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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맹퇴치운동을 그대로 풀이하면 글을 읽고 쓰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글을 깨우치는 행위를 통틀어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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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천 만 국민 중 80∼90%가 문맹자였던 1920년대, 1928년 3월 16일자 「동아일보」에는 ''“어찌하면 우리는 하루 바삐 이 무식의 지옥에서 벗어날까. 어찌하면 이 글장님의 눈을 한시 바삐 띄어볼까…….”''라는 기사를 통해 ‘글장님 없애기(문맹퇴치) 운동’을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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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시대 때 진행되었던 문맹퇴치운동은 주로 서울의 학생들과 지식인, 문화 단체, 동경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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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부터 1934년까지 「동아일보」는 ‘한글공부’ ‘한글맞춤법통일안’ ‘신철자편람’ 등의 한글 교재 210만 부를 배포하며 총 10만여 명에게 한글을 강습했고, 문맹타파가를 보급했다. 1931년 설립된 ‘조선어학회’도 우리 말 교재를 만들어 보급하고 조선어강습회를 열며 문맹퇴치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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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의 ‘문자보급운동’은 1929년 여름부터 1934년까지 실시했으나 민족 교육운동으로 확대되어가자 1935년 일제가 금지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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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일에는 안재홍, 방정환, 최현배, 최남선 등 명사 30여 명의 강연회를 열 계획이었으나 조선총독부가 3월 29일 문맹퇴치운동 금지령을 내리며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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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는 ‘만반 준비가 완성된 금일, 문맹퇴치선전 돌연금지’라는 기사로 맞섰지만, 신문은 압수됐고 문맹퇴치운동은 무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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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6월 15일 (수) 00:56 판

정의

문맹퇴치운동.jpg

아는 것이 힘이다!

일제 강점기에 지식인들이 농촌 지역에서 벌인 계몽 운동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읽고 쓰는 법을 가르쳐 깨우치는 일체의 운동

시대적 상황

문맹퇴치운동이 진행되었던 시기는 일제강점기이다.

그 당시 일제는 한국인들이 한글을 모르도록 계속 일본어를 가르쳐 한글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났다. 또한 일제가 식민지 차별 교육정책을 시행했다.

그리고 보통 학교는 수용 능력도 제한 되어 있고 학비도 비쌌다. 그래서 일반 사람들은 교육을 받기 힘들어서 문맹자가 더욱 늘어났다.

내용

문맹퇴치운동2.jpg

문맹퇴치운동을 그대로 풀이하면 글을 읽고 쓰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글을 깨우치는 행위를 통틀어 일컫는다.

2천 만 국민 중 80∼90%가 문맹자였던 1920년대, 1928년 3월 16일자 「동아일보」에는 “어찌하면 우리는 하루 바삐 이 무식의 지옥에서 벗어날까. 어찌하면 이 글장님의 눈을 한시 바삐 띄어볼까…….”라는 기사를 통해 ‘글장님 없애기(문맹퇴치) 운동’을 선언했다.

일제강점기 시대 때 진행되었던 문맹퇴치운동은 주로 서울의 학생들과 지식인, 문화 단체, 동경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1931년부터 1934년까지 「동아일보」는 ‘한글공부’ ‘한글맞춤법통일안’ ‘신철자편람’ 등의 한글 교재 210만 부를 배포하며 총 10만여 명에게 한글을 강습했고, 문맹타파가를 보급했다. 1931년 설립된 ‘조선어학회’도 우리 말 교재를 만들어 보급하고 조선어강습회를 열며 문맹퇴치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조선일보」의 ‘문자보급운동’은 1929년 여름부터 1934년까지 실시했으나 민족 교육운동으로 확대되어가자 1935년 일제가 금지시켰다.

4월 2일에는 안재홍, 방정환, 최현배, 최남선 등 명사 30여 명의 강연회를 열 계획이었으나 조선총독부가 3월 29일 문맹퇴치운동 금지령을 내리며 막았다.

「동아일보」는 ‘만반 준비가 완성된 금일, 문맹퇴치선전 돌연금지’라는 기사로 맞섰지만, 신문은 압수됐고 문맹퇴치운동은 무산됐다.

심화

역사적 의의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