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된 감상기"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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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분만기(分娩期)가 닥쳐올수록 이러한 생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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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람의 모(母)가 될 자격(資格)이 있을까? 그러나 있기에 자식(子息)이 생기는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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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며 아무리 이리저리 있을 듯한 것을 끌어보니 생리(生理) 상(上) 구조(構造)의 자격(資格) 외(外)에는 겸사(謙辭*겸손한 말)가 아니라 정신(精神) 상(上)으로는 아무 자격이 없다고 하는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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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품(性品)이 조급(躁急)하여 조금 조금씩(式) 자라가는 것을 기다릴 수도 없을 듯도 싶고 과민(過敏)한 신경(神經)이 늘 고독(孤獨)한 것을 찾기 때문에 무시(無時)로 빽빽 우는 소리를 참을만한 인내성(忍耐性)이 있을 것 같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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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무지몰각(無知沒覺)하니 무엇으로 그 아해(兒孩)에게 숨어있는 천분(天分*타고난 재능이나 복)과 재능(才能)을 틀림없이 열어 인도(引導)할 수 있으며, 또 만일(萬一) 먹여주는 남편(男便)에게 불행(不幸)이 있다 하면 나와 그의 두 몸의 생명(生命)을 어찌 보존(保存)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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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나의 그림은 점점(漸漸) 불충실(不充實)해지고 독서(讀書)는 시간(時間)을 얻지 못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나는 내 자신(自身)을 교양(敎養)하여 사람답고 여성(女性)답게, 그리고 개성적(個性的)으로 살만한 내용(內容)을 준비(準備)하려면 썩 침착(沈着)한 사색(思索)과 공부(工夫)와 실행(實行)을 위(爲)한 허다(許多)한 시간(時間)이 필요(必要)하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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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자식(子息)이 생기고 보면 그러한 여유(餘裕)는 도저(到底)히 있을 것 같지도 않으니 아무리 생각하여도 내게는 군일 같았고 내 개인적(個人的) 발전상(發展上)에는 큰 방해물(妨害物)이 생긴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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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理解)와 자유(自由)의 행복(幸福)된 생활(生活)을 두 사람 사이에 하게 되고 다시 얻을 수 없는 사랑의 창조(創造)요, 구체화(具體化)요, 해답(解答)인 줄 알면서도 마음에서 솟아오르는 행복(幸福)과 환락(歡樂)을 느낄 수 없는 것이 어찌나 슬펐는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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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격(資格) 없는 모(母) 노릇하기에는 너무 양심(良心)이 허락(許諾)지 아니 하였다. 마치 자식(子息)에게 죄악(罪惡)을 짓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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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인류(人類)에게 대(對)하여 면목(面目)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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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생각다 못하여 필경(畢竟) 타태(墮胎)라도 하여 버리겠다고 생각하여 보았다. 법률(法律) 상(上) 도덕(道德)상(上)으로 나를 죄인(罪人)이라 하여 형벌(刑罰)하면 받을지라도 조금도 뉘우칠 것이 없을 듯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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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것은 실제(實際)로 당(當)하였을 때 순간적(瞬間的)으로 일어나는 추악감(醜惡感)에 불과(不過)하였고, 이개(二個)의 인격(人格)이 결합(結合)하였고, 사랑이 융화(融化)한 자타(自他)의 존재(存在)를 망각(忘却)할 만치 영육(靈肉)이 절대(絶對)의 고경(苦境) 전(前)에 입(立)하였을 때 능(能)히 추측(推測)할 수 없는 망상(妄想)에 불과(不過)하였었다고 나는 정신(精神)을 수습(收拾)하는 동시(同時)에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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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다만 내 자신(自身)을 모멸(侮蔑)하고 양인(兩人)에게 모욕(侮辱)을 줄 뿐인 것을 진실(眞實)로 알고 통곡(痛哭)하였다. 좀더 해부적(解剖的)으로 말하자면 나는 항상(恒常) 개인(個人)으로 살아가는 부인(婦人)도, 중대(重大)한 사명(使命)이 있는 동시(同時)에 종족(種族)으로 사는 부인(婦人)의 능력(能力)도 위대(偉大)하다는 이지(理智)와 이상(理想)을 가졌었으며 그리하여 성적(性的) 방면(方面)으로 먼저 부인(婦人)을 해방(解放)함으로 말미암아 부인(婦人)의 개성(個性)이 충분(充分)히 발현(發現)될 수 있고 또 그것은 ‘진(眞)’이라고 말하던 것과는 너무 모순(矛盾)이 크고 충돌(衝突)이 심(甚)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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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조금 자존심(自尊心)이 생기자 불안공축(不安恐縮)의 마음이 불일 듯 솟아올라 왔다. 동시(同時)에 절대(絶對)로 요구(要求)하는 조건(條件)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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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已往) 자식(子息)을 날 지경이면 보통(普通)이나 혹(或) 보통(普通) 이하(以下)의 것을 낳고는 싶지 않았다. 보통(普通) 이상(以上)의 미안(美顔)에 마력(魔力)을 가진 표정(表情)이며 얻을 수 없는 천재(天才)이며 특출(特出)한 개성(個性)으로 맹진(猛進)할만한 용감(勇敢)을 가진 소질(素質)이 구비(具備)한 자(者)를 낳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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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아들이냐? 딸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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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지 상관(相關)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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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남자(男子)는 제 소위(所謂) 완성자(完成者)가 많다하니 딸을 하나 낳아서 내가 못 해 본 것을 한껏 시켜보고 싶었었다. 한 여자라도 완성자(完成者)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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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하면 만일(萬一) 딸이 나오려거든 좀 더 구비(具備)하여가지고 나오너라고 심축(心祝)하였다. 그러나 낙심(落心)이다, 실망(失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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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뱃속에 있는 것은 보통(普通)은 고사(姑捨)하고 불구자(不具者)이다, 병신(病身)이다. 뱃속에서 뛰노는 것은 지랄을 하는 것이요, 낳으면 미친 짓하고 돌아다질 것이 안전(眼前)에 암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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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전(全)혀 내 죄(罪)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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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태(胞胎) 중에는 웃고 기뻐하여야 한다는데 항상(恒常) 울고 슬퍼했으며 안심(安心)하고 숙면(熟眠)하여야 좋다는데 부절(不絶)히 번민(煩悶) 중(中)에서 불면증(不眠症)으로 지냈고, 자양품(滋養品)을 많이 먹어야 한다는데 식욕(食慾)이 부진(不進)하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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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갖은 못된 태교(胎敎)만 모조리 했으니 어찌 감(敢)히 완전(完全)한 아해(兒孩)가 나오기를 바랄 수 있었으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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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비뚜로 박혔든지 입이 세로 찢어졌든지 허리가 꼬부라졌든지 그러한 악마(惡魔) 같은 것이 나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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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네 죄(罪) 값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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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할 것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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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소름이 쪽 끼치고 사지(四肢)가 벌벌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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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생각이 깊어갈수록 정신(精神)이 아뜩하고 눈앞이 캄캄하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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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내 몸은 사시나무 떨 듯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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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세월(歲月)은 속(速)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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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도 진심(眞心)으로 희망(希望)과 기쁨을 느껴보지 못한 동안에 어느덧 만삭(滿朔)이 당도(當到)하였다. 참 천만(千萬) 의외(意外)에 기이(奇異)한 일이 있었다. 이 사실(事實)만은 꼭 정(正)말로 알아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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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듬해 사월(四月) 초순(初旬)경(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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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男便)은 외출(外出)하여 없고 이간(二間) 방(房) 중간(中間)벽(壁)에 늘어져있는 전등(電燈)이 전(前)에 없이 밝게 비추인 온 세상(世上)이 잠든 듯한 고요한 밤 십이 시(十二時)경(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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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분만(分娩) 후(後) 영아(嬰兒)에게 입힐 옷을 백설(白雪) 같은 ‘가-제’로 두어 벌 말아서 꾸미고 있었다. 대중을 할 수가 없어서 어림껏 조그마한 인형(人形)에게 입힐만하게 팔 들어갈 데 다리 들어갈 데를 만들어서 방바닥에다 펴놓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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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부지불각(不知不覺) 중(中)에 문득 기쁜 생각이 넘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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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종(一種)의 탐욕성(貪慾性)인 불가사의(不可思議)의 희망(希望)과 기대(期待)와 환희(歡喜)의 념(念)을 느끼게 되었다. 어서 속(速)히 나와 이것을 입혀 보았으면, 얼마나 고울까 사랑스러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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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궁금증(症)이 나서 못 견디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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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眞情)으로 그 얼굴이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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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만든 옷을 개켰다 폈다 놓았다 만졌다하고 기뻐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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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男便)이 돌아와 내 안색(顔色)을 보고 그는 같이 좋아하고 기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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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인(兩人) 간(間)에는 무언(無言) 중(中)에 웃음이 밤새도록 계속(繼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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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결(決)코 내가 일부러 기뻐하였던 것이 아니라, 순간적(瞬間的) 감정(感情)이었다. 이것만은 역설(力說)을 가(加)하지 않고 자연성(自然性) 그대로 오래 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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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妊娠) 중(中) 한 번도 없었고 분만(分娩) 후(後) 한 번도 없는 경험(經驗)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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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달 이십구일(二十九日) 오전(午前) 이 시(二時) 이십오 분(二十五分)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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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只今)까지 가진 병(病) 앓아보던 아픔에 비(比)할 수 없는 고통(苦痛)을 근(近) 십여(十餘) 시간(時間) 겪어 거진 기진(氣盡)하였을 때에 이 세상(世上)이 무슨 그다지 볼 만한 곳인지 구태여 기어이 나와서 「으앙으앙」 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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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나는 몇 번이나 울었는지 산파(産婆)가 어떻게 하며 간호부(看護婦)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도무지 모르고 시원한 것보다 아팠던 것보다 무슨 까닭 없이 대성통곡(大聲痛哭)하였다. 다만 설을 뿐이고 원통(怨痛)할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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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는 병원(病院) 침상(寢牀)에서 ‘스케치북’에 이렇게 쓴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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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다, 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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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아파요 진정(眞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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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果然)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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푹푹 쑤신다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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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 시리다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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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딱 결린다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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쿡쿡 찌른다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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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끔따끔 꼬집는다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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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르르 저리다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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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짝깜짝 따갑다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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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아프다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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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라 이도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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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박 뼈를 긁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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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짝 살을 찢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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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짝바짝 힘줄을 옥이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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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쪽 핏줄을 뽑아내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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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금살금 살점을 저미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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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장(五臟)이 뒤집혀 쏟아지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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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기로 머리를 바수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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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아프다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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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라 이도 또한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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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맣고 샛노란 하늘은 흔들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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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하늘 낮아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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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땅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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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壁)도 없이 문(門)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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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通)하여 광야(廣野)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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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안에 있는 물건(物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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쌩쌩 돌다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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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있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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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없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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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맴돌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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갖은 빛 찬란(燦爛)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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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도 곱던 색(色)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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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몰히 씌워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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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장막(帳幕) 가리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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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내 작은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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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空中)에 떠있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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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에 끼워 있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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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상(寢床) 아래 눌려 있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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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그라졌다 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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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 흘렸다 으스스 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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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도 괴롭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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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지도 아프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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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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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펄 뛰게 아프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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쾅쾅 부딪게 아프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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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뻑끔뻑 기절(氣絶)하듯 아프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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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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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어라 그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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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분(十分) 간(間)에 한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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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분(五分) 간(間)에 한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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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세 목숨이 끊을 듯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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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이상히 아프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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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리던 날 햇빛 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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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 정신(精神) 상쾌(爽快)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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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아팠던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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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어라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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갖은 양념 가(加)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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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게도 아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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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 나 죽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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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그대 나 살려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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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심(甚)히 애걸(哀乞)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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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팔짱 끼고 섰던 부군(夫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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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시오」 하는 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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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놈아 듣기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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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악 쓰고 통곡(痛哭)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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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내 몸 어이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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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지 되었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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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구이일 년(一九二一 年) 오월(五月) 팔일(八日) ‘산욕(産褥)’ 중(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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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5월 17일 (화) 22:59 판

원문

1

이러한 심야(深夜) 악가(樂歌)처럼 만사(萬事)를 잊고 곤(困)한 춘몽(春夢)에 잠겼을 때 돌연(突然)히 옆으로서 잠잠한 밤을 깨트리는 어린아이의 울음소리가 벼락같이 난다.

이때에 나의 영혼(靈魂)은 꽃밭에서 동모(同侔*동무)들과 끊임없이 웃어가며 평화(平和)의 노래를 부르다가 참혹(慘酷)히 쫓겨났다.

나는 벌써 만(萬) 일개(一個)년간(年間)을 두고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每日) 밤에 이러한 곤경(困境)을 당(當)하여 옴으로 이렇게 “으아”하는 첫소리가 들리자 “아이구, 또”하는 말이 부지불각(不知不覺) 중(中) 나오며 이맛살이 찌푸려졌다.

나는 어서 속(速)히 면(免)하려고 신식(新式)차려 정(定)하는 규칙(規則)도 집어치우고 젖을 대주었다. 유아(幼兒)는 몇 모금 꿀떡꿀떡 넘기다가 젖꼭지를 스르르 놓고 쌕쌕하며 깊이 잠이 들었다.

나는 비로소 시원해서 돌아누우나 나의 잠은 벌써 서천서역국(西天西域國)으로 속거천리(速去千里)하였다.

그리하여 다만 방(房) 한 가운데에 늘어져 환히 켜 있는 전등(電燈)을 향(向)하여 눈방울을 자주 굴릴 따름, 과거(過去)의 학창시대(學窓時代)로부터 현재(現在)의 가정생활(家庭生活), 또 미래(未來)는 어찌 될까!

이렇게 인생(人生)에 대(對)한 큰 의문(疑問), 그것에 대(對)한 나의 무식(無識)한 대답(對答), 고(苦)로부터 시작(始作)하였으나 필경(畢竟)은 자미(滋味)롭게 밤을 새우는 것이 병적(病的)으로 습관성(習慣性)이 되다시피 하였다.

정직(正直)히 자백(自白)하면 내가 전(前)에 생각하든 바와 지금(只今) 당(當)하는 사실(事實)중(中)에 모순(矛盾)되는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나 어느 틈에 내가 처(妻)가 되고 모(母)가 되었나? 생각하면 확실(確實)히 꿈 속 일이다. 내가 때때로 말하는

「공상(空想)도 분수가 있지!」

하는 간단(簡單)한 경탄어(驚歎語)가 만(滿)이(二)개년(個年)간(間) 사회(社會)에 대(對)한 가정(家庭)에 대(對)한 다소(多少)의 쓴맛 단맛을 맛본 나머지의 말이다.

실(實)로 나는 짜릿짜릿하고 부르르 떨리며 달고 열(熱)나는 소위(所謂) 사랑의 꿈은 꾸고 있었을지언정 그 생활(生活)에 비장(秘藏)된 반찬 걱정, 옷 걱정, 쌀 걱정, 나무 걱정, 더럽고 게으르고 속이기 좋아하는 하인(下人)과 싸움으로부터 접객(接客)에 대(對)한 범절(凡節), 친척(親戚)에 대(對)한 의리(義利), 일언일동(一言一動)이 모두 남을 위(爲)하여 살아야 할 소위(所謂) 가정(家庭)이란 것이 있는 줄 뉘 알았겠으며 더구나 빨아댈 새 없이 적셔 내놓는 기저귀며 주야(晝夜)불문(不問)하고 단조(單調)로운 목소리로 쌕쌕 우는 소위(所謂) 자식(子息)이라는 것이 생기어 내 몸이 쇠약(衰弱)해지고 내 정신(精神)이 혼미(昏迷)하여져서

「내 평생(平生) 소원(所願)은 잠이나 실컷 자보았으면.」

하게 될 줄이야 뉘라서 상상(想像)이나 하였으랴.

그러나 불평(不平)을 말하고 싶은 것보다 인생(人生)에 대(對)하야 의문(疑問)이 자라가며, 후회(後悔)를 하는 것이 아니라 남보다 더 한 가지 맛을 봄을 행복(幸福)으로 안다.

그리하여 내 앞에는 장차(將次) 더한 고통(苦痛), 더한 희망(希望), 더한 낙담(落膽)이 있기를 바라며 그것에 지지 않을 만한 수양(修養)과 노력(努力)을 일삼아 가려는 동시(同時)에 정월(晶月)의 대명사(代名詞)인 나열(羅悅)의 모(母)는, 모(母)될 때로 모(母)되기까지의 있는 듯 없는 듯한 이상(異常)한 심리(心理) 중(中)에서 ‘있었던 것을’ 찾아 여러 신식(新式) 모(母)님들께

「그러지 않습니까. 아니, 그랬었지요.」

라고 묻고 싶다.

재작년(再昨年) 즉(卽) 일천구백이십 년(一千九百二十年) 구월(九月) 중순(中旬) 경(頃)이었다. 그때 나는 경성(京城) 인사동(人寺洞) 자택(自宅) 이층(二層)에 와석(臥席)하여 내객(來客)을 사절(謝絶)하였었다.

나는 원래(元來) 평시(平時)부터 호흡불순(呼吸不順)과 소화불량(消化不良)병(病)이 있음으로 별(別)로 걱정할 것도 없었으나, 이상(異常)스럽게 구토증(嘔吐症)이 생(生)기고 촉감(觸感)이 예민(銳敏)해지며 식욕(食慾)이 부진(不進)할 뿐 아니라, 싫고 좋은 식물(食物)선택(選擇) 구별(區別)이 너무 정확(精確)해졌다.

그래서 언젠지 철없이 고만 불쑥 증세(症勢)를 말했더니 옆에 있던 경험(經驗)있는 부인(夫人)이

‘그것은 태기(胎氣)요’

하는 말에 나는 깜짝 놀라 내놓은 말을 다시 주워들이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과연(果然) 부끄러워서 그랬던 것도 아니요, 몰랐던 것을 그때 비로소 알게 된 것도 아니었었다.

그러나 이로부터 나는 먹을 수 없는 밥도 먹고 할 수 없는 일도 하여 참을 수 있는 대로 참아가며 그 후(後)로는 ‘그 말’은 일절(一切) 입 밖에도 내지 않고 어찌하면 그네들로 의심(疑心)을 풀게 할까 하는 것이 유일(唯一)의 심려(心慮)이었다.

그러나 증세(症勢)는 점점(漸漸) 심(甚)하여져서 인제는 참을 수도 없으려니와 참고 말 아니 하는 것으로만 도저히 그네들의 입을 틀어 막을 방패가 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래도 싫다. 한 사람 더 알아질수록 정말 싫다. 마치 내 마음으로 ‘그런 듯’하게 몽상(夢想)하는 것을 그네들 입으로 ‘그렇게’ 구체화(具體化)하려고 하는 듯싶었다.

어쩌면 그다지도 몹시 밉고 싫고 원망(怨望)스러웠던지!

그리하여 이것이 혹시(或是) 꿈 속 일이나 되었으면! 언제나 속(速)히 이 꿈이 반짝 깨어

「도무지 그런 일 없다.」

하여질꼬? 아니 그럴 때가 꼭 있겠지 하며 바랄 뿐 아니라 믿고 싶었다.

그러나 미구(未久)에 믿던 바 꿈이 조금 씩(式) 깨어져왔다.

「도무지 그럴 리 없다.」

고 고집을 세울 용기(勇氣)는 없으면서도 아직까지도 아해(兒孩)다, 태기(胎氣)다, 임신(妊娠)이다, 라고 꼭 집어내기는 싫었다.

그런 중(中)에 뱃속에서는 어느덧 무엇이 움직거리기 시작(始作)하는 것을 깨달은 나는 몸이 으쓱해지고 가슴에서 무엇인지 떨어지는 소리가 완연(宛然)히 탕 하는 것 같이 들리었다.

나는 무슨 까닭인지 몰랐다.

모든 사람의 말은 나를 저주(咀呪)하는 것 같고 바람에 날려 들리는 웃음소리는 나를 비웃는 것 같았다. 탕탕 부딪고 엉엉 울고도 싶었고 내 살을 꼬집어 뜯어 줄줄 흐르는 빨간 피를 또렷또렷 보고도 싶었다.

아아, 기쁘기커녕 수심(愁心)에 싸일 뿐이오, 우습기커녕 부쩍부쩍 가슴을 태울 뿐이었다. 책임(責任) 면(免)하려고 시집가라 강권(强勸)하던 형제(兄弟)들의 소위(所謂)가 괘씸하고 감언이설(甘言利說)로

‘너 아니면 죽겠다’

하여 결국(結局) 제 성욕(性慾)을 만족(滿足)케 하던 남편은 원망스럽고 한 사람이라도 어서 속(速)히 생활(生活)이 안정(安定)되기를 희망(希望)하던 친구(親舊)님네,

「내 몸 보니, 속 시원하겠소.」

하며 들이대고 싶으니만치 악(惡)만 났다.

그때에 나의 둔(鈍)한 뇌(腦)로 어찌 능(能)히 장차(將次) 닥쳐오는 고통(苦痛)과 속박(束縛)을 추측(推測)하였을까. 나는 다만 여러 부인(夫人)들께 이러한 말을 자주 들어왔을 뿐이었다.

「여자(女子)가 공부(工夫)는 해서 무엇 하겠소. 시집가서 아이 하나만 나면 볼 일 다 보았지!」

하는 말을 할 때마다 나는 언제든지 코웃음으로 대답(對答)할 뿐이오, 들을만한 말도 되지 못할 뿐 아니라, 그럴 리(理) 만무(萬無)하다는 신념(信念)이 있었다.

이것은 공상(空想)이 아니라 구미(歐米)각국(各國) 부인(婦人)들의 활동(活動)을 보던지, 또 제일(第一) 가까운 일본(日本)에도 여사야 정자(與謝野 晶子*요사노 아키코)는 십여(十餘) 인(人)의 모(母)로서 매삭(每朔) 논문(論文)과 시가(詩歌)창작(創作)으로부터 그의 독서(讀書)하는 것을 보면 확실(確實)히

「아니하려니까 그렇지? 다 같은 사람 다 같은 여자(女子)로 하필(何必) 그 사람에게만 이런 능력(能力)이 있으랴」

싶은 마음이 있어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내가 잘 생각한 것 같았다.

그리하여 그런 말을 하는 부인(夫人)들이 많을수록 나는 더욱 절대(絶對)로 부인(否認)하고 결국(結局) 나는 그네들 이상(以上)의 능력(能力)이 있는 자(者)로 자처(自處)하면서도 언제든지 꺼림직한 숙제(宿題)가 내 뇌(腦) 속에 횡행(橫行)했었다.

그러나 그 부인(夫人)들은 이구동언(異口同言)으로,

「네 생각은 결국(結局) 공상(空想)이다. 오냐, 당(當)해 보아라. 너도 별(別) 수 없지」

하며 나의 의견(意見)을 부인(否認)하였다. 과연(果然) 연전(年前)까지 나와 같이 앉아서 부인(夫人)네들을 비난(非難)하며

「나는 그렇게 아니 살 터이야.」

하던 고등교육(高等敎育) 받은 신여자(新女子)들을 보아도 별(別) 다른 것 보이지 아닐 뿐이라. 구식(舊式) 부인(夫人)들과 같은 살림으로 일 년(一年) 이 년(二年) 예사(例事)로 보내고 있다는 것을 보면 아무리 전(前)에 말하던 구식(舊式) 부인(夫人)들은 신용(信用)할 수 없더라도 이 신부인(新夫人)의 가정(家庭)만은 신용(信用)하고 싶었었다. 그것은 결(決)코 개선(改善)할만한 능력(能力)과 지식(知識)과 용기(勇氣)가 없지 않다. 그러면 누구든지 시집가고 아이 낳으면 그렇게 되는 것인가 되지 않고는 아니 되나?

그러면 나는 그 고뇌(苦惱)에 빠지는 초보(初步)에 있다. 마치 눈 뜨고 물에 빠지는 격(格)이었다. 실(實)로 앞이 캄캄하여 올 때에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그리하여 세상(世上) 일을 잊고 단잠에 잠겼을 때라도 누가 곁에서 바늘 끝으로 찌르는 것 같이 별안간(間) 깜짝 놀라 깨어졌다. 이러한 때는 체온(體溫)이 차졌다 더워졌다 말랐다 땀이 흘렀다 하여 조바심이 나서 마치 저울에 물건(物件)을 달 때 접시에 담긴 것이 쑥 내려지고 추(錘)가 훨씬 오르는 것 같이 내 몸은 부쩍 공중(空中)으로 떠오르고 머리는 천근만근(千斤萬斤)으로 무거워 축 처져버렸다.

너무나 억울하였다. 자연(自然)이 광풍(狂風)을 보내서 겨우 방긋한 꽃봉올리를 참혹(慘酷)히 꺾어버린다 하면 다시 뉘게 애소(哀素)할 곳이 있으리오마는 그래도 설마 자연(自然)만은 그럴 리(理) 없을 듯하여! 애원(哀願)하고 싶었다.

「이렇게 억울하고 원통한 일도 또 있겠느냐?」고.

나는 할 일이 많았다. 아니 꼭 해야만 할 일이 부지기수(不知其數)이다.

게다가 내 눈이 겨우 좀 떼려고 하는 때이었다.

예술(藝術)이 무엇이며 어떠한 것이 인생(人生)인지 조선(朝鮮)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겠고 조선 여자(女子)는 이리해야만 하겠다는 것을, 이 모든 일이 결(決)코 타인(他人)에게 미룰 것이 아니다, 내가 꼭 해야 할 일이었다.

2

그것은 의무(義務)나 책임(責任)문제(問題)가 아니라 사람으로 생겨난 본의(本意)라고까지 나는 겨우 좀 알아왔다. 동시(同時)에 내 과거(過去) 이십(二十)여(餘) 년(年) 생애(生涯)는 모든 것이 허위(虛僞)요, 나태(懶怠)요, 무식(無識)이요, 부자유(不自由)요, 허영(虛榮)의 행동(行動)이었다고 생각했다.

나는 과연(果然) 소위(所謂) 전문학교(專門學校)까지 졸업(卒業)하였다 하나 남이 알까보아 겁나도록 사실(事實) 허송세월(虛送歲月)의 학창시절(學窓時節)이었고 결국(結局) 유명무실(有名無實)의 몰상식(沒常識)한 데서 면(免)할 수 없는 몸이 되었다.

인생(人生)을 비관(非觀)하며 조선(朝鮮)사람을 저주(咀呪)하고 조선(朝鮮)여자(女子)에게 실망(失望)하였었다.

쓸데없이 부자유(不自由)의 불평(不平)을 주창(主唱)하였으며 오늘 할 일을 명일(明日)로 미루어 버리는 일이 많았었다. 나는 내게서 이런 모든 결점(缺點)을 찾아낼 때 조금도 유망(有望)한 아무 장점(長點)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내게는 유일무이(唯一無二)한 사랑의 힘이 옆에 있었고 또 아직 이십(二十)여(餘)세(歲) 소녀(少女)로 전도(前道)의 요원(遼遠)한 세월(歲月)과 시간(時間)이 내 마음껏 살아가기에 너무나 넉넉하였다. 이와 같이 내게서 넘칠만한 희망(希望)이 생겼다.

터지지 않을 듯한 딴딴한 긴장력(緊張力)이 발(發)했다.

전 인류(全 人類)에게 애착심(愛着心)이 생기고 동포(同胞)에 대(對)한 의무심(義務心)이 나며 동류(同類)에 대(對)한 책임(責任)이 생겼다. 이때와 같이 작품(作品)을 낸 적이 없었고 이때와 같이 독서(讀書)를 한 일이 짧은 생애(生涯)이나마 과거(過去)에 한 번도 없었다.

나는 이 마음이 더 견고(堅固)는 하여질지언정 약(弱)해질 리(理)는 만무(萬無)하고 내 희망(希望)이 새로워질지언정 고정(固定)될 리(理) 만무(萬無)하리라 꼭 신앙(信仰)하고 있었다.

즉(卽) 내가 갈 길은 지금(只今)이 출발점(出發點)이라고 하였다.

더구나 내게는 이러한 버리지 못할 공상(空想)이 있어서 나를 많이 도와주었다.

내가 불행 중(中) 다행(多幸)으로 반년(半年) 감옥생활(監獄生活) 중(中)에 더할 수 없는 구속(拘束)과 보호(保護)와 징역(懲役)과 형벌(刑罰)을 당(當)해가면서라도 옷자락을 뜯어 손톱으로 편지(片紙)를 써서 운동시간(運動時間)에 내어던지든 갖은 기묘(奇妙)한 일이 많았든 조그마한 경험상(經驗上)으로 보아 「사람이 하려고 하는 마음만 있으면 별(別) 힘이 생기고 못할 일이 없다고」 이것만은 꼭 맛보아 얻은 생각으로 잊을 수 없이 내 생활(生活) 전체(全體)를 지배(支配)하고 있었다.

내 독신생활(獨身生活)의 내용(內容)이 돌변(突變)함도 이 까닭이었었다. (지금(只今)까지는 아직 그 마음이 있지만) 그와 같이 나는 희망(希望)과 용기(勇氣) 가운데서 펄펄 뛰며 살아갈 때이었다.

여러분은 인제는 나를 공평정대(公平正大)히 심판(審判)하실 수 있겠다.

나는 정(正)말 억울했다.

이 모든 희망(希望)이 없어지는 것이 원통(怨痛)하였다.

이때에 마음 딴은 세속(世俗) 자살(自殺)의 의미(意味)보다 이상(以上)의 악착(齷齪)하고 원한(怨恨)의 자살(自殺)을 결심(決心)하였었다. 어떻게 저를 죽이면 죽는 제 마음까지 시원할까 하였다.

생(生)의 인연(因緣)이란 참 이상(異常)스러운 것이다. 나는 이 중(中)에서 다시 살아갈 되지 못한 희망(希望)이 났다.

「설마 내 뱃속에 아해(兒孩)가 있으랴. 지금(只今) 뛰는 것은 심장(心臟)이 뛰는 것이다. 나는 조금도 전(前)과 변(變)함 없이 넉넉한 시간(時間)에 구속(拘束) 없이 돌아다니며 사생(寫生)도 할 수 있고 책(冊)도 볼 수 있다」

고 생각할 제(際) 나는 불만(不滿)하나마 광명(光明)이 조금 보였다. 그러나 이와 같이 침착(沈着)하게 정리(整理)되었던 내 속에서 어느덧 모든 것이 하나 씩(式) 둘 씩(式) 날아가 버리고 내 속은 마치 고목(古木)의 속 비이고 살아있는 듯 나는 텅 비어 공중(空中)에 떠있고 나의 생명(生命)은 다만 혈액순환(血液循環)에다가 제 목숨을 맡겨 버렸었다.

지금(只今) 생각건대 하느님께서는 꼭 나 하나만은 살려 보시려고 퍽 고생(苦生)을 하신 것 같다. 그리하여 내게는 전생(前生)에서부터 너는 후생(後生)에 나가 그렇게 살지 말라는 무슨 숙명(宿命)의 상급(賞給)을 받아가지고 나온 모양(模樣) 같다.

왜 그러냐하면 나는 그 중(中)에서도 무슨 책(冊)을 보았었다.

그러나 어느 날 심야(深夜)에 책(冊)을 읽다가 깜짝 놀라서 옆에 곤(困)히 자던 남편(男便)을 깨워 임신(妊娠) 이래(以來)의 내 심리(心理)를 말하고 나를 이삭 간(二朔 間)만 동경(東京)에 다시 보내주지 않으면 나는 다시 살아날 방책(方策)이 없다고 한즉 고마운 그는 내게 쾌락(快諾)하여 주었다. 쾌락(快諾)을 받는 순간(瞬間)에

「저와 같이 고마운 사람과 아무쪼록 잘 살아야지」

라는 내게는 예상(豫想)치 못했던 이중(二重) 기쁨이 생겼다.

나는 이상(異常)스럽게도 몽상(夢想)의 세계(世界)에서 실제(實際)의 세계(世界)로 껑충 넘어 뛴 것 같았다. 아니, 뛰어졌었다.

이 두 세계(世界)의 경계선(境界線)을 정확(正確)히 갈라 밟은 때는 내가 회당(會堂)에서 목사(牧師) 앞에 서서 이성(異性)에 대(對)하여 공동(共同) 생애(生涯)를 언약(言約)할 때보다 오히려 이때이었었다.

나는 비로소 시간(時間)경제(經濟)의 타산(打算)이 생겼다. 다른 것은 다 예상(豫想)치 못하더라도 아해(兒孩)가 나면 적어도 제 시간(時間)의 반(半)은 그 아해(兒孩)에게 바치게 될 것쯤이야 추측(推測)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일분(一分)이라도 내게 족(足)할 때에 전(前)에 허송(虛送)한 것을 조금이라도 보충(補充)할까하는 동기(動機)이었다. 그럼으로 내 동경 행(東京 行)은 비교적(比較的) 침착(沈着)하였고 긴장(緊張)하여 일분(一分)일각(一刻)을 앗기어 전문(專門)방면(方面)에 전심치지(傳心致志)하였었다.

과거(過去) 사(四), 오(五) 년(年) 간(間)의 유학(留學)은 전(전)혀 헛것이요, 내가 동경(東京)에 가서 공부(工夫)를 하였다고 말하려면 오직 이 이삭 간(二朔 間) 뿐이었다.

내게는 지금(只今)도 그때의 인상(印象)밖에 남은 것이 없다.

그러나 나는 동창생(同窓生) 중(中)에 미혼자(未婚者)를 보면 부러웠었고 더구나 활기(活氣)있고 건강(健康)한 그들의 안색(顔色), 그들의 체격(體格)을 볼 때 미웁고 심사가 났다. 이렇게 수심(愁心)에 싸인 남모르는 슬픔 중(中)에 어느 동무(同侔)는 아직 내가 출가(出嫁)하지 않은 줄 알고

「나(羅)さんも 연인(戀人)が 거(居)るでしょね」(나 상도 애인이 있어야겠지요)

하고 놀리었다. 나는 어물어물

「い-え」(아니요)

하고 대답(對答)을 하면서 속으로

「나는 벌써 연애(戀愛)의 출발점(出發點)에서 자식(子息)의 표지(標地)에 도달(到達)한 자(者)다」

라고 하였다.

어쩐지 저 처녀(處女)들과 좌석(坐席)을 같이 할 자격(資格)까지 잃은 몸 같기도 하였다. 그들의 천진난만(天眞爛漫)한 것이 어찌 부럽고 탐이 나든지 무슨 물건(物件) 같으면 어떠한 형벌(刑罰)을 당(當)하든지 도적(盜賊)질을 할지 몰랐을 것이다.

나는 이와 같이 내가 처녀(處女) 때에 기혼(旣婚)한 부인(婦人)을 싫어하고 미워하든 감정(感情)을 도리어 내 자신(自身)이 받게 되었다.

그러나 그럭저럭 나는 벌써 임신(妊娠) 육(六)개월(個月)이 되었다.

그러면 입으로는 사람이 무엇이든지 아니하려니까 그렇지 안 될 것이 없다……고 하면서 아해(兒孩) 하나쯤 생긴다고 무슨 그다지 걱정될 것이 있나. 몇 자식(子息)이 주렁주렁 매어 달릴수록 그 중(中)에서 남 못하는 일을 하는 것이 자기(自己) 말의 본의(本意)가 아닌가?

그러나 먼저 나는 어떠한 세계에서 살았었다는 것을 좀 더 말할 필요(必要)가 있다.

나는 실(實)로 공상(空想)과 이상(理想) 세계(世界)에 살아온 자(者)이었다.

함으로 실세계(實世界)와는 마치 동서양(東西洋)이 현수(懸殊*아주 심하게 다름)한 것과 같이 아니, 그보다도 더 멀고 멀어서 나와 같은 자(者)는 도저(到底)히 거기까지 가볼 것 같지도 못하였다. 그러나 남들 보기에는 내가 벌써 결혼(結婚)세계(世界)로 들어설 때가 곧 실제(實際)세계(世界)의 반로(半路)까지 온 것이었다.

그러나 내 심리(心理)도 그렇지 않았고 또 결혼생활(結婚生活)의 내용(內容)도 역시(亦是) 전(全)혀 공상(空想)과 이상(理想) 속에서 살아왔다.

원래(元來) 내가 남의 처(妻) 되기 전(前)에는 그 사실(事實)을 퍽도 무섭고 어렵게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나 같은 자(者)는 도무지 사람의 처(妻)가 되어 볼 때가 생전(生前) 있을 것 같지 아니 하였다.

그러던 것이 자각(自覺)이나 자원(自願)보다 우연(偶然)한 기회(機會)로 타인(他人)의 처(妻)가 되고 보니 결혼생활(結婚生活)이란 너무나 쉬운 일 같았었다.

결혼생활(結婚生活)을 싫어하는 제일(第一)의 조건(條件)이던 공상세계(空想世界)에서 떠나기 싫었던 것도 웬일인지 결혼(結婚)한 후는 그 세계(世界)의 범위(範圍)가 더 넓고 커질 뿐이었다.

그럼으로 독신생활(獨身生活)을 주창(主唱)하는 것이 너무 쉽고도 어리석어 보였다. 또 결혼생활(結婚生活)을 회피(回避)하던 제(第) 이조(二條)로

「구속(拘束)을 받을 터이니까」

하던 것이 무슨 까닭인지 별안간에 심신(心神)이 매우 침착(沈着)해지어 온 세계(世界) 만물(萬物)이 내 앞에서는 모두 굴복(屈伏)을 하는 것 같고 조금도 구속(拘束)될 것이 없었다.

이는 결혼생활(結婚生活) 후(後) 삼삭(三朔) 간(間)에 경성(京城) 시가(市街)를 일주(一週)한 것이며 겸(兼)하여 학교(學校)에 매일(每日) 출근(出勤)하였고 또 열(熱)나고 정(情) 있는 작품(作品)이 수십(數十)개(個) 된 것으로 충분(充分)히 증거(證據)를 삼을 수 있다.

그렇게 된 그 사실(事實)이 즉(卽) 실세계(實世界)이라 할는지 모르겠으나 나는 도저(到底)히 공상(空想)과 이상(理想)세계(世界)를 떠나고서는 이러한 정력(精力)이 계속(繼續)될 수 없을 줄 알며 이러한 신비적(神秘的) 생활(生活)을 할 수 없었으리라고 확신(確信)하는 바이다. 그러나 여기까지 이르러서도 모(母)될 생각은 꿈에도 없었다.

혹(或) 생각해 본 일이 있었다하면 부인(婦人) 잡지(雜誌) 같은 것을 보고 난 뒤에 잠깐(暫間) 꿈같이 그리어 보았을 뿐이었다.

그리하여 처(妻)가 되어 볼 꿈을 꿀 때에는 하나에서 둘, 둘에서 셋 그렇게 힘들지 않게 요리조리 배치(配置)해 볼 수 있었으나 모(母)될 꿈을 꿀 때에는 하나가 나서고 한참 있다 둘이 나서며 그 다음 셋부터는 결(決)코 나서지 않으리라.

그리되면 더 생각해 볼 것도 아니하고 떠오르던 생각은 싹싹 지워버렸다.

그러나 다른 것으로 이렇게 답답하고 알 수 없을 때에 내가 비관(悲觀)하여 몸부림치던 것에 비(比)하면 너무 태연(泰然)하였고 너무 낙관적(樂觀的)이었다.

이와 같이 나로부터 ‘모(母)’의 세계(世界)까지는 수자(數字)로 계산(計算)할 수 없을 만한 멀고 먼 세계(世界)이었었다. 실(實)로 나는 내 안전(眼前)의 무궁무진(無窮無盡)한 사물(事物)에 대(對)하여 배울 것이 하도 많고 알 것이 너무 많았다.

그리하여 그 멀고 먼 딴 세계(世界)의 일을 지금(只今)부터 끄집어내는 것이 너무 부끄럽고 염치(廉恥)없을 뿐 아니라 불필요(不必要)로 알았다. 그럼으로 행여 그런 쓸데없는 것이 나와 내 뇌(腦)에 해(害)롭게 할까 하여 조금 눈치가 보이는 듯만 하여도 어서 속(速)히 집어치웠다.

그러면 내가 주장(主張)하는 그 말은 허위(虛僞)가 아니냐고 비난(非難)할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과연(果然) 모순(矛盾)된 일이었다.

그러나 생각하여 보면 당연(當然)한 일이 아닐까도 싶다.

즉(卽) 지식(知識)이나 상상(想像)쯤 가지고서는 알아 내일 수 없던 사실(事實)이 있다. 다시 말하면 이것이 애(愛)의 필연(必然)이오, 불임의(不任意) 혹(惑) 우연(偶然)의 결과(結果)로 치더라도 우리 부부(夫婦) 간(間)에는 자식(子息)에 대(對)한 욕망(慾望), 부모(父母) 되고자 하는 욕(慾)이 없었다.

미완(未完)

3

나는 분만기(分娩期)가 닥쳐올수록 이러한 생각이 났다.

「내가 사람의 모(母)가 될 자격(資格)이 있을까? 그러나 있기에 자식(子息)이 생기는 것이지」

하며 아무리 이리저리 있을 듯한 것을 끌어보니 생리(生理) 상(上) 구조(構造)의 자격(資格) 외(外)에는 겸사(謙辭*겸손한 말)가 아니라 정신(精神) 상(上)으로는 아무 자격이 없다고 하는 수밖에 없었다.

성품(性品)이 조급(躁急)하여 조금 조금씩(式) 자라가는 것을 기다릴 수도 없을 듯도 싶고 과민(過敏)한 신경(神經)이 늘 고독(孤獨)한 것을 찾기 때문에 무시(無時)로 빽빽 우는 소리를 참을만한 인내성(忍耐性)이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더구나 무지몰각(無知沒覺)하니 무엇으로 그 아해(兒孩)에게 숨어있는 천분(天分*타고난 재능이나 복)과 재능(才能)을 틀림없이 열어 인도(引導)할 수 있으며, 또 만일(萬一) 먹여주는 남편(男便)에게 불행(不幸)이 있다 하면 나와 그의 두 몸의 생명(生命)을 어찌 보존(保存)할 수 있을까.

그러고 나의 그림은 점점(漸漸) 불충실(不充實)해지고 독서(讀書)는 시간(時間)을 얻지 못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나는 내 자신(自身)을 교양(敎養)하여 사람답고 여성(女性)답게, 그리고 개성적(個性的)으로 살만한 내용(內容)을 준비(準備)하려면 썩 침착(沈着)한 사색(思索)과 공부(工夫)와 실행(實行)을 위(爲)한 허다(許多)한 시간(時間)이 필요(必要)하였었다.

그러나 자식(子息)이 생기고 보면 그러한 여유(餘裕)는 도저(到底)히 있을 것 같지도 않으니 아무리 생각하여도 내게는 군일 같았고 내 개인적(個人的) 발전상(發展上)에는 큰 방해물(妨害物)이 생긴 것 같았다.

이해(理解)와 자유(自由)의 행복(幸福)된 생활(生活)을 두 사람 사이에 하게 되고 다시 얻을 수 없는 사랑의 창조(創造)요, 구체화(具體化)요, 해답(解答)인 줄 알면서도 마음에서 솟아오르는 행복(幸福)과 환락(歡樂)을 느낄 수 없는 것이 어찌나 슬펐는지 몰랐다.

나는 자격(資格) 없는 모(母) 노릇하기에는 너무 양심(良心)이 허락(許諾)지 아니 하였다. 마치 자식(子息)에게 죄악(罪惡)을 짓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인류(人類)에게 대(對)하여 면목(面目)이 없었다.

그렇게 생각다 못하여 필경(畢竟) 타태(墮胎)라도 하여 버리겠다고 생각하여 보았다. 법률(法律) 상(上) 도덕(道德)상(上)으로 나를 죄인(罪人)이라 하여 형벌(刑罰)하면 받을지라도 조금도 뉘우칠 것이 없을 듯 싶었다.

그러나 이것은 실제(實際)로 당(當)하였을 때 순간적(瞬間的)으로 일어나는 추악감(醜惡感)에 불과(不過)하였고, 이개(二個)의 인격(人格)이 결합(結合)하였고, 사랑이 융화(融化)한 자타(自他)의 존재(存在)를 망각(忘却)할 만치 영육(靈肉)이 절대(絶對)의 고경(苦境) 전(前)에 입(立)하였을 때 능(能)히 추측(推測)할 수 없는 망상(妄想)에 불과(不過)하였었다고 나는 정신(精神)을 수습(收拾)하는 동시(同時)에 깨달았다.

이는 다만 내 자신(自身)을 모멸(侮蔑)하고 양인(兩人)에게 모욕(侮辱)을 줄 뿐인 것을 진실(眞實)로 알고 통곡(痛哭)하였다. 좀더 해부적(解剖的)으로 말하자면 나는 항상(恒常) 개인(個人)으로 살아가는 부인(婦人)도, 중대(重大)한 사명(使命)이 있는 동시(同時)에 종족(種族)으로 사는 부인(婦人)의 능력(能力)도 위대(偉大)하다는 이지(理智)와 이상(理想)을 가졌었으며 그리하여 성적(性的) 방면(方面)으로 먼저 부인(婦人)을 해방(解放)함으로 말미암아 부인(婦人)의 개성(個性)이 충분(充分)히 발현(發現)될 수 있고 또 그것은 ‘진(眞)’이라고 말하던 것과는 너무 모순(矛盾)이 크고 충돌(衝突)이 심(甚)하였다.

내게 조금 자존심(自尊心)이 생기자 불안공축(不安恐縮)의 마음이 불일 듯 솟아올라 왔다. 동시(同時)에 절대(絶對)로 요구(要求)하는 조건(條件)이 생겼다.

이왕(已往) 자식(子息)을 날 지경이면 보통(普通)이나 혹(或) 보통(普通) 이하(以下)의 것을 낳고는 싶지 않았다. 보통(普通) 이상(以上)의 미안(美顔)에 마력(魔力)을 가진 표정(表情)이며 얻을 수 없는 천재(天才)이며 특출(特出)한 개성(個性)으로 맹진(猛進)할만한 용감(勇敢)을 가진 소질(素質)이 구비(具備)한 자(者)를 낳고 싶었다.

그러면 아들이냐? 딸이냐?

무엇이든지 상관(相關)없다.

그러나 남자(男子)는 제 소위(所謂) 완성자(完成者)가 많다하니 딸을 하나 낳아서 내가 못 해 본 것을 한껏 시켜보고 싶었었다. 한 여자라도 완성자(完成者)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그러하면 만일(萬一) 딸이 나오려거든 좀 더 구비(具備)하여가지고 나오너라고 심축(心祝)하였다. 그러나 낙심(落心)이다, 실망(失望)이다.

내 뱃속에 있는 것은 보통(普通)은 고사(姑捨)하고 불구자(不具者)이다, 병신(病身)이다. 뱃속에서 뛰노는 것은 지랄을 하는 것이요, 낳으면 미친 짓하고 돌아다질 것이 안전(眼前)에 암암하다.

이것은 전(全)혀 내 죄(罪)이다.

포태(胞胎) 중에는 웃고 기뻐하여야 한다는데 항상(恒常) 울고 슬퍼했으며 안심(安心)하고 숙면(熟眠)하여야 좋다는데 부절(不絶)히 번민(煩悶) 중(中)에서 불면증(不眠症)으로 지냈고, 자양품(滋養品)을 많이 먹어야 한다는데 식욕(食慾)이 부진(不進)하였었다.

그렇게 갖은 못된 태교(胎敎)만 모조리 했으니 어찌 감(敢)히 완전(完全)한 아해(兒孩)가 나오기를 바랄 수 있었으리요.

눈이 비뚜로 박혔든지 입이 세로 찢어졌든지 허리가 꼬부라졌든지 그러한 악마(惡魔) 같은 것이 나와서

「이것이 네 죄(罪) 값이다.」

라고 할 것 싶었다.

몸소름이 쪽 끼치고 사지(四肢)가 벌벌 떨렸다.

이러한 생각이 깊어갈수록 정신(精神)이 아뜩하고 눈앞이 캄캄하여왔다.

아아, 내 몸은 사시나무 떨 듯 떨렸다.

그러나 세월(歲月)은 속(速)하기도 하다.

한번도 진심(眞心)으로 희망(希望)과 기쁨을 느껴보지 못한 동안에 어느덧 만삭(滿朔)이 당도(當到)하였다. 참 천만(千萬) 의외(意外)에 기이(奇異)한 일이 있었다. 이 사실(事實)만은 꼭 정(正)말로 알아주기를 바란다.

그 이듬해 사월(四月) 초순(初旬)경(頃)이었다.

남편(男便)은 외출(外出)하여 없고 이간(二間) 방(房) 중간(中間)벽(壁)에 늘어져있는 전등(電燈)이 전(前)에 없이 밝게 비추인 온 세상(世上)이 잠든 듯한 고요한 밤 십이 시(十二時)경(頃)이었다.

나는 분만(分娩) 후(後) 영아(嬰兒)에게 입힐 옷을 백설(白雪) 같은 ‘가-제’로 두어 벌 말아서 꾸미고 있었다. 대중을 할 수가 없어서 어림껏 조그마한 인형(人形)에게 입힐만하게 팔 들어갈 데 다리 들어갈 데를 만들어서 방바닥에다 펴놓고 보았다.

나는 부지불각(不知不覺) 중(中)에 문득 기쁜 생각이 넘쳐 올랐다.

일종(一種)의 탐욕성(貪慾性)인 불가사의(不可思議)의 희망(希望)과 기대(期待)와 환희(歡喜)의 념(念)을 느끼게 되었다. 어서 속(速)히 나와 이것을 입혀 보았으면, 얼마나 고울까 사랑스러울까.

곧 궁금증(症)이 나서 못 견디겠다.

진정(眞情)으로 그 얼굴이 보고 싶었다.

그렇게 만든 옷을 개켰다 폈다 놓았다 만졌다하고 기뻐 웃고 있었다.

남편(男便)이 돌아와 내 안색(顔色)을 보고 그는 같이 좋아하고 기뻐하였다.

양인(兩人) 간(間)에는 무언(無言) 중(中)에 웃음이 밤새도록 계속(繼續)되었다.

이는 결(決)코 내가 일부러 기뻐하였던 것이 아니라, 순간적(瞬間的) 감정(感情)이었다. 이것만은 역설(力說)을 가(加)하지 않고 자연성(自然性) 그대로 오래 두고 싶다.

임신(妊娠) 중(中) 한 번도 없었고 분만(分娩) 후(後) 한 번도 없는 경험(經驗)이었다.

그달 이십구일(二十九日) 오전(午前) 이 시(二時) 이십오 분(二十五分)이었다.

내가 지금(只今)까지 가진 병(病) 앓아보던 아픔에 비(比)할 수 없는 고통(苦痛)을 근(近) 십여(十餘) 시간(時間) 겪어 거진 기진(氣盡)하였을 때에 이 세상(世上)이 무슨 그다지 볼 만한 곳인지 구태여 기어이 나와서 「으앙으앙」 울고 있었다.

그때 나는 몇 번이나 울었는지 산파(産婆)가 어떻게 하며 간호부(看護婦)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도무지 모르고 시원한 것보다 아팠던 것보다 무슨 까닭 없이 대성통곡(大聲痛哭)하였다. 다만 설을 뿐이고 원통(怨痛)할 따름이었다.

그 후는 병원(病院) 침상(寢牀)에서 ‘스케치북’에 이렇게 쓴 것이 있다.

아프다, 아파
참 아파요 진정(眞情)
과연(果然) 아프다
푹푹 쑤신다 할까
시리 시리다 할까
딱딱 결린다 할까
쿡쿡 찌른다 할까
따끔따끔 꼬집는다 할까
찌르르 저리다 할까
깜짝깜짝 따갑다 할까
이렇게 아프다나 할까
아니라 이도 아니라
박박 뼈를 긁는 듯
짝짝 살을 찢는 듯
바짝바짝 힘줄을 옥이는 듯
쪽쪽 핏줄을 뽑아내는 듯
살금살금 살점을 저미는 듯
오장(五臟)이 뒤집혀 쏟아지는 듯
독기로 머리를 바수는 듯
이렇게 아프다나 할까
아니라 이도 또한 아니라
조그맣고 샛노란 하늘은 흔들리고
높은 하늘 낮아지며
낮은 땅 높아진다
벽(壁)도 없이 문(門)도 없이
통(通)하여 광야(廣野) 되고
그 안에 있는 물건(物件)
쌩쌩 돌다가는
어쩌면 있는 듯
어쩌면 없는 듯
어느덧 맴돌다가
갖은 빛 찬란(燦爛)하게
그리도 곱던 색(色)에
매몰히 씌워주는
검은 장막(帳幕) 가리우니

이 내 작은 몸
공중(空中)에 떠있는 듯
구석에 끼워 있는 듯
침상(寢床) 아래 눌려 있는 듯
오그라졌다 펴졌다
땀 흘렸다 으스스 추웠다
그리도 괴롭던가!
그다지도 아프던가!
차라리
펄펄 뛰게 아프거나
쾅쾅 부딪게 아프거나
끔뻑끔뻑 기절(氣絶)하듯 아프거나
했으면
무어라 그다지
십 분(十分) 간(間)에 한 번
오 분(五分) 간(間)에 한 번
금세 목숨이 끊을 듯이나
그렇게 이상히 아프다가
흐리던 날 햇빛 나듯
반짝 정신(精神) 상쾌(爽快)하며
언제나 아팠던 듯
무어라 그렇게
갖은 양념 가(加)하는지
맛있게도 아파라
어머님 나 죽겠소,
여보 그대 나 살려주오
내 심(甚)히 애걸(哀乞)하니
옆에 팔짱 끼고 섰던 부군(夫君)
「참으시오」 하는 말에
이놈아 듣기 싫다
내 악 쓰고 통곡(痛哭)하니
이 내 몸 어이타가
이다지 되었던고


(일구이일 년(一九二一 年) 오월(五月) 팔일(八日) ‘산욕(産褥)’ 중(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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