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⑧함인정"의 두 판 사이의 차이

한성대학교 미디어위키
이동: 둘러보기, 검색
1번째 줄: 1번째 줄:
 
[[파일:함인정정.jpg|500px|]]
 
[[파일:함인정정.jpg|500px|]]
 +
 
함인정은 햇볕이 잘 드는 남향에, 넓은 뜰이 전면에 있어 임금이 많이 사용한 곳이다. 이곳에서 임금은 과거에 합격한 인재들을 만나고, 신하들과 중용∙심경과 같은 고전을 읽으며 경연을 자주 나눴다.
 
함인정은 햇볕이 잘 드는 남향에, 넓은 뜰이 전면에 있어 임금이 많이 사용한 곳이다. 이곳에서 임금은 과거에 합격한 인재들을 만나고, 신하들과 중용∙심경과 같은 고전을 읽으며 경연을 자주 나눴다.
 
특히 영조와 정조 때 많이 사용되었다. 지금의 함인정은 사방이 트여있지만 19세기 초 궁궐그림인 동궐도에서는 함인정의 삼면이 막혀 있었다.
 
특히 영조와 정조 때 많이 사용되었다. 지금의 함인정은 사방이 트여있지만 19세기 초 궁궐그림인 동궐도에서는 함인정의 삼면이 막혀 있었다.
 +
  
 
함인정의 함인은 ‘인을 간직한다’라는 뜻이며 함인정 자리에는 1484년 인양전이란 건물이 있었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버렸다. 그 후, 함인정은 1633년에 건립되었고, 1830년에 불타 없어졌다가 1834년에 중건되었다.
 
함인정의 함인은 ‘인을 간직한다’라는 뜻이며 함인정 자리에는 1484년 인양전이란 건물이 있었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버렸다. 그 후, 함인정은 1633년에 건립되었고, 1830년에 불타 없어졌다가 1834년에 중건되었다.

2023년 6월 17일 (토) 13:16 판

함인정정.jpg

함인정은 햇볕이 잘 드는 남향에, 넓은 뜰이 전면에 있어 임금이 많이 사용한 곳이다. 이곳에서 임금은 과거에 합격한 인재들을 만나고, 신하들과 중용∙심경과 같은 고전을 읽으며 경연을 자주 나눴다. 특히 영조와 정조 때 많이 사용되었다. 지금의 함인정은 사방이 트여있지만 19세기 초 궁궐그림인 동궐도에서는 함인정의 삼면이 막혀 있었다.


함인정의 함인은 ‘인을 간직한다’라는 뜻이며 함인정 자리에는 1484년 인양전이란 건물이 있었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버렸다. 그 후, 함인정은 1633년에 건립되었고, 1830년에 불타 없어졌다가 1834년에 중건되었다. 함인정은 국왕이 신하들을 만나고 경연을 하는 곳으로 이용하였으며, 영조가 문·무과에 합격한 사람들을 이곳에서 접견하기도 하였다. 함인정은 건물 사방이 벽체 없이 시원하게 개방된 모습인데, 19세기 궁궐기록화인 <동궐도> 에는 지금과 달리 삼면이 막혀 있다. 함인정 내부의 사면에는 사계절을 노래한 중국 진나라 화가 고개지의 사시라는 시가 걸려있어 푸른 소나무에 둘러싸인 정자에 운치를 더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