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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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유진(2311168) (토론 | 기여)님의 2023년 6월 17일 (토) 22:40 판 (장아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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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민이란?

천민의 정의

신분 제도를 둔 사회에서 가장 낮은 위치에 있었던 계층을 뜻한다.

누가 천민의 삶을 살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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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으로 따지자면 노비만 천민에 속했으나 재주를 넘는 재인이나 광대, 짐승을 잡아 고기를 만드는 백정, 짐승 가죽으로 신발 등 여러 가지 생활용품을 만드는 갖바치, 술을 파는 기생, 굿을 하거나 점을 치는 무당, 배를 띄우고 노를 젓는 사공 등도 모두 천민의 삶을 살았다.

천민의 삶

이들에게는 나라에 세금을 내거나 군인이 되는 등 어떠한 의무도 없었지만 아무런 권리도 없었다. 과거 시험을 볼 수도 없었으며, 차별 대우는 극심히 많이 이루어졌다. 특히 노비는 주인의 재산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노비들은 주인의 마음대로 팔려지거나, 가보처럼 주인의 자손들에게 물려지는 경우도 많았다. 천민들은 주된 직업은 농업이었고, 논과 밭을 가꾸어 벼, 보리, 콩 등의 작물을 재배했다. 그들은 일년 내내 논밭을 경작하고, 농사 일정에 맞추어 건초를 건조하고, 벼알을 모으는 등의 농업 활동을 수행했다. 그 밖에도 공예, 집안일, 직물제작등 다양한 부업을 겸해 농경기술과 서로의 협력을 통해 공동체를 중시하는 문화를 만들어왔다.


천민들의 음식

추어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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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추어탕은 점잖은 사람은 거들떠보지 않던 음식이었다.얼마나 미천한 음식이었는지 남들 앞에서 체면치레를 하느라 대놓고 먹지도 못할 정도였다. 9세기 중엽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는 두부에 미꾸라지를 넣어 끓인 추두부탕이 있는데 부쳐 먹거나 탕으로 끓여 먹는다면서 맛이 매우 기름지며 한양에서는 천민인 반인(伴人) 사이에서나 성행한다고 나와 있다. 당시 반인은 관노는 아니지만 성균관 소속의 노비 신분으로 백정만큼 천한 취급을 받던 이들이었다. 이처럼 조선시대 추어탕은 천민, 또는 꼭지패라 불리는 청계천 거지나 먹는 천하디 천한 음식이었다. 하지만 훌륭한 맛과 효능에 1920년 점점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죽은 주로 쌀이나 보리를 끓여서 만든 미지근한 식사였으며, 가정에서 아침이나 아플 때 자주 먹는 음식이었다. 죽은 간단한 재료로 맛을 낼 수 있었고, 조리하기도 쉬워 천민들이 자주 먹는 음식중 하나였다.

나물

산채나 농작물의 잎이나 줄기를 삶아서 소금이나 간장 등으로 간을 맞춘 음식이다. 쉡게 구할 수 있는 채소나 식물등을 이용해 다양한 나물을 만들어 먹었다. 천민들은 나물을 중요한 영양원으로 활용하였으며, 비교적 저렴하게 구할 수 있는 식재료였다.

쌀을 씻어서 삶아 만든 식사의 주식이었다. 밥은 천민들의 식탁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으며, 한 끼 식사의 기본이었다.

장아찌

천민들은 상하지 않는 장아찌같은 음식들을 주로 만들어 밥과 함께 간단히 곁들여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