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문단"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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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문단》은 10여년에 걸쳐 통권 26호를 낼 만큼, 당시로서는 최장수한 [[문예지]]이다. 그 동안 발행자가 세 번이나 바뀌었으니, 이를 대체로 3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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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문단』은 10여년에 걸쳐 통권 26호를 낼 만큼, 당시로서는 최장수한 [[문예지]]이다. 그 동안 발행자가 세 번이나 바뀌었으니, 이를 대체로 3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기는 [[방인근]]이 발행한 1924년 10월 창간호부터 1926년 6월호까지 통권 17호, 2기는 [[남진우]](南進祐)가 발행한 1927년 1월호부터 그해 3월호까지 통권 3호, 3기는 [[이성로]](李城路 : 학인(學仁))가 발행한 1935년 2월호부터 1936년 1월호까지 통권 6호로, 사이가 많이 뜬 것은 그만큼 곡절이 많았음을 말해 준다. 그렇게 하여 통권 26호이다.
 
1기는 [[방인근]]이 발행한 1924년 10월 창간호부터 1926년 6월호까지 통권 17호, 2기는 [[남진우]](南進祐)가 발행한 1927년 1월호부터 그해 3월호까지 통권 3호, 3기는 [[이성로]](李城路 : 학인(學仁))가 발행한 1935년 2월호부터 1936년 1월호까지 통권 6호로, 사이가 많이 뜬 것은 그만큼 곡절이 많았음을 말해 준다. 그렇게 하여 통권 26호이다.
  
창간호는 A5판 96면, 값 30전, 발행부수는 1천5백부였는데, 1주일이 되기 전에 매진되어 다시 1천5백부를 더 찍어 총 3천부가 매진되었다고 하니, 독자들의 호응이 대단했던 것이다. 춘원은 그때의 상황을 제2호 〈편집후기〉에서, “창간호를 1,000부를 박을까, 1,500부를 박을까 하고 동인끼리 퍽 주저하다가 힘껏 1,500부를 박았다. 그랬던 것이 발행 후 1주일이 못하여 다 팔리고, 재판을 하지 아니치 못하게 될 때에, 우리는 우리의 조그마한 정성이 아우러진 듯하여 감격을 이기지 못하였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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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호는 A5판 96면, 값 30전, 발행부수는 1천5백부였는데, 1주일이 되기 전에 매진되어 다시 1천5백부를 더 찍어 총 3천부가 매진되었다고 하니, 독자들의 호응이 대단했던 것이다. [[춘원]]은 그때의 상황을 제2호 〈편집후기〉에서, “창간호를 1,000부를 박을까, 1,500부를 박을까 하고 동인끼리 퍽 주저하다가 힘껏 1,500부를 박았다. 그랬던 것이 발행 후 1주일이 못하여 다 팔리고, 재판을 하지 아니치 못하게 될 때에, 우리는 우리의 조그마한 정성이 아우러진 듯하여 감격을 이기지 못하였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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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6월 9일 (목) 21:55 판




개요


내용


특징

출처 및 참고문헌

국립 중앙 도서관, 조선문단

한국 민족 문화대백과, 조선문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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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및 기여자

안민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