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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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예나 (토론 | 기여)님의 2018년 6월 11일 (월) 16:13 판 (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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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교

정의

1965년 3월에 창단된 동인제 극단이다.

개설

중앙대학교 연극영화학과를 주축으로 각 대학의 연극영화학과 졸업생이 만들었다. '연극은 직업이 되어야 한다.'는 직업의식을 가지고 권성덕(權成德)·김광남(金光男)·김동욱(金東昱)·김진태(金鎭泰)·김승일(金昇一)·김태완·오기환·이문영·이일웅·이승규(李昇珪) 등이 창단했다.

변천

1959년, 우리나라 최초로 중앙대학교에 연극영화과가 개설되었고, 연이어 동국대, 한양대에도 같은 전공이 설치됨으로써 전문 연극인 양성의 기틀이 마련되었다. 극단 '가교'는 창단공연으로 그들의 대학 은사였던 이근삼의 <데스스테스의 재판>을 이승일 연출로 신문회관에서 올렸다. 이후 빈센트 밀레이의 <끝없는 아리아>란 작품을 동국대학교 소극장에서 올린 후 전국 교도소와 군부대를 돌며 공연했다. 이는 소극적이고 비생산적이던 연극계의 상황을 벗어나 “참다운 교화와 따뜻한 위안을 주는 공연”을 하겠다는 의도가 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극단의 재정적 문제 해결을 위해서가 가장 컸다. 이때부터 그들은 기독교 단체와 손잡고 한동안 성극 공연에만 몰두하게 된다.
1970년대에는 천막극장 공연으로 관중을 사로잡는다. 최초의 천막극장 공연은 1973년 7월, 톰 존스의 <철부지들>(이승규 연출)로 대천 해수욕장에서 첫 막을 올린 후 15회 공연을 갖는다. 높이 6미터, 넓이 45평의 원추형 천막으로 15평의 무대와 2백 명을 수용할 수 있는 30평 공간의 객석을 갖춘 ‘이동형’ 극장이었다.
1979년에는 극단 대표를 맡아오던 이승규가 문예진흥원 예술인 해외연수 계획으로 미국에 가면서 대표직을 박인환이 맡게 되었다. 그러나 이후 작품 <별난 로망스>, <개뿔>, <만리장성>이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하였다.1980년 2월 10일 박인환은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전위극이나 신작공연도 좋지만 가급적 고전과 현대의 문제작을 관객에게 보여 주겠다”고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고, 이후 가교는 1981년부터 1993년까지 창작극(신작) 6편, 외국 번역극은 14편, 재공연 7편으로 번역극을 많이 올린다. 이 가운데에는 로버트 볼트, 베케트, 조지 오웰, 브레히트 등 현대 문제 작가들의 작품과 셰익스피어나 유리피데스와 같은 고전 작가들의 작품들이 포함되어 있다. 1994년 이후 가교는 악극 공연에 주력하고 있다. 가교는 순회공연 및 신파극 재현 작업, 천막극장 활동을 통한 ‘연극의 대중화’에 대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관련항목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이강백 가교 이강백은 가교에서 활동했다(P)
주어(S) 목적어(O) A는 B에서 ~하다(P)

참고문헌

문화포털 예술지식백과 - 극단'가교' http://www.culture.go.kr/knowledge/encyclopediaView.do?vvm_seq=7390&ccm_code=A014

작성자 및 기여자

청바지 손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