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근대소설고"의 두 판 사이의 차이
1번째 줄: | 1번째 줄: | ||
+ | <onlyinclude> | ||
+ | {|class="metadata" style="background:#f2f2f2; width:320px; margin: 5px 5px 5px 5px;" cellspacing="10" align="right" | ||
+ | |- | ||
+ | ! colspan="2" style="background:#3ca9a9; color:#ffffff; font-size:130%; text-align:center;" | '''조선근대소설고''' | ||
+ | |- | ||
+ | | style="width:80px; text-align:center;" |'''작품명''' || 조선근대소설고 | ||
+ | |- | ||
+ | | style="text-align:center;"|'''저자''' || [[김동인]] | ||
+ | |- | ||
+ | | style="text-align:center;"|'''출판년도''' || 1929 | ||
+ | |- | ||
+ | | style="text-align:center;"|'''성격''' || 저서 | ||
+ | |- | ||
+ | |} | ||
+ | </onlyinclude> | ||
+ | |||
+ | ==작품소개== | ||
+ | |||
+ | [[김동인]]이 지은 비평문이다. 1929년 ≪조선일보≫ 7월 28일부터 8월 16일까지 총 15회에 걸쳐 연재되었다. | ||
+ | |||
+ | 실제 횟수는 6회가 두 번, 8회가 두 번으로 17회가 연재된 셈이다. ≪춘원연구 春園硏究≫와 더불어 동인의 문학관을 잘 드러내주는 대표적인 비평문이다. | ||
+ | |||
+ | 전체적으로 크게 ‘귀의 성(鬼―聲)’·‘춘원(春園)’·‘나와 소설’이라는 세 개의 소제목으로 구분되어 있다. | ||
+ | |||
+ | ==내용== | ||
+ | |||
+ | (1)∼(4)까지는 이인직(李人稙), (5)∼(7)까지는 춘원, (8)∼(11)까지는 ≪창조 創造≫의 동인들과 염상섭(廉想涉)·나도향(羅稻香)·현진건(玄鎭健)·전영택(田榮澤)·최서해(崔曙海)에 대하여, 그리고 나머지 부분에서는 자신의 작품 생활과 심경고백을 싣고 있다. | ||
+ | 첫 장에서는 이인직의 <귀의 성>을 분석하였는데, 이 작품을 근대소설의 원조로 보면서 구소설의 선악의 양분법을 극복한 최초의 소설이라고 극찬하였다. | ||
+ | ‘춘원’에서는 이광수(李光洙)의 문학을 비평하였는데, 먼저 모든 재래의 것에 반역적 선언을 한 돈키호테, 특히 자유연애 문제의 선각자라는 칭호로 춘원을 올려놓았다. | ||
+ | 그러나 곧 재래의 권선징악과 춘원 문학의 권선징악에는 차이가 없다고 그의 계몽주의적 경향을 비판하였다. | ||
+ | (8)∼(11)까지는 주로 염상섭의 <표본실의 청개구리>에 관하여 과도기의 청년이 받는 불안·공포와 번민을 잘 파악하고 묘사하였음을 들어 러시아적 ‘침울’과 ‘번민’을 보여준 작가로 취급하였다. | ||
+ | 아울러 현진건은 비상한 기교의 천재로서 그의 문예적 특질을 지적하고 나도향의 이른 죽음과 그 재능의 미숙을 말하였으며, 또한 전영택(田榮澤)의 간결한 묘사법과 인도주의 사상을 긍정하였다. | ||
+ | 한편, 최서해의 빈곤문학의 주제에 언급, 독서계에 충격을 준 문제성이 있음을 지적하였으나, 기교의 미숙성도 간단히 논하면서 자신과 ≪창조≫ 동인의 업적을 자찬하고 있다. | ||
+ | ==전문== | ||
+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803290&cid=51280&categoryId=51354 조선근대소설고 전문] | ||
+ | ==비평== | ||
+ | 동인의 서사체 개혁 주장에 대한 재고 - " 조선근대소설고 " 12 ~ 13 회 연재분을 중심으로 -, 조흥, 문창어문학회, 1991 | ||
+ | ==관련항목== | ||
− | + | {|class="wikitable" style="background:white; text-align: center; width:100%;" | |
− | {|class=" | + | !style="width:30%"|항목A!!style="width:30%"|항목B!!style="width:25%"|관계!!style="width:15%"|비고 |
|- | |- | ||
− | + | | [[김동인]] || [[조선근대소설고]] || A는 B를 집필했다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참고문헌== |
− | +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48680&cid=46645&categoryId=46645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
− | +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803290&cid=51280&categoryId=51354 네이버 공유마당] | |
− | + | [[분류:작품]] [[분류: 정민정]] | |
− |
2019년 6월 4일 (화) 09:52 판
조선근대소설고 | |
---|---|
작품명 | 조선근대소설고 |
저자 | 김동인 |
출판년도 | 1929 |
성격 | 저서 |
작품소개
김동인이 지은 비평문이다. 1929년 ≪조선일보≫ 7월 28일부터 8월 16일까지 총 15회에 걸쳐 연재되었다.
실제 횟수는 6회가 두 번, 8회가 두 번으로 17회가 연재된 셈이다. ≪춘원연구 春園硏究≫와 더불어 동인의 문학관을 잘 드러내주는 대표적인 비평문이다.
전체적으로 크게 ‘귀의 성(鬼―聲)’·‘춘원(春園)’·‘나와 소설’이라는 세 개의 소제목으로 구분되어 있다.
내용
(1)∼(4)까지는 이인직(李人稙), (5)∼(7)까지는 춘원, (8)∼(11)까지는 ≪창조 創造≫의 동인들과 염상섭(廉想涉)·나도향(羅稻香)·현진건(玄鎭健)·전영택(田榮澤)·최서해(崔曙海)에 대하여, 그리고 나머지 부분에서는 자신의 작품 생활과 심경고백을 싣고 있다.
첫 장에서는 이인직의 <귀의 성>을 분석하였는데, 이 작품을 근대소설의 원조로 보면서 구소설의 선악의 양분법을 극복한 최초의 소설이라고 극찬하였다.
‘춘원’에서는 이광수(李光洙)의 문학을 비평하였는데, 먼저 모든 재래의 것에 반역적 선언을 한 돈키호테, 특히 자유연애 문제의 선각자라는 칭호로 춘원을 올려놓았다.
그러나 곧 재래의 권선징악과 춘원 문학의 권선징악에는 차이가 없다고 그의 계몽주의적 경향을 비판하였다.
(8)∼(11)까지는 주로 염상섭의 <표본실의 청개구리>에 관하여 과도기의 청년이 받는 불안·공포와 번민을 잘 파악하고 묘사하였음을 들어 러시아적 ‘침울’과 ‘번민’을 보여준 작가로 취급하였다.
아울러 현진건은 비상한 기교의 천재로서 그의 문예적 특질을 지적하고 나도향의 이른 죽음과 그 재능의 미숙을 말하였으며, 또한 전영택(田榮澤)의 간결한 묘사법과 인도주의 사상을 긍정하였다.
한편, 최서해의 빈곤문학의 주제에 언급, 독서계에 충격을 준 문제성이 있음을 지적하였으나, 기교의 미숙성도 간단히 논하면서 자신과 ≪창조≫ 동인의 업적을 자찬하고 있다.
전문
비평
동인의 서사체 개혁 주장에 대한 재고 - " 조선근대소설고 " 12 ~ 13 회 연재분을 중심으로 -, 조흥, 문창어문학회, 1991
관련항목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김동인 | 조선근대소설고 | A는 B를 집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