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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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문(李寅文, 1745년 ~ 1824년), 조선의 화가.

출생일 1745년(영조 21)
이칭 문욱(文郁), 유춘(有春), 고송유수관도인(古松流水館道人), 자연옹(紫煙翁)
분야 회화
시대 조선
성별

작품

대표 작품으로 <누각아집도>, <강산무진도>, <산수도>, <강촌우색도>, <추림도>, <하경산수도>, <송하담소도> 등이 있다.

평가

도화서의 화원이었으며, 정조의 규장각 초대 자비대령화원으로 착출 되었다. 첨사 벼슬을 지냈다. 그의 그림은 근대 조선화의 구성상의 산만함을 없애고 정연하고 아담한 구도로서 실력을 높이 평가받았다.

활동 사항

산수·포도·영모(翎毛)·도석 인물(道釋人物) 등 다방면에 걸쳐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였다. 당시 화단을 풍미하던 진경산수나 풍속화보다는 전통적인 소재를 많이 다루었다. 특히 송림을 즐겨 그려 이 방면에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였다. 명암이 엇갈리고 몸이 뒤틀린 모습의 소나무와 가늘게 솟아오른 나목(裸木) 그리고 5각형의 바위들을 특징 있게 묘사하였다.

그는 남종화(南宗畵)주 01)와 북종화[北宗畵: 화원이나 직업적인 화가들이 짙은 채색과 꼼꼼한 필치를 써서 사물의 외형 묘사에 주력하여 그린 장식적인 공필(工筆)의 그림] 각체(各體)의 화법을 혼합하여 특유의 화풍을 이룩하였다. 이러한 종합적 성격의 화풍은 심사정(沈師正)·최북(崔北)·김홍도 등의 회화 세계와 상통되는 것으로 당시 화단의 한 조류를 대변하는 것이다.

60세 이전의 그림들은 비교적 섬세한 필치로 단단하고 각이 진 모습의 선묘적 경향(線描的傾向)과 깔끔하고 청정한 분위기를 보였다. 그러나 60세 이후에는 묘사적이기보다는 강하고 대담한 발묵법(潑墨法)주 02) 위주의 표현적인 붓질로 한층 세련되고 격식을 초탈한 그림을 많이 그렸다.

여담

도화서의 화원으로 김홍도(金弘道)와 동갑 화원으로 가깝게 지냈으며, 강세황(姜世晃)·남공철(南公轍)·박제가(朴齊家)·신위(申緯) 등의 문인화가들과도 친교하였다.

오랜 벗 김홍도의 회화인 <김홍도 필 마상청앵도(金弘道 筆 馬上聽鶯圖)>에 시문을 남겨 두 사람의 친분과 교류를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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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현희에 의해 작성된 페이지입니다.(2022.11.03.)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이인문(李寅文)), 위키백과(이인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