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자결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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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서연 (토론 | 기여)님의 2022년 6월 15일 (수) 02:05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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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1918년 1월 제1차 세계 대전 이후의 새로운 세계 질서를 세우기 위해 미국 대통령 윌슨(Woodrow Wilson, 1856~1924)이 발표한 14개조 원칙 중 민족 자결과 식민지 민족 독립에 대한 원칙이다. 대한민국 3.1운동의 근간이 되기도 하였다.

배경

1914년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가 세르비아 청년에게 암살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그러자 세르비아를 지원하던 러시아와 오스트리아를 지원하던 독일이 대립했고, 이어서 러시아와 동맹이던 영국·프랑스가 참전하면서 총 40여 국가가 전쟁에 뛰어드는 이른바 '세계대전'으로 확대되었다.

전쟁이 3년 차에 접어들 무렵, 미국이 공식적으로 전쟁에 참가한다. 미국은 그동안 '먼로주의'에 따라 유럽 제국주의 국가 간 싸움에는 개입하지 않는다는 중립을 표방하고 있었다. 오히려 한창 전쟁 중이던 영국·프랑스 등 유럽 주요 산업국가들을 대신해 각종 물자를 생산하며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일구었다. 그러나 1917년 러시아에서 사회주의 혁명(2월 혁명)이 일어나고, 독일이 잠수함 작전을 펼치면서 영국·프랑스 등 연합국이 불리해지자 결국 1917년 4월 참전을 결정하게 되었다.

러시아의 레닌이 10월 혁명까지 성공시키고 공산국가를 수립하자, 미국을 포함한 연합군은 더욱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러시아에는 '자본주의 국가들이 벌이는 제국주의 전쟁에서 빠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고, 실제 러시아와 독일이 서로 침략하지 않는다는 강화조약을 맺으려는 움직임이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여기에 레닌이 '우리는 약소민족을 지원하겠다'는 발표를 하면서 세계 곳곳에 사회주의가 확대되는 분위기가 나타났다. 이를 견제하고 미국의 국익을 도모하고자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윌슨은 1918년 1월 '14개 평화 원칙'을 발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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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드로 윌슨(1856~1924)

내용

윌슨이 발표한 원칙에는 비밀 외교의 폐지, 패전국에 대한 무병합⋅무배상 원칙, 그리고 국제 평화 유지 기구인 국제 연맹의 결성 등 다양한 제안이 포함되어 있었지만,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민족 자결주의였다. 윌슨이 제안한 민족 자결주의는 각 민족은 자신의 정치적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으며, 이 권리는 다른 민족의 간섭을 받을 수 없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기원

원래 19세기 후반 민족자결주의를 처음 주장한 것은 사회주의자들이다. 유럽의 사회주의자들은 오래전부터 민족자결프롤레타리아 혁명과의 관계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러시아의 볼셰비키 대표자인 레닌은 민족자결주의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1916년 3월에 완성한 <사회주의 혁명과 민족자결의 원리>라는 글에 요약했는데, 그가 억압적인 체제에서 벗어날 인민의 권리로 정의한 민족자결의 원리는 자본주의-제국주의적 세계 질서를 무너뜨릴 뿐 아니라 러시아의 구체제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혁명에 대해 러시아 내 소수종족들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1917년 3월에 러시아혁명이 일어나자 레닌은 바로 종전을 외치며 러시아에서 볼셰비키가 권력을 잡으면, 강화조건 안에 '식민지해방과 함께 예속되어 있고 억압받는 비주권적 인민의 해방'이 들어갈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또 1917년 11월의 볼셰비키혁명을 통해 권력을 장악한 후 외무 인민위원 트로츠키는 작은 민족들의 자유를 보증하기 위해 싸운다는 연합국들의 주장을 위선적이라고 비난하고, 제국주의 국가들이 자기네 제국 내의 소수종족들을 억압하면서 그들의 권리를 위해 싸운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러시아에서 실질적 권력을 장악한 사회주의자들의 이런 주장은 제국주의국가들에게 큰 위협이 되었다. 그러니 영국이나 미국이 맞대응하지 않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사실 민족자결 이야기를 처음 한 사람은 윌슨이 아니라, 영국 수상 로이드 조지이다. 그가 1918년 1월 5일에 런던의 영국노조연맹회의에서 전후의 영토 문제 해결과 관련하여 '자결권'에 대한 연설을 했다. 윌슨이 이에 자극을 받고 자신이 국제정치의 주도권을 가진 인사라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1월 8일에 미국 하원에서 '14개 조항'을 끄집어낸 것이다.

'14개 조항'은 비밀조약이 아닌 공개 외교, 공해상의 자유항행과 무역의 자유, 군비 축소, 큰 국가나 작은 국가나 똑같이 정치적 독립과 영토적 완결성을 보증할 국가들 사이의 연맹 창설 등과 함께 전후 러시아·벨기에·프랑스·이탈리아·오스트리아-헝가리·튀르크·폴란드의 영토 문제 처리를 다루고 있는데 민족자결의 취지는 들어가 있지만 그 용어를 사용하지는 않았다. 그가 민족자결이라는 용어를 처음 쓴 것은 2월 11일 하원 연설에서이다.

영향

윌슨의 민족자결 주장은 1918년 중반 이후 언론을 통해 전 세계로 전파됐고, 그래서 전 세계의 피억압 종족들이나 식민지인들은 윌슨의 이런 주장에 크게 고무되었다. 전쟁이 끝나면 혹시 민족해방이 가능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은 것이다. 한국인들이 파리 베르사유강화회의가 열리던 시기에 3.1운동을 일으킨 것도 그 때문이다. 제국주의 국가인 미국을 완전히 믿은 것은 아니지만, 그런 분위기를 이용하여 독립에 한 걸음 더 나아가려 한 것이다.

기여자

느낌있조

강서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