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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화가 처음 발표한 작품으로,‘말세'로 표현되는 세상에 대한 한탄과 절망, 인고의 내용을 담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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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형식'''== | ||
+ | 2연 각 6행 총 12행의 서정시. 1922년 1월에 간행된 『[[백조]](白潮)』 창간호에 발표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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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석'''== | ||
+ | ===전체적인 내용=== | ||
+ | 1연은 “저녁의 피 묻은 동굴” 속으로 “거꾸러지”고, “파묻히”겠다는 내용이고, 2연은 “가을의 병든 미풍의 품”에 “술 취한 집”을 세우고, “속 아픈 웃음”을 빚겠다는 내용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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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연=== | ||
+ | 식민지 현실에서의 한탄과 절망적인 태도 | ||
+ | *1연에서 주목되는 것은 “피 묻은 동굴”과 “밑 없는 동굴”로 표현된 현실인식이다. | ||
+ | *이 작품의 발표 시기와 제목의 의미를 고려하면, 여기에서 말하는 “피 묻은 동굴”은 온갖 상처와 고통으로 얼룩진 당시의 식민지 현실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 ||
+ | *식민지 현실은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밑 없는 동굴”인 것이다. | ||
+ | *이런 절대적 상황 속에서 화자는 “거꾸러지”고, “파 묻히”겠다는 한탄과 절망적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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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연=== | ||
+ | 현실을 감내하겠다는 인고의 태도 | ||
+ | *“가을의 병든 미풍의 품”에 “술 취한 집”을 세우겠다는 점에서 화자의 의지가 1연에서 보이던 절망적 태도와는 다르다고 볼 수 있다. | ||
+ | *비록 “술 취한 집”이지만, 그것을 세우겠다는 것은 1연에서의 ‘하강’의 이미지와 달리, ‘상승’의 이미지인 것이다. | ||
+ | *특히, 이 시의 마지막 행 “속 아픈 웃음을 빚”겠다는 표현에서 현실이 고통스럽지만, 그것을 감내하겠다는 강인한 인고(忍苦)의 태도로 파악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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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종화=== | ||
+ | 1922년『[[백조]]』 2호에서 [[박종화]]는 이 작품을 두고 “근래에 얻을 수 없는 강한 백열(白熱)된 쇠같이 뜨거운 오열(嗚咽)의 노래”였다고 언급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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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구논문=== | ||
+ | 한 연구 논문은 이 시가 “파멸의 절망을 미화하지 않고 파멸에의 의지를 직설적으로 확인”하고 있으며, “자기 실현이 불가능하자 오히려 동굴을 지향함으로써 현실 도피적인 주체 탐색을 시도”하는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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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처'''== | ||
[https://gongu.copyright.or.kr/gongu/wrt/wrt/view.do?wrtSn=9000986&menuNo=200019 공유마당] | [https://gongu.copyright.or.kr/gongu/wrt/wrt/view.do?wrtSn=9000986&menuNo=200019 공유마당]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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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ttp://encykorea.aks.ac.kr/Contents/SearchNavi?keyword=%20%E6%9C%AB%E4%B8%96%EC%9D%98%20%E6%AC%B7%E6%AD%8E&ridx=0&tot=1951 한국문화민족대백과사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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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및 기여자'''== | ||
+ | [[홍한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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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류:말세의 희탄]] | ||
+ | [[분류: 末世의 欷歎]] | ||
+ | [[분류:이상화]] | ||
+ | [[분류:백조]] | ||
+ | [[분류:식민지]] | ||
+ | [[분류:한탄]] | ||
+ | [[분류:서정시]] | ||
+ | [[분류:현대시]] | ||
+ | [[분류:작품]] |
2022년 6월 15일 (수) 15:26 기준 최신판
말세의 희탄 | |
---|---|
한자 | 末世의 欷歎 |
유형 | 작품 |
시대 | 현대 |
작가 | 이상화 |
정의
이상화가 처음 발표한 작품으로,‘말세'로 표현되는 세상에 대한 한탄과 절망, 인고의 내용을 담고 있다.
형식
2연 각 6행 총 12행의 서정시. 1922년 1월에 간행된 『백조(白潮)』 창간호에 발표하였다.
원문
저녁의 피 묻은 동굴(洞窟)속으로
아- 밑 없는 그 동굴(洞窟) 속으로
끝도 모르고
끝도 모르고
나는 꺼꾸러지련다.
나는 파묻히련다.
가을의 병든 미풍(微風)의 품에다
아- 꿈꾸는 미풍(微風)의 품에다
낮도 모르고
밤도 모르고
나는 술 취한 집을 세우련다.
나는 속 아픈 웃음을 빚으련다.
해석
전체적인 내용
1연은 “저녁의 피 묻은 동굴” 속으로 “거꾸러지”고, “파묻히”겠다는 내용이고, 2연은 “가을의 병든 미풍의 품”에 “술 취한 집”을 세우고, “속 아픈 웃음”을 빚겠다는 내용이다.
1연
식민지 현실에서의 한탄과 절망적인 태도
- 1연에서 주목되는 것은 “피 묻은 동굴”과 “밑 없는 동굴”로 표현된 현실인식이다.
- 이 작품의 발표 시기와 제목의 의미를 고려하면, 여기에서 말하는 “피 묻은 동굴”은 온갖 상처와 고통으로 얼룩진 당시의 식민지 현실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 식민지 현실은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밑 없는 동굴”인 것이다.
- 이런 절대적 상황 속에서 화자는 “거꾸러지”고, “파 묻히”겠다는 한탄과 절망적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2연
현실을 감내하겠다는 인고의 태도
- “가을의 병든 미풍의 품”에 “술 취한 집”을 세우겠다는 점에서 화자의 의지가 1연에서 보이던 절망적 태도와는 다르다고 볼 수 있다.
- 비록 “술 취한 집”이지만, 그것을 세우겠다는 것은 1연에서의 ‘하강’의 이미지와 달리, ‘상승’의 이미지인 것이다.
- 특히, 이 시의 마지막 행 “속 아픈 웃음을 빚”겠다는 표현에서 현실이 고통스럽지만, 그것을 감내하겠다는 강인한 인고(忍苦)의 태도로 파악된다.
평가
박종화
1922년『백조』 2호에서 박종화는 이 작품을 두고 “근래에 얻을 수 없는 강한 백열(白熱)된 쇠같이 뜨거운 오열(嗚咽)의 노래”였다고 언급했다.
연구논문
한 연구 논문은 이 시가 “파멸의 절망을 미화하지 않고 파멸에의 의지를 직설적으로 확인”하고 있으며, “자기 실현이 불가능하자 오히려 동굴을 지향함으로써 현실 도피적인 주체 탐색을 시도”하는 작품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