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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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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통미술품 수집가인 [[간송]] [[전형필]]이 33세 때(1938년) 세운 미술관으로 서울 [[성북구]] 성북동에 건립, 개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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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송 미술관(澗松美術館)''한국 전통미술품 수집가인 [[간송]] [[전형필]]이 33세 때(1938년) 세운 미술관으로 서울 [[성북구]] 성북동에 건립, 개관 되었다.  
 
1996년 전형필의 수집품을 바탕으로 수자움을 정리, 연구하기 위하여 한국민족미술연구소의 부속기관으로 발족되었으며 이름은 보화각이었다.
 
1996년 전형필의 수집품을 바탕으로 수자움을 정리, 연구하기 위하여 한국민족미술연구소의 부속기관으로 발족되었으며 이름은 보화각이었다.
 
보화각(빛나는 우리 보물을 모아둔 집)의 명칭은 간송의 스승이었던 [[오세창]]이 지은 것을 사용하다가 1966년 간송 전형필이 사망(1962년)하고 난 후 간송미술관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매년 5월과 10월 소장 문화재를 전시할 때를 제외하고는 개방되지 않는다.
 
보화각(빛나는 우리 보물을 모아둔 집)의 명칭은 간송의 스승이었던 [[오세창]]이 지은 것을 사용하다가 1966년 간송 전형필이 사망(1962년)하고 난 후 간송미술관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매년 5월과 10월 소장 문화재를 전시할 때를 제외하고는 개방되지 않는다.

2018년 6월 9일 (토) 20:38 판


소개

간송 미술관(澗松美術館)한국 전통미술품 수집가인 간송 전형필이 33세 때(1938년) 세운 미술관으로 서울 성북구 성북동에 건립, 개관 되었다. 1996년 전형필의 수집품을 바탕으로 수자움을 정리, 연구하기 위하여 한국민족미술연구소의 부속기관으로 발족되었으며 이름은 보화각이었다. 보화각(빛나는 우리 보물을 모아둔 집)의 명칭은 간송의 스승이었던 오세창이 지은 것을 사용하다가 1966년 간송 전형필이 사망(1962년)하고 난 후 간송미술관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매년 5월과 10월 소장 문화재를 전시할 때를 제외하고는 개방되지 않는다.

건물

간송미술관은 대한민국 최초의 근대식 사립 미술관으로 기록되며 2층 콘크리트 건물로 되어 있다. 건축물은 박길용에 의해 설계 되었으며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 하고 있다. 간송미술관 설계는 간송의 요청에 따라 우리 문화와 조화를 이룰 서구식 건물로 외관장식을 최소화함으로써 여백의 아름다움을 살리고 후세에 대대로 물려줄 수 있도록 튼튼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소장품

유명 소장품으로는 '훈민정음 해례본(국보 70호)'과 '청자상감운학문매병'이 있고 '해악전십첩', '금강내산', '동국정운'과 추사 김정희, 겸재 정선, 혜원 신윤복의 작품들 등 국보와 보물 20여점이 있다. 덕분에 간송미술관은 한국 제일의 고서화 소장처로 미술사 연구인들의 메카로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