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히트 서사극 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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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 또는 용어의 명칭


정의

독이어표기로 'Episches Theater'라는 말은 서사극의 의미한다. 1920년대에 종래의 감정이입에 바탕을 둔 '극적' 연극으로서는 다룰 수 없는 정치적인 주제를 다루기 위하여, E.피스카토르의 서사적 요소에 대한 주목에 자극을 받은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자기 연극을 특징짓기 위하여 사용한 말이다. 브레히트는 이러한 서사극을 주장하면서 소격효과기법과 같은 여러가지 기법과 효과를 제시하고 이것을 정립하여 서사극 이론을 만들었다. 이것이 브레히트 서사극 이론의 정의이다.



자유구성

제1차 세계대전 직후 독일 사회는 민주적 성격의 헌법이 등장했지만, 패전으로 말미암은 경제적ㆍ사회적 혼란은 더욱 심해져가고 정당의 난립, 실업자들의 폭동, 그리고 나치즘의 등장 등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는 사건들로 인해 독일은 결국 무정부 상태에 이르렀다. 이러한 상황에서 독일의 젊은 예술가들이 정치ㆍ사회에 비상한 관심을 쏟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 중 하나가 바로 베르톨트 브레히트 였는데, 사회개혁 또는 혁명을 꿈꾸어 극장을 하나의 토론 내지는 시위적 표현이 가능한 의사표현의 장소로 생각하기도 하였다. 그는 극좌적 경향 때문에 비난을 받기도 하였지만 그의 무대표현 기법은 독창적인 것으로서 Brecht에 이어져 ‘서사극 (Episches Theater)’으로 정립된다. 독일의 표현주의 연극 시기의 뒤를 이어 표현주의 연극이 너무나 주관적이며 낭만적이라고 생각되어졌던 까닭에 그것에 반기를 들고 등장한 것이 서사극인 것이다. 그러나 서사극은 사실주의에 대한 반대 감정에 있어서, 즉 연극적인 연극에 대한 신임에 있어서는 표현주의 연극과 입장을 같이한다.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고전극의 형식이나 문체를 버린 실험적이고 교술적인 색채가 농후한 정치 및 사회주의 서사극의 형태를 확립하였고 인간이 운명에 좌우된다는 종래의 고장관념을 연극을 통해 타파하려고 했으며 연극을 하나의 무기로 생각했던 것이다.

관련항목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주어(S) 목적어(O) A는 B를 ~하다(P)

참고문헌

작성자 및 기여자