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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width:80px; text-align:center;" |'''이름''' || [[박경리]] (본명: 박금이) | | style="width:80px; text-align:center;" |'''이름''' || [[박경리]] (본명: 박금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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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 ==소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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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6년 10월 28일(음력) [[경상남도 통영]]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박금이. 1945년 [[진주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해 [[김행도]]씨와 결혼해서 그 해에 딸 [[김영주]](현 토지문화재단이사장)를 낳았다. 이후 1950년 [[수도여자사범대학]](현 [[세종대학교]]) 가정과를 졸업하고 황해도 연안여자중학교 교사로 재직했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남편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죽고, 연이어 세 살 난 아들이 사망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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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편과 사별한 후 창작활동에 전념했고, 1955년에 [[김동리]]의 추천을 받아 단편 「[[계산]](計算)」과 1956년 단편 「[[흑흑백백]](黑黑白白)」을 [현대문학]에 발표함으로써 문단에 나왔다. 1957년부터 본격적으로 문학활동을 시작하여 단편 「[[전도]](剪刀)」 「[[불신시대]](不信時代)」 「[[벽지]](僻地)」 등을 발표하고, 『[[표류도]]』(1959), 『[[김약국의 딸들]]』(1962)을 비롯하여 『[[파시]]』(1964), 『[[시장과 전장]]』(1964) 등 사회와 현실에 대한 비판성이 강한 문제작을 잇달아 발표하여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 특히 1969년 9월부터 대하소설 『[[토지]]』를 연재하기 시작하여 4만 여장 분량의 작품으로 26년 만인 1994년에 완성하였다. 5부로 완성된 대하소설 『[[토지]]』는 영어·일본어·프랑스어로 번역되며 호평을 받았다. 1984년엔 『한국일보』 창간 30주년 기념 ‘한국전후문학 30년 최대 문제작’ 선정에서 [[선우휘]]의 『[[불꽃]]』, [[황석영]]의 『[[장길산]]』과 함께 『[[토지]]』가 선정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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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0년부터 강원도 원주시 단구동 742번지(지금의 [[박경리문학공원]])에 정착했고, 1991년부터 2001년까지 연세대학교 원주캠퍼스에서 강의했다. | ||
문학뿐 아니라 환경과 생태 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가져, 1999년 원주 오봉산 기슭에 [[토지문화관]]을 세우고, 문학과 환경문제를 다루는 계간지 「[[숨소리]]」를 창간(2003)하고, 신문과 잡지 등에 기고한 글로 엮은 환경 에세이집 『생명의 아픔』(2004)도 출간하는 등 사회와 인간을 향한 애정과 관심을 놓지 않았다. 2008년 5월5일 향년82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 한국현대문학의 영원한 고향으로 남았다. 시인 [[김지하]]가 사위이다. | 문학뿐 아니라 환경과 생태 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가져, 1999년 원주 오봉산 기슭에 [[토지문화관]]을 세우고, 문학과 환경문제를 다루는 계간지 「[[숨소리]]」를 창간(2003)하고, 신문과 잡지 등에 기고한 글로 엮은 환경 에세이집 『생명의 아픔』(2004)도 출간하는 등 사회와 인간을 향한 애정과 관심을 놓지 않았다. 2008년 5월5일 향년82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 한국현대문학의 영원한 고향으로 남았다. 시인 [[김지하]]가 사위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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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연안여자중학교]] 교사|| | |1950년||[[연안여자중학교]] 교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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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5년||평화신문 서울신문 기자|| | + | |1955년||평화신문, 서울신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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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96년 문학의해 조직위원회 위원|| | |1995년||96년 문학의해 조직위원회 위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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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계간지 「[[숨소리]]」창간|| | |2003년||계간지 「[[숨소리]]」창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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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유네스코 서울협회 올해의 인물 | 1994년 유네스코 서울협회 올해의 인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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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4년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올해의 여성상 | ||
1996년 제6회 [[호암상]](예술) | 1996년 제6회 [[호암상]](예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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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 ==작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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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동리의 추천을 받아 1955년 단편소설「[[계산]]」을 발표하고 이후 단편소설을 주로 쓰다가, 1958년 첫 장편 「[[연가(애가)]]」를 발표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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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0년 이후로는 장편소설을 주로 쓰기 시작했으며 대다수 연재물이다. 전작 장편으로 내놓은 [김약국의 딸들]과 [시장과 전장]을 빼면 이 작품들은 거의 다 [여원]이나 [주부생활] 같은 여성지나 일간지의 연재물로 발표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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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연보 | |+ 작품연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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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 3||[[전도]]||현대문학|| | |1957. 3||[[전도]]||현대문학||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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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7. 8||[[불신시대]]||현대문학|| | + | |1957. 8||[[불신시대]]||현대문학||현대문학 신인상 수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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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 10||[[반딧불]]||신태양|| | |1957. 10||[[반딧불]]||신태양||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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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호수]]||숙명여고 학보|| | |1957||[[호수]]||숙명여고 학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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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8||[[연가]]||민주신보|| | + | |1958||[[연가(애가)]]||민주신보||첫 장편소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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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 3||[[벽지]]||현대문학|| | |1958. 3||[[벽지]]||현대문학||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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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새벽의 합창]]||중앙여고 학보|| | |1959||[[새벽의 합창]]||중앙여고 학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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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9. 2~11||[[표류도]]||현대문학||영화(1960) | + | |1959. 2~11||[[표류도]]||현대문학||[[내성문학상]] 수상/영화(19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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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 10||[[비는 내린다]]||여원|| | |1959. 10||[[비는 내린다]]||여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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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 12||[[풍경 B]]||사상계|| | |1964. 12||[[풍경 B]]||사상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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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4||[[시장과 전장]]||현암사|| | + | |1964||[[시장과 전장]]||현암사||[[한국여류문학상]] 수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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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도선장]]||민주신보|| | |1965||[[도선장]]||민주신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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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신교수의 부인]]||조선일보|| | |1967||[[신교수의 부인]]||조선일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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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7. 5||[[옛날 이야기]]||신동아 33 || | + | |1967. 5||[[옛날 이야기]]||신동아 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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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 4||우화||월간중앙|| | |1968. 4||우화||월간중앙||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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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죄인들의 숙제]]||경향신문|| | |1969||[[죄인들의 숙제]]||경향신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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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9. 9~1972. 9||[[토지]] 1부||현대문학||영화(1974) | + | |1969. 9~1972. 9||[[토지]] 1부||현대문학||[[월탄문학상]] 수상/영화(19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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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창]]||조선일보|| | |1970||[[창]]||조선일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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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4 ~6||[[나비야 청산가자]]||현대문학||장편으로 나왔으나 미완 | |2003. 4 ~6||[[나비야 청산가자]]||현대문학||장편으로 나왔으나 미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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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 4||까치설, 옛날의 그집, 어머니||현대문학|| | + | |2008. 4||까치설, 옛날의 그집, 어머니||현대문학||유고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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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출판물 | ||
+ | |+ style="caption-side:bottom; text-align:left| | ||
+ | !발표시기||작품명||출판사||종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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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6||[[Q씨에게]]||현암사||수필집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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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6||[[기다리는 불안]]||현암사||수필집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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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6||박경리 단편선||서문당||작품집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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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6||[[영원한 반려]]||영서각||작품집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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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5||[[원주통신]]||지식산업사||수필집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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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8||[[못 떠나는 배]]||지식산업사||시집 | ||
+ | |- | ||
+ | |1990||[[만리장성의 나라]]||동광출판사||중국 기행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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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0||[[도시의 고양이들]]||동광출판사||시집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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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5||[[문학을 지망하는 젊은이들에게]]||현대문학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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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우리들의 시간]]||나남|| | ||
+ | |- | ||
+ | |2003||[[은하수]]||이룸||장편동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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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생명의 아픔]]||이룸||에세이집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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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파일:표류도.jpg|[[표류도]](1960) | |
− | + | 파일:김약국의 딸들.jpg|[[김약국의 딸들]](1963) | |
− | + | 파일:김약국의 딸들.jpg|[[내 마음은 호수]](1964) 다시넣기 | |
− | + | 파일:가을에 온 여인.jpg|[[가을에 온 여인]](1965) | |
− | + | 파일:노을진 들녘.jpg|[[노을진 들녘]](1965) | |
− | + | 파일:성녀와 마녀.jpg|[[성녀와 마녀]](1969) | |
− | + | 파일:토지.jpg|[[토지]](1974) | |
− | + | </gallery> | |
KBS에서 사극으로도 제작되어 인기를 얻은 바 있다. 제13회 대종상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김지미), 녹음상(한양), 여우조연상(도금봉) 수상, 제13회 파나마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김지미) 수상. | KBS에서 사극으로도 제작되어 인기를 얻은 바 있다. 제13회 대종상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김지미), 녹음상(한양), 여우조연상(도금봉) 수상, 제13회 파나마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김지미) 수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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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 문학관]]=== | ===[[박경리 문학관]]=== | ||
위치: 경남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길 79 | 위치: 경남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길 7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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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의 배경인 [[경상남도 하동]]에 위치하고 있다. | [[토지]]의 배경인 [[경상남도 하동]]에 위치하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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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가 1980년부터 창작활동을 하던 곳이다. | 박경리가 1980년부터 창작활동을 하던 곳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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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참고문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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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이도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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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 25일 (목) 23:35 판
프로필 | |
---|---|
이름 | 박경리 (본명: 박금이) |
출생 | 1929년 10월 28일 (음력) |
사망 | 2008년 5월 5일 (향년 82세) |
출생지 | 경상남도 통영 |
직업 | 소설가 |
목차
소개
생애
1926년 10월 28일(음력) 경상남도 통영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박금이. 1945년 진주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해 김행도씨와 결혼해서 그 해에 딸 김영주(현 토지문화재단이사장)를 낳았다. 이후 1950년 수도여자사범대학(현 세종대학교) 가정과를 졸업하고 황해도 연안여자중학교 교사로 재직했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남편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죽고, 연이어 세 살 난 아들이 사망했다.
남편과 사별한 후 창작활동에 전념했고, 1955년에 김동리의 추천을 받아 단편 「계산(計算)」과 1956년 단편 「흑흑백백(黑黑白白)」을 [현대문학]에 발표함으로써 문단에 나왔다. 1957년부터 본격적으로 문학활동을 시작하여 단편 「전도(剪刀)」 「불신시대(不信時代)」 「벽지(僻地)」 등을 발표하고, 『표류도』(1959), 『김약국의 딸들』(1962)을 비롯하여 『파시』(1964), 『시장과 전장』(1964) 등 사회와 현실에 대한 비판성이 강한 문제작을 잇달아 발표하여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 특히 1969년 9월부터 대하소설 『토지』를 연재하기 시작하여 4만 여장 분량의 작품으로 26년 만인 1994년에 완성하였다. 5부로 완성된 대하소설 『토지』는 영어·일본어·프랑스어로 번역되며 호평을 받았다. 1984년엔 『한국일보』 창간 30주년 기념 ‘한국전후문학 30년 최대 문제작’ 선정에서 선우휘의 『불꽃』, 황석영의 『장길산』과 함께 『토지』가 선정되었다.
1980년부터 강원도 원주시 단구동 742번지(지금의 박경리문학공원)에 정착했고, 1991년부터 2001년까지 연세대학교 원주캠퍼스에서 강의했다. 문학뿐 아니라 환경과 생태 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가져, 1999년 원주 오봉산 기슭에 토지문화관을 세우고, 문학과 환경문제를 다루는 계간지 「숨소리」를 창간(2003)하고, 신문과 잡지 등에 기고한 글로 엮은 환경 에세이집 『생명의 아픔』(2004)도 출간하는 등 사회와 인간을 향한 애정과 관심을 놓지 않았다. 2008년 5월5일 향년82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 한국현대문학의 영원한 고향으로 남았다. 시인 김지하가 사위이다.
약력
연도 | 약력 | 비고 |
---|---|---|
1946년 | 진주여자고등학교 졸업 | |
1950년 | 수도여자사범대학 가정과 졸업 | |
1950년 | 연안여자중학교 교사 | |
1955년 | 평화신문, 서울신문 기자 | |
1994년 | 이화여자대학교 문학 명예박사 | 토지 완간 계기 |
1995년 | 96년 문학의해 조직위원회 위원 | |
1995년 | 연세대학교 객원교수 | |
1996년 | 토지문화재단 창립 이사장 | |
1996년 | 제1회 한중청년학술상위원회 위원 | |
1997년 | 연세대학교 석좌교수 | |
1999년 | 대통령자문 새천년준비위원회 위원 | |
1999년 | 원주 오봉산 토지문화관 설립 | |
2003년 | 계간지 「숨소리」창간 |
수상
1957년 제3회 현대문학 신인상
1959년 제3회 내성문학상
1965년 제2회 한국여류문학상
1972년 제7회 월탄문학상
1991년 제4회 인촌상
1992년 보관문화훈장
1994년 유네스코 서울협회 올해의 인물
1994년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올해의 여성상
1996년 제6회 호암상(예술)
1996년 칠레정부 선정 가브리엘라 미스트랄 기념메달
1999년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주최, [20세기를 빛낸 예술인(문학)] 선정
2008년 금관문화훈장
작품
김동리의 추천을 받아 1955년 단편소설「계산」을 발표하고 이후 단편소설을 주로 쓰다가, 1958년 첫 장편 「연가(애가)」를 발표했다.
1960년 이후로는 장편소설을 주로 쓰기 시작했으며 대다수 연재물이다. 전작 장편으로 내놓은 [김약국의 딸들]과 [시장과 전장]을 빼면 이 작품들은 거의 다 [여원]이나 [주부생활] 같은 여성지나 일간지의 연재물로 발표된다.
발표시기 | 작품명 | 발표지 | 비고 |
---|---|---|---|
1955. 8 | 계산 | 현대문학 | |
1956. 8 | 흑흑백백 | 현대문학 | |
1956. 11 | 군식구 | 현대문학 | |
1957. 3 | 전도 | 현대문학 | |
1957. 8 | 불신시대 | 현대문학 | 현대문학 신인상 수상 |
1957. 10 | 반딧불 | 신태양 | |
1957. 10 | 영주와 고양이 | 현대문학 | |
1957 | 호수 | 숙명여고 학보 | |
1958 | 연가(애가) | 민주신보 | 첫 장편소설 |
1958. 3 | 벽지 | 현대문학 | |
1958. 5 | 도표없는 길 | 여원 | |
1958. 6 | 훈향 | 한국평론 | |
1958. 6~7 | 암흑시대 | 현대문학 | |
1959 | 돌아온 아이 | 새벗 | |
1959 | 은하수 | 새벗 | |
1959 | 재귀열 | 주부생활 | |
1959 | 새벽의 합창 | 중앙여고 학보 | |
1959. 2~11 | 표류도 | 현대문학 | 내성문학상 수상/영화(1960) |
1959. 10 | 비는 내린다 | 여원 | |
1959. 1 | 어느 오후의 결정 | 자유공론 | |
1959. 12 | 해동여관의 미나 | 사상계 | |
1960. 4~1961. 3 | 성녀와 마녀 | 여원 | 영화(1969), 드라마(1993) |
1961. 2 | 귀족 | 현대문학 | |
1961 | 은하 | 전남일보 | |
1961 | 푸른운하 | 국제신보 | |
1961 | 내 마음은 호수 | 조선일보 | 영화(1964,1991) |
1961. 10~1962. 6 | 노을진 들녘 | 경향신문 | 영화(1965) |
1962 | 암흑의 사자 | 가정생활 | |
1962. 8~1963. 5 | 가을에 온 여인 | 한국일보 | 영화(1965) |
1962. 11~1963. 4 | 재혼의 조건 | 여상 | |
1962 | 그 형제의 연인들 | 대구일보 | |
1962 | 김약국의 딸들 | 을유문화사 | 영화(1963), 드라마(2005) |
1963 | 어느 생애 | 신작 15인집 | |
1964. 6~1965. 4 | 녹지대 | 부산일보 | |
1964. 7~1965. 5 | 파시 | 동아일보 | |
1964. 12 | 풍경 B | 사상계 | |
1964 | 시장과 전장 | 현암사 | 한국여류문학상 수상 |
1965 | 도선장 | 민주신보 | |
1965. 1 | 풍경 A | 현대문학 | |
1965. 4 | 흑백콤비의 구두 | 신동아 | |
1965. 4~1966. 3 | 타인들 | 주부생활 | |
1965. 8 | 외곽지대 | 현대문학 | |
1965. 11 | 하루 | 사상계 | |
1966. 3~12 | 환상의 시기 | 한국문학 | |
1966. 4 | 집 | 한국문학 | |
1966. 7 | 인간 | 문학 | |
1966. 12 | 평면도 | 현대문학 | |
1967 | 눈먼 실솔 | 카톨릭 시보 | |
1967 | 겨울비 | 여성동아 | |
1967 | 신교수의 부인 | 조선일보 | |
1967. 5 | 옛날 이야기 | 신동아 33 | |
1968. 4 | 우화 | 월간중앙 | |
1968. 11 | 약으로도 못 고치는 병 | 월간문학 | |
1969 | 죄인들의 숙제 | 경향신문 | |
1969. 9~1972. 9 | 토지 1부 | 현대문학 | 월탄문학상 수상/영화(1974) |
1970 | 창 | 조선일보 | |
1970. 6 | 밀고자 | 세대 | |
1972. 10~1975. 10 | 토지 2부 | 문학사상 | |
1974. 2. 18~12. 31 | 단층 | 동아일보 | |
1977. 1~1977. 5 | 토지 3부 | 독서생활 | |
1977. 6~1978. 1 | 토지 3부 | 한국문학 | |
1983. 7~1983. 12 | 토지 4부 | 정경문화 | 드라마(1987) |
1987. 8~1988. 5 | 토지 4부 | 월간경향 | |
1992. 9. 1~1994. 8. 30 | 토지 5부 | 문화일보 | 드라마(2004) |
2003. 4 ~6 | 나비야 청산가자 | 현대문학 | 장편으로 나왔으나 미완 |
2008. 4 | 까치설, 옛날의 그집, 어머니 | 현대문학 | 유고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
발표시기 | 작품명 | 출판사 | 종류 |
---|---|---|---|
1966 | Q씨에게 | 현암사 | 수필집 |
1966 | 기다리는 불안 | 현암사 | 수필집 |
1976 | 박경리 단편선 | 서문당 | 작품집 |
1976 | 영원한 반려 | 영서각 | 작품집 |
1985 | 원주통신 | 지식산업사 | 수필집 |
1988 | 못 떠나는 배 | 지식산업사 | 시집 |
1990 | 만리장성의 나라 | 동광출판사 | 중국 기행문 |
1990 | 도시의 고양이들 | 동광출판사 | 시집 |
1995 | 문학을 지망하는 젊은이들에게 | 현대문학사 | |
2000 | 우리들의 시간 | 나남 | |
2003 | 은하수 | 이룸 | 장편동화 |
2004 | 생명의 아픔 | 이룸 | 에세이집 |
관련 콘텐츠
영화
KBS에서 사극으로도 제작되어 인기를 얻은 바 있다. 제13회 대종상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김지미), 녹음상(한양), 여우조연상(도금봉) 수상, 제13회 파나마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김지미) 수상.
드라마
- 토지(1987)
각본 김원석
- 감독 이종한(2004)
- 성녀와 마녀(1993)
감독 강병문, 백호민
- 김약국의 딸들(2005)
감독 백호민
그 외
관련 장소
토지문화관
위치: 강원 원주시 흥업면 매지회촌길 79
박경리가 1996년 토지문화재단을 창립한 후 1999년 설립한 곳이다. 박경리가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작가가 각별한 공을 들인 토지문화관이 오봉산 자락에 세워진지 올해로 5년째. 그의 말처럼 ‘현실’과 맞닥뜨려야 했던 지난 날이 쉽지만은 않았다.
“속상한 적이 셀 수 없이 많았지. 산에 올라가서 산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혼자 가슴앓이도 하고 그랬어요. 내가 이걸 왜 시작했을까 하고 예전에는 탄식했는데, 이제는 물흐르는 것처럼 마음을 맡겨 둔다고. 문인들을 돕고 지원하는 일은 누군가는 해야 하니까.”
토지문화관은 100일간 문인에게 창작 및 집필 공간을 무료로 제공한다. 대가를 바라지 않는 작가의 ‘봉사정신’이 문화관의 튼튼한 기둥이 된다.
“문화부의 지원을 지난 2년간 받았는데, 올해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지원해주지 않아도 이 일은 계속해 나갈 생각이예요. 실제로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으니까요.”
‘능동적인 생명을 생명으로 있게 하기 위하여 작은 불씨, 작은 씨앗 하나가 되고자 하는’(토지문화재단 ‘설립의 뜻’ 중) 작가의 마음이 아름답다.
박경리 문학관
위치: 경남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길 79
박경리 기념관
위치: 경남 통영시 산양읍 산양중앙로 173 박경리기념관
박경리 문학공원
위치: 강원 원주시 토지길 1
박경리가 1980년부터 창작활동을 하던 곳이다.
평론
RDF 및 온톨로지
각주
참고문헌
작성자
작성자: 이도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