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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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현 (토론 | 기여)님의 2019년 6월 4일 (화) 13:35 판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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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1948년 12월 1일 춘추사에서 출간된 이광수의 자서전

일제 강점기 시절 자신의 민족운동과 친일활동에 대한 내용과 정황을 설명하는 나의고백과 자신의 친일활동을 정당화하는 논리와 사례를 제시하는 친일파의 변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광수친일파의 변에서 이 글이 제삼자의 처지에서 쓴 것이기는 하지만, 그는 그가 이 글을 써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꼈다고 말하고 있다. 친일파라고 지목받았던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그들의 심경과 논리를 가장 잘 알고 있었기에 자신이 이것을 정리해서 소개해야 할 사명감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광수는 이 책에서 민족의식이 싹트던 때부터 일제 말기까지 자신의 행위를 '민족을 위한 선택'이었다고 서술한 후, 일제 말기의 친일 행위 역시 "애국자로서의 명예를 희생하더라도 민족보존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고육지책이었다."고 강변했다.

목차

 나의 告白
 민족의식이 싹트던 때
 민족운동의 첫 실천
 망명한 사람들
 기미년과 나
 나의 훼절
 민족 보존
 해방과 나
 親日派의 辨
 弘濟院沐浴
 三學士
 官公吏는 反民族者였던가
 美國人의 親日派觀
 大韓民國과 親日派

내용

소년시절의 활동, 개인적 연애의서사 등을 간결하게 요약하고 자신의 정치적 활동을 중심으로 식민 시절의 삶을 기록했다. 이광수는 '나'의 개인적 정체성을 모두 소거하고 역사적 인물로서 '나'를 구성한것이다. 이광수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친일파-이광수의 삶을 부정하고 민족운동가-이광수의 삶으로 '나'를 재현하고 있다. 나의고백은 소년시절 민족의식을 깨닫고 오산학교의 교사가 되어 민족을 위해 희생을 다짐하는 이광수, 그리고 이러한 희생정신을 바탕으로 2.8 학생독립운동과 3.1운동의 실천에 기여하고 궁극적으로 독립 정부의 뿌리가 되는 임시정부의 수립에 참여한 이광수의 모습이 그려진다. 민족운동자로서의 이광수의 삶을 강조한것이다.


평가

이광수는 나의고백을 통해 친일파-이광수를 민족주의자-이광수로 겹쳐놓으면서 반민족을 의미하는 '친일'의 모습을 혼란시켰다. 이러한 논리가 가능했던 이유는 이광수의 친일이 민족주의가 모두 민족의 발전과 개량이라는 근대적 계몽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측면에서 해방기 청산의 과정을 맞아 친일의 기표는 확정되지 못했고 미끄러지는 것으로 남는다. 이는 과거 청산이 친일의 주체를 호명하고 처단하는것에 끝나는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비판과 반성을 목표로 과거를 지속적으로 기억하고 애도하는것이 되는것을 방해하였다는 평을 듣는다.

RDF

항목A 항목B 관계
나의고백 저서이다 이광수
나의고백 이다 자서전
이광수 이다 친일파
이광수 출간했다 나의고백
나의고백 포함한다 친일파의 변

작성자 및 기여자

김도현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