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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문은 한양도성의 축조와 함께 1396년에 건립되었다. 이름은 유학의 덕목인 인의예지신 중 의(義)를 넣어 만든 것이다. 1915년에 철거되었다.
 
돈의문은 한양도성의 축조와 함께 1396년에 건립되었다. 이름은 유학의 덕목인 인의예지신 중 의(義)를 넣어 만든 것이다. 1915년에 철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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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EB%8F%88%EC%9D%98%EB%AC%B8 위키백과 서대문]'''크리에이티브 커먼즈 CC-BY-SA'''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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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2월 1일 (일) 20:51 판

대한민국 사대문 관련영상 문화유산채널 공공누리 제4유형 by:문화유산채널

동대문(흥인지문)

설명

서울 도성의 8문 중 하나로 정동에 위치하여 속칭 동대문이라 불리워지나 원이름은 興仁門으로 조선 태조 5년(1396)에 도성의 축조와 함께 건립되고 단종 때 중수되고 고종 6년(1869)에 개축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화강암의 武砂石으로 아치형의 虹霓門을 만들고 중층의 문루를 세웠으며 문밖에 반월형 壅城을 돌리고 있는데 이것도 고종 개축 때의 것이다. 우진각지붕인 문루의 규모는 상하층 정면 5칸, 측면 2칸이나 치수는 하층이 21.97mx7.3m로서 상층의 19.94mx5.24m보다 조금 크며 하층은 4면을 모두 개방하였으나 상층은 기둥 사이를 네모나게 구획하여 한짝 열 개의 판문을 달고 누마루를 깔았고 상층 천정은 지붕 構架材가 전부 노출된 연등천정으로 되어 있다. 국립문화재연구소 공공누리 제 4유형 by:국립문화재연구소

역사

흥인지문은 일대의 지반이 낮아 땅을 돋운 뒤 건설하여야 해서 1396년(태조 5년) 9월 다른 성문을 건립할 때에도 공사중이었으며, 1398년(태조 7년)에야 비로소 완성되었다. 이 때의 이름은 흥인문(興仁門)이었다.1451년(문종 1년) 3월에는 도성을 고쳐 쌓은 뒤 기한이 남아, 흥인지문을 혜화문과 더불어 수리하였다. 같은 해 10월에 본격적인 흥인지문 정비를 시작하여, 1453년(단종 1년) 5월에 완료하였다.

1724년(영조 즉위년)에는 발인 때 상여가 나가기가 쉽게 하기 위하여, 국장도감에서 건의한 대로 흥인지문의 박석을 파내려갔다. 1868년(고종 5년)에는 흥인지문이 크게 손상되었기에 의정부에서 그 수리를 요청하였다. 이듬해 3월에 중수를 끝냈다. 이 즈음 풍수지리에 따라 한양 동쪽의 지기가 약하다고 하여, 그 기운을 북돋기 위하여 특별히 지(之)자를 넣어 넉 자로 이름을 고쳤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흥인지문의 현판은 4대문 중 유일하게 4글자, 정사각형으로 되어 있다.

1907년(고종 44년) 3월에는 흥인지문과 숭례문의 좌우측 성벽을 8칸씩 헐어 전차 선로를 부설하였다. 조선총독부에 의해 보물 1호로 지정되었는데, 이것이 흥인지문을 숭례문과 함께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이 지나간 역사적 의미가 있는 상징물로 여겼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다.

1999년에는 옹성이 붕괴되어 8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3억여원을 들여 보수하였으나, 옹성 아랫부분이 튀어나오는 '배부름 현상'이 일어나 재시공을 결정하였다. 지하철이 개통된 이후 지하수위가 낮아지고 지반이 침하되었으며, 2002년 12월부터 2007년 8월까지 옹성을 해체하여 지반 보강 후 복원하였다. 2015년에는 도로를 내면서 끊어진 문 북쪽의 도성 자리에 석재를 포장하는 공사가 이루어졌다.

사고

2018년 3월 9일 새벽 1시 49분경 40대 남성이 흥인지문의 누각에 몰래 침입하여 미리 준비한 종이박스에 불을 붙였으나, 다행히 흥인지문은 담장 일부가 그을리는 데에 그치고 방화범은 당일 체포되었다. 흥인지문은 문화재보호법에 의거하여 동묘, 창의문, 경교장 등과 함께 종로구청에서 관리하고 있다.

보물 제1호 서울흥인지문 복원공사(현황) 흥인지문(동대문)배치도 문화재청공공누리 제 1유형 by:문화재청

사진

서대문(돈의문)

설명

돈의문(敦義門)은 조선의 수도인 한양의 4대문(大門) 중의 하나로 서쪽의 대문이다. 서대문(西大門)이라는 명칭이 있으나, 이는 근대에 와서야 불린 이름이다.[주 1] ‘새문’, ‘신문’(新門)이라고도 불렀으며, 인근의 새문안로(신문로)나 '새문안교회' 등의 이름은 여기서 따온 말이다.

돈의문은 한양도성의 축조와 함께 1396년에 건립되었다. 이름은 유학의 덕목인 인의예지신 중 의(義)를 넣어 만든 것이다. 1915년에 철거되었다. 위키백과 서대문크리에이티브 커먼즈 CC-BY-SA

역사

1396년(태조 5년) 9월 다른 성문과 함께 완공되었는데, 축성 당시에는 돈의문이 사직동 고개에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1413년(태종 13년)에는 풍수학자 최양선의 건의로 돈의문을 닫고 서전문(西箭門)을 설치하였는데, 이숙번의 건의로 인덕궁 앞 소동(小洞)에 세워졌다. 1422년(세종 4년) 2월에는 서전문을 막고 다시 돈의문을 열었다.1711년(숙종 37년)에 돈의문을 새로 지었다.

1915년 3월에는 돈의문을 헐고 도로를 개설하기로 결정하여, 경매 끝에 205원 50전에 염덕기(廉德基)가 목재를 낙찰받았으며 그 외의 귀중한 부속물은 총독부에서 관리하게 되었다. 6월에 강제 철거가 완료되었다. 2009년에는 서울특별시에서 인근의 서대문 고가차도를 철거하고 2013년까지 돈의문을 원형 그대로 복원하는 계획을 발표하였으나, 현재 돈의문 복원은 예산 및 원형 복원 등의 문제가 겹쳐 2022년까지 중장기 과제로 미뤄진 상태다.

돈의문은 서대문구에 소재하였으므로 그 구명(區名)을 서대문에서 따 왔지만, 지금은 행정구역 개편 때문에 중구 관할 지역에 속한다. 현재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사 앞 정동사거리에 '돈의문 터' 라는 표지석이 있다.

교통, 보상 등 현실적인 복원은 요원한 상황에서 2018년 12월 6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우미건설, 문화재청, 서울시, 제일기획이 돈의문의 증강현실 복원을 위해 MOU를 체결했다. 그래서 우미건설 등은 2019년 상반기까지 돈의문을 증강현실로 복원할 계획이다. 복원이 실현되면 돈의문 터로 알려진 정동사거리에 돈의물 조형물을 설치하고 스마트폰의 증강현실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돈의문을 볼 수 있게된다.


사고

2018년 3월 9일 새벽 1시 49분경 40대 남성이 흥인지문의 누각에 몰래 침입하여 미리 준비한 종이박스에 불을 붙였으나, 다행히 흥인지문은 담장 일부가 그을리는 데에 그치고 방화범은 당일 체포되었다. 흥인지문은 문화재보호법에 의거하여 동묘, 창의문, 경교장 등과 함께 종로구청에서 관리하고 있다.

보물 제1호 서울흥인지문 복원공사(현황) 흥인지문(동대문)배치도 문화재청공공누리 제 1유형 by:문화재청

사진




숙정문(북대문)

역사

1396년(태조 5년) 9월 다른 성문과 함께 완공되었다. 1413년(태종 13년)에는 풍수학자 최양선(崔揚善)의 상소로 숙정문[觀光坊東嶺路]을 폐쇄하였으며 길에 소나무를 심어 통행을 금지하였다. 1504년(연산군 10년)에는 숙정문을 없애고 오른쪽에 새로이 문을 세우라고 명하였으나, 실제로 문을 옮겼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숙청문은 음양오행 가운데 물을 상징하는 음(陰)에 해당하는 까닭에 나라에 가뭄이 들 때는 기우(祈雨)를 위해 열고, 비가 많이 내리면 닫았다고 한다.

1963년 1월 21일 서울성곽에 포함되어 사적 제10호로 지정되었다. 1968년 1·21 사태 이후 청와대 경비를 위해 일반인의 접근을 금지하다가, 2006년 4월 1일 인근의 성곽 탐방로 1.1km 구간과 함께 다시 일반에 개방하였다. 지금의 숙정문 목조 누각은 소실되었던 것을 1976년에 복원한 것이며, 현판의 글씨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쓴 것이다.

지명 유래

숙정문은 남대문인 숭례문과 대비하는 북대문으로 '엄숙하게 다스린다'는 뜻이다. 이 문은 정월대보름 전 세 번 놀러오면 액운이 사라진다는 속설이 있어 여인들이 자주 찾았으며, 덩달아 사람들의 발길이 많아졌다고 한다. 원래 이름은 숙청문(肅淸門)으로, 도성 북쪽에 있는 대문이라 하여 북대문·북문 등으로도 부른다. 숙정문이 처음 기록에 등장하는 것은 1523년(중종 18)이며, 북정문(北靖門)이란 표현도 나오는데, 숙청문과 숙정문이 혼용되다가 뒤에 자연스럽게 숙정문으로 바뀐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

교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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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성북구 대사관로 1

  • 대중교통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 6번출구에서 1111번, 2112번 상차후 성북동(명수학교 : 종점)에서 하차후 도보로 10분
*지하철3호선 안국역 2번출구 - 지선(초록)버스 종로02번 탑승하여 종점(성균관대후문)에
서 하차 - 도보 10분 - 와룡공원 도착 - 와룡공원에서 성곽을 따라 도보 10분
*지하철4호선 혜화역 1번출구 - 지선(초록)버스 종로08번 탑승하여 종점(명륜3가)에서 하차 - 도보 10분 - 와룡공원도착 - 와룡공원에서 성곽을 따라 도보 10분

관련 영상

CC-BY by:정구언kooaunchung 링크:https://www.youtube.com/watch?v=BCj9Md_Z-Wc

참고문헌/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