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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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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복한 집안이었으나 일찍이 아버지가 돌아가고 금광사업에 빠진 친척의 반 강제적인 빚보증과 사업실패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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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이 몰락한 후 15살의 나이에 나이어린 신랑에게 팔려가게 된다. 그러나 우물 옆에서 빨래하는 사이 남편이 우물에 빠져죽는 비운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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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언니가 기생이 되어 집안을 일으키는 것을 본 그녀는 16살에 기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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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무와 궁중무를 배워 서울의 권빈가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당시 전국적인 문예지인 “삼천리문학”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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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을 발표할 정도로 문재를 겸비해 노래와 춤만이 아니라 시와 글, 글씨, 그림에도 뛰어난 재능이 있는 미모의 기생이었다. 23살에 흥사단에서 만난 스승 신윤국의 도움으로 동경유학까지 떠나게 되지만 스승이 투옥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함흥감옥까지 왔다가 만나지 못했다고 한다.대신 함흥 영생여고보(여자고등학교)교사들의 회식자리인 함흥관에서 영어교사로 근무하고 있던 백석의 옆자리에 운명적으로 앉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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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은 그녀에게 첫눈에 반하여 “오늘부터 당신은 영원한 나의 마누라입니다, 죽기 전에 우리에게 이별은 없습니다” 하면서 자야(子夜)라는 애칭을 붙여주었다. 1937년 김영한이 홀로 서울로 떠나자 백석은 교사생활조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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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고 김영한을 쫓아 서울 청진동 그녀의 집으로 와 동거를 시작한다. 이후 그들은 만주와 서울을 오가며 약 3년 동안 부부처럼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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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백석의 부모는 기생출신과 동거하는 아들의 결혼을 허락할 수 없었고, 고민하던 백석은 함께 만주로 도망가서 자유롭게 살자고 자야를 설득한다. 오랜 설득 끝에 함께 숨기로 약속했던 며칠 전, 너무나 사랑하는 백석의 장래와 부모님에 대한 불효를 걱정했던 자야는 만주에서 서울로 홀연히 짐을 싸고 만다.
  
 
=='''백석과의 관계'''==
 
=='''백석과의 관계'''==

2018년 6월 13일 (수) 21:55 판


소개

 김영한은 백석 시인의

생애

유복한 집안이었으나 일찍이 아버지가 돌아가고 금광사업에 빠진 친척의 반 강제적인 빚보증과 사업실패로

집안이 몰락한 후 15살의 나이에 나이어린 신랑에게 팔려가게 된다. 그러나 우물 옆에서 빨래하는 사이 남편이 우물에 빠져죽는 비운을 맞는다.

친구의 언니가 기생이 되어 집안을 일으키는 것을 본 그녀는 16살에 기생이 된다.

가무와 궁중무를 배워 서울의 권빈가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당시 전국적인 문예지인 “삼천리문학”에

수필을 발표할 정도로 문재를 겸비해 노래와 춤만이 아니라 시와 글, 글씨, 그림에도 뛰어난 재능이 있는 미모의 기생이었다. 23살에 흥사단에서 만난 스승 신윤국의 도움으로 동경유학까지 떠나게 되지만 스승이 투옥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함흥감옥까지 왔다가 만나지 못했다고 한다.대신 함흥 영생여고보(여자고등학교)교사들의 회식자리인 함흥관에서 영어교사로 근무하고 있던 백석의 옆자리에 운명적으로 앉게 된다.

백석은 그녀에게 첫눈에 반하여 “오늘부터 당신은 영원한 나의 마누라입니다, 죽기 전에 우리에게 이별은 없습니다” 하면서 자야(子夜)라는 애칭을 붙여주었다. 1937년 김영한이 홀로 서울로 떠나자 백석은 교사생활조차

버리고 김영한을 쫓아 서울 청진동 그녀의 집으로 와 동거를 시작한다. 이후 그들은 만주와 서울을 오가며 약 3년 동안 부부처럼 살았다.

하지만 백석의 부모는 기생출신과 동거하는 아들의 결혼을 허락할 수 없었고, 고민하던 백석은 함께 만주로 도망가서 자유롭게 살자고 자야를 설득한다. 오랜 설득 끝에 함께 숨기로 약속했던 며칠 전, 너무나 사랑하는 백석의 장래와 부모님에 대한 불효를 걱정했던 자야는 만주에서 서울로 홀연히 짐을 싸고 만다.

백석과의 관계

저서

길상사와의 관계

작성자 및 기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