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도 필 풍속도 화첩"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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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첩 그림들은 주변의 배경적 설명을 생략하고 풍속 자체에 역점을 둔 '''인물 중심'''으로 구성되어 한층 박진감 넘친다. 특히 원형 구도 등을 이용한 짜임새 있는 구성으로 회화적 효과를 높이고 있으며, 등장인물들의 사실적이고 해학에 넘치는 동작의 묘사 등 풍속화가로서 김홍도의 탁월한 기량을 실감하게 한다. | 화첩 그림들은 주변의 배경적 설명을 생략하고 풍속 자체에 역점을 둔 '''인물 중심'''으로 구성되어 한층 박진감 넘친다. 특히 원형 구도 등을 이용한 짜임새 있는 구성으로 회화적 효과를 높이고 있으며, 등장인물들의 사실적이고 해학에 넘치는 동작의 묘사 등 풍속화가로서 김홍도의 탁월한 기량을 실감하게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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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속화는 종이에 먹과 옅은 채색을 하여 그렸는데, 각 장의 크기는 가로 22.4㎝, 세로 26.6㎝ 정도이다. | 풍속화는 종이에 먹과 옅은 채색을 하여 그렸는데, 각 장의 크기는 가로 22.4㎝, 세로 26.6㎝ 정도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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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년 [[조한준]]에게 구입했을 당시 모두 27점이었으나 1957년 원 화첩의 마지막에 있었던 군선도 2점이 별도의 족자로 꾸며지면서 풍속도 25점만이 새로운 화첩으로 꾸며졌다. | 1918년 [[조한준]]에게 구입했을 당시 모두 27점이었으나 1957년 원 화첩의 마지막에 있었던 군선도 2점이 별도의 족자로 꾸며지면서 풍속도 25점만이 새로운 화첩으로 꾸며졌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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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풍속화첩의 제작 전통은 이후 김득신, [[혜원 신윤복]] 등의 후배 화가들뿐만 아니라 19세기 말, 20세기 초까지도 시정(市井)의 화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 + | . 풍속화첩의 제작 전통은 이후 [[김득신]], [[혜원 신윤복]] 등의 후배 화가들뿐만 아니라 19세기 말, 20세기 초까지도 시정(市井)의 화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
2022년 12월 8일 (목) 03:35 기준 최신판
김홍도 필 풍속도 화첩
金弘道 筆 風俗圖 畵帖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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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유형 | 보물 |
지정일 | 1970.12.30 |
분류 | 유물/ 일반회화/ 풍속화 |
수량 | 1건 25점 |
시대 | 조선시대(18세기) |
창작년도 | 조선 후기 |
소유(관리) | 국립중앙박물관 |
개요
조선 후기의 화가 김홍도가 그린 풍속화 25점을 모아놓은 화첩이다. 1970년 12월 30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설명
화첩 그림들은 주변의 배경적 설명을 생략하고 풍속 자체에 역점을 둔 인물 중심으로 구성되어 한층 박진감 넘친다. 특히 원형 구도 등을 이용한 짜임새 있는 구성으로 회화적 효과를 높이고 있으며, 등장인물들의 사실적이고 해학에 넘치는 동작의 묘사 등 풍속화가로서 김홍도의 탁월한 기량을 실감하게 한다.
형태
풍속화는 종이에 먹과 옅은 채색을 하여 그렸는데, 각 장의 크기는 가로 22.4㎝, 세로 26.6㎝ 정도이다.
기타
1918년 조한준에게 구입했을 당시 모두 27점이었으나 1957년 원 화첩의 마지막에 있었던 군선도 2점이 별도의 족자로 꾸며지면서 풍속도 25점만이 새로운 화첩으로 꾸며졌다.
. 풍속화첩의 제작 전통은 이후 김득신, 혜원 신윤복 등의 후배 화가들뿐만 아니라 19세기 말, 20세기 초까지도 시정(市井)의 화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