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골공원"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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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탑이 있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이 일대가 탑골 또는 탑동으로 불리게 되었다. 파고다라는 이름의 유래에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즉, 이곳을 공원으로 설계하여 꾸미도록 건의한 영국인 브라운이 ‘탑이 있는 공원’이라는 뜻에서 파고다공원(Pagoda Park)으로 부를 것도 같이 건의하였을 것이라는 설과, 백탑(Pagtab)이라는 음이 변화하여 파고다가 되었다는 설이다.<ref>[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58835 "탑골공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020.12.03,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58835]</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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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 3일 (목) 22:17 판
목차
정의
서울에 위치해있는 공원이며, 사적 제 354호로 지정되어있다.
이름의 유래
탑이 있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이 일대가 탑골 또는 탑동으로 불리게 되었다. 파고다라는 이름의 유래에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즉, 이곳을 공원으로 설계하여 꾸미도록 건의한 영국인 브라운이 ‘탑이 있는 공원’이라는 뜻에서 파고다공원(Pagoda Park)으로 부를 것도 같이 건의하였을 것이라는 설과, 백탑(Pagtab)이라는 음이 변화하여 파고다가 되었다는 설이다.[1]
이용안내
오는 길
지하철
1호선
3호선
5호선
버스
역사
1897~1909-왕실 소유의 도시공원
원래 이곳에는 절이 위치해있었다. 고려 때는 흥복사라 불렸고, 조선 전기에 절을 넓히면서 원각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러나 불교를 억누르는 정책으로 인해 연산군과 중종 때 절이 폐사되었다. 그 후, 탑골공원은 텅 비어있는 공터로 남아있었다. 이는 이자벨라 비숍(Isabella Bird Bishop, 1831~1904)이 1897년에 작성한 기행문에서 알 수 있다. "백색 석탑은 빽빽이 들어선 주택을 뒤에 완벽하게 가려져 있는데, 이 도시에서 보기 드물게 나무가 울창한 숲을 가지고 있다. (…중략…) 석탑자리는 옵쭉 달싹할 수 없을 정도로 좁아서 석탑 전체를 사진에 담으려는 사람은 아마도 근처의 담으로 기어 올라가야 할 것이다(이자벨라 비숍, 1994: 56-57)"[2]
그러다 1897년, 당시 탁지부 고문이었던 영국인 총세무사 브라운(John McLeavy Brown: 1835~1926)의 건의를 통해 이곳을 근대 공원으로 조성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때, 서울 원각사지 십층석탑의 이름에서 이 공원의 이름을 파고다공원이라고 명명했다. 이에 따라, 공원부지 확보를 위해서 민가 철거가 이루어졌고, 동시에 간단한 공원시설의 공사가 진행되었다. 이는 1902년 개원 이전까지 지속되었다. 아 때, 민가와의 경계를 위한 담장과 북문과 남문이 먼저 조성되었다.
1910~1944-상업시설의 도입
일제강점기가 시작된 후, 탑골공원의 관할은 총독부로 이관되었다. 이후, 총독부는 연평균 2,170원 50전을 투입해서 정자, 벤치, 화단, 회유도로, 전등, 수도, 온실 등의 시설을 설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