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톨트 브레히트"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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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헨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한 베르톨트 브레히트(1898 ~ 1956)는 독일 바이에른 주 아우크스부르크에서 태어났다. 제 1차 세계 대전동안 뮌헨에 있는 병원에서 일했고 위생병으로 소집되어 육군병원에서 근무하였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반전적이고 비사회적인 경향을 갖게되었고 제대군인의 혁명 체험의 좌절을 묘사한 작품들도 많이 집필하게 되었다. 전쟁이 끝난 뒤 뮌헨에서 극작가, 연출가로 시작하여 막스 라인하르트의 독일 극장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무려 100회가 넘는 공연을 베를린에서 진행했다.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무정부주의자적 성향이 작품에서도 나타난다. 즉, 사회나 사회 기구를 비판하는 내용을 희곡에 많이 반영한 극작가이다. 이후 전쟁 체험을 통해 혁명적인 방향으로 가치관이 형성되었다. 1920년대 이후 마르크스주의를 받아들인 작가로서 부르주아의 탐욕을 드러내는 극본과 사회주의 소설을 집필하는 좌파작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1933년 극우정당인 나치스가 집권하자 독일 국회의사당 방화 사건에 누명을 쓰고 덴마크로 망명하였다.망명한 당시에도 파시즘 활동 반대를 지속하면서 여러 작품을 썼다. 이때 이 작품에서는 사실주의 수법의로의 접근이 다소 보인다.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브레히트는 미국에서 비미(非美)활동위원회가 주최한 '빨갱이잡기'가 1948년에 시작되었고 브레히트는 이에 스위스로 다시 망명하여 당시까지의 그의 연극론을 《소사고 원리(小思考原理)》라는 책으로 간추렸는데, 이것이 [[브레히트 서사극 이론]]의 시작이었다. 그 이후 동독으로부터의 초청을 받아 베를린으로 거주지를 옮겼다. 망명생활을 청산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두 개의 독일 중 사회주의 진영에 있던 동독을 선택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브레히트 이외에도 안나 제거스와 같은 다른 문인들과 예술인들이 독일 땅에 세워진 새로운 이념국가인 동독을 택했고 브레히트 역시도 좌파적이면서 사회비판적인 성향 때문에 동독을 선택하였다고 여겨진다. 사회주의는 러시아 혁명시절부터 냉전시기까지 사회주의라는 이념은 매우 이상적이고 희망적이었으며 무엇보다도 '약자의 해방'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그렇기 때문에 동독은 브레히트와 같은 예술가들을 자신의 국가로 편입시킬 수 있었다. 1949년에는 아내인 여배우 헬레네 바이겔을 중심으로 극단 ‘베를리너 앙상블’을 결성하여, 그의 망명 중의 여러 작품과 고전을 개작한 작품들을 집필하고 만년에는 더욱 그만의 연극 체계를 발전시켜‘변증법의 연극’을 창도(唱導)하면서 연극인을 양성하였다.
 
뮌헨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한 베르톨트 브레히트(1898 ~ 1956)는 독일 바이에른 주 아우크스부르크에서 태어났다. 제 1차 세계 대전동안 뮌헨에 있는 병원에서 일했고 위생병으로 소집되어 육군병원에서 근무하였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반전적이고 비사회적인 경향을 갖게되었고 제대군인의 혁명 체험의 좌절을 묘사한 작품들도 많이 집필하게 되었다. 전쟁이 끝난 뒤 뮌헨에서 극작가, 연출가로 시작하여 막스 라인하르트의 독일 극장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무려 100회가 넘는 공연을 베를린에서 진행했다.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무정부주의자적 성향이 작품에서도 나타난다. 즉, 사회나 사회 기구를 비판하는 내용을 희곡에 많이 반영한 극작가이다. 이후 전쟁 체험을 통해 혁명적인 방향으로 가치관이 형성되었다. 1920년대 이후 마르크스주의를 받아들인 작가로서 부르주아의 탐욕을 드러내는 극본과 사회주의 소설을 집필하는 좌파작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1933년 극우정당인 나치스가 집권하자 독일 국회의사당 방화 사건에 누명을 쓰고 덴마크로 망명하였다.망명한 당시에도 파시즘 활동 반대를 지속하면서 여러 작품을 썼다. 이때 이 작품에서는 사실주의 수법의로의 접근이 다소 보인다.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브레히트는 미국에서 비미(非美)활동위원회가 주최한 '빨갱이잡기'가 1948년에 시작되었고 브레히트는 이에 스위스로 다시 망명하여 당시까지의 그의 연극론을 《소사고 원리(小思考原理)》라는 책으로 간추렸는데, 이것이 [[브레히트 서사극 이론]]의 시작이었다. 그 이후 동독으로부터의 초청을 받아 베를린으로 거주지를 옮겼다. 망명생활을 청산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두 개의 독일 중 사회주의 진영에 있던 동독을 선택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브레히트 이외에도 안나 제거스와 같은 다른 문인들과 예술인들이 독일 땅에 세워진 새로운 이념국가인 동독을 택했고 브레히트 역시도 좌파적이면서 사회비판적인 성향 때문에 동독을 선택하였다고 여겨진다. 사회주의는 러시아 혁명시절부터 냉전시기까지 사회주의라는 이념은 매우 이상적이고 희망적이었으며 무엇보다도 '약자의 해방'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그렇기 때문에 동독은 브레히트와 같은 예술가들을 자신의 국가로 편입시킬 수 있었다. 1949년에는 아내인 여배우 헬레네 바이겔을 중심으로 극단 ‘베를리너 앙상블’을 결성하여, 그의 망명 중의 여러 작품과 고전을 개작한 작품들을 집필하고 만년에는 더욱 그만의 연극 체계를 발전시켜‘변증법의 연극’을 창도(唱導)하면서 연극인을 양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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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세계 (활동내역) ==
 
==작품세계 (활동내역) ==
작가(예술가)의 작품 세계에 대한 상세한 내용을 이곳에 기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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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작품들은 기존 가치관에 대한 비판의식, 인간에 대한 사랑,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는 평화주의가 담겨 있는 것이 특징이다. 브레히트는 처음엔 표현주의 작가로 출발하였으나 후일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추구하게 되었다. 처녀작인 <바알>, 출세작이 된 귀환병극(歸還兵劇) <밤의 북>, 인간소외의 문제를 앞세운 <도시의 정글>에는 아직 안비바렌트한 도취나 익살, 조소의 빛이 강하지만 차츰 마르크스주의로 기울어져, 대상에의 거리적(距離的)인 태도는 사회적인 인식을 구하는 새로운 서사적 연극의 주요한 수법인 이화효과(異化效果)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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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히트의 [[소격효과기법]]은 극작계에 큰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소격효과는 다른말로 하면 '생소화 효과', '낯설게하기 효과'로도 표현할 수 있다. 인간소외 현상의 소외를 의미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브레히트의 작품은 관객이 감정이입을 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읽는 내내 불편함이나 껄끄러움으로 남아 현실을 비판하게 된다.
  
작가가 아닌 사람의 경우에는 주요한 업적을 중심으로 기술합니다.
 
  
 
==작품 및 저서==
 
==작품 및 저서==

2018년 6월 2일 (토) 01:43 판


베르톨트 브레히트(1898 ~ 1956)

생애

뮌헨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한 베르톨트 브레히트(1898 ~ 1956)는 독일 바이에른 주 아우크스부르크에서 태어났다. 제 1차 세계 대전동안 뮌헨에 있는 병원에서 일했고 위생병으로 소집되어 육군병원에서 근무하였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반전적이고 비사회적인 경향을 갖게되었고 제대군인의 혁명 체험의 좌절을 묘사한 작품들도 많이 집필하게 되었다. 전쟁이 끝난 뒤 뮌헨에서 극작가, 연출가로 시작하여 막스 라인하르트의 독일 극장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무려 100회가 넘는 공연을 베를린에서 진행했다.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무정부주의자적 성향이 작품에서도 나타난다. 즉, 사회나 사회 기구를 비판하는 내용을 희곡에 많이 반영한 극작가이다. 이후 전쟁 체험을 통해 혁명적인 방향으로 가치관이 형성되었다. 1920년대 이후 마르크스주의를 받아들인 작가로서 부르주아의 탐욕을 드러내는 극본과 사회주의 소설을 집필하는 좌파작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1933년 극우정당인 나치스가 집권하자 독일 국회의사당 방화 사건에 누명을 쓰고 덴마크로 망명하였다.망명한 당시에도 파시즘 활동 반대를 지속하면서 여러 작품을 썼다. 이때 이 작품에서는 사실주의 수법의로의 접근이 다소 보인다.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브레히트는 미국에서 비미(非美)활동위원회가 주최한 '빨갱이잡기'가 1948년에 시작되었고 브레히트는 이에 스위스로 다시 망명하여 당시까지의 그의 연극론을 《소사고 원리(小思考原理)》라는 책으로 간추렸는데, 이것이 브레히트 서사극 이론의 시작이었다. 그 이후 동독으로부터의 초청을 받아 베를린으로 거주지를 옮겼다. 망명생활을 청산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두 개의 독일 중 사회주의 진영에 있던 동독을 선택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브레히트 이외에도 안나 제거스와 같은 다른 문인들과 예술인들이 독일 땅에 세워진 새로운 이념국가인 동독을 택했고 브레히트 역시도 좌파적이면서 사회비판적인 성향 때문에 동독을 선택하였다고 여겨진다. 사회주의는 러시아 혁명시절부터 냉전시기까지 사회주의라는 이념은 매우 이상적이고 희망적이었으며 무엇보다도 '약자의 해방'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그렇기 때문에 동독은 브레히트와 같은 예술가들을 자신의 국가로 편입시킬 수 있었다. 1949년에는 아내인 여배우 헬레네 바이겔을 중심으로 극단 ‘베를리너 앙상블’을 결성하여, 그의 망명 중의 여러 작품과 고전을 개작한 작품들을 집필하고 만년에는 더욱 그만의 연극 체계를 발전시켜‘변증법의 연극’을 창도(唱導)하면서 연극인을 양성하였다.


작품세계 (활동내역)

그의 작품들은 기존 가치관에 대한 비판의식, 인간에 대한 사랑,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는 평화주의가 담겨 있는 것이 특징이다. 브레히트는 처음엔 표현주의 작가로 출발하였으나 후일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추구하게 되었다. 처녀작인 <바알>, 출세작이 된 귀환병극(歸還兵劇) <밤의 북>, 인간소외의 문제를 앞세운 <도시의 정글>에는 아직 안비바렌트한 도취나 익살, 조소의 빛이 강하지만 차츰 마르크스주의로 기울어져, 대상에의 거리적(距離的)인 태도는 사회적인 인식을 구하는 새로운 서사적 연극의 주요한 수법인 이화효과(異化效果)를 낳았다.


브레히트의 소격효과기법은 극작계에 큰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소격효과는 다른말로 하면 '생소화 효과', '낯설게하기 효과'로도 표현할 수 있다. 인간소외 현상의 소외를 의미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브레히트의 작품은 관객이 감정이입을 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읽는 내내 불편함이나 껄끄러움으로 남아 현실을 비판하게 된다.


작품 및 저서

작품이나 저서가 없는 사람의 경우에는 이 부분은 제외하고 기술합니다.

배우의 경우 출연작에 관한 내용으로 채워 주세요.

기타(수상내역 등)

위 항목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해당 인물을 설명하기 위해서 필요한 정보를 자유롭게 기술합니다.


참고문헌

작성자 및 기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