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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 27일 (토) 21:59 판
서정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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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서정주 |
출생-사망 | 1915년 5월 18일-2000년 12월 24일 |
출생지 | 전라북도 고창 |
직업 | 시인 |
대표관직 |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동국대학교 종신명예교수 |
특이사항 | 일제 강점기 당시 친일을 하였다. |
생애
서정주는 1915년 5월 18일 전라북도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에서 출생했다. 이후 전라북도 부안에서 성장했으며 서정주의 아버지는 인촌 김성수 집안의 마름이었다. 서정주는 노비의 자식으로 서럽기만 했다고 이야기를 했으며 <자화상>이라는 작품에서 "애비는 종"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이를 부끄럽게 나타낸다.
서정주는 이후 서울로 상경하여 개운사 대원암에서 영호당 박한영 스님 밑에서 수학하고 1936년 경성 중앙불교전문학교를 정퇴한 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벽>이라는 작품이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하게 되었다.
이후에도 잡지<시인부락>을 창간하는 등 다양한 작품활동을 하였으나 일제 강점기 전시 체제 때 다쓰시로 시즈오로 창씨개명을 하고 일제 강점기 말기에는 태평양 전쟁과 카미카제 같은 전쟁범죄들을 찬양하는 시를 쓰며 시와 글을 통해 친일 행위를 하였다.
이후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과 같은 해 공개된 친일 문학인 42인 명단에도 들어 있으며 당시 총 11편의 친일 작품을 낸 것으로 공개되었다. 또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되어 있었다.
해방 후에는 순수 문학을 내세우며 좌익 계열의 문학적 흐름에 반대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서라벌예술대학과 동국대학교 등에서 교수로 활동하면서 후학을 양성하는 데 힘을 쏟았고, 다수의 문학 단체에서도 활발히 활동하였다. 서정주 시인은 한국 문학계에서 독보적인 문학적 명성과 시인으로서의 자질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되는데 친일을 한 행위로 그렇게 평가되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아직도 논쟁이 심하게 이루어 지고 있다.
이후 2000년 12월 24일 86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학력
- 전라북도 부안 줄포보통학교 졸업
- 경성 중앙고등보통학교 수료
- 전라북도 고창고등보통학교 중퇴
- 1936년 경성 중앙불교전문학교 중퇴
작품활동
시집
- <화사집>(1941)
- <귀촉도>(1946)
- <시선>(1956)
- <신라초>(1960)
- <동천>(1968)
- <질마재 신화>(1975)
- <늙은 떠돌이의 시>(1993)
- 번역 시집 <만해한용운한시선역>(예지각,1983)
수상경력
1986년 | 동국문화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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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 5.16 민족상 |
2000년 | 금관문화훈장 |
2000년 | 대한민국 예술원상 |
2000년 | 자유 문학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