양]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이번에 내각을 대폭 개정하여 영의정에 정인지,
| |
− | 좌의정에 정창손, 그리고 특히 이번 정난에 공이 지대한 한명회에게는
| |
− | 이조판서를, 그리고 대감에게는 좌찬성의 중요한 자리를 하사하게 된 것이요.
| |
− | [신숙주] 무눙한 소인에겐 과분한 직책이옵니다.
| |
− | [수양] 내 대감의 뛰어난 재질은 평소부터 잘 알고 있던 터이요. 벌써 오래된
| |
− | 얘기지. 대감과 내가 인연을 맺게 된 것이- 선왕 문종전하 시절에 명나라
| |
− | 사신으로 내가 선발이 돼서 떠나게 될때, 그 때 선왕은 굳이 부마(사위)를
| |
− | 동행시키려 했으나, 내가 극구 진언을 하여 당시 집현전의 교리 자리에 있던
| |
− | 대감을 종사관으로 추천해서 나와 동행하도록 했었지. 기억나오?
| |
− | [페이지] 104
| |
− | [신숙주] 기억납니다 전하!
| |
− | [수양] 그 때부터 나는 대감의 재능이 비범함을 알고 있었오. 대강의 뛰어난
| |
− | 시재(詩才)와 능통하게 구사하는 중국어에는 따를 자가 없었지. (웃음)
| |
− | [신숙주] 과분한 칭찬의 말씀을---
| |
− | [수양] (회심에 잠겨) 세상은 돌고 도는것, 이제 한사람은 왕의 신분으로,
| |
− | 그리고 또 한사람은 좌찬성의 신분으로서 지난날의 회포에 젖어 있으니 감개
| |
− | 무량하구려. 안그렀오, 대감?
| |
− | [신숙주] 전하의 말씀대로 감개무량합니다.
| |
− | [수양] 보시요 대감, 난 그래도 의리에 밝은 사람이오. 의리를 저버리거나
| |
− | 공적을 외면하는 그런 파렴치한 인간은 아니란 말이요. 알겠오? 이제 피의 숙청도
| |
− | 끝났오. 우리들 앞에는 이제 해결되고 시정되어야 할 막대한 국사만이 남아 있오.
| |
− | 이제, 오직 대감들의 솔직한 견해와 허심 탄회한 협조만이 남아 있오이다.
| |
− | [신숙주] 능력껏 전하를 보필하겠읍니다.
| |
− | [신숙주] 능력껏 전하를 보필하겠읍니다.
| |
− | (이때 요란한 웃음소리를 나며 한명회가 득의 양양하게 들어온다.)
| |
− | (이때 요란한 웃음소리를 나며 한명회가 득의 양양하게 들어온다.)
| |
− | [한명회] 전하! 옥체 만강하옵십니까? (읍한다.)
| |
− | [수양] 너무 그렇게 존대치 마오. 아직 왕의 체모가 몸에 배지 않아서
| |
− | 어색하외다, 대감.
| |
− | [한명회] 전하께 소인이 마지막 선물을 진상할까 하옵니다.
| |
− | [수양] 선물은 갑자기 무슨 선물이오?
| |
− | [한명회] 너무 놀라지 마십시오, 전하. 전하께 반역을 꾀하는 일당들을
| |
− | 체포하였읍니다.
| |
− | [수양] 반역이라구?
| |
− | [한명회] 이것으로서 아마 거추장스런 방해물이 모두 없어진 줄 압니다.
| |
− | [수양] 그게 무슨 말이요, 대감.
| |
− | [한명회] 지난번 창덕궁 광연전에서 있었던 명나라 사신 환영 초대연에서
| |
− | 반정을 거사하려던 성삼문과 유응부 일당들이 체포되었읍니다.
| |
− | [수양] 성삼문?
| |
− | [한명회] 성삼문이-?
| |
− | [수양] 어느 미친개들이 또다시 피를 흘리기 위해서 발광을 했단 말이냐? 어느
| |
− | 누가 새롭게 시작하려는 참신한 세력에게 찬물을 끼얹으려 했단 말이냐? 감히
| |
− | 누가 이 세조에게 반기를 들었단 말이냐. 누가 더 피를 보기를 원하느냐?
| |
− | [한명회] 김질이라는 한패를 매수했읍니다. 약한 녀석은 칼 앞에 굴복하거나 돈
| |
− | 앞에서 매수되지 않고 못배기는 법입니다. 김질이라는 녀석이 자초지종을 전부
| |
− | 고백했읍니다.
| |
− | [[수양] 그래 나를 죽이려 했단 말인가?
| |
− | [페이지] 105
| |
− | [한명회] 광연전 축하연 때 전하의 신변을 보호라기 위하여 무장을 하고
| |
− | 시립하려 했던 유응부가 전하의 목을 베기로 하고 동부승지 성삼문은 상왕 단종을
| |
− | 복위시키려 했다 합니다.
| |
− | [수양] 자기집 개에게 뒤꿈치를 물린 격이로구나!
| |
− | [한명회] 이미 정보가 내 손아귀에 접수된 후라서, 날씨가 덥다는 이유로
| |
− | 별운검을 세우지 않기로 당일의 의전 절차를 변경했읍니다.
| |
− | [수양] 대감의 선견지명이 아니었더라면 미친 개들의 칼에 황천객이 될 뻔
| |
− | 했구려.
| |
− | [한명회] 구사일생, 하늘의 도움으로 전하의 옥체가 건재하게 된 것입니다.
| |
− | [수양] 나는 그래도 학자들에게는 아량을 베풀어 주었다. 더군다나 집현전의
| |
− | 학자들은 선왕代(대)의 공적을 감안하여 될 수 있으면 이번의 숙청에서 제외시켜
| |
− | 회유의 방법으로 그들을 다루었다. 헌데, 살아 남은 은덕은 생각지 않고 이미
| |
− | 왕으로 옹립이 된 나를 축출시키려 음모를 했다니.
| |
− | [한명회] 거지에게 동냥주고 뺨얻어 맞은 셈이죠.
| |
− | [수양] 성삼문, 난 누구보다 그를 아껴왔다. 젊고 패기에 넘치며 호탕하고
| |
− | 검소한 그를 많은 학자들 중에서두 나는 제일 그를 아껴왔다.선왕 세종전하
| |
− | 시절에는 나의 유일한 술친구였었지.언제나 나와 허심탄회하게 농을 주고
| |
− | 받았다.그래서 이번 피비린내 나는 참극의 와중에서 은근히 그를 제외시켰다.
| |
− | 그런데 이제 그가, 나에게 비수를 내밀어? 도대체 어떤 배은망덕한 인간의
| |
− | 소견에서 그런 망발이 나왔단 말인가? 그놈의 얼굴을 보구 싶다.살아서 움직이는
| |
− | 그놈의 상판을 보구 싶다.어서 이곳으로 대령시켜라, 내가 아무리 일국의 상감의
| |
− | 신분이지만 친히 내 손으로 그놈의 진의를 타진해 보겠다. 어서,내 앞에 끌고
| |
− | 들어와 봐라!
| |
− | 들어와 봐라!
| |
− | (한명회 밖을 향해 날렵하게 손짓한다. 하수인 임운이 포승에 포박된 성삼문과
| |
− | 유응부를 끌고 들어온다. 신숙주와 성삼문 오래도록 마주 보고 서 있다.)
| |
− | 유응부를 끌고 들어온다. 신숙주와 성삼문 오래도록 마주 보고 서 있다.)
| |
− | 너희들은 지금 왕앞에 나와 있다. 무릎을 꿇어라.
| |
− | 너희들은 지금 왕앞에 나와 있다. 무릎을 꿇어라.
| |
− | (두사람 움직이지 않는다.)
| |
− | (두사람 움직이지 않는다.)
| |
− | 무릎을 끓어라, 너희들 앞에 지금 아니꼽겠지만 왕이 서 있다. 무릎을 꿇어라.
| |
− | [성삼문] 충신은 두 사람의 임금을 모시지 않소이다.
| |
− | [수양] 그럼 네게는 누가 임금이냐?
| |
− | [성삼문] 선왕의 유청으로 계승된 단종전하가 있읍니다.
| |
− | [수양] (차분히) 단종은 지금 노산군으로 강봉이 되어 수강궁에 유폐되어 있다.
| |
− | 지금의 왕은 나다! 단종
| |
− | [페이지] 106
| |
− | 으로부터 엄연히 선양받은 세조가 네 앞에 서 있다.
| |
− | [성삼문] 선양이 아니라 강탈이었소, 나으리.
| |
− | [수양] 나으리? (웃음) 나보구 나으리라구 불렀다!
| |
− | [성삼문] 엄연히 수양나으리요, 단종전하의 삼촌이시오.
| |
− | [수양] 다시 말한다. 국왕이 네 앞에 서 있다. 합법적으로 옥쇄를 하사받은
| |
− | 세조가 서 있다. 어서 엎드려라. 자, 무릎을 꿇어야지.동부승지에까지 오른
| |
− | 학자가 그만한 예의를 몰라서 되나. 자, 어서 엎드려라.
| |
− | [성삼문] 나으리, 나보구 두 임금을 모시라고 강요하는구려.
| |
− | [수양] (크게 웃르며 좌우로 왔다 갔다 한다. 무언가 억제하려는 듯이) 하,하,
| |
− | 나는 이럴때가 제일 난처해. 나의 말을 상대가 전혀 이해하지 못할때, 그 때가
| |
− | 제일 난처해진다니까.어렸을 때는 내시들의 등줄기를 때리며 엉엉 울어댔는데-
| |
− | 지금은 울 수도 없구.
| |
− | [한명회] 지금도 때리거나 두둘기시면 쉽게 풀리게 될텐데요. 전하, 왜 있지
| |
− | 않읍니까? 여러가지--- 예를 들면 이런거 말씀입니다.
| |
− | 않읍니까? 여러가지--- 예를 들면 이런거 말씀입니다.
| |
− | (들고 있던 칼집으로 성삼문과 유응부의 정강이를 내리쳐서 앉게 만든다.)
| |
− | (들고 있던 칼집으로 성삼문과 유응부의 정강이를 내리쳐서 앉게 만든다.)
| |
− | 얼마나 편리하고 쉽습니까, 전하.
| |
− | [수양] (더 크게 웃으며) 그걸 몰랐구먼, 그걸 몰랐어! 예나 지금이나 두둘겨야
| |
− | 해결이 되는구먼.
| |
− | 해결이 되는구먼.
| |
− |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두 사람의 주위를 매처럼 빙글 빙글 돌며)
| |
− |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두 사람의 주위를 매처럼 빙글 빙글 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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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왜 나를 죽이려 했나? 그것이 가장 궁금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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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응부] 간사한 모사들과 규합하여 선왕을 내쫓고 스스로 왕좌에 앉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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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적이기 때문에 죽이려 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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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양] 어떻게 나를 죽이려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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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응부] 광연전 연횟날 내가 대감의 목을 베어서 죽이려 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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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양] 이 놈은, 말하는 걸 보니 뛰어난 천재가 아니면 미친놈이다. 둘 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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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나야. 허나, 내가 보기에는 미친쪽에 가까운 것 같애. 이 놈은 우선 끌고 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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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중에 심문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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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중에 심문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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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운, 유응부를 끌고 나간다. 수양, 성삼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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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운, 유응부를 끌고 나간다. 수양, 성삼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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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번 음모의 주모자는 누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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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삼문] (침착히) 나, 성삼문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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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양] 나머지 동조자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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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삼문] 이미 체포된 이개, 박팽년, 하위지, 유성원, 이상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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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 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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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양] 불과 여섯명으로 대사를 음모했다고 믿어지지가 않아. 나머지 동조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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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고자를 대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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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삼문] 백번 죽어두 그 이상은 없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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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양] 자, 이럴 때 또 난처해진단 말이야. 쥐꼬리만한 자신의 의지를 신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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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믿고 이렇게 버티는 사람 앞에서는 아주 난처해진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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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명회] (수양에게 친근한 목소리로) 전하, 그래서 자고로 고문이라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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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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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양]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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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명회] 고문은 아무리 두터운 의지의 철판도 뚫습니다. 그리고 고문은 숭고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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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신력의 억센 표피를 파괴 시켜 줍니다. 전하, 그래서 고문은 편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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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간과 노력을 절약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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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간과 노력을 절약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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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명회 야무지게 밖을 향해 손벽을 두번 친다. 임운이 인두가 가득 꽂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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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동화로를 들고 들어온다.청동화로에서는 파란 연기가 피어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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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동화로를 들고 들어온다.청동화로에서는 파란 연기가 피어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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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 불꽃이 곱기두 하구나.
| |
− | 참, 불꽃이 곱기두 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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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양 어의를 벗어던지고 소매를 천천히 걷으며 앞으로 나온다.)
| |
− | (수양 어의를 벗어던지고 소매를 천천히 걷으며 앞으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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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양] 부득불 나도 지름길을 택할 수 밖에 없구나. 자, 다시 묻는다. 동조자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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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고자를 말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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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삼문] 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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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삼문] 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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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양, 인두를 하나 집어들고, 임운에게 눈짓하면 임운 성삼문의 상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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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벗긴다. 수양 인두로 성삼문의 등을 지진다. 연기가 꿈틀거리며 피어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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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벗긴다. 수양 인두로 성삼문의 등을 지진다. 연기가 꿈틀거리며 피어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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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양] 다시 묻는다. 동조자와 연고자를 말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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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삼문] 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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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삼문] 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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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양, 다시 더 큰 인두를 꺼내서 성삼문의 등을 지진다. 연기가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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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양, 다시 더 큰 인두를 꺼내서 성삼문의 등을 지진다. 연기가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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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명회] 고문은 의지와 정신력을 파괴시킨다. 감각기관이나 신경계통을 통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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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육신의 구석까지 파고들어가 고통과 자극으로 인간과 동물의 사이에 놓인 엷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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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막을 찢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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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막을 찢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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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명회의 주문과도 같은 설교 속에서 호리죤트는 여러가지 색으로 변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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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양, 점점 광인의 몸짓으로 속도와 힘을 가하여 고문의 마임을 계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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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양, 점점 광인의 몸짓으로 속도와 힘을 가하여 고문의 마임을 계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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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문에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다. 잠을 재우지 않거나, 밝은 불빛속에 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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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워두는 경우도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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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 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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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란한 소음속에 가두는 경우도 있으나 대개는 육체에 직접 자극을 준다. 예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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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늘로 전신을 찌르는 수도 있고 찝개로 손톱이나 발톱을 빼는 수도 종종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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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간혹 뜨거운 촛농을 손등 위에 장시간 떨어트리는 때도 있으나 코나 입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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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뜨거운 물을 붙는 것이 가장 많이 쓰이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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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뜨거운 물을 붙는 것이 가장 많이 쓰이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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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삼문 기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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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삼문 기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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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육체의 고통이 한계를 넘으면 정신력이 분열되고 감각이 마비되어 체내의 모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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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능이 제구실을 정지하기 때문에 의식을 잃고 졸도를 하게 된다. 그러나 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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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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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천히 一幕(일막)의 막이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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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천히 一幕(일막)의 막이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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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막] 2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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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 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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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 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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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밤, 감옥, 성삼문이 신숙주와 창살을 사이에 두고 대좌하고 있다. 중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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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떠있는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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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삼문] 날 비웃으러 왔오. 대감이 전에 말한대로 피투성이가 됐으니 비웃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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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땅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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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숙주] 성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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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삼문] 허나 나는 아직 혼을 팔지 않았오. 육신은 멍이 들고, 피부의 껍질이
| |
− | 검붉게 타올라 고름이 흘러내리고 있지만 내 혼만은 아직 푸르게 살아 있오이다.
| |
− | [신숙주] 성대감! 수양께서는 나를 보내서 대감을 살릴 수 있는 길을 모색하라
| |
− | 하셨오. 이대로 가다가는 대감은 필경 고문에 지쳐서 죽게 될 것이오. 다시한번
| |
− | 생각해 보시구려.
| |
− | [성삼문] 생각을 해보라니, 내 혼을 팔아 넘기란 말이오.
| |
− | [신숙주] (두루마리를 꺼내며) 여기 집현전 학자들의 연명부가 작성되었오.
| |
− | 세조의 왕권을 인정하여 여기에 서명만 하면 모두 용서해 주겠다고 약속하였오.
| |
− | [성삼문] 용서? 누가 나를 용서해 주겠다는 거요, 수양이 그럽디까? 당치도
| |
− | 않을 소리오. 용서를 빌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바로 수양이요. 용서를 비는
| |
− | 것은 으례 죄인이 하는 법, 내가 무엇때문에 용서를 구하고 그 비굴한 연명부에
| |
− | 서명을 해야 한단 말이요. 세조의 왕권을 인정하라구? 거듭 말하지만 하늘에 해가
| |
− | 둘이 없듯이 나라에도 왕은 둘이 있을 수 없오. 충신은 한 임금을 모시는 것이
| |
− | 옳은 마음가짐이거늘 어찌하여 역적이 되라 하시는 거요. 쓸데없는 헛수고 하지
| |
− | 말고 어서 수양에게 돌아가서 국사나 논하구려.
| |
− | [신숙주] 성대감, 내가 성대감의 절개를 유린하기 위하여 여기와 있는 게
| |
− | 아니오. 누구보다도 성대감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나요. 변절을 시키거나 설득을
| |
− | 시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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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 109
| |
− | 온 게 아니고 협조를 구하러 온 것 뿐이외다. 성대감이 나를 얼마나 원망하고
| |
− | 있는 줄 잘 알고 있오이다. 성대감의 온몸에 고문의 핏자욱을 곁에서 지켜보고
| |
− | 있는 나의 마음도 그와 못지 않게 괴롭기 한이 없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 |
− | 성대감을 고통 속에서, 그리고 죽엄에서 구하는 것뿐이오.
| |
− | [성삼문] 동정을 하기 위하여 나를 찾아 왔다면 차라리 그만 두는 게 낫오. 이
| |
− | 철장에서는 오히려 맘이 편하고 속이 청결해지는 듯하오.오히려 창살 밖에서
| |
− | 서성대는 신대감의 모습이 어쩐지 처량하게 느껴는구려.
| |
− | [신숙주] 얼마든지 비웃고 야유를 하구려. 내가 성대감만 구할 수 있다면
| |
− | 어떠한 모욕도 다 견디리다.그러나 부탁이요 단 한번만, 내 말을 들어 주구려.
| |
− | 성대감의 그토록 청결하고 곧게 살아 온 일생 중에 마지막으로 꼭
| |
− | 한번만「네」라구 대답해 주구려.그 작은 한마디로서 짧고 간단한 한마디로서
| |
− | 성대감은 이 치욕과 고통의 굴레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있오. 부탁이요.
| |
− | 한번만「네」라구 대답해 주구려.
| |
− | [성삼문] 한번? 한번이라구, 짧고 간단한 소리로 「네」라고 대답을 한다.
| |
− | 부끄러운 듯이, 그리고 아무도 듯지 못하게, 어물쩍「네」라고 대답만 하면 남은
| |
− | 여생을 안락하게 가족들의 웃음소리 속에서, 그리고 약수터의 오솔길을 다시
| |
− | 걸으며 편안히 살아갈 수가 있다는 말인가---? 아내의 국화꽃 얘기를 들으며,
| |
− | 천진나만한 아이들의 붉은 볼 위에 입을 맞추며, 산등성이 넘어로 훨훨 떠오르는
| |
− | 연을 바라보머, 그리고 아내의 사랑스런 손길로 다듬어진 싱그러운 비누냄새가
| |
− | 풍기는 흰두루마기를 걸치며 즐거움에 겨운 일상의 시간속에 나를 떠내려 보내 수
| |
− | 있단 말인가---? 「네」라고 짧고 간단하게 대답만 한다면---?
| |
− | [신숙주] 여기에 간략하게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서명을 하면 되오. 성대감!
| |
− | [신숙주] 수양대감은 이미 상감으로 등극하였고, 그의 확고한 세력에 이상이
| |
− | 생기지 않는 한 어쩔 수 없이 세조임금의 당연한 시대를 맞이하는 거라오. 부정할
| |
− | 수도, 저항할 수도없이---우리의 속절없이 늙어가는 나이와 함께 같은 시대를
| |
− | 우리는 살아야 할 뿐이오. 성대감!
| |
− | [성삼문]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거짓을 가르치고 그저 약삭빠르고 계교스럽게
| |
− | 살아 가는 생활의 비결을 귀띔해 주며 「적당히 살아야 한다.」「남에게 져서는
| |
− | 안된다.」「정의란 세상에 없단다.」「봐라, 네 아버지는 얼마나 능수능란
| |
− | 하냐?」 어른이 된 아이들은 도처에서 「네」「네」라는 대답으로 정의를
| |
− | 실현시키다 이 나라를 좀먹어 올 테지.
| |
− | [신숙주] 「네」라고 대답을 백번 해서라도 살아 남아 있을 수 있다면 그
| |
− | 대답은 얼마든지 계속해야 되오. 생활 속에서 생명을 영위하는 현실속에서,
| |
− | 부정과 싸우며
| |
− | [페이지] 110
| |
− | 정의를 차츰 실현시키는 것이 현명한 것이오.
| |
− | [성삼문] 현명한 것과 진실 사이에는 두꺼운 벽이 있오. 이세상의 모든 사람이
| |
− | 순교자가 될 수도 없으며 또 돼서는 안되오. 허나 죽엄을 기꺼이 받아들일 줄
| |
− | 아는 고매한 인격들이 가끔 태어나고 있오. 그들은 불의 앞에서 스스로의 작은
| |
− | 생명을 불태워 어둠을 잠시 밝히게 되오. 어둠속에서 방향을 잃었던 많은
| |
− | 사람들은 그 불빛으로 방향과 길을 가늠하고 자기들이 서 있는 위치를 확인하게
| |
− | 되는 거요, 순교는 잠시동안 피어오르는 작은 불빛이오. 그리고 하나의 작은
| |
− | 충격이며, 단잠을 깨워주는 새벽의 인경의 소리와 같은 거요.때가 되면 누군가는
| |
− | 그것을 족해야만 되오. 그 사명을 계시받은 사람은 비굴하게 살아남기
| |
− | 위해서「네」라는 구차스런 대답을 하지 않는 법이오.자라나는 아이들은 이
| |
− |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아니오」라는 대답도 해야한다는 확실한 교훈을 얻게
| |
− | 되며, 어른이 된그들은 「아니오」라고 말하며 죽어가는 새로운 순교자가 되는
| |
− | 거요. 나라에는 대대로 내려오는 왕위계승 원칙이 있오. 이것은 이태조가 이
| |
− | 나라를 건축한 이래 국법으로 내려온 원칙이오. 선왕은 왕자들중에서 유능한
| |
− | 아들을 골라 세자로 책봉을 하게 되며 세자로 책봉된 왕자는 선왕이 승하하거나
| |
− | 노쇠하여 차차 그 능력을 다할 수 없을 때 유명에 따라 합법적인 절차를 밟아
| |
− | 왕위를 받게 되는 것이오. 이것은 법이고 원칙이며, 진리라고 말할 수 있오---
| |
− | 그런데 이 진리를 부정하고 부정한 수단과 방법으로 무력을 구사하여 왕위에 오른
| |
− | 자가 있오. 이유야 어떻든, 그 부정한 행위가 정의로서 이 나라에 존재해서는
| |
− | 안된다는 말이오. 그것을 용서하는 것은 부정을 정의로 받아들여 동조하는 것밖에
| |
− | 안되는 것이요. 이제 수많은 왕위의 지망생들이 언제 어디서 똑같은 방법으로
| |
− | 반기를 들고 궁궐로 몰려들어 올지 모르는 일이오. 앉은 자와 뺏으려는 자와
| |
− | 혈투는 밤낮없이 계속되고 백성은 법과 진리가 무엇인지 모르는 혼란 속에 빠지게
| |
− | 돼 서로 죽이고 약탈하는 수라장으로 변하게 될 것이 명백한 일이오. 나는
| |
− | 마지막으로 「네」라고 대답하는 나의 행동이 이러한 비극을 초래할 것을 믿기
| |
− | 때문에 이제 「아니오」라고 대답하는 거요.
| |
− | [신숙주] 나는 성대감이 충신이나 순교자가 되는 것을 원치 않소. 다만 나의
| |
− | 친구로서 서로 벌거벗고 마주서서 우정을 깊이 나누는 친구로서 내 곁에 있기를
| |
− | 원하고 있오. 옛날의 아름다운 교분을 알뜰히 붙잡고 애걸하는 당신의 가련한
| |
− | 친구가 여기에 있오이다. 참 아름다운 시절이었다우. 생각나오? 성대감, 우리가
| |
− | 20代(대)의 약관으로 과거에 급제하여 세종전하의 부르심을 받고, 집현전에
| |
− | 등청하던 때를 ---
| |
− | [성삼문] (웃으며) 지나간 것은 늘 무지개처럼 곱게 느껴진다고 그러더군.
| |
− | [페이지] 111
| |
− | [신숙주] 정음청이란걸 개설하셔서 우리를 글자 만드는 일에 전념시키셨지.
| |
− | 해가 경회루 처마너머로 살며시 스며들면 우리는 어둠이 땅에 깔리는 경복궁의
| |
− | 뜰을 지나 다정스럽게 퇴청을 하였지. 성대감은 늘 돈의문 밖 삼거리에서 「숙주,
| |
− | 우리 주막에 들러 한잔 하는 게 어때.」하고 유쾌하게 웃어대면서 주막집으로
| |
− | 갔었지. 술이 거나하게 취하면 선비의 신분도 다 잊어버리고 비분강개하며 국사를
| |
− | 논하고 술상을 주먹으로 쳐가면서 외교정책을 역설하곤 했지. 생각나오? 그 때가
| |
− | 우리가 하도 술을 좋아한다는 소문을 세종전하께서 들으시고 어느 날인가는
| |
− | 「자네들은 깨어있는 시간보다 취해 있는 시간이 더 많다니, 그러다가 한글이
| |
− | 꼬불꼬불하게 창안되면 어쩔텐가.」이렇게 농담을 하시며 인자하게 웃으시던 일이
| |
− | 있었지. 한글을 창제하여 훈민정음을 반포하던 날 거리의 주막집을 누비며 3차,
| |
− | 4차까지 술을 퍼마셨지. 언젠가 세종전하께서 신병의 치료를 위하여 온양으로
| |
− | 행차하시던 날 상감께서는 우리들을 특별히 동행을 명하셨오. 행렬이 천안에 이를
| |
− | 때 상감께서는 어가를 멈추게 하시고는 「자네들 얼굴을 보니 술생각이 꽤 나는
| |
− | 모양이군.」우리가 머리를 들지 못하고 황송해하자 상감께서는 나인들을 시켜 큰
| |
− | 술병을 내리게 하시더니 큰 잔으로 가득히 법주를 따라 주면서「내가 술을
| |
− | 하사하는 대신 자네들은 즉석에서 시를 지어 올리게.」하셨지. 그때 성대감이
| |
− | 먼저 시를 지어 올려 드렸지.
| |
− | [성삼문] 임의 밥 임의 옷을 먹고 입고 살았으니
| |
− | 평생에 먹은 마음 변할 리가 있으리오
| |
− | 이 몸은 오직 충과 의를 위함이니
| |
− | 청산의 푸른 송백 꿈 속에 못잊혀라.
| |
− | 청산의 푸른 송백 꿈 속에 못잊혀라.
| |
− | (인경소리 요란한 중에 암전)
| |
− | (인경소리 요란한 중에 암전)
| |
− | [장] 2장
| |
− | [장] 2장
| |
− | 밤, 어전 수양대군과 몹시 피곤해 보이는 성삼문, 한쪽에는
| |
− | 「保國安民」(보국안민)「泰平盛大」(태평성대)라는 깃발이 세워져 있고 많은
| |
− | 서적들이 쌓여 있다. 번개와 천둥.
| |
− | [수양] 좌찬성 신숙주를 통하여 보낸 연명부에 서명을 거절하였다면서?
| |
− | [성삼문] 그렇소!
| |
− | [수양] 나는 그래도 옛정을 생각해서 행여 구해낼 방법이 없나 하고 여러
| |
− | 대신을 감옥으로 보내어 최선을 다해 자네를 회절시키려고 노력을 해왔어. 그
| |
− | 때마다 자네는 일언지하게 거절하여 나의 한가닥 호의에 대하여 노골적으로
| |
− | 찬물을 끼얹었지.
| |
− | [성삼문] 더 이상 무슨 말을 하고 더 이상 무슨 생각을
| |
− | [페이지] 112
| |
− | 하며 살았겠오. 어서 내 갈길로 보내 주시오.
| |
− | [수양] 지식? 학자라는 자네들은 그 지식이라는 괴물때문에 그토록 오만해지나?
| |
− | 도대체 지식이라는 게 뭔가? 반대하는 게 지식인가? 아니라고 소리치는 게
| |
− | 지식이야? 매사를 논리로 따지고 분석하며 난도질하여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는
| |
− | 게 자네들 선비들이 하는 짓이야! 무조건「아니」라는 거야!왜 아니야고 물으면
| |
− | 동서고금을 통한 이론과 학문에서 당치도 않은 괴변들을 끌어들여 그럴듯하게
| |
− | 합리화를 시키고는 선비다운 행색을 하며 쾌재를 부르고 앉아 있는 것이 너희들
| |
− | 선비들이 하는 짓이야! 언제나 명분! 명분에만 사로잡혀 삼강오륜이 어떠니
| |
− | 공맹이 어떠니 하고 이미 남이 쌓아놓은 지식위에 올라 앉아서는 마치 자기가
| |
− | 신선이 된 것처럼 의기양양하게 반대만 내세우고 있는 샛님들이 바로 너희들 학자
| |
− | 놈들이야! 아무것도 하는 것이 없어! 백성들이 피땀을 흘려 농사를 지을 때 너희
| |
− | 선비란 놈들은 따뜻한 아랫목이나 정자에 앉아 돼먹지도 않은 산수나 음어대고
| |
− | 술이나 퍼마시고 기생방의 문전이나 들락거리는 게 고작 너희들 선바들이 하는
| |
− | 짓이야.
| |
− | [성삼문] 전부가 그렇지는 않소. 선비의 참 뜻을 따르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 |
− | 있오. 패륜적인 탕아들을 예로 들어 지식과 학문을 모독하는 것은 대감의 무지를
| |
− | 드러내는 일이오.
| |
− | [수양] 누구나 자기는 선량하고 유능한 학자라고 생각하지. 벽에다가 난초를
| |
− | 그려 붙여 놓고서 자기만은 청렴결백하다고 오만을 떨고 있어. 가소롭게도 충절을
| |
− | 소나무에 비교하며 마치 이 세상은 전부 역적, 탕아, 탕녀들만이 들끓는데
| |
− | 자기만이 청백하게 유아독존한다고 망상을 하고 있다. 그게 너희들 선비들
| |
− | 생각이야. 마치 소박한 듯이 도포자락을 펄럭거리며 짚신을 꿰여 신고는 만민이
| |
− | 평등하다는 듯 상놈들이나 다니는 허술한 주막에 들러 위안 삼고, 그리고는
| |
− | 조정에서 하는 일에는 무조건 손을 내저으며 반대를 한다. 반대를 하기위한 반대,
| |
− | 반대를 하여 자기의 무능한 학식과 능력을 과시하려는 야비한 생각을 하는 게
| |
− | 선비들이란 말이다.
| |
− | [성삼문] 선비는 나라의 양심, 학자는 나라의 기둥, 이제 대감은 마음대로
| |
− | 나라를 손아귀에 넣고 주무르기 위해서는 눈의 가시같은 ---신발속의 모래 같은
| |
− | 지식을 혐오하고 있는 거요.
| |
− | [수양] 네가 말한대로 난 지식과 학문은 뛰어나지 못했다 해도, 단호한
| |
− | 결단력과 모든 것을 바로 실천으로 옮기는 정열을 가지고 있어. 우리는 부러지는
| |
− | 일은 있었어도 너희들처럼 애매모호하게 휘는 법은 없어. 술에 술탄 듯, 물에
| |
− | 물탄 듯,세상은 될대로 되라는 식의 너희들보다는 훨씬 건전해. 너와 함께 모
| |
− | [페이지] 113
| |
− | 의에 가담했던 유성원이라는 놈이 자살을 했다.
| |
− | [성삼문] 유성원이?
| |
− | [성삼문] 유성원이?
| |
− | (번개 천둥)
| |
− | (번개 천둥)
| |
− | [수양] 비겁하게 눈물을 질질 흘리면서 사당에다 절을 하고는 엉금엉금
| |
− | 방구석으로 기어가 자살을 했대. 왜 정정당당하게 나서지를 못해. 자기의 주장을
| |
− | 왜 떳떳하게 피력하지 못하고 이집 저집으로 숨어 다니다가 비굴하게 자살을 해.
| |
− | 그게 선비들이 하는 짓인가?일을 저질러 놓고 보니 겁이 났던 거야. 자기의
| |
− | 동지들은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당하고 있는데 혼자서 살아보겠다고 버둥대다가
| |
− | 사면초가, 사방이 막히니까 겨우 자살하는 정도야. 대의명분은 좋았지. 불법으로
| |
− | 와위에 오른 수양을 몰아내자, 그럴싸한 명분아래 뭉친 겁쟁이 꽁생원들이 사태가
| |
− | 불리하니까 겁에 질려 자살하는 게 선비들의 최후란 말이다. 소외당한 감정
| |
− | 때문에 그럴 듯한 명분을 내세워 대정 혁신을 하려다 실패하니까, 아무 대안도
| |
− | 없는 자기들의 음모가 죄스러웠던 거지. 또 김질이란 놈은 어땠나? 자네들 음모의
| |
− | 참모 역할을 한 녀석이 우리가 던져주는 2백량에 매수가 돼서 자네들을 배반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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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주 훌륭한 선비들이지. 김질이란 녀석이 내게 와서 뭐라고 아양을 떨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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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알어?「정이품 정도의 벼슬만 주신다면 분골쇄신 대감께 충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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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치겠나이다.」하고 백번이나 절을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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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삼문] 인간의 약함을 이용하여 매수하는 것은 더욱 악랄하고 비굴한 처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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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양] 아무 조직도 없이 아무 능력도 없이 그저 걸레쪽 같은 대의 명분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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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믿고 거사를 꾸몄든 거야. 어리석은 자들, 아마 거사가 성공을 했더라면 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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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꼴불견이었을 걸. 우후죽순처럼 들고 일어나 감투 싸움에 재물 분배 싸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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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지간히 소란을 피웠을 거야. 그게 선비들이란 거야. 나는 너희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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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리타분한 학식도 없었지만, 온갖 지혜를 동원하여 거사를 성공 시켰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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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투와 재물도 분에 어울리게 안배했어! 어느 누구도 나에게 불평하는 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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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없었다. 이것이 너희들 선비보다 훌륭한 능력이란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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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삼문] 그러한 능수능란하고 완전무결한 힘으로서 선왕에게 충서하여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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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못하고 오히려 반기를 들어 옥좌를 강탈했으니 이해하기 힘든 일이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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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양] 왕은 명예가 아니라 나라를 다스리는 중심 인물이야. 국책을 정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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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실행해야 하는 실천자야. 헌데 단종한테는 그러한 능력이 없어. 대왕대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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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치맛자락에나 매달려 어리광을 부리는 어린애에 불과해. 어느알 나는 백성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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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태를 관찰하기 위해 평복으로 갈아 입고 경기도 광주에 내려가 본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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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느 마을을 지나려니까, 어느집 마당 앞에 사람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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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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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몰려 있길래, 내 그 연유를 물었더니 지금 젊은 아낙네가 고을의 포졸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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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끌려가는 길이라고 하더군.왜 끌려가느냐고 물었더니, 먹고 살길이 하도 막막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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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린 두 자식을 목을 졸라 죽였다는 거야. 나라에서 거둬가는 세금은 너무 많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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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듭되는 흉년에 살 길이 없었다는 거야. 결국 그 젊은 아낙네는 자식을 죽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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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죄인으로 관가에 끌려가는 중이라는 얘기였어. 난 그때 동정보다는 분노가 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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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랐다. 백성들의 형편에는 아랑곳 없는 탐관오리들이 매관매직을 일삼는 궁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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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하들이, 죽이고 싶도록 원망스러웠다. 나는 그때 생각했어. 누군가는 이것을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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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결해야 한다고. 그 아낙네 뿐만 아니라 전국 도처에서 가난에 허덕이는 불쌍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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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성들을 위해서는 누군가는 꼭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이야. 그후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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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한 고민 속에 빠지게 됐어. 밤마다 악몽을 꾸게 되고, 분노와 증오가 온 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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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엄습해와, 온몸을 땀으로 적시거나,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이가 일쑤였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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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때만 해도 내가 왕좌에 앉고 싶다는 욕망은 전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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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삼문] 허지만 내가 해결해야겠다는 자만심이 싹 터 왔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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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양] 그렇다, 나도 알 수 없는 힘들이 내 등을 떠밀어 피할 수 없는 사명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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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앞으로 접근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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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삼문] 그리고는 왕이 어리다는 타당한 이유를 발견하는데 성공을 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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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양] 북에서는 명나라와 야인들이 번갈아 손을 내밀어 위협적으로 조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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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뺏어가고 국경의 마을들을 습격하여 재물을 약탈하고 아녀자들을 끌고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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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애초에 버릇들을 잘 못들여, 잔뜩 입맛이 붙은 명나라와 야인들은 이러쿵 저러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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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정에까지 간섭을 하고 국교를 트자 무역을 확대하자 하며, 반 침략적으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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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땅을 설치고 다녔다. 그러나 누구 하나 여기에 대해서 국론으로 이 문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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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기하거나 왕에게 상소하는 자가 없었다. 왕에게 상소해봤자 소용이 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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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렇겠지. 어린왕이란 작자는 궁녀들의 치맛자락에 매달려 허구한 날을 어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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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뒷뜰에서 숨밖꼭질이나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손구락이나 빨며, 과일이나 찾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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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곤하면 왕비의 무릎을 베고 낮잠을 자는 게 일국의 상감이 하는 일과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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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쪽에서도 야단이 났었다. 일본 상선들이 무기를 잔뜩 싣고 와서는 거래를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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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않으면 포구를 불지르겠다느니 하며 갖은 행패를 다 부리고 있었다. 그러나 어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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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왕은 일본이란 나라가 지도상에 어느쪽에 붙어 있는지도 알지 못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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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방지축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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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삼문] 그러나 왕을 보필하고 있는 삼정승 및 각조 판서와 대신이 얼마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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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있었오. 얼마든지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조정이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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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양] 그자들이 하는 짓이 뭣인지나 아나? 왕이 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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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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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는 핑계로 자기들 멋대로 국론을 정하고 자기들 뜻대루 감투를 사구 팔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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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강에다 유람선을 띄우고는 매일같이 선유가나 부르고 있었어. 술잔이며 촛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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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지어는 타구와 요강까지 금으로 만들지 않으면 사용하지 않았구 심산유곡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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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별당들이나 지어놓고 비싼 돈을 들여 대리석 석계를 쌓아올리는가 하면,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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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라에서는 나지도 않는 고급 물감을 중국에서 사 들여 호화찬란하게 단청을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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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놓고 사군자 병풍을 사방에 둘러친 속에서 첩년들이 뜅겨주는 가야금 소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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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맞추어 회심가나 부르고 있었단 말일세. 얼빠진 군졸 놈들은 자기들의 생명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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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같은 칼이나 창을 잡히고 외상 술까지 퍼먹는 사태까지 이르게 됐어. 백성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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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먹을 것이 없이 초근 목피로 연명을 하는데 조정의 관리라고 하는 자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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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육지림 속에 파묻혀서 기껏 국사를 집무한다는 것이 백성에게 과중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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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급이나 책정하는 일이고 팔도의 절제사나 그 휘하 고을의 원님들이라는 것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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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뇌물로 상납하는 물품의 품목이나 정리하고 앉아 있는 게 고작이었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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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이야.그것을 보고 가만히 있어야만 되나? 철면피들의 난장판을 모른 체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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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경만 하고 있으란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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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경만 하고 있으란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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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둥 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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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둥 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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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 때부터 분노와 증오로 세월 보내던 가련한 젊은이는 애국 충정에 온 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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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타기 시작했으며 국난을 타개할 수 있는 계획과 방법을 연구하여 그 백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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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하게 됐지. 어느날 한명회가 나에게 찾아와서 무력 봉기할 것을 제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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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명회라고 하면 물론 자네는 치를 떨 테지만 지략에는 능한 녀석이야. 나도 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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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를 탐탁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나는 그에게서 내가 갖지 못한 비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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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주가 있음을 알개 됐고, 그 때부터 그의 재주와 능력을 나의 목적을 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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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단에 백배 이용하기로 결심을 했다. 비상도 적절하게 사용하면 훌륭한 약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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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휘하는 법이다. 나는 한명회라는 비상을 나의 애국충정이라는 한 약속에 조금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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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섞어서 사용하기 시작했어. 그 약효는 놀라울 정도로 좋아 만병 통치의 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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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되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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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삼문] 극약은 언제나 극약의 성분으로서 어느 부분엔가 남아있게 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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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감은 과도하게 극약의 양을 사용했기 때문에, 너무 많은 피를 보게 된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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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앞으로 점점 극약의 함량이 많아져서 극약을 통채로 사용할 때가 분명히 닥쳐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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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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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양] 나의 꿈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왕이 돼야겠다고 그 무렵 작정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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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능하고 철딱서니 없는 왕은 이 나라의 병폐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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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삼문] 왕의 권위와 왕관에 대한 유혹을 받아 대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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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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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야망에 불이 붙게 된 거요. 세종전하께서 장남인 문종을 세자로 책봉하시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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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남이었던 대감께서는 옆자리에 서 계셨소. 흥겨운 풍악소리가 울려퍼지는
| |
− | 속에서 세자책봉의 의식이 화려하게 진행되는 동안 나는 대감의 눈에 맺혀 있던
| |
− | 눈물을 아직도 기억하오. 아무도 보지 못했지만 나는 분명히 허무하게 사라져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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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왕관을 바라보며 속으로 울고 있던 대감의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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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양] 철이 없었을 때의 이야기다. 남자라면 누구나 한번은 왕좌의 권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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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 매력과 동경을 하게 된다. 비록 서열로서는 차남이였지만 행여 내게 왕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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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돌아오지 않을까 하고 생각을 했었다. 왕좌의 신분으로서 부왕의 옥쇄를
| |
− | 계승받기를 원치않는 자는 하나도 없다. 허나 그것은 철없는 시절의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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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삼문] 철이 들어 성인이 되었을 때에도 대감의 한구석에는 왕관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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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련과 야망이 도사리고 있었오. 왕이 갖는 객관적인 특혜, 다시말해서 옥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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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앉아서 천하를 호령한다든가, 문무백관의 배례를 받으며 우렁찬 목소리로 훈시를
| |
− | 한다든가, 백말이 끄는 마차를 타다든가, 사랑을 받으려고 다투어 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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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달려드는 수백의 궁녀들, 용무의 얼룩진 어의---황금으로 채색된 왕관, 이런 것에
| |
− | 대한 끊을 수 없는 유혹을 괴롭도록 받아 왔던 것이오. 어느날 숨겨졌던 야망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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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끄나불 끝쪽에 작은 불이 붙기 시작했던 거요. 그리고 부끄러운 양심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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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변명으로 부패를, 외세의 위협을, 왕의 어린 나이를 그럴 듯하게 색칠을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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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세우게 된 것이오. 거듭 말하지만 단종전하는 왕좌의 야망에 눈이 어둔 자기
| |
− | 삼촌에게 의하여 억울하게 폐출된 것이외다.
| |
− | 삼촌에게 의하여 억울하게 폐출된 것이외다.
| |
− | (천둥 번개)
| |
− | (천둥 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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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양] (크게 소리내어 웃은 뒤) 단종전하? 너는 네 전하를 앞에 두고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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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을 끌어내어 전하!전하! 하는구나.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봉이 된 지 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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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래야. 헌데 나를 보구 대감이라구? 네가 신주 모시듯이 그렇게 부르짖는
| |
− | 단종이란 과연 어떠한 위인인 줄 아나? (웃음) 내가 칼을 번척 빼어들어옆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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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앉았던 「조번」의 복을 내리치니까, 「삼촌, 무서워, 날 살려줘 삼촌!」하고는
| |
− | 내 옷자락을 붙잡고 엉엉 울고 있더군. 알겠나? 그게 네가 존경하는 상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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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습이다. 서류에 결재도 제대로 할 줄 몰라 신하들이 노란 딱지를 붙여줘야 그
| |
− | 자리에 동그라미를 쳐서 결재랍시고 하던 위인이야 궁녀들의 방이나 들락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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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심히 꽂감이나 얻어먹고 내시들의 등에 엎혀 왔다 갔다하는 게 너희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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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감이었어. 잠자리에서 오줌이나 싸고, 천둥 번개만 쳐도 왕비의 젖가슴을 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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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들어 훌쩍훌쩍 울던 철딱서니 없는 애녀석이 너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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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 117
| |
− | 의 상감이었다.안평대군, 임영대군, 광평대군, 금성대군, 평원대군, 영응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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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밑으로 태어난 선왕의 정비와 후비의 소생들이 이제나 저제나 하고 옥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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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넘보고 있었어. 어느 땐가 철딱서니 없는 어린 상감을 쫓아내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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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상이몽들을 하며, 칼들을 갈고 있었지.
| |
− | [성삼문] 그 중에 대감도 한 사람이었지.
| |
− | [수양] 변명은 하지 않겠어. 허나 안평대군을 제외하고는 덜돼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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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머저리들이야. 기껏 낫다는 안평대군이라는 것도 마포강에서 정자나 지어 놓고
| |
− | 얼치기 선비 녀석들과 어울려 술에 취해 뱃놀이에 시국담 이론으로 소일하던
| |
− | 한량이었으니까. 내게 자신을 갖게 했던 것이 바로 안평대군이었어. 얼치기
| |
− | 한량손에 나라가 넘어지기 전에 내가 먼저 선수를 써야겠다고 작정을 했으니까.
| |
− | 내 능력의 과신이라기 보다 능숙하게 처리할 수 있는 일을 미덕이라는 이름 아래
| |
− | 피한다는 것이 비굴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야.
| |
− | [성삼문] 아직도 늦지 않았오, 대감. 선왕의 묘혈을 파는 반역의 깃발을 걷어
| |
− | 치우며 지금이라도 단종전하를 다시 옥좌에 복귀시키구려. 그 길만이 나라와
| |
− | 대감이 구원 받을 수 있는 길이오.
| |
− | [수양] (무겁게 배회하다가) 단종은 여기에 없다.
| |
− | [성삼문] (놀라) 여기에 없다니 그게 무슨 소리요?
| |
− | [수양] (차분히) 강원도 영월로 유배보냈다.
| |
− | [성삼문] 유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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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양] 놀라지 마라.일이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어제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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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부도사「왕방연」이 사약을 가지고 영월로 떠났다. 지금 쯤은 모든 것이 끝나,
| |
− | 침묵만이 흐를 것이다. (성삼문은 깊은 슬픔에 빠진다.) 왕방연이 떠날 때 특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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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탁을 해서 만약 눈치를 채고 사약을 마시지 않을 때는 목을 졸라 죽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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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령을 했다. 이것만이 백성들과 너희들의 뇌리 속에서 단종의 환상을 지우는
| |
− | 유일한 길이다. 이제 부득이 세조의 시대는 오고 말았다. 싫건, 좋건 나를 따르고
| |
− | 나를 보필해야 하며 나의 명령을 받아야 한다. 나를 너무 멸시하거나 원망하지
| |
− | 마라.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을 단지 수양이라는 인물이 기꺼이 나서서 한 것
| |
− | 뿐이다. 나를 동정하고 나를 이해하여 다오. 피를 보기 즐겨하는 사람은 이
| |
− | 세상에 아무도 없다. 수백명의 몸에서 흘러내린 늪속에 발을 담그고 서서 내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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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사를 논하고 있는 가련한 임금의 고독을 이해하여 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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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삼문] 천벌을 받으리다! 천벌을 받으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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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양] 내일 아침 집으로 돌아가거라. 사랑스런 아내가 펴주는 보드라운 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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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불 속에 들어가 편안한 마음으로 만사를 다시 생각해 보아라. 춥고, 배고픈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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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 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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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서는 사고가 외곬으로 흐르게 마련이다. 네가 입만 다물고 국사에 임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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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것으로 모든 것은 끝나는 것이다. 네가 원한다면 정승의 다리까지 하사 하겠다.
| |
− | 그저 입을 다물고 나를 따르면 되는 것이다. 고문의 상처가 아물때까지 명산
| |
− | 절경에 찾아가서 휴양을 해도 좋다. 모든 악몽을 일소하고, 차분히 정자에 앉아
| |
− | 곱게 벼루에 먹물을 갈아 놓고 흰 창호지 위에 송죽과 난을 치며 편안히 여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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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내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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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내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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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루마리를 꺼내며)
| |
− | 여기 네 서명만이 빠졌다. 내 권위와 정당성을 만천하에 공표하기 위해서는
| |
− | 집현전 학자들의 동의가 필요하다. 여기에 서명을 하고 어서 집으로 돌아가거라.
| |
− | 나졸들에게 명령하여 사인교를 대기시켜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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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삼문] (두루마리를 받는다. 한참 들여다 보다가 천천히 찢어 버린다.)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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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할 일은 이제 다 끝났오!
| |
− | 할 일은 이제 다 끝났오!
| |
− | (두사람 사이에 오랜 침묵 번개 천둥)
| |
− | (두사람 사이에 오랜 침묵 번개 천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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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양] (차분하게) 우리들의 혁신이 성공하던 날, 우리들은 자축연을 베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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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있었다. 한참 축배를 들고 노래를 부르는데 「허후라는 대신이 음식을 먹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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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홀로 눈물을 흘리더군. 이상해서 내가 연유를」 물었더니 아무리 나라를 위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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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이였지만 사람의 목숨을 무수히 죽이고 어떻게 즐겁게 고기와 술을
| |
− | 먹겠읍니까---하더군. 나는 화가 치밀어 올라 그 자리에서 허우의 목을 베여
| |
− | 죽였지. 왜 그랬는지 아나? 실은 그 자리에서 나도 똑같은 감회에 젖어 있었기
| |
− | 때문이었다. 내 속에서 나약하게 꿈틀거리는 죄책감이 무서웠기 때문에 허우의
| |
− | 목을 베어 나를 극복하기 위해서였다. 그후 잠자리에서 무서운 악몽들이 피어올라
| |
− | 나를 힐책하며 괴롭혀 왔다. 그럴수록 나는 악몽둘의 뿌리를 베어 버리고,
| |
− | 긍정적인 선정을 베풀기에 전념해 왔다. 앞으로 나가야 한다. 피의 댓가를
| |
− | 지불하기 위해서는 땀을 흘리며 일을 하면서 앞으로, 앞으로 나가야만 했다. 이제
| |
− | 물러설 수는 없다. 허나 한가지 이것이 슬프다. 후세의 사가들은 너희들의 이름을
| |
− | 충신으로 기록할 것이며 나는 영원히 폭군의 이름으로 기록할 것이다. 이것이
| |
− | 슬프다. 얼마나 부러운 일이냐. 너는 앉아서 죽어만 주면 되는 것이다.
| |
− | 「아니」라고 외치며 죽어가는 너희들이 부럽다. 너희는 충신의 이름으로 이제
| |
− | 죽어지지만, 나는 역적으로 살아남아 일을 해야 한다.
| |
− | [페이지] 119
| |
− | [성삼문] 누군가는 왕의 자리에 앉아야 하고, 그리고 왕의 할 일은 언제나
| |
− | 똑같은 것, 백성을 잘 살게 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닌 것이니, 근본 뜻만 알면
| |
− | 되는 것이오. 문제는 누가, 그것을 하느냐 하는 문제라오. 하늘을 어겨 다스림은
| |
− | 성군이 되지 못하는 법이외다.
| |
− | [수양] (꿈속을 헤매듯 몽롱하게 혼잣 소리로) 차라리--- 학식도 없고 무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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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르며 신분도 평범한 농부의 자손으로 태어나--- 앞뜰에 꽃을 심고, 밭에는 씨를
| |
− | 뿌리고, 겨울에는 동네의 선 머슴들과 어울려 토끼 사냥이나 뛰어다니며,
| |
− | 평범하게 살 수가 있었다면---
| |
− | 평범하게 살 수가 있었다면---
| |
− | (한찹동안 침묵이 흐른다. 갑자기 비명을 지르듯 번개 천둥)
| |
− | (한찹동안 침묵이 흐른다. 갑자기 비명을 지르듯 번개 천둥)
| |
− | 거기 누가 없느냐?
| |
− | [임운] (뛰어 들어온다) 대령했읍니다.
| |
− | [임운] (뛰어 들어온다) 대령했읍니다.
| |
− | (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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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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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 3장
| |
− | [장] 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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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밤, 감옥과 신숙주 집을 동시에 보여준다. 1幕(막)1場(장)에서와 마찬가지로
| |
− | 조명의 강도를 조절하여 양쪽 모두 방해를 서로 주지 않게 연결시켜 준다.
| |
− | 감옥에는 성삼문과 그의 아내, 신숙주의 집은 신숙주와 그의 아내가 있다.
| |
− | [성삼문] 무엇하러 여기까지 찾아왔오. 밤도 깊었으니 어서 돌아가구려.
| |
− | [성,아내] 처음에는 당신이 원망스러웠어요. 나와 아이들을 전혀 생각하시지
| |
− | 않는 당신이 원망스러웠어요.아이들이 아버지는 어디 가셨냐고 잠을 자지 않으며
| |
− | 보챌 때마다 나는 거짓말을 해 주는 수밖에 없었어요.「아버지는 먼 여행을
| |
− | 떠나셨단다.」순진한 아이들은 그 말을 믿고 잠자리에 들어가곤 했어요. 허나
| |
− | 이제 당신을 내 눈으로 똑똑하게 바라보는 순간 그 원망은 사라졌어요. 모진
| |
− | 고문으로 피가 흐르는 당신의 몸을 본 순간 원망스러움이나 괴로움이
| |
− | 사라져너렸어요. 자랑스러움이, 떳떳함이 내 마음 속에 따뜻하게 서려 오고
| |
− | 있어요. 여보, 보셔요. 전, 당신의 아내예요. 떳떳한 성삼문의 아내란 말이예요.
| |
− | [성삼문] 날이 새면, 당신과 아이들도 모두 죽게 되오. 삼족을 멸하라는 명령이
| |
− | 내렸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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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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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아내] (웃으며) 알고 있어요. 여보, 나와 아이들이 모두 죽게 된다고
| |
− | 하더군요. 처음에는 불안스런 마음 때문에 온몸이 떨려옴을 느꼈어요. 알뜰하게
| |
− | 내 손에 꼭 쥐고 있던 행복의 알맹이들이 와르르 손가락 사이로 떨어져 내리는
| |
− | 무서운 절망감에 사로 잡혔어요. 내 눈앞에서 아이들의 목이 떨어져 나가는
| |
− | 참경을 상상하며 미칠 것 같은 괴로움에 빠져 있었어요. 허나 당신의 모습을 본
| |
− | 순간 이 모든 것들이 마치 얼음처럼 녹아 사라졌어요. 그리곤 새로운 행복감이 더
| |
− | 크고 따뜻한 해복의 햇덩어리가 얼어 붙었던 불행의 틈바구니에서 서서히
| |
− | 떠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전에는 상상해 보지도 못했던 새로운
| |
− | 행복감이예요, 여보.
| |
− | 행복감이예요, 여보.
| |
− | (조명의 전환)
| |
− | (조명의 전환)
| |
− | [신,아내] 모두가 형장으로 글려 가는데 왜 당신만이 여기에 계세요? 나와
| |
− | 아이들을 위해선가요? 아니면 당신 자신의 영화를 위해선가요? 왜 당신은 내 앞에
| |
− | 서 계시죠? 모두가 형장으로 글려 가는데.
| |
− | [신숙주] 나 혼자만의 영화를 누리겠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오. 더구나 가정의
| |
− | 안락과 행복을 붙들고 늘어 지려는 생각도 없오. 살아 남아야겠다는 사명감이
| |
− | 나를 채찍질했기 때문이오.
| |
− | [신, 아내] 치욕과 불의 속에서 살아 남아 뭘 하시겠다는 거예요? 어떠한
| |
− | 사명감이 당신을 살아 남게 했나요? 거리거리에서 동네의 골목마다에서 수많은
| |
− |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배반자 신숙주, 변절자 신숙주.」이런 수모를
| |
− | 받아가며 그저 살아 남겠다는 거예요? 이제 아이들이 자라고 철이 들면 무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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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눈들을 굴리며 이렇게 다그쳐 묻겠죠? 「 그때 아버지는 무얼 하셨죠? 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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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버지는 어디에 계셨어요? 가만히 계셨나요? 아니면 타협을 하셨나요.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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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머지는 지금까지 살아 계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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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숙주] 나는 이렇게 소리치며 말하겠오. 「죽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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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멸하는 것만이 길이 아냐. 죽기는 쉽지만 살아 남기는 더 어렵다. 그래서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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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 어려운 길을 택한 거야. 치욕과 불의를 질근질근 씹어 삼키며 살아남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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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다는 더 큰 사명이 나를 부른거다. 싸워야 할 자는 살아야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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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아내] 살아 남아야 할 사람은 당신이 아니라 아이들이예요. 당신이 해야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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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은 그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그때 나는 죽을 수밖에 없었다.」는 교훈만 남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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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면 되는 거예요. 당신의 고귀한 교훈을 양분처럼 섭취하며 아이들은 자라게 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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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예요. 아직 늦지 않았어요. 그리고 동지들의 대열에 끼어 형장으로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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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이제 안방으로 걸어 들어가 당신의 상청을 마련하고 소복 단정히 앉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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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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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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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게 상복을 입히며 당신의 충절을 들려 주겠어요. 자, 어서 떠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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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끄러움 없이, 한치의 죄스러움이 없이 나와 아이들이 살아남기 위해서 당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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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어야만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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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어야만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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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명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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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명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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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 아내] 이별이 아니라 만남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앞뜰에 핀 국화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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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들어 버리고 푸른 하늘 위에 훨훨 떠오르던 연은 끊어서 날아갔지만, 우리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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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 행복하고 아늑한 곳에서 새롭게 만나게 되는 것을 알았어요. 처음으로 생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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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처음으로 아내의 기쁨을 갖게 됐어요. 당신이 그것들을 제 손에 쥐어 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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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보, 울지 않겠어요. 힘있게 타오르는 환희의 불길 속에서 기꺼이 웃으며 새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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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맞이 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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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삼문] 당신이 오늘처럼 아름답게 보인적은처음이요. 정말 아름답소. 언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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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신이 그런 말을 했었지. 늙어가는 것이 제일 슬픈 것이라고, 당신은 조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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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늙지 않았소. 처음 내게 시집왔을 때의 그 고움이 그리고 순결함이 그대로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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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있소. 마치 내가 오늘 처음 당신과 만나는 것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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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있소. 마치 내가 오늘 처음 당신과 만나는 것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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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명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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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명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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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숙주] 내가 할 일이 많이 있소. 신하로서,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당연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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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야 할 일이 아직 많이 남아 있소. 국정에 참여하여 내 학문과 내 지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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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사하여 나라와 백성을 위하여 생명의 불꽃을 태워가며 나를 증명해야 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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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 아내] 끝내 살아 남겠다고 하시는군요. 치욕스런 생명을 질질 끌면서 굳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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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살아 남겠다고 하시는군요. 거듭 말씀드리지만 역적모의에 가담하여 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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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폐출시키고 충신들을 배반하여 역적이 주는 감투를 쓰고 역적이 주는 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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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받아먹는 그런 사람은 제 남편이 될 수가 없어요. 한번도 본 일이 없는 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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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습을 한 가련한 남자가 내 앞에 서 있을 뿐이예요. 전 그런 사람과 결혼한 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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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없어요. 제 남편은 충신이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죽고 말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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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없어요. 제 남편은 충신이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죽고 말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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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명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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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명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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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아내] 궁궐에서 보면 병정들의 발자욱 소리가 요란스럽게 울리며 우리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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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도 하겠죠.전 거울 앞에 여니 때와 마찬가지로 곱게 곱게 머리를 빗고 화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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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죠. 천천히 일어나 흰 소복으로 갈아입고 살며시 다락문을 열고 향로를 꺼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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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득히 향을 피워 아랫목에 놓아 두죠. 아이들은 조르르 몰려들어 묻겠죠.「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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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왜 그래?」 저는 조용히 나의 손때가 묻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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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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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농을 열어 곱게 곱게 접어서 넣어 두었던 아이들의 때때옷을 꺼내 한놈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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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놈씩 입히며 말하죠.「아버지를 만나러 가야 한단다.」비단 바지 저고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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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히고 옷고리를 예쁘게 매어주며 무명 버선에 행전까지 쳐주고는 아이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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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목을 잡고 살며시 일어나죠. 칼을 든 병정들이 마당으로 몰려 들어와 가지고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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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둥근 멍석을 펴 놓고는 어명을 알려 주겠죠.(천천히 일어선다.)「자 아버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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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날 시간이 됐구나.」이렇게 말하고는 아이들을 데리고 미닫이문을 조용히 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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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천히, 천천히(움직인다.) 마당으로 내려서죠. 하늘은 맑고 바람은 조용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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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어오며 새들이 지저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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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어오며 새들이 지저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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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치 그렇게 행동하듯 어둠속으로 퇴장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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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치 그렇게 행동하듯 어둠속으로 퇴장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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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설날 친정댁으로 나들이 떠나듯이 부풀고 쾌적한 마음으로 버선발을 사뿐사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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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옮겨 국화나무 곁까지 걸어 가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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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옮겨 국화나무 곁까지 걸어 가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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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 아내 완전히 퇴장. 성삼문 혼자서 그쪽을 바라보고 있다. 잠시 침묵,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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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둠속에서 괴물처럼 밧줄을 든 임운이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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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둠속에서 괴물처럼 밧줄을 든 임운이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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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삼문] 벌써 시간이 됐나?
| |
− | [임운] 아닙니다. 날이 샐려면 더 있어야 합니다.대감.
| |
− | [성삼문] 그런데 뭣때문에 여길 들어왔오?
| |
− | [임운] (밧줄을 여러가닥으로 풀며) 만전을 기하기 위해서죠. 대감, 일이라는건
| |
− | 사전에 준비를 철저히 해 놔야 실수가 없는 법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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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삼문]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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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운] 얼마전에 병조판서 대감을 처형하는데, 너무 소홀히 일을 처리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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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망신을 당한 적이 있읍죠.
| |
− | [성삼문] 망신을 당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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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운] 밧줄로 목을 매는데 매듭을 너무 헐겁게 해놓은 걸 모르고 그냥 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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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졸랐지 뭡니까. 나무 위에서 밧줄을 걸어 냅다 잡아당기니까 글쎄 줄이 풀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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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버렸지 뭐예요. 그래서 밧줄을 단단히 묶어서 다시 목을 매어 죽었읍죠. 그 때의
| |
− | 창피한 건 이루 말로 할 수가 없읍니다. 망나니란 건 단 한번에 척하고 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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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달려야 신이 나고 또 일한 것같이 기분이 거뜬하거든요. 실수한다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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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희들에겐 큰 수치로 생각되거든요, 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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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삼문] 아직 익숙치가 못한 게로군.
| |
− | [임운] 매사가 어디 한이 있읍니까. 이 분야도 늘 연구하고 개량을 해가며
| |
− | 습득을 해야 되는데 노력을 하지 않고 구태의연한 자세로 일에 임하면 가끔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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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낭패를 당하게 된답니다. 더구나 대감께서는 차열로 죽이게 되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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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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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삼문] 차열?
| |
− | [임운] 네 차열입죠. 이게 처형 중에서 가장 까다롭고 힘이 들거든요. 밧줄도
| |
− | 여러가닥이 필요하며, 말이 네필이나 동원되고 거기다 장소도 넓어야 되니 신경
| |
− | 써야 될 게 한두 개가 아닙니다. 생사람 목을 매는 거라든지 반월도로 목을 베는
| |
− | 거라면야 초보자들도 척척 해낼 수 있지만 이 차열이라는 건 진행과정이 어려워
| |
− | 숙련된 망나니가 아니고서는 엄두도 못내죠.
| |
− | [성삼문] 그래 자네가 차출됐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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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운] 어려운 대신 딴 처형보다 보수가 훨씬 좋죠.차열이다하면 나라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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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를 따를 사람이 없읍니다.
| |
− | (성삼문의 양손과 다리에 밧줄을 재어보며) 경험이 중요하거든요.전 많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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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험을 통해서 비결을 알고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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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사문] 비결을?
| |
− | [임운] 그러믄요. 우선 양손목에 밧줄을 가늘게 풀어 열두번쯤 감아서 단단히
| |
− | 묶거든요.그 다음은 굵은 밧줄로 양쪽 발목을 세번 감아서 묶죠. 묶은 다음이
| |
− | 가장 중요한데 각기 묶인 네가닥의 줄을 각각 말안장에다 묶는데, 이때 줄의
| |
− | 길이가 똑같으면 절대로 안되죠. 조금씩 줄의 길이를 틀리게 해야지 만약 줄이
| |
− | 똑같으면 으례 몸뚱아리가 두쪽으로 찢어지기 마련이거든요, 대감. 그러나 줄의
| |
− | 길이를 조금씩 다르게 하여 말을 사방으로 달리게 하면 정확하게 사지가 네쪽으로
| |
− | 찢어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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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찢어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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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밧줄을 풀어서 성삼문의 발목에 대본다.)
| |
− | (밧줄을 풀어서 성삼문의 발목에 대본다.)
| |
− | 그래서 이렇게 미리 미리 준비를 해놓으면 대개 실수란 게 있을 수 없죠.
| |
− | 생각해 보세요. 괜히 줄을 잘못 당겨처 형중에 줄이 풀어진다, 또는 끊어진다
| |
− | 해서 다시 밧줄을 묶어서 한다면--- 당하시는 대감인들 기분이 좋겠어요. 또 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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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는 저희들인들 좋겠어요? 피차 언짢은 일입죠, 대감.
| |
− | [성삼문] 이 일을 한 지가 오래 됐소?
| |
− | [임운] 철이 들면서 이 분야에 종사해 왔으니까 한 20년은 되죠. 처음에는
| |
− | 좀도둑 볼기 치는데두 가슴이 울렁거리고 손이 떨려서 곤장두 제대로 잡지를
| |
− | 못해서 선배들한테 무척 야단도 맞았죠. 그러나 경험이 쌓이고 익숙해지니까,
| |
− | 지금은 목을 베는 거에서부터 교수, 능지처참, 도륙, 차열에 이르기까지 차분한
| |
− | 마음으로 할수가 있게 됐죠. 역시 경험이라는 걸 무시 할 수 없죠.
| |
− | [성삼문] 보수는 얼마나 받고 있소?
| |
− | [임운] 궁궐의 대감님들에게 비하면 약소하지만 그래도 처자식 거느리고 먹고
| |
− | 살 만합죠. 목베는 거야 보통 20냥 정도 받지만 오늘과 같은 높은 양반의
| |
− | 차열정도라면 50냥은 족히 받게 되죠. 허지만 거기서 세금 떼
| |
− | [페이지] 124
| |
− | 고 조합에 회비를 바치고 나면 집에 가지고 들어가는 거야 고작 30냥 정도는
| |
− | 되죠.
| |
− | [성삼문] 그러면 무엇때문에 이런 일을 하오?
| |
− | [임운] 직업이죠 뭐. 나라에 상감이 계시고, 정승,판서, 내시에 이르기까지
| |
− | 각기 자기가 하는 일이 먹구 살기 위한 직업이듯이 이것도 제 직업입죠.마누라는
| |
− | 늘 직업이 천하다고 딴 것으로 바꾸라고는 하지만 세상에 직업의 귀천이
| |
− | 어디있읍니까요.험한 일을 하는 사람이 있어야 편한 일을 하는 사람이 있을게
| |
− | 아닙니까요. 저희들이 있으니까, 나라의 도둑도 없어지고 역적도 없어지며 또
| |
− | 상감께서는 편히 국사에 임하실게 아니겠읍니까요. 소고기를 먹으려면 소를 때려
| |
− | 잡는 백정이 있어야 하듯이 말입니다. 그런데두 세상인심은 고약해서 백정이나
| |
− | 저희들을 쌍놈이라고 멸시를 하거든요. 사실 저희들은 욕심이라는 게 없읍죠.
| |
− | 그저 정당한 보수를 받아서 작은 살림 꾸려나가면 그것으로 만족하며 살아
| |
− | 가니까요.한가지 흠이 있기는 하지만입쇼.
| |
− | [성삼문] 흠? | |
− | [임운] 언제나 남의 뜻대로 움직이는 거죠. 제 뜻대로 행동하는 적은 한번도
| |
− | 없읍니다요. 저희에게 보수를 주는 사람이 시키는 데로 해야 하거든요. 어느
| |
− | 대감의 뒤를 밟아봐라! 어느 정승의 하는 말을 엿듣고 와라, 어느 판서를 아무도
| |
− | 몰래 죽여서 묻어버려라. 아니면 고문을해라. 그저 위에서 시키는 일만 하거든요.
| |
− | 개처럼 순종해야만 되는 게 그게 흠이라면 흠이죠. 그러나 내가 하지 않더라도
| |
− | 누군가는 이 일을 해야 하거든요. 그러나 저희들은 충신과 역적은 분명히 구별을
| |
− | 할 줄 알죠.(사방을 살피고) 대감께서도 훌륭하신 충신이란 걸 저도 잘 압니다.
| |
− | 이런 일을 할 때가 제일 가슴이 아프죠. 아마 대감을 처형하고 나면 며칠이고
| |
− | 잠을 자지 못할 거예요.
| |
− | [성삼문] 추호도 자네를 원망하지 않을 테니, 괴로와 할 필요는 없네. 난
| |
− | 자네를 이해하고 있어. 실수하지 않도록 밧줄을 단단히 묶어 힘차게 말 등허리를
| |
− | 채찍질하게나. 절대로 실수를 해서 창피를 당해서는 안되지.일이 끝나거든 주막에
| |
− | 들려 술잔을 기울여 하루의 피곤이나 풀고 다정하게 처자에게 돌아가게나.
| |
− | [임운] 고맙습니다, 대감. 대개 죽을 때는 저의 얼굴에 침을 밴고 갖은 욕을
| |
− | 하며 저를 멸시하는데, 대감께서는 오히려 저를 위로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 |
− | 하며 저를 멸시하는데, 대감께서는 오히려 저를 위로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 |
− | (북소리가 들려온다.)
| |
− | (북소리가 들려온다.)
| |
− | [임운] 대감, 시간이 됐읍니다.
| |
− | [성삼문] 울리는 북소리는 이 목숨을 재촉하네. 멀리 돌아보니 지는 해는
| |
− | 서산을 넘어 황천으로 가는 길, 주막집도 없으려니 오늘밤은 뉘집 찾아 쉬어서 갈
| |
− | 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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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 125
| |
− | (암전) | |
− | (암전)
| |
− | [장] 4장
| |
− | [장] 4장
| |
− | 어전, 수양, 신숙주, 한명회, 임운 북소리 요란한 중 서 있다.
| |
− | [수양] 피의 숙청은 끝났다. 이제 살아 남은 우리들이 해야 할 일만이 남아
| |
− | 있다. 선왕들의 훌륭한 업적을 이어받아 국가의 문물을 더욱 공고히 하고 국가의
| |
− | 위험을 내외에 과시하여 만고의 비난을 씻어버리고 우리의 능력껏 선정을 베풀어
| |
− | 역사의 오명에서 벗어나야 한다.
| |
− | [한명회] (임운에게) 백성들의 불만과 저항심이 아직 남아 있는 한, 너는
| |
− | 염탐과 미행을 게을리 하지 말라. 불평불만이란 가만히 놔두면 용수철모양
| |
− | 튀어나온다. 무거운 바윗돌로 지그시 눌러버려라.백성들의 욕심이란 한이 없는
| |
− | 것, 제멋대로 방치하면 한없이 기어오른다. 흉년이 들어도 궁궐쪽을 향해 침을
| |
− | 밴고, 가믐이 들어도 임금에게 주먹질을한다.심지어는 배탈이 나거나 감기만
| |
− | 들어도 그 불평을 궁궐을 향해 하는게 백성들이다. 오만불손함과 백성들의
| |
− | 나태함이 영원히 매몰될 때까지 지그시 눌러둬야 한다.
| |
− | [임운] 대감의 분부대로 실행하겠읍니다.
| |
− | [수양] 누에를 치고 소를 길러 농본정책을 수립하여 부귀비천, 상하신분을
| |
− | 막론하고 누구나 노동에 참여케하여 생산 의욕을 고취시켜라. 왕실의 모든 사치와
| |
− | 허영을 배격하여 명실공히 내핍생활을 실천하라. 상평창을 실시하여 농민을 위한
| |
− | 곡가정책을 실시하고 팔방통보 화폐를 주조하여 사회 물물교환의 경제체제를
| |
− | 혁신하라. 선정록을 편찬하여 선왕들의 업적을 높이 찬양하며 천문지리를 연구케
| |
− | 하여 낙후된 역학을 계몽 선도하라. 좌의정에 임명된 신숙주는 북쪽의 야인을
| |
− | 정토하고 남족 일본의 마수를 무마시키시오. 이로써 안으로는 혁혁한 내치를,
| |
− | 밖으로는 강화하는 외치를 통하여 모름지기 인본정치의 이념을 구현하겠다.
| |
− | 이것이 살아 남은 우리들의 할 일이다.
| |
− | [신숙주] 상감의 현명하신 구국정책에 분골쇄신 따르겠나이다.
| |
− | [수양] 자, 삼정승, 육판서 및 모든 문무백관을 소집하여 어전회의를 실시하자.
| |
− | [수양] 자, 삼정승, 육판서 및 모든 문무백관을 소집하여 어전회의를 실시하자.
| |
− | (일동 움직이려 할 때 나졸 급히 들어온다.)
| |
− | (일동 움직이려 할 때 나졸 급히 들어온다.)
| |
− | [나졸] (엎드리며) 급한 전갈이옵니다.
| |
− | [한명회] 무슨 전갈인가 어서 아뢰어라.
| |
− | [나졸] 신숙주대감께 급한 전갈이옵니다.
| |
− | [신숙주] 어서 말해 보아라!
| |
− | [나졸] 만리재 신대감댁 하인의 전갈이온즉, 오늘 낮 정
| |
− | [페이지] 126
| |
− | 오쯤에 신대감댁 안마나님께서 목을 매어 자살을 하였다 하옵니다.
| |
− | [수양] 무슨 소리냐? 이건 또 무슨 소리냐?
| |
− | [나졸] 아무 유언도 유서도 남기지 않으시고 곱게 소복으로 단장하신후
| |
− | 대들보에 손수 목을 매어 자살을 하셨다 하옵니다. 비보를 가지고 온 하인은
| |
− |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고 밖에서 흐느껴 울고 있아옵니다. 소인의 말을 믿지
| |
− | 못하시면 직접 하인을 불러 물어 보십시오.
| |
− | 못하시면 직접 하인을 불러 물어 보십시오.
| |
− | (一同(일동) 침묵 속에 빠진다. 신숙주 공허한 시선으로 허탈하게서 있다.)
| |
− | (一同(일동) 침묵 속에 빠진다. 신숙주 공허한 시선으로 허탈하게서 있다.)
| |
− | 신숙주대감님께서는 어서 퇴청하시어 가엾은 마나님의 시체를 거두옵소서.
| |
− | [신숙주] (차분하게) 비보를 가지고 온 하인에게 일러라. 하인들의 손으로
| |
− | 시체를 거두어 장사를 치르게 하라고. 이미 내 손길은 필요치가 않다. 내게서
| |
− | 사라져간 사람이다. 나는 내가 해야 할 막중한 임무를 수행해야 하겠다. (소리
| |
− | 지른다.) 어서 나가라!
| |
− | 지른다.) 어서 나가라!
| |
− | (나졸 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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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숙주 독백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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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겨울은- 이번 겨울은 이다지도 길기만 할까. 온몸이 얼어 붙고-모든 생물이
| |
− | 얼어붙어- 금년의 겨울은 길기만 하구나-하늘은 잿빛으로 뒤덮여-굵은 눈발이
| |
− | 쏟아져-메마른 땅위에 한파를 몰고 온다-간혹 누군가가 속삭이지, 봄이 오고
| |
− | 있어요. 봄이오고 있어요.-그런가 싶어-창문을 열어 제치고 밖을 내다보면 아직도
| |
− | 세상은 깊은 겨울에 빠져 있어-모두가 웅크리고 종종걸음으로 돌담길을-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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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귀를 사라져 가고 있지-
| |
− | 어귀를 사라져 가고 있지-
| |
− | (호리죤트의 눈발이 나리기 시작한다.)
| |
− | (호리죤트의 눈발이 나리기 시작한다.)
| |
− | 또 눈이 오고-쌓이고 쌓이고-땅속의 생명들은 웅크린 채 봄을
| |
− | 기다리겠지-그러나 봄을 믿는 사람들은 -눈을 쓸고- 얼어붙은 땅을 파헤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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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봄을 약속하는 씨앗을 뿌려- 이 추위를 견뎌야만 하겠지.
| |
− | (一同(일동) 서서히 눈발속으로 사라져간다.)
| |
− | (一同(일동) 서서히 눈발속으로 사라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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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막이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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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막이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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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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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출판 및 공연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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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련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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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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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길]] || [[김상열]] || A는 B의 작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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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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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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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및 기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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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여자 : [[정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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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류:작품]] [[분류:작성자이름]] [[분류:정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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